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카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멀었느냐?

대산벽(大山壁)도 힘들었고,

산길 뿐이 아니냐!

이게 이국의 공주가 할 여행이냐?

시끄러운 녀석이군.

업어줄까?

필요없어!

 

저기,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바로 롬카의 진정한 모습.

 

결혼반지 이야기 II

 

네프리티스, 들리니?

오늘은 읽고 싶어하던 책을
가져왔단다.

오빠란다,
열어주려무나...

제이드 님, 네프리티스 님이라면...

네프리티스는 오늘도
방에 틀어박혀있구나.

그 뒤로 왕궁 안에서
네프리티스를 본 자는 없어.

그리고 이 문 안을 본 자도 없어.

그 말은 즉!

이 문을 열지 않는 한

네프리티스는 여기에 없단 걸 증명할 수 없어.

네프리티스 님께서 롬카를 떠나시고
네프리티스는 여기에 없단 걸 증명할 수 없어.

네프리티스 님께서 롬카를 떠나시고
아니, 여기 있는 거야, 네프리티스!

바로 저렇게 되셔서...
아니, 여기 있는 거야, 네프리티스!

쭉 이런 상태셔요.

 

오라버니.

 

네프...!

네프리티...!

 

아니야!

네프리티스는 저 방 안에...!

 

넌 누구냐!

 

미안하군.

이성을 잃어버렸군.

 

그래서, 무슨 용무지?

 

엘프의 대서고, 란 걸
보여줬으면 해서 말이야.

 

반지는 모였지만,

지금 이대로는
심연왕에게 당해낼 수 없어.

그러니, 과거의 반지왕이나
심연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확실히 대서고에라면

그러한 서책도 있겠지.

하지만...

그곳은 우리 엘프의 묘지다.

 

묘지?

 

우리들의 지식,

그걸 써놓은 책들을 넣어둔
대서고를 여는 건

엘프가 죽었을 때만으로
정해져있다.

 

하지만 오라버니...

 

장로에게 상담해보도록.

서고의 열쇠는 그분이 관리하고 있다.

 

저기, 할아버지,

애당초 심연왕이란 건
언제 어떻게 나타난 거야?

 

실은 말일세,

언제인지도 어떻게인지도
확실한 건 알려지지 않았다네.

역시 그렇구나.

 

과거에 세계에는 균형이 있었지,

살아있는 자와 심연 간의
끝이 없는 균형이.

 

북방의 어둠에서 찾아와서

마물의 모습을 취하고,

사람을 습격하고 좀먹는 심연의 어둠.

 

그것에 좀먹힌 자들은 죽고,

몸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사람은 가지고 있는 한의 지혜와 용기,

마법과 검으로 심연에 계속 맞서왔네.

 

하지만 균형은 별안간 무너지고...

 

마물들의 왕,

사람의 형태를 가진 어둠,
심연왕이 나타난 걸세.

 

마물들은 통솔된 군대를 이루어
북쪽 땅에서 물밀듯 쳐들어왔네.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지키고자 싸웠어.

 

하지만,

압도적인 심연왕의 힘 앞에 패배하고,

심연의 어둠은
세계를 집어삼킬 만큼 퍼져버린 게야.

 

심연왕은 심연에서 나타난 거야?

 

그리고 그곳에 나타난 게

반지왕일세.

 

그, 그래서?

모른다.

 

그 뒤의 일은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전해지지 않았다네.

 

엘프의 대서고에?

응.

 

허가할 수 없겠는데.

어, 어째서?

당신께서도 보셨을 겁니다,
검은 반지를.

심연왕은 신화에서 전해지지 않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지식을 얻어야만 합니다.

검은 반지의 존재 따위
나도 몰랐었다.

대서고에 있는 건 과거의 기록.

그곳에 지금의 심연왕의 지식 따위
있을 턱이 없어.

 

뭐냐, 그 반지는?

 

심연왕과 싸울 때 하나가 됐어.

반지에서 목소리가 들려와서...

목소리?

그건 반지왕의 것이냐?

그건 모르겠어.

이전부터 가끔 말을 걸어왔는데,

지금은 전혀 반응이 없고.

 

모든 게 다
옛날과는 다르단 건가.

 

좋다.

대서고로 안내해주지.

