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제목 with Caption Creator 4

여어, 주인님,

살아서 만날 줄은 생각 못했다고.

이쪽이야말로
살아있을 줄은 생각 못했다고,

지라트.

 

그야 그렇네.

나도 왜 살아있는 건지
모르겠으니 말이야.

 

자아, 쌓인 이야기도 많긴 하지만,

우선은 소개해두지.

이 녀석이 현 수왕인 울프강이다.

 

그 딸인 쿠오레.

 

그리고 내 심복들.

나의 오른팔, 반쿠.

나의 왼팔, 라짐도르크.

 

난 신.

이미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하이 휴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평소처럼 얘기하면 돼, 주인이여.

그럼 그쪽이야말로 평범하게 불러!

주인이란 호칭 쓴 적도 없잖아!

오랜만의 재회야.

이 정도 농담은
용서해줬으면 하는군.

그리고 이렇게라도 안 하면

이 녀석들의 긴장도
안 풀릴 테니 말이지.

 

긴장?

신도

자기들 하이 휴먼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존재인지
알고 있겠지?

 

이 세계 주민들에게 있어서

하이 휴면은 경외하는 게 당연한
전설적인 존재니 말이야.

 

이데아를 냉소하는 세계를
꿰뚫어버려

꿰뚫어버려

 

뭐라 부를지 모를 무언가를
짊어지고서 오늘까지 왔어

전부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만한 게 아니야

내일을 내일이라
다 받아들이지 못한 우리로선

그것을 어떻게 본뜰 방도따윈
가지고 있지 않아

깨져버린 마음의 파편을 모아서

우리는 목소리를 되찾는 거야

 

잡은 이 손 더는 놓지 말아줘

당장이라도 사라져버릴 거니까

아아, 부디 너인 채로 있어줘

시대가 잔혹하게 가속한다 해도

꿈이 무너져 버린다 해도

그 고동을 양보하지 마

달리고 넘어지고
간신히 손에 넣은 초연함으로

이데아를 냉소하는 세계를
꿰뚫어버려

꿰뚫어버려

 

이봐, 아직 살아있어?

팔팔해.

몇 마리 쓰러트렸지?

백, 천,

더 많을지도 모르지.

 

여기서부터가 승부처야.

 

피가 끓는군.

좋은데.

등뒤는 맡길게.

 

그때는 죽는 줄 알았지!

그러게 말이야,

피차 용케 무사했지.

결국 몇 마리 쓰러트렸더라?

기억 안 나.

그렇지?

자아, 요 5백 년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라고 하자면...

지라트의 건국 무용담이라면
슈니에게서 들었어.

어이, 이봐, 먼저 말해버린 거야?

자랑해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잖아요,

과장된 내용을
얘기할 거라 생각했는지라,

 

객관적으로 본
있는 그대로를 전해줬어요.

뭣이?

 

그럴 수도 있겠네, 그거.

 

그럼 저는 차를 내어올게요.

그래, 부탁해.

 

어쩔 수 없지.

내 무용담은 제쳐둘까.

대신 신의 얘기를 들려줘.

 

그러게.

슈니에겐 얘기했지만,

실은...

 

그렇군.

 

어쩐지 아무리 찾아도
안 찾아진다 했어.

 

그나저나,

신도 기묘한 일에 말려들었군.

그러게 말이야.

뭐, 전부가 나쁜 일인 건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이야.

 

그렇군.

 

그렇겠지.

 

적어도 내게는 좋은 일이야.

 

지라트?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지.

 

신,

나는 네게 전해야만 할 얘기가 있다.

뭔데?

 

나는 이제 곧 죽어.

 

오래는 못 가.

아마도 앞으로 한 달도 못 버티겠지.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지?

몇 주일 전부터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슈니에게서
너에 대한 걸 듣고 확신했어.

 

내 안에서 멈춰 있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야,

 

신이 돌아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 세상에 신이란 게 있다면

내 소원을 들어준 걸지도 모르지.

 

소원?

 

승부하자, 신.

 

나는 너와 싸우고 싶다.

 

지라트.

너, 전사로서

싸움 속에서 죽을 생각이야?

 

나는 도무지 바라지 않을 수 없어, 신,

 

최강의 전사인
너와의 일대일의 결투를.

 

내 송곳니가
네게 어디까지 닿는가를,

 

초월자인, 너에게.

 

알았어.

 

받아주지.

 

울프강 등에겐 전해놨어?

