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제목 with Caption Creator 4

도저히 납득해 주시지
못하시겠습니까?

당연하다.

그러한 궤변은 받아들일 수 없다.

궤변이라니 유감스럽사옵니다.

어젯밤 무도회에서

사리피 님께선 본인의 입으로

왕비는 못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즉, 시련을 도중 포기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 시점에서 사리피 님께선

왕비 후보 자격을 상실한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하지만

사리피는 미스트레스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그 결과 갈로아의 후견을 얻는
성과를 냈다.

그것은 사리피 님께서
시련 포기를 선언하신 뒤의 일.

결과가 어찌 되었든

사리피 님께서
왕비를 거절하신 것은 사실.

그러한 소극적인 자세에

책임 있는 지위를 맡기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옵니까?

 

아무튼 저희들은

이번 시련이 달성되었다고는

결코 인정할 수 없사옵니다.

 

제물공주와 짐승의 왕

이 목숨을 바쳐야 할 숙명이라면

거스를 생각은 어릴 적에 잃어버렸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남긴 그 시선은

마음의 저주가 되었어

증오가 분쟁을 분쟁이 슬픔을

윤회처럼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면

자그마한 이 목숨에

살아있는 의미를 당신이 깃들여줬어

 

모조품끼리, 운명의 주사위는 던져졌어

바란다면 마지막까지

 

이 소원을, 이 마음을

당신에게 바칠 거라면

위로도 연민도

필요 없으니까

 

이 목숨을 이 세상을

당신이 받아들이겠다면

그 목숨 울려 퍼지기를

이 맹세를, 이 숙명을

당신이 바라는 것이라면

괴로움도, 슬픔도

끌어안아줄 테니까

 

왕과 재상의 추억

 

어서 돌아와, 임금님.

 

괜찮아?

다소 잔소리를 듣다 지쳐서 말이다.

혹시,

또 내 일로?

네가 걱정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다.

사리피에겐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

말하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사리피에겐 이 이상

필요 없는 족쇄를 채우고 싶지 않아.

 

임금님,

 

정말로,

무슨 일 있으면 말해.

 

언젠가 그자도 이해할 날이 올 것이다.

 

어라?

이 책 다음 권이 없네.

어룡족의 역사?

어디 다른 서고에서
섞여들어온 거네.

여기 이외에도 서고가 있어?

물론인 거다.

오즈마르고의 역사만큼 있는 거라고.

그중에는 왕족만 열람하는 게 허락된
금단의 서고란 것도 있는 거야!

거야!

 

금단의 서고!

호,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 건데

금단이란 들어가면 안 된다는
의미인 거라고!

 

그 책의 다음 권은
우리가 찾아올 테니까,

사리는 여기서 기다리는 거야!

거야.

괜찮아, 내가 찾을 테니까.

언제나 두 사람에게만
일 시키고 있고.

 

가장 가까운 서고부터 찾아보자.

 

어디에 있을까?

 

그랬더니...!

거기 둘!

직무 중에 잡담을 하다니 무슨 짓이냐!

 

면목 없습니다!

왕을 위해 온 마음을 바칠
생각이 없는 자는

이 왕궁엔 필요 없다.

네놈들을 대신할 자 따윈
얼마든지 있으니까.

네!

실례했습니다!

 

깜짝 놀랐네.

최근 점점 더 험악해지셨군.

기분은 이해하지만.

하지만 지난번 무도회를 봤더니...

인간이란 것도 제법 괜찮은 면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

어리석은 것아,

그게 그런 깜찍한 것인 줄 아느냐?

목숨이 아까워 왕의 비위를 맞추고,

제물이 되는 걸 면한
약아빠진 계집이다.

 

내 눈은 못 속인다.

 

어떻게 해서든 그 계집을
왕의 곁에서 제거해야 해,

설령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재상님!

 

미안해, 바쁜데 데려와달라고 해서.

아닙니다.

근데 책 양이 엄청나네.

이래서야 어떻게 찾는 게 좋을지.

어떤 수로 왕을 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내가 반드시,

없애버리겠...

 

없애버려?

가능해.

지금 나와 계집이 여기 있단 건

아무도 모른다.

온통 널려있는 책 선반,

사고 따윈 얼마든지 일으킬 수 있어.

처리할 수 있어!

 

망설일 것 따위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재상님?

