Miss.Hokusai.2015.JAPANESE.720p.BluRay.H264.AAC-VXT

한글자막 : Fyou

 

이상한 영감이 있었는데

 

다다미 120장만 한 화지에

 

큰 달마상을 그려본다거나

 

또 그러나 싶으면...

 

쌀알에 참새 두 마리를
그려보기도 하는,

 

'테츠조'를 모르신다면

 

화가, '호쿠사이'

 

이럼 알겠죠

 

그 이상한 영감이
제 아버지라서요

 

개똥 밟았네

 

분카 11년(1814년), 봄 - 에도

 

뉘슈?

 

 

'오에이'구나

 

도시락 사 왔어

 

고마워

 

너 아버지,
일이 줄었다던데...

 

어디서 들었어?

 

좀 수군덕대길래

 

둘이 어찌 지내는지
걱정되기도 하고...

 

먹을 걱정까지 하면 어떻게 해

 

두 부녀, 두 자루의 붓,
젓가락 4개만 있으면

 

어디 가도 굶지는 않아

 

맞다. '오나오'한테 갔었다며

 

며칠 전 새 유카타를
가져다주려고 갔더니

 

언니가 조금 전에 왔었다며

 

금붕어를 사다 주었다고 하더구나

 

 

매일 본다면서
금붕어를...

 

보지도 못하면서...
늘 '본'다고...

 

볼 수 있거든

 

엄마, 나도 여기서 살까?

 

그럼 좋겠지만...

 

아버지는 어쩌고...

 

'테츠조'는 혼자 둬도 별일 없어

 

아버지를 좀,
도마뱀 보듯 하지 마라

 

백일홍이 피었네

 

어수선하게 지고,
화끈하게 피는...건가?

 

긴 축제가 시작된 거네

 

백일홍
~Miss HOKUSAI~

 

여기가 나와
'테츠조'가 사는 집이다

 

음식은 하지 않는다
청소도 하지 않는다

 

쓰레기가 쌓이면
이사하면 되니까

 

'테츠조'는 그림 그리는 것 외엔
다른 취미는 없어서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다

 

뭐...춘화는 자주 그리니
여자야 좋아하겠지

 

일단은 됐다더니만
아직 이라니요

 

갈피를 잡을 수 없네요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시오

 

글쎄...어디 갔을까나

 

시치미는 삼가시오!

 

없는데...

 

진짜 없었네

 

선생님! 용 그림은?

 

막 끝나가던 순간...
그만 승천하고 말았네

 

뭐에요. 약속은
이번 달 말까지잖아요

 

이번 달은 큰달로,
아직 하루 남았꼬만....

 

내일 다시 와봐요

 

어쩌면 하늘에서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아니...

 

그럼 돌아오지 않으면...

 

좋을 대로 하세요

 

두 분의 머리를 쳐도
전하의 분부를 감당하기 힘든데

 

그렇게 되면...

 

배라도 쨀까?

 

아프겠죠?

 

아침이 된대도
난 안 그릴 거다

 

알고 있어

 

역시 이건 아니야. 형

 

뭔 소리야?

 

'호쿠사이'선생을
만나게 해준다니까

 

이 주정뱅이가 '젠지로'다

 

멋대로 굴러들어온 식객으로,

 

지독한 색골이다

 

원래는 사무라이였는데...

 

무슨 이유인지 칼을 버리고
화가가 되었다

 

이 녀석은 '한모토'에서 알게 됐는데요
(책, 그림 등을 출판, 유통하는 곳)

 

야~ 썅, 너

 

너도 화가 나부랭이라면
고맙다고 해야 할 거다

 

여기 있는 영감이,
호쿠사이 선생님이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전 '우타가와' 문하인,
(에도시대, 유명한 우키요에 화가)

 

'우타가와 쿠니나오'라고 합니다

 

'우키가와' 문하이긴 하지만
호쿠사이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쿠니나오?

 

왜 그걸 이제야 말하는 거야?

 

물은 적 없었는데

 

그렇구나
'쿠니나오'였구나

 

너 엄청 인기 많잖아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

 

올라와

 

 

열아홉이랬나?

 

 

나보다 4살 어린가

 

먹어!

 

아니

 

닥치고 먹어
한창 자랄 때니까

 

그만해. 형

 

죄송합니다
소란피워서

 

어, 개똥...

