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 나라 물의 나라

 

하느@harne_

 

옛날 옛날, 그 옛날

천 년도 더 옛날
일이었습니다

 

알하미트와 바이카리라는

이웃한, 대단히 사이가 나쁜
나라가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 너네 풀이
이쪽 뜰로 넘어왔다느니

너네 부채 소리가
시끄럽다느니

사사로운 일로
으르렁거렸습니다

 

마침내 개똥 처리를 계기로

전쟁이 나고 말았죠

 

두 나라는 아주 오랫동안
계속 싸웠습니다

 

이윽고 지칠 대로
지쳤을 즈음

두 나라의 수장은
어떤 맹세를 나누고

긴 전쟁은 끝을 고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고양이 소변이
이쪽에 들어왔네 마네 하며

싸움이 났습니다

다시금 옥신각신하게 되고

이따금 전쟁도 벌어지게 되어

 

긴 세월에 걸쳐
마침내 두 나라의 국경에는

커다란 벽이 생겼습니다

 

과거에 두 나라가 나눈
어느 맹세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알하미트는 우호의 증표로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를
신부로 바이카리에 보내고

바이카리 또한
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청년을

신랑으로 알하미트에 보낸다

 

의 나라 의 나라
 

 

공주님, 딱하셔라

이런 날이 찾아오다니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만약 소문대로
야만한 자가 온다고 생각하면...

 

하지만 만나보기 전엔 모르지

게다가 사막 너머에
시집가는 것보단 나을 것 같고

 

그거 알아, 유모님?

바이카리는 물이 풍부하고
온천이 땅에서 솟아나서

거기서 반숙 계란을
만들 수 있대

그런 건 당연히 거짓말이죠!

국왕 폐하만큼 쓰레기 남자면
당장 내치도록 하죠

공주님껜 이 유모가
붙어있으니까요

 

괜찮아

난 아바마마께
원망받은 적도

눈부신 언니들한테
질투받은 적도

한 번도 없어

어떤 분이 오시든
대충 잘해나갈 수 있을 거야

그건 공주님이
너무 대범하셔서

누구에게도
위협적이지 않아서 그렇죠

그런 공주님을 이렇게...

국왕 폐하란 인간이
하는 짓이란...

에이, 유모님도 참

 

그러고 보니

바이카리에서 오는 신랑은

변경에 사는 첩의
막내딸한테 떠넘겼던가?

예, 국왕 폐하

오늘 도착한다 합니다

 

라스타반 2세가 맺은
맹세 따위...

이쪽의 신부는
예정대로 보냈겠지?

예, 이미

 

맹세라곤 해도
500년 전에 한 거잖아

사람 귀찮게

알하미트에서 오는 신부를
누가 받겠냐고!

예정대로 국경 근처
학자 아들내미한테나 줘

예, 이미

 

족장님 명이다

알하미트국의 신부를
받는 역할이 너로 정해졌다

감사해라!

이거 참 관리 나리
고마우셔라

시골의 실수투성이에
일도 없는 기사인 저한테

신부를 주시다니

 

말조심해라
신부는 이제 막 도착했다

얼른 집에 가서
대면하고 와라!

예이 예이

 

기왕이면 기념품
같은 것도 주셨으면...

얼른 가!

 

참나

유복한 알하미트에서 지금의
가난한 바이카리에 시집와서야

깜짝 놀라겠지

 

아버지, 나 왔어

 

큰일이야!

 

놀라지 마라

방금 관리가
신부가 왔댔는데

괜찮아, 나 수비 범위
엄청 넓으니까

그야 넌 내 아들이니까

수비 범위야 당연히 넓지

하지만 알하미트의 여성은

송곳니도 났고, 온 몸에
털이 덥수룩하다 그러고

 

설마

 

처음 뵙겠습니다

 

고...

 

고양이?

 

가..강아지?

 

유모님, 강아지 강아지!

내 신랑 강아지야!

 

바이카리 놈들
누굴 바보로 알고!

지금 당장 국왕께 보고를!

잠깐만!

공주님, 이건 너무나!

아바마마께서 아시면

이걸 원인으로 또
전쟁이 날지도 몰라

바이카리에서 뭐라고
할 때까진 잠자코 있자

 

뭐가 됐든
평화가 제일이야

 

평화?

 

하지만 공주님...

 

이름은

 

루크만... 정도면 어떨까?

 

루크만?

 

좋은 이름이지?

 

루크만, 네 밥을 사면
내가 아끼는 곳에 안내해 줄게

 

거긴 무척 아름다워

지금이라면 꽃도 피었을 거야

도시락은 일곱 햄에 로스트 치킨

사랑하는 붉은 와인도 맛있겠어

뼈 붙은 갈비도 잊지 말고

 

좋은 물건을 구했어

자 가자, 루크만

 

- 뭐지?
- 왕도에서 왔군

 

사라, 잘 지냈니?

 

안녕하세요
레오폴디네 언니

오늘은 어쩐 일로?

에이, 알면서

바이카리에서 찾아온
네 남편을 보러 왔지

어떤 분이시니?

 

그러니까...

소문대로인 분이에요

 

대단히 똑똑하고

몸가짐도 단정하고

 

조금 건방지지만
귀여운 분이에요

 

정말이면 우리도
꼭 만나보고 싶은걸?

하지만 이제 막 오셔서
오늘은 아직 좀...

그래?

그러고 보니

아바마마께 받은 금시계가
멈춰버렸거든

금시계요...?

바이카리에서 제일
똑똑한 분이라면

고칠 수 있지 않을까?

 

만나 뵙기를
기대한다고 전해주렴

언니!

 

어때?

내가 아끼는 곳
맘에 들었어?

 

잘됐다

아니지...

큰일이야

레오폴디네 언니의
부탁은 거절할 수 없어

하지만 루크만이
바이카리의 신랑이라고는...

 

뭐, 될 대로 되라지

오늘 하루 동안
얼버무릴 방법을 생각하자

 

루크만

점심 먹자

 

루크만?

 

어딜 간 거지?

 

루크만?

 

설마 국경 너머에?

 

바이카리는
무시무시한 곳이라고 들었어

 

시..실례하겠습니다!

 

예쁘다...

 

루비 같은 새

사파이어 같은 나비

 

대부분이 모래와 바위인
알하미트랑은 딴판이야

 

루크만

 

어디 있니?

루크만!

 

루크만?

 

루크만!

 

어떡하지...

정말, 오돈치메그는
날 좋아하는구나

 

이거야 원
알하미트 아가씨

 

이런 데서 어쩐 일이죠?

 

바이카리의...

 

아프잖아, 오돈치메그

 

어디 보자

 

산감자를 캔 구멍에
멍멍이가 떨어졌구나

잠깐 저 바구니 좀 빌릴게

 

좋아

뭐 멍멍이가
먹을 만한 거 있어?

 

루크만 중식용
특상 뼈 있는 갈비가 여기에

 

개 먹을 걸로 갈비를?

역시 알하미트 아가씨
멍멍이 식사도 호사스럽네요

 

루크만

 

루크만!

 

밥이야

 

정말 고맙습니다

 

뭘요

 

그나저나 이런 좋은
고기를 멍멍이한테...

 

너무 좋아하지 마, 오돈치메그
내일부터 고달파질 테니까

사양 마세요

물이 귀중해서
와인밖에 없지만요

아가씨

내가 만약
나쁜 놈이었으면 어쩌려고?

 

나쁜 사람은 일부러
그런 소리 안 해요

아니, 뭐...

게다가
가족한테 '오돈치메그'

'별의 찬란함'이란 이름을
붙이는 분 중에

나쁜 사람은 없어요

 

가족이라고요?

네, 루크만도 가족이에요

 

뭐, 그런 거라면

아가씨도 곤란한 일 있으면
저한테 말하세요

곤란한 일...

 

레오폴디네, 이 시계를?

바이카리의 신랑이
똑똑하다면 고칠 수 있겠지

 

못됐어

 

내일 낮이 기대되는걸

 

어서 오십시오

유모님, 이쪽은

나란바야르 씨

처음 뵙겠습니다

나란바야르라고...

 

공주님!

 

바이카리 사람을 데려오다니...

들어봐

오늘 레오폴디네
언니를 만났어

 

레오폴디네 님을?