남은 목숨에 대해선 해놨지.

결투에 대한 건 아직이지만
숨길 생각은 없어.

솔직하게 얘기할 생각이야.

 

그렇다곤 해도 반과 라짐은
내 바람을 눈치채고 있는 모양이지만.

전우야?

응.

 

신이 사라진 뒤로
함께 계속 싸워왔어.

 

두 사람 다 비스트 중에서는
1, 2위를 다투는 장수하는 종족이야.

지금까지 계속 나를 따라와줬어.

나도 그 녀석들도 이제 나이야.

슬슬 이 나라는 우리들의
영향 하에서 풀어줘야만 해.

울프강은 통치자로서
우수하다고 들었어.

그래.

백성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갈 수 있는 왕이야.

이미 어엿한 후계자도 있고 말이야.

미련이 남는 건?

 

너와의 결투, 그것뿐이야.

 

그렇구나.

 

너희들에게 전해야만 할 얘기가 있다.

 

죽을 장소를 찾았다.

네?

 

그건 무슨 의미실까요?

 

내 남은 목숨에 대해선 전했었지?

이 목숨이 다하기 전에

신에게 결투를 청했다.

 

결투는 일주일 후.

 

그러셨군요.

올 때가 왔다, 라고 봐야겠군요.

그래.

지금껏 이뤄질 수 없었던 바람.

드디어야.

 

알겠습니다.

 

어째서...

 

어째서 다들 그렇게 침착한 거야?

지금 그 말은...!

난 오래 살았어.

 

동포들이 쓰러지고,

 

그 아들들이 가고,

 

남겨진 손자들조차
몇 명이나 임종을 봐왔지.

 

어째서 난
지금까지 살아있었던 것인가,

 

그 대답을 일주일 후에 알 수 있다.

 

너도 지켜봐줬으면 한다.

 

네.

 

장소는 랄루아 대삼림.

나의 마지막이자, 최대의 싸움이다.

 

모두가 지켜보거라.

 

네!

 

결투라.

 

이제야 만났는데, 너...

신?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신, 너는 내게 있어서 동경이었다.

 

네가 사라지고
내 안에 남은 미련.

 

단 하나,
하지만 커다란 미련.

 

네가 없는 이 세계는
싸울 맛이 안 났어.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한 번은 포기했었던 이 바람.

 

감사한다, 신.

 

만전의 상태로 되돌려놨어.

이거면 마음껏 싸울 수 있겠지.

 

마치 시간을 되감은 것 같군.

 

감사해, 신!

 

신경 쓰지 마!

 

드디어 내일이군.

응.

 

신,

쓸데없는 말인 건 알고 있지만...

 

뭔데?

 

혹시

슈니 말이야?

 

그래.

혹시 돌아갈 방법을 찾아내면

신은 돌아갈 거야?

자신의 세계로.

 

슈니를 두고?

 

돌아갈 거야.

 

그게

 

내가 계속 싸워온 이유니까.

 

그렇군.

 

미안.

아니,

사과해야 할 건 내 쪽이야.

쓸데없는 걸 물었군.

 

참 어렵군.

 

내 일도 슈니 일도

전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지.

 

옛날엔

위기에 몰렸을 때 자주 말했지.

편의주의, 랬던가?

응,

무엇이든 다 잘 풀려서 해피 엔딩,

다들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 뭐 그런 거.

 

참으로 우리와는
한 번도 연이 없던 거군.

나 참.

 

내일, 기대하고 있어.

 

응.

 

결투하기 딱 좋은 날씨군!

그러게!

몸 상태는 어때?

언제든지 할 수 있어!

심신 모두 끓어오르고 있어!

 

저희들은 여기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혹시 유탄이 날아오면 부탁해.

네, 신경 쓰지 마시고

마음껏 싸우고 와주세요.

알았어.

 

지라트를 잘 부탁드립니다.

응.

저기...

 

잘 다녀와.

신, 힘내!

 

다녀올게.

 

뒷일은 맡기마.

무운을.

 

초대의 가르침은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나라와 백성들을 맡겨주십시오.

 

저는...

 

저도...

 

초대의 피를 이은 것에 걸맞는
전사가 되겠습니다!

 

그래.

 

갈까?

응!

 

저렇게 웃으신 왕은 오랜만이었지.

마치 어린아이 같은 미소야.

 

함께 지켜보자,

초대 수왕의 소원의 끝을.

 

네!

 

준비는?