 

아...아니...

 

뭐야? 아는 사이야?

 

선생님 따님이신 '오에이 상'이다

 

누님이 '오에이 상'이구나

 

그렇구나

 

얼굴은 '양국교'에서 가끔 봤는데
(화가들이 스케치를 자주 나가던 다리)

 

용이군요

 

용은 요령이 있죠

 

붓끝을 아무리 휘두른들 약해 보이고

 

머리로 그려본들
결국 심력만 허비하죠

 

다만 이렇게 가만히...

 

용이 내려오길 기다리다가

 

오는 순간

 

단숨에 붓으로 잡아두는 겁니다

 

다른 생물하고는 틀리죠

 

잡아내는 방법도 틀리죠

 

하지만 이건
제가 지어낸 얘기는 아니고

 

당나라 이야기입니다

 

발칙한 놈!

 

선생님을 앞에 두고
감히 오에이짱을 꼬셔?

 

뻔뻔한 놈이네

 

아...아니야

 

나 절대 그런 생각한 적 없어

 

과연 잘나가는 화가란 건가

 

여자 꼬시는 것도 틀리네

 

썩을 놈!

 

건방 떨지 마!

 

나가!

 

뭐에요?
영감까지 쫓겨난 거요?

 

선생님, 오늘은 잠깐 쉬시죠

 

좋았어
다시 한잔 걸치자고

 

봐, 저 여우가
오라고 손짓하잖아

 

으와, 웃었어

 

용이 정말 존재할까?

 

어릴 때,
고향인 신슈에서 본 적 있는데

 

회오리바람이겠지

 

그거야 바람이 산이나 계곡이랑
부딪치면서 뒤틀린 거 아니겠어?

 

나도 봤다

 

네?

 

구름 속에서 발톱이랑 비늘이
확실히 보였지

 

그냥 그렇게 느낀 거겠죠

 

넌 소견머리가 없어
그림이 그 모양인 거다

 

네가 그린 인간은
전부 엉터리라서

 

이렇게 한발만 내디뎌도
바로 허물어지고 말지

 

그래도 그림에서 뭔 냄새가 나니
재밌긴 하더라

 

네 그림이 어질러져 있으면

 

방이 후끈후끈해지니까

 

그러는 자넨 손재주가 좋아서
오히려 위태로워

 

위...위태요?

 

그래. 위험하지

 

사형제들의 눈에 나지 않도록 조심해

 

알겠습니다

 

손님들

 

아까부터 알 수 없는 소리만 하시네요

 

뭐라?

 

계집이 어디라고 끼여!

 

볼썽사납게

 

이런, 제가 실수를 했나 보네요

 

너 따위가 알 리 없겠지만

 

이 영감이 호쿠사이 선생이거든

 

거짓말만 하시네요

 

그래 거짓말이야

 

진짜

 

일행은 동트기 전에 돌아갔어요

 

두고 가다니. 너무하네

 

뭐야?

 

너도 참 유별나구나
이런 집에서...

 

나랑 같은 신세인가

 

오나오

 

언니

 

암주께서 허락해주셨으니까

 

잠깐 바람 쐴까

 

오나오는 태어날 때부터
눈을 볼 수 없었다

 

오에이 상, 얼굴에 먹이...

 

닦았어?

 

어디 가고 싶어?

 

다리

 

또 다리야?

 

다리가 좋구나. 오나오는

 

통통한 고추입니다
얼얼한 매운맛이...

 

찹쌀 경단입니다. 찹쌀 경단

 

많은 소리가 들려오네

 

냄새도

 

응. 재밌네

 

언니도 다리가 좋아

 

어, 과자?

 

이시와라 과자야?

 

아니, 토자키 과자야. 먹어봐

 

아빠는 날 보러
전혀 오지 않아

 

왜일까?

 

일이 바빠서 그래

 

널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나 같은 몸으론

 

부모한테 제대로 된
효도를 할 수 없어

 

죽으면 분명,
지옥으로 가겠지

 

그런 게 어디 있어!

 

테츠조, 이 겁쟁이, 울보...

 

오에이 상

 

선생님 막내 따님인가?

 

'오나오'야

 

암자에서 비파를 배우고 있어

 

그래. 선생님께서 들은 적 있다

 

오나오 상,
난 선생님 제자인, '하츠고로'야

 

화가로서의 이름은
'토토야 홋케이'이고

 

토토야? 생선집?