 

저기, 그런데 장로님,

스마라그디 님을 못 보셨나요?

아, 신조를 되돌려놓고
바로 노카나티카로 떠났지.

 

혹시 엇갈린 건가?

 

그, 그렇군.

안심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아무래도 그분은 극단적으로
과격해지신 듯한 느낌이...

 

할아버지도 쩔쩔매는구나.

 

쩔쩔맨다는 건 무슨 뜻이죠?

 

아니, 그럴 일은 결코...!

알겠습니다!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단둘이서...

 

롬카의 중심에 있던 대수,

그 뿌리의 틈새에 생긴
공간을 기반으로

엘프의 대서고는 만들어졌지.

 

롬카의 엘프들의 지식.

그게 집적된 건가.

엄청나군.

 

이끼에 사는 벌레에 대한 연구,

노카나티카 가정 요리 3권,

종족별 아이를 만드는 법...

 

내 연구와 비슷하군.

 

어때, 반지왕?

이번에야말로
부부의 행위를 보여주지 않겠나?

아무래도 이젠 슬슬
익숙해졌을 텐데?

아니, 그건...!

 

참으로 늦되군.

 

여기가 최심부다.

 

심연왕에 의해 한 번 이 세계의 서책들은
거의 모두 잃어버렸어.

 

그리고 얼마 안 남은 서들은
이번엔 사람의 손에 불태워졌지.

 

반지왕과 심연왕의 싸움,

그 진실된 모습이
후대의 세상에 남지 않도록.

왜 그런 짓을?

모두가 두려워했던 거다,

심연왕과 반지왕을,

그리고 사람의 업을, 말이지.

 

이게 심연왕의 시대 이후,

분서를 면하고 최초로 보관된 책이다.

바라던 대답도 거기에 있어.

 

저자는 페리도트 롬카...

이건 장로님의?

그래, 내가 남긴 기록,

당시의 수기야.

 

난,

최초의 반지의 공주였어.

 

반지왕,

그리고 반지의 주인들.

 

각오하고 보도록.

 

이게 최초의 반지왕의 팔,

우리 반지의 공주들의 업이다.

 

세계가 심연의 어둠으로 감싸여

모두가 절망에 집어삼켜졌을 때
나타난 남자,

그게 반지왕이었어.

 

강대한 마력과
넘쳐나는 자신감을 두른 그 남자는

마물의 군대에 포위되어 함락을
기다릴 뿐이었던 노카나티카에 나타나서...

 

아무도 본 적 없는 빛의 마법을 썼지.

 

반지의 힘의 근원은

사람과 사람 간의 인연.

 

신께서 내려주신 반지의 힘을
한 층 더 끌어내기 위해,

부디 민초의 마음을 모으는
아름다운 공주들을 나의 아내로!

 

세계를 구하는 용사의 아내가 된다,

이만큼 자랑스러운 일은 없지.

 

남자는 이 세계의 다섯 종족으로부터
아내를 맞아들였어.

 

우리는 기꺼이
남자의 아내가 될 걸 선택한 거야.

 

다정하고 더러움을 모르는
빛의 공주,

정결하고 앞날을 꿰뚫어보는
바람의 공주,

강하고 용기가 넘치는
불의 공주,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물의 공주,

올바르고 기지가 풍부한
땅의 공주.

 

잠깐 있어봐!

정결하고 앞날을 꿰뚫어보는
바람의 공주란 게...?

물론 날 가리키지.

 

반지왕은 아내를 맞아들일 때마다

자신의 것과 짝이 되는
반지를 만들어냈어,

다섯 종족에게 각자.

이렇게 다섯 쌍의 결혼 반지가
탄생한 거야.

 

세계를 구할 용사, 반지왕.

그 이름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 전과는 사람들을 격려했지.

 

사람들의 마음은
그것들의 주인인 공주들을 통해

반지왕 아래에서 하나가 되었어.

 

반지왕은 싸우고,
승리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그 공에 보답하고자

우리 반지의 공주들은
몸과 마음을 바쳤어.

 

싸우고,

교합하고,

싸우고,

교합하고...

 

그리고 다시 전장으로 향한다.

그 반복.

 

반지왕은 강했어.

하지만 심연왕의 군세와의 싸움은
격렬함을 더해갈 뿐.

 

세계의 명운과
자신의 목숨을 건 싸움에...