바이카리에서 제일
똑똑한 남편이라면

시계를 고쳐보라는 거야

 

루크만은 무리잖아

그래서 부탁했어

 

조금 말상대를 해드리는 정도면
분명 언니들도 만족할 거야

지금은 힘을 빌리자

 

지금 공주님이라고 했지?

아가씨가 아까 부탁한
대역이란 건

 

이 녀석의...?

 

우리 나라의 쓰레기 족장도
신랑으로 강아지를 보낸 건가

 

이거 공표되면
틀림없이 전쟁...

 

그렇게 되면 우리가 질 거야

오랫동안 알하미트에
상업 루트가 봉쇄돼서

비축도 없는 데다

50년 전 싸움의 상흔도
아물지 않았어

 

알하미트는 어떻지?

상업 발달으로
지금은 인구 과다

그 결과, 사막 지대인
알하미트에선 물부족으로

이대로 가면 50년 뒤면
폐허가 될 거라지

 

알하미트는 바이카리의
수자원을 노리고 있고

바이카리는 알하미트의 부에
군침 흘리고 있는 셈이지

 

얘기는 알겠습니다

 

단, 알하미트풍으로
몸가짐을 단정히 할 겁니다

 

유..유모님

싹둑은 봐주세요...

얌전히 안 있으면
이상해질 겁니다

네...

 

어떻게든 잘 풀리기를...

 

잘 잤니, 루크만

 

유모님, 역시
전직 국왕 전속 미용사야

그런 건 젊을 때 얘기죠

아뇨, 상당한 실력이에요

 

아가씨

 

어떤가요?

나란바야르 씨?
딴사람이야!

 

가짜 수염에서 나오는
이 딴사람 느낌

 

오늘 왕녀님들과의
다과회에서도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나불나불 적당히 되겠어요!

 

어떨까요

남자는 잘 모르겠어서요

 

이거, 바이카리에선
기념식 수준이에요!

 

나란바야르 씨
무리하진 마세요

 

알하미트와 바이카리는
오랫동안 사이가 나쁜 나라예요

뭔가 불쾌한 소릴
들을지도 몰라요

괜찮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유모님 요리 맛을 떠올리면

대개는 아무래도
좋아질 거예요

 

오돈치메그
유모님 요리 맛있지?

 

그..그렇죠?

그러면 저도!

마음이 갑갑할 땐

이 유모님 특제 16종
허브를 넣은 칠면조를 떠올리고

공주님!

 

재미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루크만
산책 갑시다

 

부끄러운 걸까요?

그런가 보네요

 

아가씨

이건 무슨 수프죠?

그건 옥수수랑
새를 넣은 수프예요

속에 좋을 거예요

 

나란바야르 씨는
신기한 사람이야

 

왕도까지 오는 건
오랜만이지, 유모님?

 

움직이는 길이랑
젓지 않아도 올라가는 강

어느 쪽으로 왕궁까지
가시겠나요?

 

움직이는 길?

길이 알아서 쭉쭉 나아가죠

어..어떻게 그런 게 움직이죠?

게다가 강?

배가 강을 올라가요

역시 우리 족장은 바보야!

왜 이런 굉장한 나라에
싸움을 걸려는 거지?

어이, 움직이는 길은
지난달부터 망가졌어

 

그런가요?

 

강 쪽도 지금은
상태가 안 좋다네

이런

 

뭐야, 이 꼬맹이
한 번 더 말해봐라

몇 번이든 해주마

이 사기꾼 자식!

이 자식, 피리파파 님이
사기꾼이란 거냐?

 

뭐죠, 저 건방진 사람들은?

- 글쎄요
- 별난 녀석들이네요

응? 몰라?

 

국왕 폐하 직속 기도사
우대신 피리파파야

국왕 폐하는 저 녀석을
맹신하는 모양이야

 

왕녀님들은
그렇지도 않다고 들었지만

 

오늘도 피리파파 님은
비를 부르는 기도를 해주신다고!

감사해라

기도 따위, 그 실실대는 좌대신이랑
똑같이 도움 안 되잖아!

국왕 폐하도 인정하시는
피리파파 님을

그런 장식이랑
똑같이 취급 마라!

기도로 비가 올 리 없잖아

아빠가 그랬어
비는 바닷물이 증발해서

올라간 수증기가 구름이 돼서
내리는 거라고, 바보!

 

이 자식!

말려야 해

 

저런 부랑배를
상대해선 안 됩니다

 

저 애 아버지는
감옥에 투옥된 거 아니었어?

뭔가 트집 잡혀서

그래 그래, 벌로 목공품을
만들고 있다고 들었어

 

- 그래서 좌대신은?
- 당신 뭐라는 거야?

미남 배우
살라딘 문라이트 말이야

레오폴디네 님 맘에 든

- 사기꾼 자식은 돌아가!
- 뭐라고?

 

과연

 

말리러 갈까요?

 

이건 예상인데요

사기꾼 기도사는
국왕이 신임해서 우대신이고

한편, 기도사 따윈 믿지 않는
현실파인 언니분들은

미남 배우 좌대신을 신임하죠

즉, 국왕과 언니분들은
대립하고 계세요

 

그렇다면
저 애 아버지도 포함해서

그 불똥이 튄 셈이죠

 

혹시 대기도사
피리파파 님 아니십니까?

그렇다

이거야 원!
평화로운 세상이 다 됐군요

얼굴을 다 볼 수 있다니

이 바이카리인인 제가

 

- 바이카리?
- 바이카리?

바이카리인이라고?

 

어이, 왜 바이카리 인간이
알하미트에 들어온 거냐!

 

위병을 불러라, 위병!

 

기다리십시오

이분은

뭐, 대립하든 말든

궁전의 아가씨들한테
초대받았단 건 최강의 면제부죠

 

그러니까

 

이전의 맹세로

알하미트국에 신랑으로 온

바이카리국에서 가장
똑똑한 청년인 나란바야르 님

그리고 국왕 폐하께
그 아내로 임명된

제93 왕녀
사라 공주님이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은 제1 왕녀이신
레오폴디네 언니께

남편과 함께 초대를 받아
왕도까지 찾아왔습니다

레오폴디네라고?

 

바이카리에서 온 신랑이 왜...

 

이거야 원
변경의 왕녀님이셨습니까

방탕한 자가 실례했습니다

그래서, 레오폴디네 님은
어떠한 용건으로?

 

소중한 게 망가져서
고쳐달라고 하셔서요

소중한 것?

아마 지금 망가진 거라면

움직이는 길 아닐까 싶은데요?

 

레오폴디네 님도 못되셨어

그건 확실히 국왕 폐하도
신경 쓰고 계시지만

한 달이 걸려도
고쳐지지 않는 물건

 

내가 맡으면 식은 죽 먹기지

 

아마 내구연수가 지나서

내부 부품이 닳아서
망가진 걸 거예요

하지만, 저는 머리는 좋아도

부품을 꼼꼼히 만드는 작업은
귀찮고 시간이 걸리죠

 

그래서

 

치밀하고 정밀도 높은
작업에 뛰어난 분들이

거들어 주셨으면 하는데요

 

사라 님

 

기다리셨습니다

왕족 전용 움직이는 상자가
준비됐습니다

 

레오폴디네 님께서
기다리십니다

퀸팰리스로 가시죠

우리도 국왕 폐하께
킹팰리스로 호출받았다고!

인사 정도는 해, 라일랄라!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라일랄라라고 합니다

 

부유감에 웩 하지 마세요

 

보세요

 

알하미트는 모래와 바위밖에
없는 나라인 줄 알았는데

 

이건...

금의 나라야

 

아름답네요

 

안쪽 방입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너무 불안하면

잡으셔도 됩니다

 

고맙습니다

 

부부 같나요, 나란바야르 씨?

괘..괜찮지 않나요, 아가씨

잘 왔다, 사라
그리고 바이카리의 신랑분

 

기다렸답니다

 

오늘은 초대해주셔서
영광이에요

소개해드리죠

이쪽이 바이카리에서 제일
똑똑한 청년으로 신랑으로 온

나란바야르 씨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 같은 바이카리의 서민이

이런 고귀한 자리에
동석하게 되어

정말로 황공합니다

오늘은 그저
아내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려 합니다

 

딱딱한 인사는 삼가시죠

자, 앉으세요

 

신랑분은 이제
알하미트엔 익숙해졌나요?

어제 막 왔는데...