 

그래. 전에는 생선을 팔았지

 

뭐하고 있었어?

 

그냥 다리 위 풍경을
보고, 듣고, 맡고 있었어

 

그거 좋지
다리는 재밌으니

 

아, 맞다
요즘 '오에이 상'의 미인도 대단하던데

 

나로선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어

 

그런 게 어디 있어

 

아니야
'만지도'도 칭찬하던데

 

그럼...
난 '한모토'로 가던 중이라

 

오나오 상, 또 봐

 

오에이 상, 자

 

응?

 

여기

 

닦는 게 좋겠다

 

미인이 이러면 안되지

 

그럼

 

다정한 사람이네

 

그래. 다정한 사람이야

 

언니, 평소와는 달랐어

 

그런 적...없어

 

맞다. 배 탈래?

 

어때? 기분 좋지?

 

봐. 다리 밑을 지나고 있어

 

무서워?

 

이대로 계속 가면
어디로 닿는 걸까?

 

바다지

 

바다는 엄청 크거든

 

'혼죠(지명)'보다도
'아사쿠사(지명)'보다도 훨씬 더 커

 

그렇구나

 

'테츠조'도 자주 그려

 

난 밀려오는 파도가 좋아

 

집채같은 파도라면
이런 배는 단숨이지

 

파도?

 

제발 그만요. 선생님

 

지저분한 건 이 정도 할까

 

너무하네요
실컷 그려놓곤...

 

거봐. 어차피 더러워졌잖아

 

뭐야. 이건

 

아, 그건 밑그림인데...

 

목은 '에이잔'의 기법을 따왔고,
(에도시대 화가, 키쿠가와파 시조)

 

구도는 '우타마로'의 춘화를
그대로 베꼈잖나

 

변명할 말이 없네요

 

이러니까 오에이한테
'바보젠'이란 소리나 듣지

 

오에이짱, 춘화도 잘 그리네요

 

당할 수가 없다니까

 

그러니 홀로서기를 못하는 거다

 

네?

 

여인은 확실히 좋다

 

가끔은 나도 상대가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남자는 늘 내 화풍에
끼어맞추려고 하고 있잖나

 

그렇네요

 

그 녀석은 그런 일을
알지도 못하면서

 

춘화를 그린 거지

 

알지도 못하다면
오에이짱...

 

그러니 자네도 그리
기죽을 필요 없다는 얘기다

 

그럼 따님더러
이런 그림을 그리라는

 

선생님도 너무하네요

 

그 녀석은 뭐든 그릴 기세인데

 

그리지 말라고는 하고 싶지 않다

 

응?

 

다녀왔어

 

뭐야. 갑자기

 

아니...

 

또 나가는 거냐?

 

'요시와라'에
'오이란' 그리러 가려고

 

에? '요시와라'로?

 

'만지도'가 제대로 한번
'오이란'을 그려보지 않겠냐 해서

 

어느 집, 어느 '오이란'이래?

 

알아서 뭘 하게?

 

아니 뭐

 

'기쿄야'의 '사요고로모'야

 

뭐냐? 아는 사람이야?

 

'사요고로모'라 불리는
'오이란'이라면 요즘

 

'요시와라'에서
좀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죠

 

소문...이라면?

 

새벽이 다가올 때면

 

'오이란'의 목이 이렇게 쑥~

 

자란단 말이냐?

 

다만, 손님들의 주장뿐이라

 

난 아침까지 아무것도...

 

뭐...꿈이라도
꾼 거 아닐까요?

 

'사요고로모'는 평소
새침 떨기로 유명하고

 

잠버릇도 나빴다고 하니

 

날 밝을 때 머리가
베개에서 떨어진 거겠죠

 

확실히 봤다 더나?

 

자기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그럼 목이 늘어난 거 맞겠네

 

네?

 

너 같은 속물의 눈에
진짜 요괴가 보일 것 같나?

 

이것들, 정말 예쁘네

 

나보다 더 요염해 보여

 

언니, 정말 솜씨 좋네

 

이걸 토대로
밑그림이 만들어지고

 

채색이 입혀져 나오겠죠

 

더 기대되네

 

오래 기다리셨어요

 

그래서 부탁이 무엇이신지...

