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날리는 벚꽃은
볼을 적시는 비

하늘하늘 춤추는 빗속에서
나는 홀로 눈물을 훔쳤다

봄의 따뜻한 햇살도

여름의 나뭇잎 사이로 보이던 햇볕도

가을의 구름 틈새로 내려오는 빛이나

싸락눈에 반사되는 아침 햇살도

나를 비춰주지는 않았다

행복 같은 건 몰랐다

일말의 희망도

언제나 눈 앞에서 사라졌기에

줄곧 그렇게 여기며 살아왔다

이 세상에 나는 필요없는 존재라고

그날

그분과 만나기 전까지는

제1화
만남

이게 뭐야?

이런 떫은 차를 어떻게 마셔?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다시 내와

미요
언제까지 그럴 셈이니?

얼른 다녀와

알겠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차 하나도 제대로 못 내오다니

같은 사이모리의 자식으로
부끄럽지도 않나?

카야와 다르게
요령이라고는 없는 아이구나

어미를 쏙 빼닮았어

카노코
나를 탓하는 거요?

그야 당신이 낳은 아이니까요

그만하시오
이미 지난 일을

안녕하세요, 타츠이시 님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신이치와 협의할 게 있어서 왔네

이건 고용인들과
함께 나눠드시게

항상 고맙습니다

됐네
그럼 실례하지

방금 타츠이시 님이 오셨는데

혹시 혼담이라도 나누러 오셨나?

미요 님도 카야 님도
그럴 나이가 되셨지

미요 님은 이미 19살이셔

그런데 신이치 님이라면

미요 님이 아니라
카야 님이 먼저시겠지

자네들 뭘 그리 떠들어?

빨래 하나도 제대로 못 해서야
밥도 못 먹을 줄 알아

죄, 죄송합니다

누구 거실로 좀 와줘

사모님께서 부르시네

바로 가보겠습니다

혼담…

오늘도 마당 청소야?

열심이네

코지 님

아버지가 네 아버님과
당주 회의가 있으셔서

오늘은 따라왔어

수고 많으세요

…그건 구실이고

사실 미요와
얘기하고 싶어서 왔어

미요
손 내밀어 봐

밀크…?

밀크 캐러멜이야
달고 맛있는 과자

처음 먹었을 땐
아주 기가 막히더라고

기뻐보여서 다행이다

유행 좋아하는 형이 사왔어

정말 맛있어요

원한다면 언제든 갖다줄게

이 정도로 네가 웃어준다면
싼 편이지

항상 고마워요

이런 시간이 계속 되면 좋을 텐데

난 미요를 돕고 싶어

코지 님은 항상 그러고 계신걸요

이런 나라도
언제나 네 편이고 싶어

널 위해

네가 항상 웃을 수 있도록

…그냥 그렇다고

아버님

여학교에 입고 갈
새 기모노가 필요한데요

힘들까요?

여학교도 이제 곧 새학기구나

이참에 2, 3벌 사거라

그래도 돼요?

아버님, 고마워요

당신도 참

카야에게는 너그러우시네요

이 기모노도 이제 낡았다고요

미요

네

평소 낮에는 뭘 하는 게냐

집 주변 청소를…

그래

모레 낮에는 반드시 집에 있거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고용인이나 다름없는 내게
집에 있으라니…

걱정 안 하셔도

내가 이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없는데…

어머님

어머니 봤어?

사모님이라면 별채에 계실 거예요

지금 나가시나요?

그래
기모노 맞추러

곧 새학기니까

그런데…

언니
얼굴 좀 씻어

심각하네

미요 님, 얼굴에 검댕이…

실수로라도 그러고
손님 맞이하지는 마

그냥 나가도
사이모리가의 수치니까

죄송합니다…

미요…

코지 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오랜만에 양장이시네요

잘 어울리세요

오늘은 어쩐 일로…

네 아버님께 말씀드릴
중대한 일이 있어서

아버님께…?

이거

선물로 과자 가져왔어

괜찮으면 다 같이 먹어

고맙습니다

그럼 다음에…

코지 님…

왜 이렇게…

미요 님

어르신께서 미요 님을 부르세요

어서 객실로 오라십니다

알겠어요

모레 낮에는 반드시 집에 있거라

알겠느냐

혹여라도 기대해선 안 돼

틀림없이 안 좋은 얘기일 거야

코지 님과의 혼담…

기대해선 안 돼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부르셨는지요
미요입니다

들어오거라

실례하겠습니다

뭘 멍하니 있어?