네, 덕분에요

음식도 맛있고
거리도 아름답고

무엇보다 부인들이
다들 아름다우셔요

어머, 말솜씨도 좋으셔라

일부러 칭찬
안 하셔도 괜찮아요

저흰 대단히 사라를
걱정했답니다

천 년 이상 이따금
전쟁을 해온 상대국인걸요

신랑분도 알하미트에
오는 건 싫으셨죠?

뭐, 저항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바이카리에선
할 일도 없으니까요

 

전 토목 관련
설계기사 같은 걸 해서

지질을 알아보는 걸 좋아해서

알하미트도 이것저것
궁금했었거든요

 

오늘 제가 안 좋은 경험을
하는 건 예상했고, 괜찮습니다

하지만 아가씨는 어떻죠?

 

알하미트 내부에서 유일하게
바이카리의 남편을 얻은 입장이에요

오히려 아가씨야말로
무슨 말을 듣든

허둥대거나 화내지 않을
각오가 필요해요

뭐, 저는 언제든
아가씨 편이지만요

그러고 보니
나는 화낸 적이...

정말 루크만, 소변은
밖에서 보라고 그렇게 말했지?

 

그렇게 기 죽지 마

 

- 사라는?
- 네?

싫지는 않았니?

바이카리의 신랑과
혼인하란 얘기를

그 아바마마께 들었을 때

 

조금은 무서웠지만

이 나라를 벗어나 사막 너머 어디로
시집가는 것보단 훨씬 나았어요

 

레오폴디네

 

아잉, 언니만 치사해!

 

저쪽 미남분은
언니의 남편분인가요?

아니에요
아마 애인일 거예요

 

애인...

너무 당당하지 않나요?

안녕

칠흑 같은 사막의 밤을
비추는 달빛

알하미트 제일가는 배우
문라이트 살라딘입니다

알하미트 제일이라면
세계 제일이겠지, 살라딘?

세계 제일가는 애인일
자신은 있어, 레오폴디네

 

나한테도 해줘, 살라딘!

나도 나도!

혹시...

세 왕녀님들의 애인이겠죠

저게 미남 좌대신인가?
너무 젊지 않나?

 

실례했습니다

슬슬 나란바야르 씨가
시계를 봐주셨으면 해서요

 

이쪽입니다

 

이거 상당히 해체됐군요

 

어떤가요?

시계는 고쳐지는 부품과
아닌 부품이 있거든요

딱히 부품의 파손은 없고...

 

태엽에서 톱니바퀴로 가는
힘의 전달에 주의해서 조립하면

이런 건 해체해서
내부를 청소하곤 해서

어렵진 않아요

 

끝났습니다

고쳐졌나요?

 

아뇨, 작은 톱니바퀴가
두 개 부족해서요

 

어디서 분실했는지도 모르죠

 

- 신랑님
- 네

바이카리는 애인을 두지 않는
일부일처제라고 들었는데요

혹시 살라딘이 이 세 왕녀 중에
딱 한 명과 결혼한다면

어떤 식으로 누구를
택해야 할 것 같나요?

그쪽이 바이카리에서
가장 똑똑한 자라면

생각을 들려줬으면 해요

 

이건 아버지가 하신 말이고
절대 제 말은 아닌데요

 

결혼해서 타인과 가족이 된단 건
꿈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참을 일이나 슬픈 일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처음 느꼈던 애정이나 사랑은
세월과 함께 점점 닳고

다른 무언가로 바뀌어 간다

그러니 너는 그때의 아름다움보다
한순간의 즐거움보다

자신의 부모 형제나
그 이상으로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을 찾아라

 

즉, 다과회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비스킷을
말 없이 혼자 먹는 사람은

택해선 안 된단 거겠죠

 

자요, 아가씨

 

그러면

사양 않고

 

재밌는 대답이네요

언니, 나쁜 농담은 그만해요

살라딘은 모두의 거라고
막 법률로 정한 참이라고요

굉장하네요, 나란바야르 씨

그 정도까지야

국왕 폐하께는 좋은 혼담에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오늘은 진짜 바이카리의
신랑은 안 오시나요?

 

무슨 소리신지?

이 녀석, 간파한 건가

 

연기를 잘하시네요
저희 극단에 들어오지 않겠나요?

마침 두 달 후에 새 공연이...

그런 것보다

요전에 어떤 소문을
들었거든요

아바마마, 국왕께서

바이카리에
아리따운 소녀가 아니라

한쪽 귀가 검은
고양이를 보냈다고

 

바이카리의 신랑께선
뭐 못 들으셨나요?

 

글쎄요, 수도 쪽 얘기는
시골까진 안 들어와서요

바이카리의 인간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인가?

아니면 뭔가 이유를 대서
바이카리에 쳐들어가고 싶은 건가?

이 왕녀, 뭘 떠보는 거지?

 

혼담이 날아갈 경우
어떻게 되지?

 

저기, 언니

슬슬 남편을
바이카리의 신랑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러주시지 않겠나요?

 

실례예요

 

그런 소문은 양국 사이를
틀어놓고 싶은 자가 흘리는

단순한 선동일 게 뻔해요

게다가 아무리 아바마마라도

고양이를 보내는 짓은
절대 안 하세요

 

안심하세요

이처럼 바이카리는
알하미트에 우호적이에요

 

그렇구나
실례했네요

사라, 나란바야르 공

오늘은 만나서 다행이야

또 언제든 찾아오세요

얘기해, 살라딘

 

나란바야르 씨

다음에 북쪽 나라의
3대 비극을 해요!

전 연기에 흥미는...

 

잠깐 좌대신님이랑
한잔하고 가도 될까요?

 

일 얘기를 좀
꺼내보고 싶어요

 

라일랄라, 아바마마
겨우 탈 수 있다고

어서!

정말, 레오폴디네도 참

수문을 열어라!

 

주수 개시!

 

봐요, 어마마마

레오폴디네는 이쪽에서 보는
경치는 처음이겠구나

하지만 이쪽은 사막이랑
바위가 그대로 보이잖니

아뇨, 어마마마

저희 나라는 어디까지나

금빛 나라예요

 

내가 지켜야 해

 

괜찮아요, 오돈치메그
 

나란바야르 씨는
꼭 돌아올 거예요
 

그래요, 그분은 알하미트에선
여기밖에 돌아올 데가 없으니까요

 

공주님, 그나저나

이 식사량...

아...

식사하고 오신다고 했던가요?

이거 너무 만들었네요

나란바야르 씨는
많이 드시니까요

 

뭐, 언제까지나 나란바야르 씨도
여기 있을 것도 아니고요

 

자, 공주님
들어요

 

뭐든지 드세요

왕녀님한테 용돈을
잔뜩 받았거든요

용돈?

당신, 그걸로 좋나요?

자요

 

나란바야르 씨, 꼬셔도 돼요

뭐..뭐라고요?

저는 신경 쓰지 말고요

아니, 저는 그런...

의외로 딱딱하시네요

 

놀리지 마세요

 

저희 나라에선
남자는 과묵이 미덕이거든요

 

벌이가 없는 인간은
상대도 안 해줘요

그럼 저는 바이카리에 가면
잠자코 싱글벙글하고 있을게요

 

문라이트 씨
혹시 북쪽에서 오셨나요?

 

그게, 그쪽만 절
처음부터 이름으로 부르길래

알하미트나 바이카리와
관계없는 출신이고

연극 같은 걸 하니
북쪽 사람인가 싶어서요

말씀대로 저는
북쪽 유목민 출신이에요

5년 전에 이 나라에 왔죠

유목민이라면 양이나 염소를
키우면서 살죠?

네, 주로 내륙부를
가축이랑 이동했죠

가끔 염소 열 마리랑
소금 한 주먹을 교환해서...

그때는 고기에 간이 돼서
참 맛있었죠

 

저희도 비슷해요

이맘때는 메뚜기가 나와서

매일 메뚜기랑
이파리를 볶은 걸 먹고

산비둘기가 잡혀도
먹을 데도 없죠

가능하면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

내일 먹을 거 걱정 없는
세상이 될 순 없으려나?

 

나란바야르 씨
움직이는 길은 보셨나요?

힐끗 봤어요

짐작이지만 내부엔
톱니바퀴가 심어져 있고

동력은 단연 물레방아죠

용케 그런 거창한 걸
만들었네요

저 녀석들, 왜 같이...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알하미트의 물은
앞으로 길어야 얼마죠?

 

이제 길도 강도
못 움직이죠?

 

왜 그렇게 생각하죠?