 

신기한 걸 보고 싶으시다면

 

'료고쿠' 동쪽 거리로 가보시죠
(볼거리들이 많았다고 함)

 

여기는 '요시와라',
볼거리는 없슨게

 

오이란, 잠깐만!

 

비켜요

 

이 할배가 너무 졸라대서...

 

말이라도 좀 들어줘

 

곧 끝난다
일단 앉자

 

난 저놈의 아비고
마찬가지로 그림쟁이인데...

 

그일은 말이야
저놈이 태어나기 전 일이었는데

 

25년쯤 됐을라나...

 

요괴 그림을 주문받았는데...

 

해질녘에야 마치고

 

잠깐 누워있는데...

 

토토독~타타닥~하고
다다미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지

 

그래서 눈 뜨고 봤더니
내 손이었어

 

혼자서 춤추고 있더군

 

그러던 중,
손에서 손이 나오더니

 

창문 밖으로 날아가더군

 

손만 나가고 눈은 없으니

 

바깥 풍경은 알 수 없었지

 

하지만, 손끝에서 느껴지는
바람이 차가운 걸 보면

 

무서운 기세로 나는 것 같았지

 

그 후부터 매일 밤 손이 벗어났어

 

처음에는 엄청 놀랐지만...

 

습관 되니 재밌더라고

 

억새 숲을 누볐고

 

오층탑의 탑 끝을 휘감았고

 

다리 기둥 사이를
빠져 다니기도 했지

 

그러다 문뜩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만약 그 손이 그만 잘려서
어딘가로 날아 가버린다면

 

남은 손은 움직일 수는 있는 걸까?

 

난 아직 그릴 그림도 많은데...

 

잘 아는 스님을 만나 얘기했더만

 

그건 절대 안 된다고 하더군

 

그곳에서 양팔에 경문을 새기고
염주를 감았지

 

그랬더니 더 이상
손이 날아가지 않았고

 

이처럼 훌륭한
그림쟁이가 됐다는 얘기지

 

참으로 축하할만한 일이군요

 

방울 소리가 들리면
옆방으로 들어오세요

 

아침까지 들리지 않는다면
그대로 돌아가 주세요

 

비밀 엄수

 

아시겠죠?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는데

 

억지로 함께 있을 필요 없다

 

좋을 대로 해

 

뭐...가끔 이러는 것도
일종 멋이겠죠

 

시끄러

 

에?

 

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아까부터 한숨만 쉬고 있잖아

 

긴 밤이란 생각이 들어서...

 

벌레겠죠?

 

뭐가 보여?

 

진짜?

 

쉿!

 

모기장 밖으론
나올 수 없는 걸까요?

 

결계가 돼버린 거겠지

 

모기장이 있어
다행인 것 같았네

 

모기장 정도는
언제라도 벗어날 수 있지요

 

그렇게 되면...

 

얼굴에 경문을 적고

 

목에 염주를 감고
다니란 말씀이신지요?

 

돌아오지 못하면
어떡할 텐가?

 

그런 건 그때 가서 고민해야죠

 

설마 맑은 정신으로
저문을 나서는 날이 있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선생님 그 얘기,
처음 듣는데요

 

손이 길어진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멍청한 놈,
나도 처음 듣는 소리거든

 

에?

 

예전에 '바킨(작가)'한테서 들은
당나라 괴담이야

 

그럼 왜....?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그런 멋진 걸 볼 수 있었겠어

 

난 뭐가 뭔지 모르겠던데

 

어차피 볼 거라면
좀 더 특별한 걸 보고 싶었는데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네 그림은...

 

어찌해도 이것만은 끊을 수 없네

 

경종 소리만 들리면
가만있을 수 없으니

 

너희들은 저쪽으로~!

 

빨리! 서둘러라!

 

불 끄는 무리가
주변을 차단하면

 

갈길 잃은 불길은
하나로 엉겼다가

 

갑자기 사그라지는 때가
더없이 좋다

 

또 화재야?

 

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 거야?

 

네가 여자 좋아하고

 

'테츠조'가 단 걸 좋아하는 거랑 같아

 

그러네

 

멍청한 놈

 

오른손 편 들판은
온통 눈으로 새하얘

 

이 제방도, 봄이 되면
사쿠라가 만개하겠지만

 

마른 나무에 눈 쌓인 풍경도
그런대로 볼만해

 

춥지 않아?

