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나 엘프

드워프 같은 빛의 신들의
가호를 받은 종족, 인족

그 수는 적지만 각자의
능력은 인족을 월등히 웃도는

어둠의 축복을
받은 종족, 마족

두 개의 세력은 거대 대륙 로인다스를
서쪽과 동쪽으로 나눠

몇 천 년이고
계속 싸워 왔다

 

하지만 300년 전,
온건한 마왕으로 대가 바뀐 뒤

소강 상태가
되었고

인족은 일시적인
평화에 익숙해져 갔다

창세력
2826년 5월

그 평온은 깨지게 되었고
새로 즉위한 마왕 아래

대침공이라 불리는 마족들에 의한
인족들을 향한 총공격이 시작됐다

 

마족 측의 희생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싸우는 모습은 살벌했고

인족은 순식간에
몇몇 왕국들을 잃고 말았다

이듬해,
2827년 4월

인족의 최대 전력이었던
가르간 제국이 멸망했다

 

물러설 곳이 없어진 인족은
필사의 전법을 쓰기에 이른다

 

잔존 병력을
끌어모아

마왕군 본대에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결전을 청하고

그 사이에 특공대가
본거지인 마왕성에 돌입하여

마왕을 쓰러뜨린다는
마지막 도박이었다

 

무사해?

 

세란!

먼저 가

여기는
내가 맡아 줄게

 

그럼 부탁해!

 

나 참, 귀찮구만

 

간다!

 

저건?

 

위다

 

우르자!

 

저 공격은 뭐지?

저건 엘리미네이션

모든 걸 소멸시키는
방어 불능의 특급 마법이다

 

이대로면 손쓸
방도가 없군

보옥의 마력을
해방시킬 수밖에 없겠어

 

사용자가 목숨을 건다면
함께할 수밖에 없겠군

 

미안해

 

나의 예지의
결실이여

무명의 어둠을 멸할
악을 끊어내는 섬광이 되거라

 

끝났어, 이걸로...

 

이봐...

 

이제 대답도
못하는가 보구나

 

조용하구나

살아남은 건 나뿐인가

 

지키고 싶었던 것들은
이제 아무것도 없어

고향도 가족도 동료도
사랑하던 사람도

모두 잃고 말았어

 

나도 이걸로 이제...

 

마도구?

저런 마력이
폭주하면...

 

여기는...
내 방?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이건 꿈인가?

 

카일, 언제까지 잘 거야?

얼른 일어나

 

뭐야?
일어나 있었어?

 

리제...

 

잠깐

왜 그래?
어디 아파?

 

그렇구나,
이건 꿈이구나

 

자, 잠깐만...

꿈이라도 좋아

 

다시 한 번
리제를 만나다니

갑자기 뭐야?

 

뭐 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건
마음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 바보!

 

어라?

 

아프잖아

꿈이 아니야

 

꿈이 아니구나

 

강해져서 뉴 사가

 

젊어진 거 같은데...

 

게다가 거의 죽을 정도의
중상을 입었을 텐데

 

꿈이 아니라면
어떻게 된 거지?

 

마을은
원래 모습 그대로고

리제는 기운이 넘치고
난 젊어

 

이건 과거로
돌아왔다고밖에는...

 

말도 안 돼

이게 원인이라고?

과거로 돌아가는 마법?
그런 게 있을 리가...

 

어떤 상황에서든
배는 고픈 법이구나

 

리제가
준비해줬나 보네

 

요리를 잘 못하는
나나 엄마를 대신해서

자주 만들러
와줬었지

 

맛있어!

 

이런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건 오랜만이야!

 

역시 너무 많이 먹었나?

 

아이고,
배고파라

 

아니, 야!

너 진짜!
전부 혼자서 먹은 거냐?

 

세란...

 

젠장...!

리제가 공들여서 만들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세란...

(하다못해 한입이라도
남겨주지 그랬냐?)

좀 전까지 같이 싸웠는데
(하다못해 한입이라도
남겨주지 그랬냐?)

역시...

(전부 먹어치우다니...)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

 

아, 그게 말이지...

오늘은 몇 년 몇 월,
며칠이었지?

뭐?

너 뭔 소리 하냐?

오늘은 2823년
5월 24일이잖아

 

정말로?
틀림없이?

어, 틀림없이
오늘은 2823년 5월 24일

맞다, 너 오늘
생일이었던가

어쩔 수 없지

밥은 생일 선물인
셈 칠게

아니, 너무
싼 거 아냐?

애초에 네 것도 아니잖아

 

아, 배고프다

리제한테
받으러 가볼까?

 

땅바닥에 고개를 조아리며 부탁하면
한 끼 식사 정돈 주겠지

 

여전히 목적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녀석이구나

 

어디,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

정말로 마법으로
과거로 돌아온 거라면

 

뭐, 그 사람한테
묻는 수밖에 없겠네

 

어머, 카일 짱
여긴 웬일로 온 거니?

 

벌써 아침이야, 엄마

또 밤새워서
책 읽은 거야?

벌써 아침이야?

역시 여기 있으면
시간을 잘 모르겠다니까

실은 마법에 대해서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어머, 내가
알 수 있을까?