 

서서히 반지왕의 마음은
궁지에 몰린 거야.

 

그곳에는

불안 때문에 육욕에 의지하는
평범한 남자가 있었지.

 

놀랐어?

반지왕은 대대로 전해져 갈 만한
영웅이 아니야.

하물며 신께서 보내신 구세주도,

세계를 구하는 장치도 아니야.

 

반지왕이란 대체 정체가 뭐지?

반지왕의 출신은 확실하지 않다.

어느 고대의 왕가의 후예?

현자의 아이?

신의 화신?

다양한 소문이 돌았지만,

반지왕 자신이
이야기 한 적은 없었다고...

그래,

아무도 그 남자에 대해 몰랐어.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고
믿으려고 하지도 않았어.

우리들에겐 이렇게 말했어,

최초의 반지는 밭에서 주웠다.

 

그 남자는 평범한 농부.

우리들과 똑같은, 의심할 여지 없는

평범한 사람이야.

 

얼마 안 가 반지왕은
힘과 욕망에 허우적대기 시작했어.

 

아내가 된 소녀들을 힘의 그릇,

또는 욕망을 채울 대상으로 밖에
보지 않고,

우리들의 모든 걸 탐하고

힘을 끌어내려 했어.

 

모든 걸 빼앗겨서
우리들의 마음은 피폐해졌어.

그래도 세계를 위해서
우리들은 그저 견디는 수밖에 없었어.

 

마음의 연결도 몸의 연결도 둘 다,

반지에게 있어선 인연이란 거야.

 

반지왕은 점점 더
엄청난 힘을 발휘해서,

마음을 가지지 않는 심연의 마물마저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어.

 

하지만,

그 힘은 아군에게까지
공포를 가져다줬어.

심연왕이 쓰러졌을 때,

다음 지배자는 이 남자겠지.

힘에 취해 타자를 깔보는 이 남자가
지배하는 세상에 평온은 있는가?

 

우리 반지의 공주들이 낸 대답은...

 

반지왕을 영원히 지워버리는 것.

 

너희들도 날 배신하는 거냐!

어차피 그럴 거라 생각했어!

저주해주마!

반지도, 공주도,

이 세계도!

 

반지는 저주의 반지가 되어라!

하나는 공주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고,

하나는 공주의 입맞춤을 받은 자에게!

힘을 원하는 자들에 의해
영원히 운명이 뒤틀려라!

다시 한 번 심연에
세계가 집어삼켜질 때까지

자자손손 대대로 고통받아라!

 

단 한 명,

빛의 공주만은 남자를 가엾게 여겼어.

 

그리고 심연이 되살아날 때,

빛의 공주의 남편은
새로이 반지왕이 된다.

 

그 후,

다섯 개의 반지는
각각의 나라에 전승되어서,

우리 반지의 공주들은
모든 일을 숨기기로 했어.

 

다섯 개의 나라에 전해내려오는
결혼 반지,

그건 그야말로 저주인 거야.

 

사토,

네 눈을 봤을 때,

그렇게 되진 않을 거란 빛을 느꼈어.

 

난 거기에 조금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새로운 반지왕으로서
여기까지 도달해버린 이상,

직접 전해야한다고 생각한 거다.

 

자아, 모두 각자
생각하는 바도 있겠지.

난 먼저 돌아가지.

여기서 알게 된 사실은

부디 여기서만의 이야기로
남겨줬으면 하는군.

 

힘을 둘러싼 저주... 라.

 

뭐, 반지왕을 배신하고
반지를 빼앗아서 돌아왔으니까,

자업자득 아니야?

 

그 후예인 우리들은

새로운 반지왕 밑에 모여서
심연왕과 싸워야만 해.

 

이건 분명
배신자에게 부과된 책임이야.

 

반지의 힘...

나의 힘...

 

이 목소리는?

 

나는 반지왕의 사념 같은 것.

나였던 건 실패했단 거로군.

 

그렇군.

 

나는 역시 너를 도와야겠군.

 

빛의 반지에 남은 나는

과거의 반지왕의 일말의 선의,

아니, 후회라 불러야 할 건가.

 

냉정... 하네.

나 또한 자신의 존재에 놀라고 있다.

 

사토, 방금 그건?

 

반지의 힘이 조금 변화했어.

