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들이 광분한다
어서 끌고 가
서둘러
어서
빨리!
서두르라니까!
열어라, 빨리!
악마의 자식, 살인마!
내 동생을 죽인 놈
당장 죽여라!
어서 죽여!
갈기갈기
찢어 죽여라!
판결문을 읽어라
살인자 장바티스트
그르누이 판결문
사형 집행은
2일 후이며
죄인 장바티스트를
십자가에 묶은 채
고통스럽게
숨통을 끊을 것이다!
쇠막대로 12번 내리쳐
온몸을 요절낸다!
팔의 관절을
부러뜨리고
어깨는
으스러뜨리고
엉덩이, 다리도
뭉그러뜨려
뼈와 살도 신음하게
할 것이며
단칼에 죽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18세기 프랑스...
천재적 재능과 악명을
누린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장바티스트 그르누이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악마에 영혼을 판 듯
그가 집착한 것은...
바로 향수였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그가 살았던 18세기는
어딜 가나 악취에
찌들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심한 곳이
유럽 최대 도시 파리
생선시장은
그중 최악이었다
한 상자 더 있소
코를 찌르는
이 악취를 뚫고
1738년 7월 17일
그는 세상에 태어났다
벌써 5번째 애였건만
태어나자마자 아기는
늘 이렇게 처리됐다
거의 모두 사산아였다
괜찮소?
시체를 생선내장에 섞어
쓰레기로 버렸던 것
오늘도 그 어느 때와
다름이 없었건만
장바티스트는
다른 운명을 선택하였다
무슨 소리지?
- 애잖아!
- 어 떻게 된 거야?
핏덩어리네!
애 엄마는?
방금 있었는데?
애를 죽이려 하다니!
어떻게 자기 자식을!
저 여자 잡아라
저기 간다
거기 서!
살인자!
결국, 첫 울음소리로...
엄마를 사형장으로 몰아내고
혼자 남은
장바티스트는
별 수 없이
고아원 행이 됐다
오늘 몇 명이야?
4명인데...
한 놈은 곧 죽겠군
반시체만 실어오는군
돈 받고
이름이나 쓰셔
저리 비켜!
- 어디로?
- 옆으로!
비키라니까!
죽었니?
내 자리 좁잖아!
- 갖다 버리자
- 빽빽 울 텐데!
죽여 버리자
더 세게 눌러!
뭔 짓이냐?
여자는 보조금 챙기려
애를 살렸지만
애들은 장바티스트를
처음부터 두려워했다
5살이 되도록
말은 못 했지만
그에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딴 애들은 그를
못살게 굴다가도
늘 지레 겁을 먹었다
하는 짓마다
이상했지만
후각만큼은 그를
따를 자가 없었던 거다
겨우 말을
배우긴 했지만
그가 이 세상을
느끼고 이해하는 건
바로 냄새와
향기였을 뿐
나무...
따뜻한 나무
풀...
촉촉한 풀
이건 돌...
따스한 돌
물...
차가운 물
개구리...
젖은 돌...
크고, 물에 젖은
개구리와 돌...
많아...
이 냄새...
저 냄새...
13살이 되자
그나마 고아원도 꽉 찼고
팔려갈 신세가 됐다
따라와!
10프랑 줘!
이 남자 독한 약 냄새로
찌든 걸 보니
7프랑
한 푼도 더 못 줘
저 무두질 공장에
끌려가면
곧 시체가 되어 나오는 건
안 봐도 뻔했지만
어서 가
7프랑 때문에
애를 넘긴 여자는
어서 튀어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5년을 못 버티고 죽어나가는
무두질 공장에서
장바티스트는
잡초처럼 살아남았고
뼛골 빠질 일도
문제없이 척척
하루 15~16시간
중노동도 우스웠다
그러다 큰 세상에
눈을 떴으니
난생처음 많은 냄새를
맡기 시작한 거다
장바티스트!
따라와, 배달 있어!
끈질기게
살아남았으니
드디어 재능을
발휘할 때다
이 세상 모든 냄새...
달콤한 것도 좋고
구린 것도 상관없다
아무 냄새면 어떠하랴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세상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듯
새록새록 세상을
발견하며 감탄하고
죽 한 그릇에도
냄새는 수천 가지
모든 냄새를
음미했던 것이다
장바티스트!
이쪽이야!
어서 오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