얼른 들어오지

할 얘기는 다름이 아니라

타츠이시가와의 혼담과
이 집의 향후에 대해서다

사이모리가는 코지 군이
데릴사위로 들어와

이어나가기로 했다

코지 군의 처가 되어
이 가문을 이어가는 건

카야다

각오한 바다

고용인이나 다름없는 내가
결혼이 가능할 리 없다고…

이 집의 일원으로 인정받아
평온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쉽게 내게 찾아올 리 없다고…

미요
넌 시집을 갈 거다

가는 곳은 쿠도가

쿠도 키요카 님의 가문이다

쿠, 쿠도…?

잘됐네

그 유명한 쿠도 키요카 님에게
시집이라니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네게는
분에 넘치는 혼담이구나

언니가 쿠도가에서
며칠이나 버틸런지

기대되네

바로 짐싸서

내일 아침에는
쿠도가로 출발하거라

-아버…
-할 얘기는 이상이다

알아들었으면 어서 준비하거라

실례되는 일 없도록 해야 한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럼 코지 군
바로…

당분간은 안 그칠 것 같아

빨랫감 다 널어놨는데…

미요…

잠깐만요!

왜 제가…!

계속 말 꺼내게 하지 말고

사이모리 카야에게
장가 가거라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넌 미요를 돕고 싶은 거겠지

걱정하지 말거라

미요는 카즈시에게 시집 보내라고
사이모리에게 부탁해놨다

그럼 그 아이도
그 집에서 나올 수 있어

그거야말로 그 아이에게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미요의 마음은요?

하필이면 저와 카야라니요

이미 결정된 일이다

너는 우리 가문의
번영을 위해 잠자코 따라

알겠느냐

어머님의 벚꽃나무

낙담했을 때 여기에 오면

항상 마음이 안정되는데…

이제 여기에도 못 오는구나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안녕, 어머니…

미요…

코지 님…

미안해

나, 참 못났지?

결국 아무것도 못 하고…

코지 님께서 사과하실 일 아니에요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에요

아냐, 운 같은 게…

괜찮아요

그곳에서 행복해질지도 모르고

전 아무렇지 않아요

너는…
내가 원망스럽지 않아?

원망이라뇨

그런 기분은 잊은 지 오래예요

난 널 구해내고 싶었어

옛날처럼 아무렇지 않게
너와 함께 웃고 싶었다고

-난 너를…
-코지 님

카야

무슨 얘기를 나누시는 거예요?

아무것도 아냐…

그래요?

코지 님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미요 님
잠시 괜찮으신지요

네, 괜찮아요

어르신께서 전하셨습니다

내일 출발할 때
이 기모노를 입으라셨어요

아버님께서…

명심하세요, 미요 님

쿠도 키요카 님은 냉혹하고
무자비하다고 알려지셨어요

지금까지 혼담이 있던 분들은
모두 못 버티셨다고 합니다

부디 조심하세요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짐은 그것뿐인가요

어머님의 유산도
거의 다 버려져서요

이것뿐이에요

괴로우셨을 텐데…

괜찮으시다면 이거라도
가시는 길에 드세요

고마워요

미요 님
그럼 평안하시길

이런 화려한 기모노…

내게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나…

이제 정말 돌아갈 집도
추억조차도 다 잃어버렸구나

이런 곳에 정말
쿠도가 당주가 산다니…

여기인가?

생각보다 단출한 집…

[쿠도]

실례합니다

네, 나갑니다

어떻게 오셨는지…

처음 뵙겠습니다
사이모리 미요라고 합니다

이번에 쿠도 키요카 님과의
혼담으로 찾아뵈었습니다

사이모리 님
기다렸어요

전 쿠도가에서 일하는
유리에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야기는 이미 들었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시, 실례합니다…

도련님께서는 지금
서재에 계신답니다

바로 안내해드릴게요

처음 뵙겠습니다

사이모리 미요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셈이지?

죄송합니다

사과하란 뜻이 아냐

이제 얼굴을 드세요

네, 네…

이날, 이분과 만나서

마치 눈 속에서 싹을 틔운 꽃처럼

나의 닫혀있던 인생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쿠도가 당주
쿠도 키요카다

아름다운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의 당신

그래서 나 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해도

그래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신데렐라 이야기가

정말 있는 걸까요?

이 행복을 믿어도 될까요?

계속 사랑해도 될까요?

물거품처럼 사라질 꿈이라도

당신을 만날 때까지는

모두 포기하고 눈을 닫았지만

반하고 처음으로 바랐어요

당신과의 행복을

계속 여기 있어도 될까요?

당신의 곁에 있고 싶은걸요

제가 당신의 곁에 있어도 될까요?

다른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