 

괜찮아?

더 안 있어도 돼.

이제 내가 알아서 찾을게.

아닙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래?

 

다행이다.

 

사실은 나 혼자서
어떻게든 하고 싶었는데.

하지만 재상님이 같이 있어주면
괜찮겠네.

고마워!

 

바보인가, 이 계집은?

이 위기의식 없는 모습,

어질어질할 정도의 어리석음,

얼른... 처리를...

왕에게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맹세한...

이 내 손으로...

 

재상님?

재상님!

 

도련님,

시리우스 도련님.

아버님의 장례식이 곧 시작됩니다.

슬슬 준비를.

 

난 안 가.

무슨 말씀이신가요!

이 장례식은

시리우스 도련님께서 정식으로

아누비스의 이름을 받으시는
자리이기도 한데요.

 

그래서 싫은 거야.

난 왕가의 하수인 따윈 되고 싶지 않아.

 

잘 듣거라, 시리우스.

우리 아누비스 일족의 혈통은 대대로

왕가를 모시고,

왕가를 지키기 위해 이어져내려왔다.

그 혈통, 그 생명의 모든 것은

언젠가 너의 왕께
바치기 위한 것이란다.

 

내게 그렇게 거듭 강조하신 아버지는

암살자로부터 왕을 지키다가

목숨을 잃으셨다.

 

하지만 왕족 놈들은

아버지의 죽음 따위 개의치 않고,

장기말이 하나
줄어든 정도로만 생각했다.

 

아누비스의 자식인가.

그자의 장례식엔
얼굴을 비치지 않았더군.

네,

몸이 조금 안 좋아졌었는지라...

뭐, 됐다.

어찌 됐든 아직 어린 네 녀석으로선
선대의 후임은 맡을 수 없다.

네 녀석은 지금부터
왕자 곁에서 시중을 들 것을 명한다.

알겠사옵니다.

 

시리우스라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시리우스?

아누비스가 아니야?

저는 아직 정식으로
아누비스의 이름을 받지 않았는지라.

 

누가 네놈들 왕족의
하수인으로서의 이름 따윌 이을까 보냐.

그렇구나.

잘 부탁한다, 시리우스.

 

난 절대 훌륭해지고 말겠어.

잔뜩 공부해서,

언젠가 왕족 놈들을 제치고

이 나라에서 누구보다도
높은 사람이 될 거야.

그걸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왜 그러십니까?

 

이것이 왜...?

밟아버리면 불쌍하잖아.

 

네?

외람되오나,

백눈 개미에겐 죽음을 두려워하는
감정 따윈 없습니다.

한 마리나 두 마리쯤 짓밟는 걸로
절멸할 일도 없고,

동료가 죽었다고 슬퍼할
지능도 없습니다.

그리고 동물도 식물도

적당히 솎여나가기에

정상적인 생태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겁니다.

불쌍하다 같은 생각 얕은 정이야말로

언젠가 그들을 멸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렇구나.

넌 머리가 좋구나.

 

그럼 이건 알아?

백눈 개미는 선두의 개미가 가는 길을
절대 벗어나지 않아.

이거면 됐네.

 

피해서 지나갈 수 있는데

일부러 짓밟을 이유는 없잖아.

 

그래,

너희들 왕족은 그래도 되겠지.

짓밟느냐 마느냐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신분이니까.

 

왕자님, 어디 가셨던 겁니까?

검 교습 시간이십니다.

난 검이 싫어.

무슨 나약한 말씀을.

언젠가 왕자님께서도 병사들을 이끌고

전쟁터에 나가실 날이 오실 텐데.

하지만 목검으로 두들겨 맞아도 아픈데,

진짜 검으로 베이면 더 아플 거 아냐.

괜찮습니다.

왕자님께서 베이시는 건 가장 마지막,

맨 먼저 죽는 건 아랫것들이니까요.

 

우리 편이든 적이든

다치면 모두 아파.

어떤 종족이든,

다들 다투지 않는 나라를
만들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게요,

그것참 훌륭한...

꿈과 같은 이상이군요.

 

이상이란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올바르게
직시할 수 있는 자만이 이룰 수 있어.

 

난 현실을 보고 있어.

언젠가 이 나라의 정점에,

지금 왕의 대에선 무리라도

이 나약해빠진 왕자의 대가 되면
반드시,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데...