고양이 신부

 

뭐, 우리네 바보 족장이 알하미트랑
전쟁하고 싶은 이유는 알아요

이대로 상업 루트를
봉쇄당한 채로는

가난한 바이카리는
조만간 멸망해요

하지만 왜 부유한 알하미트가
우리 나라에 싸움을 걸죠?

알하미트에 없고
바이카리에 있는 것

 

나란바야르 씨
상상 이상으로 메말랐어요

 

어이, 졸병

라일랄라

이 녀석들, 대체 무슨 얘기를...

이 나라의 진실이다

 

알하미트는 지금은
희대의 상업 국가야

돈만 내면
미모는 유지되고

사흘 걸리는 길도
하루 만에 보내는 기술도 있어

전 세계 사람들이
뭔가를 찾아 여기에 와

하지만 사람의 수만큼
물도 줄어들지

이 나라에서 지금
손에 들어오지 않는 건

물이랑, 당신네 나라에 있는
한결같은 사랑 정도예요

없는 건 빼앗는단 건가요?

 

국왕파의 우대신, 피리파파 공은
그렇게 생각하겠죠

바이카리를 점령해서
이주할 생각이에요

- 왕녀님은요?
- 저는 한낱 배우예요

왕녀의 마음속까진
엿볼 수 없죠

나란바야르 씨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멸망할 건 멸망한다
우리 나라가 그랬듯이

걱정 마세요
빈둥빈둥 지낼 생각이에요

언젠가 물이 마르면
싸울 기력도 없어질 거예요

 

맥 빠지는 소리 하지 말고

원하면 사랑이든 물이든
전부 차지해버려

어때, 당신 좌대신의 힘으로

바이카리에서 알하미트에
수로를 뚫지 않을래?

 

내가...?

아니, 잠깐만요

저는 그냥 장식이거든요

당신은 장식으로 있는
대신이 아니야!

왕녀님은 당신이

이 나라의 이상적인 좌대신을
연기해주길 바라는 거 아냐?

 

나도 왕녀님도

당신만 믿어

 

혹시 지금 저 녀석

알하미트에 바이카리와
국교를 열자고 한 건가?

누구한테 말하면 죽인다

 

물도 사랑도 손에 들어온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당신이 진심인 건
뼈저리게 전해졌어요

 

오돈치메그
이제 잘 시간이에요

 

마중 나가요

 

왕도는 저기 밝은 쪽이니
돌아온다면 저쪽이에요

제가 어릴 때
손님이 오실 땐

기다리다 못 참고
늘 여기서 기다렸죠

 

봐요, 말하기가 무섭게

 

나란바야르 씨

 

아가씨, 뭐 하시는 거죠?

나란바야르 씨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라?

괜찮으세요?

 

과식한 걸까요?

 

아프다니까, 오돈치메그

 

상당히 오래 얘기하셨네요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자, 너희들
이제 잘 시간이다

아가씨가 곤란하잖아

 

저기...

저기, 아가씨

죄송하지만

이쪽 일 얘기가
어떻게 될 것 같아서...

 

좀 더 신세를 져도 될까요?

 

이제 바이카리의 신랑 역할은
끝났으니 돌아가도 되겠지만

어차피 고국에 돌아가도
할 일이 없어서요

 

나란바야르 씨

내키는 만큼 있으셔도 돼요

 

오늘은 하루 종일
많은 일이 있었다

 

불안한 일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거북했던 언니들과
조금 친해졌단 기분이 든다

 

어서 오세요

 

지금 돌아왔습니다

 

이런 날이

쭉 계속되면 좋을 텐데

 

그러면 오돈치메그를
부탁드립니다

 

바쁘면 2~3일은
못 돌아올 수도 있으니

루크만이랑 놀렴

- 나란바야르 씨
- 네

점심에 드실 겁니다

문라이트 씨가 돌봐주신다면
걱정할 것 없겠지만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다녀오세요

 

제가 대충 보기에는

왕녀님과 같은 반전파도
의회엔 반쯤 있어요

개전파인 국왕 쪽의 필두가
이미 아시다시피

 

피리파파죠

왜 저 녀석들이
붙어 다니는 거냐?

 

오돈치메그, 밥 먹자

 

어라?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오돈치메그?

 

어디 있니?

 

설마 밖에?

 

잠깐, 루크만!

 

그쪽은!

 

바이카리야

 

그러고 보니 나란바야르 녀석

결혼 기념품을
가져오라느니 그랬었지?

바이카리의 족장으로서
알하미트 제일가는 미녀란 자를

슬슬 보러 가보실까?

 

얼른 나와라!

 

어라, 여긴
뭐든 있는 투기장이었던가요?

뭐라는 거죠?

움직이는 길을 고친단 명목으로
당신이 석방시킨 죄수들이에요

흉악범 석방 소린
들은 기억이...

에이, 우리 나라 지식 계급의
학자들이에요

어이, 문 어쩌고 양반

당신은 그냥 왕녀님의
애인인 줄 알았더니

바이카리랑 친해지다니
무슨 바람이래?

좌대신쯤 되니

바이카리 여자한테도
관심 있나 보지

 

하기야

 

부정은 안 하겠어요

자 자, 여러분

좌대신님께
그런 말버릇은 안 좋아요

 

바이카리 녀석은 잠자코 있어

이쪽은 적국 인간한테
구해질 만큼 막장은 아니라고

하지만 신원을 인수하러 온
부인들은 격노했는데요

당신, 문라이트 님한테
뭐라는 거야?

- 조용히!
- 똑바로 사과해!

우린 문라이트 님이
참관인이라 데리러 온 거라고

정말 답 없는 남편들이라니까

이제 안 돌아와도 돼!

 

다시는 얼굴 안 보길 빌지

 

뭐야, 너희들
이런 데서

아빠넨 바보 아냐?

그 사람, 나도 구해줬다고!

 

알겠냐, 망할 자식

잘 들어라

알하미트와 바이카리는
아직 사이가 안 좋아

그 와중에 전쟁 반대 왕녀파가
바이카리와 접촉한다잖냐

우리까지 다들
그쪽 편을 들어봐라

은인께서 국왕파에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고

신경 쓰지 마세요

다들 그게
호기로운 인사거든요

정말 두뇌파인가요?

어이, 신랑님

 

어제 얘기는
피리파파의 부하가 들었어

그래서 그 녀석 가족을
인질로 잡았어

 

알겠습니다, 라일랄라 씨

그 부하도 수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부탁합니다

명심하겠다

그래, 여긴 나라의 중추...

 

그러면 갑시다

건축가는 이 안쪽입니다

 

움직이는 길도
선대 왕의 영묘도

그 사람이 설계했죠

실적은 확실해요

이 정도 일로

흔들리면 어떡하냐

 

이제 와서 책임을
느끼진 마세요

 

이미 나라는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당신의 각오가 부족하면

소중한 사람도 못 지킬 겁니다

 

꽤 많이 왔는데

이런 숲 속을
아직 새끼 고양이인데...

 

정말 나란바야르 씨
집을 찾아서?

 

루크만, 조심해

너 이 숲에서
구멍에 빠졌었다고

 

오늘은
나란바야르 씨는 없으니까

 

여기가 나란바야르 씨의 고향...

 

뭐 해?

 

와, 쬐끄만 멍멍이!

 

누나 옷, 푸짐하고 번쩍거려!

정말!

 

저..저기...

이봐, 너희들!

 

그 옷...
너 알하미트 사람이냐?

 

저기, 여쭤봐도 될까요?

전 나란바야르 씨란 분의
자택을 찾고 있는데요

혹시 모르시나요?

나란바야르는 내 동생인데

 

네가 설마 알하미트에서 왔다는
나란바야르의 신부냐?

 

나란바야르 씨...

 

결혼하셨구나

 

아, 길을 잃었구나

아직 이쪽엔 익숙지 않나?

난 울린이라고 해. 넌?

 

사라라고 합니다

사라, 이쪽이다
따라와

 

 

저..정정해야 해

 

나 같은 건
아내가 아니라고

 

하지만...

 

뭔가가 목구멍에 걸려서...

 

제대로 말이 안 나와요

 

정말, 아버지
나한테도 제대로 소개해줘

그러면 우린
저녁 준비해야 하니까

 

루크만?

왜...

 

오돈치메그?
역시 돌아왔었구나

 

다행이다

 

이 고양이를 아는 게냐?

어떻게 이런 데까지...