 

눈앞에 '미메구리 신사'의
기둥문이 있어

 

제방 밑에 세워져 있어서

 

마침 기둥문 위쪽이
네 눈앞에 있어

 

기둥문은...
이런 모양이야

 

계단을 내려갈 거야

 

잠깐만...

 

왜?

 

동백꽃이야

 

언니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야

 

손 내밀어 봐

 

무슨 색이야?

 

빨강이야

 

아름답고 따뜻한 색이야

 

가지고 가도 괜찮아

 

'타모토(소매 주머니)'에 넣어둘게

 

 

소리가 없네

 

그래. 조용하네

 

눈이 소리를 흡수해 그런 건가

 

아, 무서워?

 

좀 춥지?

 

아마자케, 둘이요

 

잠깐 시키고 올게

 

 

저기...

 

아마자케 둘이요

 

그려

 

이걸 위로 힘껏 던져봐

 

여기야. 여기

 

잡아봐. 잡아봐

 

받아라

 

받아라 받아라

 

여기야. 여기

 

오나오!

 

미안해. 미안해 언니

 

괜찮아

 

좀 무리했네

 

언니가 알아채지 못했어

 

그래도 너무 재밌었어

 

눈이라는 게,
재밌는 거였어

 

언니 집 들렀다 갈래?
바로 앞인데

 

아빠도 있을지 모르는데

 

어쩔 거야?

 

내가 갑자기 가면

 

아빠가 곤란해 하겠지?

 

아빠가 곤란해 하면
나도 괴로워

 

가지 말까?

 

 

마님, 괜찮으셔요?

 

안방에 그 그림에서...

 

망자의 비명소리가...

 

그건 정원수의 앉은
호랑지빠귀의 소리라고 했지만

 

부인은 전혀
납득하지 못하고 있죠

 

지옥도는 그 집주인이
지금까지의 죄업을 참회하고

 

내세를 기원할 수 있도록
매일 교훈으로 삼고 싶다고 해서

 

'오에이 상'한테 부탁해 그린 것이죠

 

주인도 무척 마음 들어 해서

 

저도 나름 뿌듯했습니다만

 

그 후, 이번엔 대낮에

 

백목란 계절도
벌써 끝나가고 있사옵니다

 

그건 마음의 병이 아닐까요?

 

지옥도가 너무 생생해서...

 

아직 끝난 게 아니네

 

마님은 그 이후,
상태가 점점 심해져서

 

결국 몸져눕게 됐어

 

집주인도 그림 때문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 훌륭한 그림이라
포기할 수 없었지

 

그러던 중

 

부인

 

다행히 작은 불로 그쳤지만

 

부인의 병은 낫지 않았어

 

어떻게 해결책이 없을까 물어와서요

 

오오에짱, 무서운 걸 그렸네

 

너무 잘 그려도
골칫거리가 되네요

 

골칫거리가 되는 그림이라면,
실력이 미숙하다는 증거지

 

꺼내라. 밑그림을 좀 보자

 

이럴 줄 알았지

 

넌 언제나 시작만 잘하고

 

매듭을 짓지 못해 문제다

 

매듭요?

 

이봐, 그 저택으로 안내하게

 

아니, 안됩니다
밤도 깊었는데

 

이봐. 만지도

 

이번은 작은 불로
끝나는 게 아니야

 

세워 주시오

 

잘 보거라

 

어때? 이렇게 해야
마무리가 되는 거잖니

 

영주님, 이걸로 만사 형통하실 겁니다

 

고맙소이다

 

넌 아직 멀었다

 

선생님, 선생님

 

저걸 보세요

 

그 후 부인은
더는 그림에 시달리지 않았다

 

썩을 영감탱이

 

분하지만, 한 수든 두 수든
나보다 위인 건 분명하다

 

다시 그릴게요

 

어디가 별로인지
얘기해 주세요

 

별로라고 하지 않았어

 

그렇게 정색할 필요 없어

 

그리고 그 '오에이 상'의
진지한 모습이 바람직하지 않네

 

누구든 장단점이 있어

 

좋은 예가 '젠상'이지

 

봄에 낸 춘화가
아주 잘 팔려

 

실력은 아니고!
'오에이 상'하곤 한참 멀었지

 

머리는 엄청 크고,
손발은 가늘고

 

그런 이상한 그림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있어

 

하지만 춘화라면

 

그게 묘하게 요염하거든

 

이렇게 그림이 앞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네

 

'오에이 상'은 그 반대야

 

인물은 제대로 그려냈지만
어쩐지 색기가 없어

 

하지만 그건
네 잘못은 아니겠지

 

애당초 시집도 안 간 처자한테

 

이런 그림을 대필하게 한
호쿠사이 선생님이...