쉬고 있을 틈 따윈 없는데...

 

또 열이 나셨구나, 도련님.

원래부터 그다지
튼튼하지 않으셨는걸요.

왕자님 시중드느라
피로하기도 하시겠지만.

이래서야 정말로
선대의 뒤를 이으실 수 있을까?

시끄러,

시끄러, 시끄러!

아버지의 뒤 따윌 이을까 보냐?

아버지는 내가 힘들 때에

한 번이라도 내가 어떤지
보러 와준 적이 없었어!

사명이 더, 나보다 더 소중하니까...

 

뭐지?

 

따뜻해...

 

왕자님!

어째서 여기에?

네 몸이 안 좋다고 들었거든.

어떤지 보러 온 거야.

 

혼자서 여기까지?

 

아무에게도 안 들켰을 거야.

 

조리실에서
기운이 날만한 것들을 가져왔어.

많이 먹고 얼른 나아.

 

어, 어째서 왕자님께서 그렇게까지...

 

난 네 걱정을 하면 안 되는 거냐?

 

걱정...?

왕족이 한낱 신하를,

나를 정말로...?

 

그리고,

네 아버지는
내 아바마마를 지켜주었어.

 

아바마마는 엄격하고
무서운 분이시지만,

나에겐 사랑하는 아바마마니까.

 

감사하고 있어, 무척.

아, 그런 얘기였구나.

 

이건 필요 없습니다.

 

방에 돌아가 주십시오.

시리우스?

자, 어서!

잠깐만, 시리우스.

얼른 나가주세요!

 

왕자가 역적들에게 납치당했다!

선대 아누비스 님의 자제분도
함께입니다!

즉시 추적대를 조직해라!

 

여긴...?

 

왕자님!

 

꼬맹이가 한 마리 깨어났나.

고마워.

네 덕분에 왕자를 인질로
삼을 수 있게 됐어.

이걸로 붙잡힌 동료들을
석방시킬 수 있어.

그러면 이번에야말로 왕의 목이다.

더는 실패하지 않을 거야!

 

이 녀석들,

왕을 암살하려 한 녀석들인가!

 

그렇단 건...!

 

무슨 짓이야!

내 아버지를 돌려내!

 

뭐라고?

 

너, 아누비스의 아들이냐?

왕족의 그림자로서 죽는 아누비스 일족.

네게도 그 피가 흐르고 있으면

이건 천명이라고?

왜 우리가 왕자뿐만이 아니라
너도 데려왔을 것 같나?

일단 한 마리,

먼저 죽여서 보여주고

우리가 진심이란 걸
알게 만들기 위해서야.

왕자는 마지막 카드지만
너에겐 인질로서의 가치가 없으니까.

이것도 왕자를 위해서다.

영광이지?

원망할 거면
우리에게 이런 짓을 시키는 왕족들과

자신의 혈통을 원망하시지.

 

와, 왕자님...!

 

왕족의 피가...

 

신하가 왕족에게 보호받다가...

 

이런...

 

용서 못 받을 거야.

끝이야...

난 이제 끝이야!

바보야!

벨 거면 저쪽 꼬맹이를 베야지!

아, 알고 있어!

 

왕자님!

이 이상은 그만두십시오!

미래의 왕께서 이런 위험을...!

왕이란...

모두를 지키는 자다.

 

눈앞의... 단 한 명...

친구 한 명 지키지 못하고...

뭐가 왕이냐!

 

왕자님!

 

정신 차리십시오!

왕자님!

시... 리우스...

다친 데는... 없어...?

 

네!

 

다행이다...

 

도망쳐야 해.

저 녀석들이 기절한 틈에

왕자님을...

지켜야 해!

 

이 앞에서 마력이 감지됐다!

 

저기 계신다!

아누비스 님의 자제분도 함께다!

 

얼른...

왕자님을...

 

정말로 무사하셔서 다행이었습니다!

왕자님도 2, 3일 쉬시면
회복하실 모양입니다.

그렇군.

그리고,

왕자님께서 임금님께
탄원하셨다고 합니다,

도련님께서 책임지는 일은
절대 없게 해달라고.

 

이걸로 아누비스 가의 이름에
흠집이 날 일은 없습니다.

정말로 잘 됐군요!

 

난...