너, 알하미트에서도
좋은 집안 아가씨지?

 

저, 요전부터 여러 번
나란바야르 씨 도움을 받아서요

 

소개가 늦어졌지만
알하미트국 제93 왕녀

사라라고 합니다

 

왕녀?

 

아니, 전 왕족이라곤 해도
말단 중에 말단이라...

나란바야르 씨는 업무차
알하미트에 오셔서...

... 뛰쳐나가면
스스로 돌아오질 못해서...

 

제 쪽 사정으로 가족분들께
설명도 없이 알하미트로 모셔서

보고를 하게 돼서
다행이에요

 

오늘은 맡아두던 고양이가
도망쳐서 쫓아왔어요

 

오돈치메그도 무사했고
이만 가볼게요

 

에이, 차라도 마시고 가렴

지쳤을 텐데

 

어허, 바깥이 소란스럽군

아버지, 큰일이야!

 

족장이 알하미트에서 온 신부를
보고 싶다고 마을까지 왔어!

 

이런, 나란바야르 녀석
더러운 마을에도 사는구만

네 말대로 기념품인
고기랑 술을 가져왔다!

 

시..신부를?

 

사라, 와봐

 

아, 저기...

 

저기... 부인은 어디에?

 

그게...

사정이 있어서
남들 앞엔 나설 수 없어서...

 

네가 우리네
신부인 척해주지 않으련?

이렇게 부탁하마!

 

절대로...

싫어

 

아!

저라도 괜찮다면
신랑 흉내쯤이야 얼마든지!

나란바야르 씨한텐
그렇게 엄청난 부탁을 해놓고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아니, 네가 아니라도

다들 알하미트 제일가는
미녀 역할은 안 내킬 테지

하지만 너도 나름대로 예쁘고
어떻게든 될 거야

 

방금 받아들여도
되겠다 생각했는데

절세 미녀 역할이잖아요!
당연히 무리예요!

저로는 국제 문제가 돼요!

 

뭘, 너한테선

좋은 성장 환경이나
고운 마음씨가 스며나와

괜찮아

네 앞에선
배역이 아쉬울 정도야

사정이 사정이니
잠깐이면 돼

 

이 사람, 정말로
나란바야르 씨 아버지야

 

뭐 하는 거야, 서둘러!

족장네가 오래 머물면
귀찮아진다고!

지금 가마

부탁하마, 사라 양

 

마음의 준비가!

이런 데까지 와서
너도 큰일이겠지만

마음 단단히 먹어라

너, 보아하니 가사 같은 건
못 하게 생겼는데 괜찮겠냐?

 

짐작하시는 대로...

- 엄마, 배고파
- 좀만 기다려

면목을 세울 수가 없네요

 

좀 알아듣게 말해

알겠냐?

이 집은 아버지랑 나란바야르랑
우리 가족이 12명

오라버니 가족이 18명에 ...

루크만, 이번만큼은
틀렸을지도 몰라요

현 시점에서
제 용량을 넘었어요

듣고 있냐?

네, 물론이랍니다

그 말투 그만둬라

좀만 기다려

네... 네!

'네'는 한 번!

 

- 족장네는?
- 일단 집회장으로 안내했어

- 치코찬은?
- 잠들었어

이불 덮는다!

 

이불로 쓸 수 있겠나요?

 

저도 자주 어머니의
무릎 덮개를 빌렸었죠

 

저게 알하미트에서 온 신부냐

 

언니, 고마워

다들 이불 따뜻하대

뭐 하는 거냐!
집회장에 간다

네...!

 

싫다, 먼지가 묻었나 봐

이래서 시골엔 오기 싫다고

나를 이렇게까지 만들었으니

알하미트 제일가는 미녀가
평범한 수준이면 가만 안 둔다

자기는 강아지를 보낸 주제에

- 족장님, 왔나 봅니다
- 들여보내라

 

알하미트 제일가는 미녀

 

미녀

 

잠깐만

알하미트 제일이라면

아도니스트나 나르키스트나
휴킨토스 레벨 아니야?

족장님, 그건 전부
소년이거든요

 

뭔가 얘기가 다르지 않아?

난 꽤 괜찮은데

상당히 통통하달까...

어이, 어떻게 된 거야?

 

여러분이 하고 싶은 말은
뼈저리게 잘 알아요

 

하지만

 

오늘은 저를 위해
먼 길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바이카리의 족장님을
만나 뵙게 되어

성은이 망극합니다

이번에 알하미트에서 시집온
사라라고 합니다

 

오랜만입니다, 족장님

 

이런, 여기 있는
족장 이외의 분들은

이 아이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한탄스럽군요

 

역시 이 사람...

오, 이건 기념품!

감사히 받겠습니다

나란바야르 씨 아버지야

 

이 아가씨가
알하미트의 신부였나

알하미트는 피부가 탱탱한 걸로
아름다움이 정해지는 걸까?

나는 충분히 맘에 들어

 

알하미트 국왕 녀석
바이카리를 바보로 아나?

이런 0.1톤은 돼 보이는
소녀를 내주다니

어이, 다들!
들어주세요!

그렇다면 이쪽에도
생각이 있지

멀리까지 족장님께서
우리 아들 결혼 기념으로

술과 고기를 가져다 줬습니다

마을 다 같이 받읍시다!

이런 마을에
시집온 사라 양과

족장님의 마음가짐에 감사를!

 

그러면 저녁 식사 받아올게

나중에 돌려내라면 곤란하니
한 시간 안에 다 먹어라

족장님 고맙습니다!

당신 의외로 좋은 사람이네

고기랑 술!

교활하군, 산차르

이런다고 내가 기뻐할 리...

 

족장님, 고생 많으십니다

족장님을 만나 뵙게 되어
행복할 따름입니다

 

정말 꾀죄죄한 마을이야!

남자도 질이 떨어져!

 

사라 양, 나머진
세야와 코시한테 맡기마

 

미안하게 됐구나
이런 속된 일에 끌어들여서

아니에요

저라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면야...

고기도 얻게 됐고요

 

산차르

 

맛있는 술이군
얼마든지 마실 수 있겠어

 

이봐, 알하미트의 신부

알하미트에선 물이 없어서
대신 와인을 마시지?

어때, 나랑 술 마시기로
대결해보지 않겠냐

네가 이기면 고기랑 술을
이 3배는 마련하마

- 3배?
- 이거의?

내가 이기면 이 애들을
내 맘대로 하마

어떻지?

네? 무슨...

전...

사라 양, 안 받아들여도 돼

족장은 이 나라에서도
상당한 주당이야

이런 아무것도 없는 시골엔
좋은 여흥 같지 않나?

3배래

바보야, 세야는 지난주에
막 식을 올린 신혼이라고

코시도 데릴사위 예정이잖아

- 거절해 주세요!

 

어떻게 나올 거냐, 산차르

사실은 네가 더 아름다우면
데려갈 생각으로 왔는데

그런 생각도 전혀 안 들거든

 

그런데 나란바야르는 어딜 갔지?

이런 때에 안 나오다니
정말 입만 산 남자라니까

관리가 되고도 세 달 만에
관두는 근성 없는 녀석이고

어디에 있어도
도움이 안 되는 녀석이야

 

- 족장...
- 족장님

고기와 술은
준비되셨나요?

 

저, 이 나라의 물이
전부 와인이어도

다 마실 자신 있답니다

 

죄송해요, 설계도가 없으면
건축가가 만나주지 않는다니

뭘요, 당연하죠

아, 이쯤에서 내려주세요

한달음에 챙겨올게요

 

그러면 내일 동 튼 후에
여기에 마차를 보낼게요

고맙습니다

문라이트 씨도
바쁘신데 죄송하네요

 

바이카리라...

2~3일 떨어졌을 뿐인데
몇 달은 지난 기분이야

 

정신이 들었니?

 

죄송합니다

하도 지쳐서 잠들어서...

언니, 엄청 잘 마시더라

족장이 나가 떨어졌어

 

오늘은 푹 쉬어

네 고기를 챙겨오마

아니면 내려올래?

다들 아래에서 기다려

 

벌써 이렇게 어두워졌네...

 

유모님이 걱정하겠어
어서 돌아가야지

 

잘 있어, 오돈치메그

 

엄마, 너무 담은 거 아냐?

사라는 잔뜩
먹을 것 같으니까

울린 씨
식사를 거절해서 죄송해요

 

이제 와서...

