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 9월 14일 세키가하라
이렇게 작은 지장상이라도
오아마 왕자가 여기에서 군사를 일으킨
그렇지요
왕자가 이 세키가하라에서
전투는 이 길의 봉쇄부터 시작됐지
그때 왕자가 복숭아를 나눠 줬다는
배꼽 언저리부터리
고렇지
고래, 탄내지, 탄내
울들이래 탄내 난다이
머나먼 사츠마에서 소수의 원군이
사츠마의 군사는 1000이 안 되지만
원작 시바 료타로
각본 · 감독 하라다 마사토
이건 정의와 불의의 싸움일세
세키가하라
지금 기억이 난다
필자가 소년이었을 때
무더운 여름 무렵으로
무슨 절이었는지는 까먹었다
내가 앉아 있는 여기에
매 사냥 복장을 하고 있었지
카이와리 할배, 그게 몇 년 전이에요?
대충 350년쯤 됐나?
그날도 한여름이었지
오늘처럼 눈에 땀이 스밀 듯한
이제 세키가하라라고 하는
혹은 비극을 씀에 있어서
어디부터 손을 대면 좋을까
내 어린시절의 이런 정경이
헨리 밀러는
"그 떠오른 생각부터 쓰면 된다"
그런 느낌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본다
1572년 히데요시는
오미 나가하마 24만 석의 다이묘였다
미츠나리의 아명은 사키치(佐吉)였다
학문 수행을 위해
절의 시동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히데요시는 이 근처까지 매 사냥을 왔다가
목이 마른 나머지
첫 번째 찻그릇은 역사서에 의하면
커다란 찻그릇에 7, 8할 정도를 담아
히데요시는 이를 걸신들리듯 마신 후
기분이 좋다면서 한 그릇 더 가져오라
이번엔 물을 뜨겁게 데워
맛 쩔구나, 한 그릇 더
세 번째는 물의 양은 더 적고
아, 뭐라 허냐? 이름 말이여
영내 이시다 촌의 이시다 마사츠구의
사키치, 100석의 녹봉을
비와 호의 언저리에는
녹봉을 받는 대신에
- 얼마면 되겄냐?
- 어허, 사키치!
- 영주님께 영악한 말을...
요놈이 맘에 들구먼
16년 후
1588년 오사카 성
- 사키치
오사카 성에 3중 해자가 완공되설랑
축성과 파괴인즉슨 권력의 사업이지
명심혀라, 후시미다
허면, 후시미 성 다음으론...
뻔하질 않어
명나라 입구에는 문화가 융성한
66개 영지를 통일하구 나면
언제까지고 전쟁이 끝나질 않게 됩니다
적어도 내 신하루다 못 만듬
7년 후
현관은 어디냐?!
- 대주군!
1595년 후시미, 도쿠가와 저택
1595년 후시미, 도쿠가와 저택
현관이 어디더냐!
저도 모르옵니다
그 전에 옷을 갈아 입으시어요
- 토시를 손에 쥐시고...
앞에부터 두지 말거라!
마사노부 님
대주군께선 여장(旅裝)으로
이이 나오마사
대주군! 그건...
혼다 마사노부
다이묘들은 조선 침공 비용 때문에
각자 영지에서 달려오기도 힘든 판에
시골 다이묘라 비웃음을 받으십니다
주군께선 미츠나리놈에게
밤낮 없이 에도에서 달려오신 모습을
나오마사, 닥치고 있게
마사노부, 갈아입고 싶어도
전투 전날
천 년 전에
기억이 깃들어 있는지도 모르지
(40대 텐무 천황)
군사를 일으킨 것입니까, 아버님?
모모쿠바리 산이 저기다
불이래 타는 거이 같꾸마
참말 탄내가 나지비
참말로다 탄내래 나꾸마
날마다 당도하고 있습니다
용맹과단하지
적은 10만, 우리는 8만
하지만 그 절반은 산에 올라가서
그저 불구경만 하지요
질 수야 있겠는가
오미 국의 그 절에 간 기억이 있다
긴 돌계단을 올랐다
태합이 걸터앉아 있었단다
뙤약볕이었어
방대한 인간 희극
멍하니 고민하고 있자니
한낮의 꿈처럼 떠올랐다
"지금 넌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오다 노부나가의 무장으로서
이 절에 다녔던 건지
불쑥 들이닥친 듯 하였다
미지근하게 가져왔는데
입맛을 다시며
명을 했다고 한다
양은 처음의 절반 정도였다
혀가 델 정도로 뜨거웠다
아들 사키치라고 합니다
주겠다고 함 니 어쩔 셈이냐?
억새와 갈대가 자라 있습니다
그것의 벌채에 드는 세금을...
- 괜찮어
성으로 데려가겠다
- 예
다음은 후시미에 성을 짓는다
후시미에다가 성을...
명국을 굴복시켜야지
조선이 있습니다
바루 조선은 무릎꿇을거다
전쟁이 어데 끝나겄나
- 몰라
- 대주군!
- 몰라
대주군! 의복을 갈아 입으십...
- 현관이 어딘가!
등성하실 모양입니다
여행복이 아니십니까
몸부림치고 있네
약식으로 입을 수밖에
보이고 싶으신 거지요
의복 상자를 못 찾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