그런 때마저도
자기 밖에 생각 안 했는데...

 

아버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어디선가 보고 계신가요?

 

저도,

저의 왕을 찾았습니다.

 

왜 그래, 시리우스?

일전의 일에선 시중을 드는 몸이면서도
왕자님의 존체를 보전해 드리지 못하여

대단히 송구스럽사옵니다.

신경 쓰지 마.

따지고 보면 내가 널 말려들게 한 거야.

사과해야 할 건 나...

왕자님,

왕족이 함부로 사죄의 말을
입에 담으셔선 안 됩니다.

그리고 이번처럼 타인을 감싸다가
존체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건,

경솔하고 생각이 얕은 행동입니다.

부디 앞으로는 삼가주십시오.

 

시리우스...?

 

아니,

저는 아누비스.

이제부터 왕자님의 그림자로서

모든 것을 바치는 자입니다.

 

강하고, 엄격하고,

절대적인 왕으로 이분을 인도하기 위해

나는 어떤 수단도 꺼리지 않겠다.

설령

두 번 다시 그 따스함에
닿을 일이 없어진다 해도.

 

뭐지?

 

따뜻해...

 

왕... 자님...?

 

드디어 일어났네!

몸은 좀 어때, 재상님?

 

계, 계지...!

 

평생의 불찰!

이 계집에게서 왕의 모습을 겹쳐보다니!

 

사리피 님,

이건 대체...?

 

서고에서 갑자기 쓰러져 버렸어.

하지만 이제 괜찮은 모양이네.

만지지 마라!

 

이딴 걸로 은혜를 입혔다 생각하나?

비열한 것.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어떤 상대에게든 아양을 떠는

미천한 인간 여자 놈.

 

그렇게 농간을 부려
왕의 비위를 맞췄겠지만,

난 속지 않는다!

고작해야 하루아침에 나타난
인간 계집 따위가

이 이상 왕의 마음을
현혹시키게 놔둘 것 같으냐!

나는 네 녀석 따윈 절대 인정 못한다!

 

다행이다!

안심해버렸어!

드디어 재상님다워진 것 같아!

 

뭐?

그게 아까,

사리피 님, 하고 말을 꺼내길래

엄청 수상했단 말이야.

 

그리고...

임금님도 걱정하시니까.

 

뭘 안다고 지껄이나?

계집 주제에 왕의 마음을 대변하려 들다니
천 년은 이르다!

나와 왕의 지금까지 일을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응,

그건 모르지만...

 

하지만 임금님이
무엇을 소중히 하고 있는지는

임금님을 보면 알 수 있으니까.

 

분명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무척 걱정하고 있어, 재상님들.

 

그러니까 얼른 나아서
다음 시련 생각해둬.

 

임금...

 

거봐, 역시.

 

다음 시련 생각해둬.

 

그러면 의회를 개회하겠사옵니다.

 

저번부터 논의하고 있는

사리피 님의 처우에 대해서 말입니다만...

의장 나리,

 

이번 일은 왕의 의향을 존중하여

시련은 달성된 걸로 인정하지요.

 

사리피 님께선 앞으로도 왕비 후보로서

계속해서 시련을 받아주셔야겠습니다.

 

괜찮겠나, 정말로?

두말은 안 합니다.

 

계집,

지금부터는 나도 진심으로 확인해주마,

네 녀석이 나의 왕께서
마음을 허락하시기에 걸맞는 존재인지를.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사랑을 하는 데에

정답이니 잘못이니 하는 게 있는 거라면

어쩌면 혹시

우리는 잘못된 쪽인 걸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이 마음이 계속

당신이 좋다며 종을 울리고 있어

처음 마주 닿았던 그날부터

닫혀져있던 어둠에 빛이 내리쬐였어

당신을 만나지 못했었더라면

사랑의 의미도 모른 채 있었으려나

다른 누구였다면 분명 틀렸을 거야

나와 당신의 형태를 찾아내자

 

대성제(大聖祭)?

네, 사리피 님께서도 꼭 참석해 주시길,

...이라고 말할 것 같으냐, 이 멍청한 것!

네 녀석이 왕의 곁에 서기엔
백 년은 이르다!

마음의 소리가 새어 나왔어.

축제와 계시의 날
마음의 소리가 새어 나왔어.

축제와 계시의 날
뭣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