이제 와선 됐어요

 

저는

 

제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은 이제껏

한 번도 없으니까요

 

다만

쭉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어제를

조금이라도 지킬 수 있다면

 

상처 입는 걸
두려워할 때가 아니었어요

 

그냥 그뿐이에요

 

아..아가씨?

 

그냥 그뿐...

...이라고?

 

아가씨, 이런 데서
혼자 뭐 하세요?

 

그건 어쨌죠?
늘 머리에 쓰는 거요

아가씨, 멍하니 있다가
바람에 날아갔나요?

어디 나무에 걸렸으면
제가 지금 가서...

 

죄송해요, 저 오늘은...

왠지 볼품 없어서...

 

아가씨가 볼품 없다고는
요만큼도 생각 안 해요

 

괜찮아요

 

나란바야르 씨

서두르는 길 아니었나요?

아 맞아, 내일 새벽까지
수로 설계도를 챙겨와야 했지

 

수로?

 

아가씨

알하미트의 물은
길어야 앞으로 50년이야

그러니 나는 앞으로
몇십 년이 걸릴진 몰라도

바이카리에서 알하미트로
수로를 뚫어서

 

아가씨가 살아있는 동안

알하미트를 물이 곤란하지 않은
나라로 만들고 싶어

 

요컨대, 알하미트의 물자를

바이카리에 들어오기 쉽게
하고 싶단 거죠

아가씨, 이만 돌아가요

저택까지 바래다 줄게요

 

나란바야르 씨

 

저를 바래다 주고 나면
내일 아침에 늦지 않나요?

저는 이런 데에
아가씨를 두고 갈 수는...

나란바야르 씨

 

타국에서 일하려면
신용이 중요해요

그래도...

 

지금이라면 자택에
술도 고기도 잔뜩 있어요

좀 쉬고 내일을 대비하세요

 

언제든 어려운 길을 택하세요

 

나중에 잘했단 생각이
들 거예요

 

조심하세요

 

언젠가 국경 언덕에서
수로가 보이길 기대할게요

 

어머, 어떡하죠?

 

물이 없네요

아가씨한텐
고생하는 모습은 안 어울리지...

 

여긴 어디?
설계도는 있고!

 

괜찮아

동 트기 전 마차에 안 늦었어

 

설계도도 있어

 

언젠가 수로가 보이길

기대할게요

 

이게 아가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첫걸음이야

 

괜찮을까요, 건축가님

아지즈 씨 실력은
알하미트 제일이에요

좌대신

돈은 얼마나 써도 되지?

아지즈 씨가 좋아하는
공공 사업이에요

얼마든지 부르세요

자네, 나무르 군이랬나?

나란바야르입니다

건축이란 뭔가?

 

사람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럼 그런 거다

좌대신, 이 계획
당장 의회 통과시켜

 

알겠습니다

이건 양국의 국교를
트는 게 전제인데요

나란 군, 준비해
이제부터 현장을 보러 갈 테니

자네, 살아있는 동안
수로 완성을 보고 싶지?

물론 보고 싶습니다

 

나란바야르 씨

 

물론 열릴 거예요
국교는

 

그러면 저는 이제부터
왕녀파를 소집해서

긴급 회의를 하고 올게요

그래, 맡기마

 

두 분 다
암살당하지 마세요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좌대신도
의회 통과할 때까진 살아있어

 

개전파의

자원이 풍족한 바이카리를
점령해서 옮겨 살잔 생각은

아주 난센스야

내가 이 나라의 건축에
얼마나 공들였는지 아냐

나는 천 년 후까지 내 건축에
사람이 넘쳐나게 해야 해

 

내 이름은 라스타반 3세

 

500년 전, 유일하게
바이카리와 국교 협상을 벌이고

이후 현재까지
겁쟁이라 불리는 사내

라스타반 2세의
이름을 잇는 자

 

왜 선대 국왕인
아버지는 나에게

라스타반의 이름을 붙였지?

 

어떠십니까, 국왕 폐하

 

이걸로 두통이
편해지니 신기하군

뇌는 직접
주무를 수 없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자네와의 만남도
이 두통이었지

예, 마을 외곽 마사지 집에

설마 국왕 폐하께서
오실 줄은 꿈도 못 꿨죠

 

국왕 폐하께서
저를 거둬주신 은혜는

평생 가도
갚을 수 없사옵니다

과분한 소릴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버지를 여읜 후로

국왕 폐하는 저의
유일한 안식처랍니다

안식처라...

 

아직이라면 강한 국왕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어

나는 사후 백 년이고 천 년이고
겁쟁이라 불리는 게 두려워

실패한 국왕으로
이름을 남기고 싶진 않아

 

이보게, 피리파파

이전 전쟁은 잘못됐는가

 

국왕 폐하

 

군자란 백성의 생활을
먼저 생각하는 법입니다

장래에 우리 나라의 물이
고갈될 걸 생각하면

바이카리에 쳐들어가는 건
잘못이 아니옵니다

우리 알하미트 국민을
위한 일입니다

 

한데 국왕 폐하
바이카리에서 온 신랑 말인데요

아무래도 왕녀파와
얽힌 것 같답니다

뭐라?

왕녀님과 바이카리가 손잡고

우리 나라의 전복을
꾀하는 것 아닐지요

용서 못 한다, 레오폴디네

국왕은 나라고!

나는 말 안 했어, 라일랄라

젠장, 인질로 잡힌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거야!

하지만 왕녀파는
왕궁에도 적지 않사옵니다

그러니 재빠르게
바이카리의 신랑을 죽입시다

뭐라?

왕궁 내에 사고는 흔하죠

아무리 바이카리가
보복하러 나선들

미리 전쟁 준비를
해두면 그만입니다

우리 나라 백성을 위해 싸우는 건
아무 잘못도 없사옵니다

 

공주님

일어나세요, 공주님

 

벌써 대낮입니다

어젯밤엔 정말 걱정했다고요

대체 어딜 가셨나요?

 

나란 군, 설명해주게

저 산이 그 유명한
헴질시구이 맞나?

 

왜 그러나, 나란 군

네, 그게...

역시 이 사람, 아무리 봐도
학자라기보단 육체파라...

 

그나저나 자우하라 군

수로의 루트는
어느 쪽이 최적이겠나

우선 제일 성가신 토대 만들기에
적당한 지질을 고르라면

사막에선 제대로 된 암반까지
30미터는 파내야 하니

피하고 싶네요

좀 돌아가더라도
모래가 얕은 북쪽이 확실하죠

 

공기는 어느 정도인가?

빨라야 50년

 

- 50년...
- 아슬아슬하지?

이 나라가 버틸지 말지

 

이거, 안심했어요

 

토목 기술은 10년이면
상당히 진보하고

50년보단
실제론 더 빠를 거예요

무엇보다 헴질시구이는
한이 없다는 뜻의 산이죠

바이카리는
물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저 산에서 끊임없이
물이 솟아나죠

건설만 시작되면
알하미트는 안정될 겁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언니들의 정보망은
어떻게 된 걸까

바이카리에 대해
듣고 싶다니

 

설마 바이카리에
가 계셨다니...

죄송해요

나란바야르 씨도 이 왕도
어딘가에서 애쓰고 있을까요?

사흘이나 안 돌아오고...

밥은 제대로
먹었으면 좋겠는데요

 

네가 우리네
신부인 척해주지 않으련?

 

하지만 자택에는
아리따운 부인이 계시고

 

이런 건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나란 군, 슬슬 회담 아닌가?

 

나란 군!

 

자네, 더러운 느낌이 됐으니
깔끔하게 하고 가게

오늘은 우대신-좌대신-자네의
삼자 회담이니까

아, 그랬지요

아무튼 자우하라 군은
같이 가는 게 좋아

나란 군, 혼자가 되면 안 되네

 

말뜻을 모를 정도로
자네들 바보는 아니겠지?

 

잠깐 죄송합니다

이분이 라스타반 2세죠?

 

그래, 그게 어쨌는데?

 

살아 돌아오면

알하미트의 성립을
처음부터 설명해주마

아, 성립은 대충 잘 아니
중기가 좋겠네요

중기가 언제인데?

 

이거야 원
피리파파 님 친위대 분

혼자서 어쩐 일이죠?

 

뭐야? 해보잔 거냐?

너네 도망쳐!