대국에도 몇 명 없는
아크메이지잖아

엄마보다 더 박식한 사람은
그렇게 없다고

어머, 그건 그렇네?

 

저기, 과거로 돌아오는
마법이 있을까?

-있단다
-뭐? 있어?

 

그렇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시간에 간섭하는 마법은 분명 있어

 

하지만 있을 뿐이지,
아무도 쓰지는 못해

순전히
마력량 문제 때문에

마력량?

 

그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법사가
마력을 쥐어짜내도

찰나의 시간을 바꾸는 것밖에
못할 거라 생각해

 

그럼 마도구를
쓰는 건 어때?

그렇구나,
그거 흥미로운데?

마도구를 촉매로 삼아
마력을 모으는 거구나?

 

하지만 역시 그만한 마력을
혼자서 모으려면 천 년이 걸려도 못할 거야

그럼 금주의 의식을 쓰면?

금주?

목숨을 마력으로 변환하는
제물 의식 말이지?

어디서 안 거니?

책에서 언뜻
읽은 것뿐이야

자세히는 몰라

그렇구나

 

아무리 금주라도
불가능할 거야

아마 이 대륙 인족의
절반의 목숨은 필요할 거야

다시 말해 절반을
희생하면 가능한 거구나

 

그리고 과거로 돌아올 정도의
마력을 모을 촉매가 없어

만일...
있다.. 면!

 

확실히 이 책에...

 

아, 이거야, 이거

 

이 전설의 신룡의 심장
정도일 거야

 

고대 마법 왕국
자레스는

방대한 마력을 품은
신룡의 심장을 통해

천 년 동안
번영해 왔다

 

하지만 결국
마력은 고갈했고

 

왕국 멸망의
단초가 됐지.. 만

 

신룡의 심장이라면

과거로 돌아갈 마력을
모으는 것도 가능할 거야

다만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지
이미 천 년은 넘었어

 

이미 마족들의 영역으로
반출된 걸지도 몰라

 

그렇구나

 

이런 것도 좋은걸?

 

그야 카일 짱이랑
이렇게 오래 대화한 거 오랜만이니까

카일 짱이 검 수행을 그만두기도 했고
요즘 들어 날 계속 피했으니까

그럴 생각은...

그.. 뭔가 미안해...

나 참,
정말 쓸쓸했단 말이야!

 

하지만 카일 짱,
오늘은 평소보다 어른스러워서

꼭 미래에서 온 거 같아

 

어?

농담한 거야

아, 배고프다

오늘도 리제 짱이
밥 만들어 줬지?

아, 내가 전부 먹었어

 

엥?

 

미안해, 나도 모르게...

괜찮아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카일 짱 생일이었지?

자기 아들 생일도 까먹다니
엄마답다니까

그럼 밥은
생일 선물인 셈칠게

 

아니, 그러니까 내 선물
너무 싼 거 아냐?

 

과거로 돌아온다라...

 

그 녀석은 뭘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걸까?

 

여기 있었어?

 

아침 일은
미안해

 

반성은 하는 모양이네

이상한 꿈을 꿔서 불안한 나머지
그런 짓을 하고 말았어

반성하고 있어!

 

꿈이라니
무슨 꿈?

 

혹시 내가 죽는 꿈이라든지?

 

어,
뭐 그런 거야

 

그래서 그렇게
당황했던 거구나

 

아, 그렇구나

 

그런 거라면
용서해 줄게

카일 너 오늘
생일이기도 하고

 

생일 축하해, 카일

 

마족령에
가까운 이 마을은

대침공 때 제일
먼저 표적이 됐다

불바다로 변하고 모든 게
파괴된 마을은 지옥으로 변했다

 

그리고 리제도...

 

난 그날 맹세했어

반드시 원수를
갚겠다고

 

카일? 카일?

 

무슨 일이야, 카일?

 

뭔가 너 무서워

 

-아니, 별일 아냐
-그래...

그럼 됐고

 

이 평온은
3년 뒤에 끝난다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때와 똑같은 광경을 또 보게 될 거야

또 잃게 될 거야

가족도 고향도 세계도
소중한 사람도

 

바꿔주겠어

운명을!

운명을 바꿔주겠어!

그런 웃기지도
않는 운명을!

이 세계의 운명을
바꿔주겠어!

 

내가 반드시!

 

어떤 수를 써서라도!

 

내가 유리한 건 이거야

 

앞으로 일어날 일은
생각나는 대로 일단 전부 적었어

 

하지만...

 

이제 뭘 해야 하지?

 

난 4년 뒤 미래에서
온 사람인데

3년 뒤에 마족이 총공격을 걸어올 테니
그에 대비해야 해

그렇게 말해도
그런 걸 누가 믿어줄 리 없지

 

그럼 정체 불명의 차기 마왕을
내 손으로 쓰러뜨린다

 

불가능해

아무리 행운이
겹친다고 해도

지금 나
혼자만의 힘으론...

 

아니..

 

제대로 확인은
해봐야지

 

다음 화, 영웅의 조건

다음 화, 영웅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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