 

하츠고로 상

 

어디 가?

 

'만지도'에 갔다가,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는 중

 

난 '스하라야'에서 나오는 길

 

집까지 바래다줄게

 

엄청 돌아가야 할 텐데

 

아냐, 선생님이랑
바둑이나 두려고

 

그렇게 가면 다 젖을 텐데

 

무슨 냄새지?

 

머릿기름인가?

 

'스하라야' 주인이
'젠상'을 만나고 싶다던데

 

젠지로

 

그 형편없는 놈을

 

그래도 여자 그림은 괜찮아

 

뭔가 있어

 

색기?

 

 

대단했어. 안 그래?

 

난 그런 싸구려 그림은
정말 싫어!

 

잠깐 들렀다 갈 곳이 있어서...

 

그럼

 

몸냄새였어

 

'테츠조'랑 '젠지로'와는 달라

 

몸에서...

 

어서 오세요

 

단골은 있으신지요?

 

딱...딱히

 

알겠죠. 네

 

또 와야 해요

 

알았어. 알았다고

 

됐어. 그만 놔

 

그럼

 

- 기다릴게요
- 또 오십시오

 

처음인감?

 

그럼 골라보시겠어요?

 

어제도 오고선!

 

아퍼

 

이봐, 언니, 왜 그래?

 

바보 같아서 돌아가려고. 놔!

 

바보 같으니 노는 거야

 

 

이거 놔! 망할 놈!

 

그래. 그래
바보라서 행복해

 

그럼 마담,
오늘은 손님 그만 받을게

 

잠...잠깐

 

벗어

 

에?

 

그 젖은 걸레 같은 거 말이야

 

다다미 젖으면 안 되잖아

 

자. 이걸로 갈아입어

 

척 소매였네

 

난 '키치야'라고 해
잘 부탁해

 

자. 하자 하자

 

잠...잠깐

 

이봐요

 

'야마코시 아미타'야

 

'가노 단유' 작품이라고...
(가노파 가장 영향력 있었던 화가)

 

멍청하긴

 

단유의 작품이라고?
이딴 쓰레기가

 

못 그린 거야?

 

심할 정도지

 

잘 아나 보네

 

왜 이런 불교 그림을
걸어둔 거야?

 

끈덕진 스님들이 많아서지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결국, 헛수고였어

 

여기로 오는 스님들은
부처님을 두려워할 리가 없잖아

 

그러네

 

그러고 보니
전에 이상한 꿈을 꿨었지

 

이 그림처럼

 

산 저편에서
부처님이 불쑥 나타났는데

 

그걸 본 사람들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절을 올리는데

 

사람도 집도 그냥 짓밟으며

 

성큼성큼 가버렸어

 

정말 너무했지

 

극락이란 정말 있는 걸까?

 

어쩔래? 안 할 거야?

 

좋았어. 하자 하자

 

오이

 

미안

 

진짜 조금만

 

100을 세는 동안만, 잘게

 

꼭...

 

할 테니까...

 

무거워

 

극락이란 정말 있는 걸까?

 

그럼 지옥은?

 

만지도

 

그럼...

 

그래, 수고하게

 

아, 맞다

 

오에이 상, 오늘 오후
가부키 공연이 있는데 생각 있어?

 

'스케로쿠'야
(가부키 공연 중 하나)

 

가게 점원이랑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겼다네

 

한 개밖에 없지만...

 

봐서 손해 볼 거 없을 거야
공부가 될 터니

 

고마워요

 

그럼

 

'하츠고로 상'도 갈 거야

 

아까 다른 한 개를 건넸으니

 

오에이 상

 

오에이 상, 아닌가요?

 

어쩐 일이죠?
무슨 고민이라도...?

 

없어. 딱히

 

그럼 어디로...?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인데

 

참 잘됐네요

 

나도 '한모토'에 들렀다
막 돌아가려던 참인데

 

응?

 

'4만6천일 축제'인데
(사찰에서 진행되는 연중행사)

 

관음보살께 잠깐 들리는 건 어때요?