통로 너머에 무장병이
20명 대기하고 있어

 

잘 들어
오늘 국왕 측은 확실히

바이카리의 신랑, 너를
죽일 생각이야!

 

왜 그런 걸 알려주지?

어이, 바우라!
뭐 하냐

너 설마...

 

당신 혹시 라일랄라 씨가
가족을 인질로 잡은...

그건 상관없어!

난 국교를 열고
수로를 만드는 데 한 표야

여기서 당신이 죽으면
다시는 국교는 안 열릴 거 아냐!

 

셋 다 한꺼번에 처치해주마!

원망 마라!

 

우리 애를 추궁한 답례다

 

나는 내 매듭을 지어야 해

너넨 도망쳐

피리파파 자식이랑
결판을 내주마

그럴 수가, 혼자서...

무장병 고작 20명이라며?

왕녀 레오폴드가 있는
퀸팰리스로 가

거긴 국왕이라 해도
치외법권이야

당신, 죽을 것 같진 않지만
일단 말해두지

죽지 마라

 

찾았다!

 

가자!

어이, 잠깐!

바이카리의 신랑분
좀처럼 안 보이는군요

시간엔 확실한 사람인데요

 

무슨 사고라도 생긴 걸까요?

왕궁 안에선 무슨 일이 있어도
이상할 게 없으니까요

 

최상층 부근에
퀸팰리스로 이어진 통로가 있어

서둘러!

봉쇄되기 전에!

 

어라, 바우라

자네 오늘 피리파파 님
회담에 가지 않았나?

그게, 좀 부탁받은 게 있어서...

- 고생 많아요
- 그 녀석은...

이봐!

 

미안

저는 이런 데서 죽을
겨를은 없다고요!

서둘러도 수로를 만드는 데
50년은 걸린다고요!

 

어이, 찾았다
바이카리의 신랑이다

죽여라!

 

곧장 내달린다!

 

저는 어둠 속에
아가씨를 내버려두면서까지

이 길을 택했다고요

 

저는 아직!

 

라일랄라 씨?

 

기다렸지, 신랑?

당신, 암살부대 같은 건가요?

용케 알았네

 

자, 간다
퀸팰리스로

 

유모님, 저거...

언니, 킹팰리스에서
연기가 올라와요

 

시작됐나 보군요

 

킹팰리스로 갑니다

그러고 보니 왕의 두통이
순탄치 않다고요?

국왕 폐하쯤 되면

우리의 상상을 넘는
중압감을 견디고 계시죠

이것만큼은
어떻게도 할 수 없어요

저 말고는

어이, 바이카리의 신랑은
아직 못 찾은 거냐?

예, 누군가가
조력하는 모양이라

 

잘 들어라!

퀸팰리스로 가는
통로도 폐쇄해라

신랑은 찾는 대로 죽여라!

그런데, 왜 비밀리에
군대를 증강하나요?

지금은 국내 경제나
외교에 힘을 쏟을 때죠?

혹시 전쟁이라도
걸 생각인가요?

 

장식에 불과한 좌대신님께서
왜 그런 걸 알아보시는지?

장식이라도
월급 받는 만큼은 일해야죠

이 일은 다음 정례 의회에서
의논해야겠네요

 

어때요, 한 가지
내기를 하지 않겠나요?

바이카리에서 온
가장 똑똑한 신랑이

왕의 두통을
고칠 수 있는지

고치지 못하면
저는 좌대신을 관두고

고친다면 당신이
우대신을 관두고

자, 이렇게 언뜻 저한테
불리해 보이는 내기라도

당신은 받아들일
용기가 없나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좋습니다, 받아들이죠

 

시간은 벌었어요

살아있으세요, 나란바야르 씨

 

어이, 전령이다
계획을 변경한다

피리파파 님

 

바이카리의 신랑을 맞은
공주에 대해 말씀드릴 게...

- 이쪽으로 도망쳤다
- 협력자가 있는 모양이다

바이카리의 신랑을 죽여라!

 

큰일이야

본격적으로 병사들이
모이기 시작했어

퀸팰리스에는
바깥으로 우회한다

 

상당히 삼엄하군요

 

이..이건 레오폴디네 님

당신들, 이런 데서
뭘 하시는 거죠?

오..오늘은 그...

 

우대신님께서 비상시 훈련을
분부하신지라...

 

국왕께 얘기를 하러 왔습니다

거길 지나가겠습니다

검을 거두세요

 

실례했습니다

 

라일랄라 씨
마침내 환각일까요?

방금 아가씨의
모습이 보였어요

왕녀님 일행이
소란 얘길 듣고 찾아온 거겠지

 

- 아가씨밖에 못 봐서요
- 멍청이

 

어떡하지?

퀸팰리스로 가는 통로를
무장병이 봉쇄했으면...

이미 거긴 못 써

달리 퀸팰리스로 가는
길은 없어?

없지

하지만 레오폴디네 님이
이쪽에 왔다면

국왕 폐하께 간언을 할 거야

하지만 그 전에

이대로면 신랑분은 병사한테
포위돼서 살해당하겠지

 

뭐라?

그 왕녀, 바이카리의 족장과
연회에서 술잔을 섞었다고?

 

이놈!

그 변경의 왕녀!

바이카리와 내통했던 거냐!

 

바이카리의 신랑은
아직 킹팰리스 안에 있을 거야

발견하는 대로
즉각 죽여라, 알겠지?

 

아가씨

 

어떻게 여길?

 

다행이다
무사하셔서

 

저희 왕족밖에 모르는
비밀 통로 입구가 있어요

그걸 알려드리러 왔어요

 

비밀 통로?
그런 게...

들어라!

 

피리파파 님의 명령이다

사라 공주는 바이카리와
내통했단 의혹이 있다

체포해라!

저항하면 최악의 경우
생사도 묻지 않겠다고 한다

 

- 어떻게 된 거죠?
- 모르겠어요

뭐가 됐든 상황은
한시를 다툰다

 

사이즈가 안 맞네

 

그러면 저는
사라 님의 의복을

 

우리가 미끼가 되마

- 하지만...
- 사라 님

부디 신랑분을
비밀 통로로 인도해 주세요

알겠냐, 너희는 살아남아야 해

 

찾았다!

 

양국의 미래는
두 분께 달렸습니다

 

부탁합니다

살아남아라!

 

다들...

 

부디 무사해

 

Believe in 새로운

길 아닌 길을 가네

우리만이 도달하는

Brand new world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소망을 이 가슴에

짖이겨지지 않는

꿈을 이어

마음을 뒤흔드는 바람도 이윽고

생각을 엮는 순풍이 되리라

Believe in 새로운

길 아닌 길을 가네

달려나가, 미래를 향해

도달하는 Brand new world

 

여기 계단에 딱 하나
모양이 다른 창이 있을 거예요

모양이 다른 창?

그 근처에 장치가!

 

어디지?

 

여긴가?

 

장치...

 

나란바야르 씨, 여기에 틈이!

 

이건가

 

꿈쩍도 안 해

 

아가씨?

도와드리겠어요

- 갑니다
- 예

 

가요, 아가씨

 

안 돼요, 전...

저랑 같이 가면

통로가 무너질지도 몰라요

 

나란바야르 씨

 

가주세요

 

나란바야르 씨

 

가주세요

 

아가씨가 족장이랑
술 마시기 대결?

승부를 할 성격이 아닌데...

 

왜 그런 걸...

그건 족장이 널
험담해서 그렇겠지

 

안 돼

 

아가씨는

다시는 두고 가지 않겠어

 

만약 떨어진다면

 

같이 떨어지자

 

괜찮아요

 

저랑 아가씨는
떨어지지 않아요

 

가요

 

우리가

 

여기를

 

건너면

 

국왕은 지금 어디에?

잠깐!

 

여기서 간단히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느냐

아바마마

아바마마?
그렇다면...

라스타반 3세?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라스타반 2세처럼

한심한 왕으로 몇백 년씩
이름을 남길 순 없다!

 

라스타반 2세가 어쨌나요?

 

바이카리 인간한테
할 말 따윈 없다!

 

아바마마, 진정하세요!

 

나란바야르 씨, 가요

너도 내 곁을!

 

떠나는 게냐

 

아바마마?

 

어이, 바이카리의 신랑

 

네가 만약 정말 바이카리에서
가장 똑똑한 사내라면

 

알겠느냐

지금은 없는 선대 왕이

왜 나한테
라스타반의 이름을 붙였는지

 

그런 건...