언제든지.

 

시작됐어.

 

신!

지라트!

 

여전히 무거운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받아놓고서
잘도 말하네!

 

5백 년 전이 떠오르는데, 신?

내게는 불과 어제 일 같다고!

 

그렇겠지!

 

나도야!

 

굉장해.

초대의 진심,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슬슬 몸이 풀릴 때가 됐군요.

여전히 요란한 준비운동이군.

그래야지 비로소 우리들의 왕.

 

저러고도 아직 진심이 아닌가요?

물론입니다.

스승님도 저 정도로 강하시죠?

저라도 지라트 상대는
꽤나 고생한답니다.

하지만 역시 스승님이 더 강하구나.

 

이게 하이 휴먼과 지라트 님의 싸움.

확실히 눈에 새겨둬야겠군.

 

그대와 싸우기 위해 엮어낸 기술들도
번번히 통하지 않나.

역시 나의 주인이군.

능청스럽기는.

아직 이게 다가 아닐 텐데?

그래,

여기서부터는 모든 걸 걸겠어.

선언해두지.

지금부터 나는...

 

단 하나의 송곳니가 될 것이다.

 

신.

 

네 기분은 알고 있다.

 

내일은 진심으로 싸울 거야.

하지만 라스트 보스를 쓰러트리고
손에 넣은 칭호만은 쓰지 않을 거야.

그런 반칙 기술, 흥을 깨잖아?

 

내가 신의 입장이라면

똑같이 하겠지.

하지만...

 

설령 한순간에 승부가 결정난다 해도,

 

전력을 다한 신과 싸우고 싶어.

 

지금이, 이때만이, 너에게

내 송곳니가 닿을 때!

 

간다!

 

맞을 리가 없지!

 

이걸로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곤
생각 안 하겠지?

물론!

 

온다!

 

나의 오의,

지전(至伝)...

절가(絶佳)!

 

이건 좀 빡세네!

 

팔화장(八華掌)!

 

쌍륜(双輪)...

 

비천(飛泉)!

서로 다른 스킬들의 연격.

이만한 전법을 짜내는 데에

대체 얼마나 많은 단련을
거듭해왔을지!

 

한심해.

목숨을 걸고 있는 상대에게,

난...

 

미안, 지라트.

난 아직 전력이 아니었어!

 

그렇게 나와야지!

 

-지전!
-지전!

 

절가!

천공베기!

 

이제 곧 결판이 납니다.

 

잡았다!

 

지라트?

 

지라트!

 

다 들려.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모양이군.

 

마지막에 한방 먹어버렸네.

역시 지라트야.

 

허투루 5백 년을 산 게 아니야.

이 송곳니, 똑똑히 닿게 만들어냈다.

 

오랜 소원은 이뤄졌어.

신,

일격을 넣은 포상으로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나?

뭐지?

 

진심의 너와 싸울 수 있어서 기뻤다.

하지만,

아직 그 너머가 있지?

 

이 정도, 였을 줄이야...

 

작별이다.

 

지라트...

 

잘 가.

 

그래,

그래야지 비로소 나의... 주인...

 

끝난 모양이군요.

 

-지라트 님!
-지라트 님!

-지라트 님.
-지라트 님.

 

고개를 들어, 너희들.

 

너희들의 왕은 내게,

하이 휴먼에게 그 송곳니가 닿았어.

 

지라트는 확실히

우리들과 똑같은 영역에 이른 거야.

 

지라트 님...

두 사람 다, 왕의 얼굴을 보게나.

 

만족했다, 라는 얼굴을 하고 계시는군.

미련 같은 건 한 조각도 없으시겠지.

그러게.

응,

훌쩍이고 있으면 비웃으시겠지.

 

슈니?

 

지금의 신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릴 것 같아요.

 

뭐든 좋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말해주세요.

 

알고 있어.

 

이게 지라트가 바란 거란 건
알고 있어.

네.

 

나도 납득하고 상대를 했어.

네.

 

하지만 있잖아...

네.

 

동료가 죽는 건 힘드네...

 

신은 책무를 다했어요.

 

울어주세요.

이제 슬퍼해도 돼요.

 

언젠가 도달할 머나먼 저편의 땅엔

깊은 기쁨이 기다리고 있겠지

언제나 이 가슴에 피어 넘쳐나는 웃음을

지키기 위해 같은 하늘로

망설임 없는 궤적을 한데 겹치며

 

제9화
베일리히트의 왕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