 

전 찰싹 달라붙거나

 

낮은 소리로 소곤대는 여자는
질색이거든요

 

조금 눈매가 매섭고

 

고집이 센 여자가 좋거든요

 

'오에이 상'을 처음 봤을 때

 

'엇~ 이건'하고

 

그때 벌써 여간내기가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니까...제 말은...

 

난 '오에이 상'이...

 

형씨, 번마다 고맙소

 

 

무슨 소원을 빌었어요?

 

순산 소원

 

농담이야

 

'오에이 상' 정말 나뻐. 진짜

 

몇 시지?

 

아까가 낮 오시였으니까

 

아마 미시쯤...

 

무슨 볼일이라도...?

 

없어. 딱히

 

우뭇국수는 어때요?

 

 

좋았어

 

우뭇국수 2개요

 

알았슈

 

미안, 먼저 가야겠어

 

오에이 상

 

뭐지?

 

너무 맛있어. 엄마

 

그래?
그럼 엄마 것까지 먹을래

 

진짜로?

 

이젠 내꺼야

 

아무래도 안 되겠다

 

안돼

 

'오나오'가,
몸이 좀 안 좋다는 것 같았어

 

아까 엄마한테 들렀더니

 

'오나오'가 누워 있어서...

 

그저께 데려왔대

 

하지만 큰일은 아니래

 

곧 낫는대. 엄마 말이

 

가서 좀,
얼굴이라도 비치지

 

'오나오'도 좋아할 텐데

 

알았다

 

그렇게 환자가 무서워?

 

싸돌아다닐 시간은 있고

 

'오나오'한테는
가지 않겠다는 거야?

 

새 사시요. 새

 

방사용 새, 사시오

 

가여운 참새를 풀어주세요

 

새요, 방사용 새 사시오

 

거기에 몇 마리나 들어있어요?

 

30마리 정도 들어있습죠

 

이걸로 전부 풀어주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도 너무 미신에 빠진 것 같아

 

저런 거로 어떤 공덕도 못 쌓아

 

전부 칼깃을 솎아낸 거라

 

다시 금방 잡힐 거야

 

진짜예요?

 

뭐...그래도
운 좋은 놈, 몇 놈은 도망가겠지

 

들렀다 갈 거죠?

 

'오나오'도 좋아할 거에요

 

맞다. 인절미도 만들었는데

 

그거 오랜만이네

 

셋이서 먹어요

 

과자들뿐이네

 

자고 있어?

 

아까는 자고 있었는데...

 

누구야?

 

오나오, 몸은 어때?

 

아빠구나

 

죽음이란 가장 무섭고 싫은 존재로

 

난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난 결코...

 

너, 이걸 내일이라도

 

엄마한테 들고 가라

 

 

부적이라고 전해라

 

수세미같이 무성한 턱수염을 하고

 

검을 들고 있어

 

이 긴~ 장검으로
병마를 쓰러뜨리는 거야

 

이쪽 손으론
각종 고통을 짓눌러줘

 

아주 무서운 얼굴을 하고는 있지만

 

아이들을 지켜주거든

 

아빠는 내가 싫겠지

 

왜?

 

그러니까 아빠는
환자를 싫어하잖아

 

테츠조는 약골이라서
병을 무서워하는 거야

 

하지만 넌 달라

 

그래서 이렇게
그림을 그려주잖아

 

 

부드럽네

 

이제 돌아왔으니

 

단발은 그만하고

 

더 길러야겠다

 

언니가 묶어줄게

 

진짜?

 

그래

 

언니는 솜씨가 좋아서

 

머리가 늘 예뻤어

 

그래? 잘하는 거야?

 

내 취미지

 

빨리 자랐으면 좋겠다

 

 

자고 갈까나...

 

오에이, 그게 좋겠다

 

오늘은 셋이서 자자

 

언니

 

언니, 자?

 

아직

 

모기장 위에 뭔가 있어

 

뭐?

 

뭔가 있어

 

큰 벌레였어

 

밖으로 내보냈으니까
이제 괜찮아

 

벌레?

 

예쁜 벌레였어?

 

아니. 차갑고 홀쭉한

 

강낭콩 같은 거였어

 

온순했어?

 

온순했어?

 

귀여웠어?

 

귀여웠어

 

언니

 

응?