 

알 수 없어요

 

라스타반 3세

아가씨의 아버지

 

그리고 알하미트의 국왕

 

여기서 당신이 죽으면
다시는 국교는 안 열릴 거 아냐!

지금 우리가 이 사람을 뿌리치고
퀸팰리스에 도달하면

 

알하미트와 바이카리
두 나라의 단절은 피할 수 있어

 

양국의 미래는
두 분께 달렸습니다

부탁합니다

오늘 우리가
도망치기만 하면 돼

 

하지만 그래선...

 

언젠가 다시

알하미트와 바이카리는

 

언제든 어려운 길을 택하세요

 

아가씨, 난...

 

그건 말입니다, 국왕 폐하

 

라스타반은
용의 머리란 뜻으로

거대한 용과 같은 이 나라를
통솔할 힘을 가진 자가 아니면

그 이름을 주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천 년에 이르는
이토록 오랜 불화가 있으면

2세께선 자국에선
욕을 먹을지 몰라도

저희 나라에선 역사상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알하미트의 왕으로

평가가 높답니다

 

실제로 통치했던 시대엔
상당히 사랑받았던 모양이에요

초상화의 만듦새가 훌륭해요

위엄과 포용력이 넘치고
이상적인 군주죠

정말로 업신여겨졌다면
그렇게 그리지도 않았을 테고

당연히 나중에 위에
덮어 그리거나 했을 겁니다

그렇죠?

 

어떤가요?

라스타반 3세는
2세조차 못 한

바이카리와의 국교를 여는 건

 

무슨 웃기는 소리를...

아뇨, 지금이 찬스예요!

50년 전 전쟁으로 바이카리는
국력이 회복 안 됐어요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바이카리에 쳐들어갈 호기로군

아뇨, 반대입니다

뭐라고?

국교를 열고
인프라를 정비해

바이카리에서 알하미트로

나라를 넘나드는
수로를 여는 겁니다

뭐라?

알하미트는 물만 있으면

국민은 천 년이고 만 년이고
풍요롭게 번성할 수 있어요

그것만 해결되면!

애초에 전쟁을 해서
양국이 상처 입을 필요는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이 나라의 아름다운 경치를
지키고 싶은 인간이

여럿 있는 것도
왕께선 아실 겁니다

 

당신은 한심한 왕으로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다 했죠

그렇기에 더욱

지금 바이카리와의 협상 자리를
마련해보는 건 어떨까요?

 

어중이떠중이 속에서
이 나라를 일으킨

라스타반 1세의 통솔력

 

관용력이 넘치고
백성에게 사랑받은

라스타반 2세

그리고 알하미트의 역사엔
그 둘을 겸비하고

고금 전례 없는 위업을 이룬
라스타반 3세가

새로 이름을 남긴다

다음은 나라를 잇는 수도교에
아내나 딸의 이름을 붙이면

가족을 아낀다는
훈장도 붙으려나요?

 

아내도 딸도

지금은 나를 바보로 알아

이제 와서...

 

무슨...

 

슬픈 소리 하지 마세요

 

알하미트가 바이카리에

신부 대신 고양이를 보냈단
얘길 들었을 때

단 한 명

자기 아버지는 그런 부끄러운
인간이 아니라고 믿은 딸이

지금 여기에 있는데!

 

오돈치메그예요

알하미트의 미녀 신부

그건 오돈치메그였어요

아버지한테 들었죠?

 

아바마마, 국왕께서

바이카리에
아리따운 소녀가 아니라

한쪽 귀가 검은
고양이를 보냈다고

사정이 있어서
남들 앞엔 나설 수 없어서...

 

나란바야르 씨

결혼 안 하셨었나요?

 

고..고양이라고요

아무리 저라도 무리죠

 

다행이다

 

아바마마가 국왕이라

 

다행이야...

 

아가씨

저는 단순한 바보라
저 좋을 대로 받아들일 거예요

 

좋아요

 

뭐냐, 여긴

 

국왕 폐하

 

- 이쪽에 계셨습니까
- 죄송합니다

바이카리 신랑의 행방은
아직 못 찾았습니다

그자라면 딸애와 함께
저기에 있다

 

부부 둘 다 정중히 데려와라

피리파파는 회의 중이냐?
나도 참석하겠다

알겠습니다

 

족장님

마침내 이날이 찾아왔군요

 

이제 곧 왕도에 도착합니다

 

그나저나
이 한없이 척박한 땅

희대의 상업국가 좋아하네

허울뿐이잖아!

약점을 잡아주자고요!

회담 좋아하네!

얼토당토 않은 소릴 하면
전쟁이다!

 

족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만나 봬서 영광이에요

위에서 국왕께서
기다리십니다

움직이는 상자에 타시죠

 

움직이는 상자?

 

뭐..뭐야, 이거?

어떻게 하늘로 올라가는 거래?

 

정말!

공주님이 스파이라니
당치도 않아요!

하지만 그 일 이후로

국왕 폐하의 두통도
없어졌다고 하시고...

그거랑 이건 다른 얘기죠!

 

잘못했습니다

 

족장님

 

오랜만이에요

 

누구냐, 넌
버릇없게!

 

나란바야르예요
산차르의 아들

 

왜 네가 여기 있냐

그게, 전 국왕 폐하
따님의 신랑이라

특별히 불려와서요

딸... 신랑?

이거야 원
먼 길 오셨구려

 

이 아가씨는!

 

알하미트 국왕은

자기가 제일 귀여워하는
공주님을 신부로 보냈어요

 

멋지지 않나요?

 

족장님, 듣고 있나요?

 

공주?

 

바이카리 족장
오두니 오르두여

나는 관용의 왕
라스타반 3세

우리 나라에
강아지를 보낸 건

흘려 넘길 테니

 

앞으로는 우리 나라의
좋은 벗이 되세

 

이봐, 젓지 않아도
오를 수 있는 강을

다시 배가
다닐 수 있는 건 언제지?

아마 50년 후라거나?

그래?

 

몇십 년 후라도
함께하겠어요

레오폴디네

 

얘기가 잘 풀렸으면 좋겠네요

뭐, 처음엔 그다지
기대 안 하는 게 좋아요

공주님

 

슬슬 돌아갈까요?

그래, 유모님

 

그러면 먼저 갈게요

네, 저녁은 이쪽에서 먹을게요

오늘도 별이라도 보면서
다 같이 기다릴게요

 

금방 돌아갈게요

 

금방

 

아바마마, 배고프시려나?

어서 점심 가져다 드리자

어때, 싸게 해줄게

그러면...

 

사프라

다음에 울린 고모가
온천에 데려다 준대

- 언제일까?
- 언제일까?

 

지금 건설대신 아지즈 씨가

바이카리의 건축 양식을
보러 갔으니

모시러 가는 김에 갈지도?

 

살라딘 씨의 연극은
언제 보러 갈 수 있어?

 

어마마마도
티켓 구하기가 힘들대

 

하지만 유모님이
공연회에 들어갔어

- 갈 수 있겠구나!
- 가야지!

 

요즘 아바마마 작업장에 오는
갈색 머리인 사람

멋지지 않아?

응? 못 봤어

 

어머, 어마마마도 오셨어

가보자

 

淡い夢のような
어렴풋한 꿈만 같은

木漏れ日 ぬけて
나뭇잎 새 햇살을 빠져나와

 

見える景色 ときめきが
보이는 경치에 설렘이

色を挿す
빛깔을 내리꽂네

 

そっと手を伸ばし触れた
살며시 손을 뻗어 닿은

真綿のような気持ち
솜털 같은 기분

 

優しい予感
상냥한 예감을

ふいに気づいて
문득 깨닫고는

願う
빌어

花も木々も
꽃도 나무도

鳥たちも
새들도

新しい世界
새로운 세상

 

ほうら
봐봐

 

いま始まる
지금 시작돼

 

満ちる月の 雫が
차오르는 달의 물방울이

水面に
수면에

 

溶けてく
녹아드네

 

波のように
파도처럼

広がっては
펼쳐지곤

伝え合う
서로 전해지네

 

不思議なの
참 신기해

私がいる
내가 있어

そう あなたのその瞳に
그래, 그대의 그 눈 속에

 

羽を交わす 鳥のように
날개를 맞댄 새처럼

優しく強く手を繋ぎ
부드럽게 강하게 손을 맞잡고

歩いてく
걸어나가

 


 
 

 

하느@harne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