 

아무일도 없나?

 

설마 그 선대 반지왕에게
정신을 탈취당한 건...

아니, 아니, 아니!

일단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고
괜찮... 다곤 생각하는데...

 

무슨 말을 해도
지금은 불안을 씻어낼 수 없겠지.

쉽게 감정에 휘둘리지,

여자란 그런 거다.

 

너도 저들에게 죽어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심연왕에게 이기기 위해선 힘을 원해.

선을 넘으면
더 힘을 얻을 수 있어.

 

아무것도 문제될 건 전혀 없어.

모든 게 바라던 대로잖아.

 

하지만,

정말로 그래도 되는 걸까?

 

심연왕에게 전력을 다해 도전했을 때,

난 아주 조금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어.

 

그런 내가
이전 반지왕처럼

힘에 집어삼켜지지 않을 거라
단언할 수 있어?

 

그리고...

 

욕망... 에도...

 

반지왕의 말로

역시 저 녀석, 뭔가 이상한 것 아니냐?

 

어라?

닫혀있는데?

 

이야기는 끝난 모양이군.

장로?

이 문, 안 열리는데요?

 

반지왕,

너는 여기서
심연왕을 쓰러트릴 힘을 길렀으면 한다.

 

그때까지 이 문은 닫아두지.

 

이 서고는
전체가 강한 마력으로 보호받고 있지.

유일하게 드나들 수 있는 이 문도
억지로 여는 건 간단하지 않아.

여기서 나가고 싶으면
이 문을 스스로의 힘으로 돌파해보여라.

 

잠깐, 물러서 있어줘.

 

너희들의 인연은 순결하다.

그게 새로운 세대의
힘이 될 거라 생각했다만,

너무 불안정해.

 

실제로 조금 전의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 이 꼴이지.

 

사토여,

아직 공주들에게 손을 대지 않았지?

이 기회에 끝내버려라.

뭐?

힘을 원할 텐데?

그... 렇지만...

그리고...

반지왕의 노리개로서 보낸 나날,

마음은 담기지 않은 행위였지만
그건 정말로 굉장했었지!

 

이 긴 생애 속에서
그걸 넘어설 쾌락은 없었어.

뭐, 죽어도 당연한 남자이긴 했다만.

 

내가 타종족의 교합에 흥미를 가지고

연구하고 있었던 것도 그 영향이다.

 

그 쾌감은 보통이 아니야.

지금의 반지왕과 하는 것도
필시 굉장하겠지.

 

훌륭한 물건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 대서고엔
내 과거의 연구시설을 이설해놨다.

거기로 가라.

그리고 힘써라, 부부의 행위에!

 

일단은 이대로는
우리들은 말라붙어 죽어버릴 테니,

우선은 장로님 말대로 해야겠네.

 

하지만...

장로님의 연구 시설이란 건...

 

-역시 그랬냐!
-역시 그랬냐!

 

그래서?

할지 말지 확실히 하거라, 반지왕.

 

내 목적은 고양이인의
튼튼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거다.

당장이라도 애 만들기에 들어가도
상관없다.

나는 반지를 건넨 순간부터
각오가 되어있다.

전 크리스탈 님 다음이라도 상관없고,

사토 님이 바라신다면 언제든지...

 

그... 사토는 신경 쓰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럴 상황은 아닌거 같고...

 

암바르는 아무런 문제없어.

 

하지만, 혹시 그걸로 힘을 얻어도
이전 반지왕처럼...

사토라면 괜찮아!

절대 그렇게 안 돼!

...그럴 거라 생각해.

 

반지왕 사토!

힘을 위해, 사랑을 위해, 사명을 위해,

이유는 이것저것 있지만,
우리는 모두 사토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다.

아니, 나는 그다지...

 

안아줘야겠다!

 

그렇다면 이런 건 어때?

 

인연을 강화하기 위해

오빠랑 단둘이서
이 방에서 보내는 거야.

순서는 공평하게 제비뽑기로.

 

그걸로 가자!

저기, 내 의견은...?

 

뭘 할 지는 오빠가 정할 일.

물론 아무짓도 안 해도 돼.

 

무슨 일이 있어도 발설금지.

 

괜찮지, 언니?

 

알았어.

 

1.

2.

3.

4.

 

5...

 

내가... 제일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