 

난 죽으면
지옥으로 가게 될 거야

 

지옥에서는 지장보살님을 위해
돌을 쌓는 게 일이래

 

왜?

 

왜냐면...

 

이미 정해져서
어쩔 수 없잖아

 

갖고 싶은 거 없어?

 

요즘 얼굴색이 많이 좋아졌다

 

그러네

 

걱정 마라. 큰일 아니니
곧 나을 거다

 

있잖아

 

아버지도 좀 데리고 와라

 

테츠조는 울보라서

 

바보같이

 

나도 울보다

 

의원이 준 약이 효과 있어,
많이 나았어

 

엊저녁은 죽도 먹었고

 

오늘쯤 가보지 않을래요?

 

넌 거짓말도 잘 못하는구나

 

그러니 남자 한 놈도 못 후리지

 

어라, 이상한데

 

어린 여자아이가
따라오는 것 같았는데

 

그...여자아이라면 어떤...

 

그게...요즘은 구식이지

 

단발인데...

 

이야~ 엄청난 바람이네

 

혼자서도 제대로 찾아왔구나

 

결국 가고 말았다

 

그 녀석의 눈도, 명도

 

내가 훔친 거 아닌지 모르겠네

 

네?

 

어라

 

이상하네

 

아니, 절대 장난친 거 아니에요

 

진짜 누군가
뒤따라 오는 것 같았다니까

 

진짜예요

 

바보젠

 

네 등 뒤에 뭔가 붙어있다만

 

뭐?

 

미안, 형

 

쿠니나오!
제기랄, 뭐하는 거야

 

죽~ 뒤를 따라왔는데

 

전혀 알아채지 못하길래

 

선생님, 오에이 상

 

모두 건강한 것 같네요

 

너도

 

그리고 형도

 

시끄러 시끄러

 

뭐하러 온 거야, 자식

 

그렇긴 한데, '후카가와'에
좀 재밌는 여자가 나타나서요

 

지나칠 정도로 술이 세다네요

 

너보다 센 거야?

 

글쎄요

 

그래서 살짝 겨뤄볼까 해서

 

이기면 무슨 좋은 점이라도 있어?

 

있죠

 

등에 새긴 기막힌 문신을
볼 수 있다네요

 

아직 아무도 본 자가 없다는 것 같고

 

흥. 같잖아서

 

소바라도 먹으러 갈까

 

맞다. 저희도 소바, 소바

 

그럼 오에이 상, 또 봐요

 

자. 가자

 

'만지도'가 재촉하러 올 텐데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낯이 안 설 거잖아

 

그런 낯이라면
이젠 버릴 때다

 

이번도 네가 그려라
부탁한다

 

안 그릴 거야

 

너, 그러고 보니
'만지도'가 말하더라

 

너도 이제 슬슬 자신의 그림을
그려보는 건 어떻겠냐고

 

긴 밤이 될 것 같네. 안 그래?

 

오나오, 그곳은 어때?

 

언니는 알아

 

네가 있는 곳은
지옥 따위가 아니라는 걸

 

여기는 여전해

 

변함없이 살지만

 

다행히 즐겁게 지내고 있어

 

글치?

 

테츠조는 평생 그림을 그리며

 

아흔까지 살았다

 

'젠지로'는 나중에
'케이사이 에이센'이라는 이름으로

 

미인도에서는
조금 알려진 화가가 되었고

 

테츠조가 죽기 1년 전, 죽었다

 

참, 어설픈 놈

 

난 한번 결혼했지만

 

헤어지고 테츠조 곁으로 돌아와

 

테츠조가 죽을 때까지 함께 지냈다

 

테츠조는 어떻게든
100살을 넘기려 애썼지만

 

아흔으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죽는 순간까지도

 

'10년만...아니!'

 

'5년만 더 살아도 진짜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라고 했지만

 

진심이었을까

 

진짜 어처구니없는 영감이라니까

 

'호쿠사이'가 죽은 후
오에이는 이곳저곳 전전하다

 

8년 후인 안정 4년
즉 1857년에 자취를 감춘다

 

어디에서 생을 마감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11년 후,
도쿠가와 막부는 붕괴하고

 

길고 길었던 사무라이 시대는
종말을 고한다

 

새 나라를 다스릴 메이지 정부는
에도의 호칭을 도쿄로 개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