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집/감 독 : 왕가위

 

해피투게더

 

아휘...

 

다시 시작하자

 

보영은 툭하면
저렇게 말했고

 

내겐 저 말이 먹혔다

 

오래 만났지만
중간에 헤어졌고

 

저렇게 말할 때면

 

어느새 난
그의 곁에 있었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홍콩에서 아르헨티나로 갔다

 

이구아수 폭포가 어디죠?

 

이쪽이 아니에요

 

지도 볼 줄 몰라?
이쪽이 아니라잖아

 

그게 뭐 큰일이야?

 

그럼 돌아가면 되지

 

젠장, 고물차 살 바엔
버스 타자니까

 

결국엔 퍼졌잖아

 

네가 해봐

 

없는 것보단 낫잖아

 

돈이 모자랐으니까 그렇지

 

버스 타면 30시간이나 걸린대

 

그게 여행이지

 

누가 이럴 줄 알았어?

 

내려서 좀 밀어봐

 

처음 왔을 땐
길도 잘 몰랐다

 

어느 날 보영이
램프를 사왔는데

 

거기 그려진 폭포가
이구아수 폭포라는 걸 알고

 

폭포만 보려고 왔는데
길을 잃어버렸다

 

야!

 

어디 가?

 

거기가 어딘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영은 많이 지루해했고
결국 우린 헤어졌다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자면서

 

그 말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아르헨티나에는
일자리가 잘 없다

 

중국인이 많기 때문이다

 

그와 헤어진 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와

 

탱고바에서 도어맨으로 일했다

 

저리 가!

 

어서 오세요

 

빨리...

 

환영합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가세요

 

자리 있습니다

 

그를 다시 만났지만

 

다시 시작하기도 싫고
홍콩으로 가고 싶었다

 

축구 누가 이겼어?

 

아휘, 전화야

 

계속 전화 왔어

 

네

 

무슨 일이야?

 

그만 움직이세요

 

웃어봐요

 

안 찍어

 

- 왜 이제 와?
- 담배 줘

 

택시

 

불도 줘야지

 

불

 

기다려

 

여보세요?
누구세요?

 

아휘, 네 전화야!

 

여보세요

 

- 여보세요?
- 나야, 안 들려?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보영, 문 열어!

 

문 열라고!

 

무슨 일이야?

 

보영

 

들어와

 

내가 왜?

 

할 말이 있어

 

여기서 해

 

중요한 얘기니까 들어와

 

빨리해

 

미쳤어?

 

이게 할 말이야

 

가

 

밀지 마
또 밀면 칠 거다

 

정말?

 

할 수 있으면
어디 죽여봐!

 

젠장!

 

네가 나보다 나아?

 

어서 오세요, 들어가세요
네가 접대부야?

 

상관 마!

 

난 빽이 없어서 그래

 

엿 먹어

 

아무것도 없다고!

 

돈도 다 썼잖아

 

돈 없이 어떻게
홍콩으로 돌아가?

 

나도 하기 싫어

 

나 만난 거 후회해?

 

당연한 거 아냐?

 

안 보일 때는 괜찮았는데

 

지금 보니까 후회돼

 

그래서?

 

그래서?

 

지금 내가 우스워?

 

네 자랑하려고 왔냐?

 

네가 뭔데 껴들어?

 

왜 오라고 했어?

 

곁에 있어줘

 

네가 그리워

 

젠장!

 

받아

 

싫으면 팔든가

 

미친놈

 

또 뭐야?

 

시계 돌려줘야겠어

 

뒤로 가, 어두운 데로

 

누가 볼까 봐 그래?

 

네 꼴을 봐라

 

봤어?
모를 줄 알았지

 

말이라도 해주지
맞는 걸 보고만 있었어?

 

맞으면 맞는 거지
나더러 어쩌라고?

 

우린 친구잖아?
걱정도 안 돼?

 

너 때문에 맞은 건데

 

왜 나 때문이야?

 

누가 시계 달라고 했어?

 

어쨌든 받았잖아

 

다시 돌려줬으면
안 맞았을 거잖아

 

같이 가줄까?

 

됐어

 

약만 올리잖아

 

집은 어딘데?

 

여기서 기다려

 

여기 있어

 

야

 

왜?

 

담배 한 대 줘

 

불은?

 

다시는 찾아오지 마

 

여보세요, 아휘요?
없어요

 

아휘!

 

아휘

 

다시 시작하자

 

여기 좋네

 

얼마나 살았어?

 

몇 달 정도

 

너무 허름한데?

 

싸니까

 

그렇겠네

 

천장도 높고
경치도 좋네

 

램프는 안버렸네?

 

버린 줄 알았지

 

폭포는 가봤어?

 

아니, 넌?

 

아직

 

같이 가자

 

내가 다 나으면 가자

 

봐서

 

오늘은 여기서 자

 

넌?

 

소파에서 잘게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좋습니다
다시 찍을게요

 

하나 둘 셋 치즈

 

한 장 더

 

좀 붙어봐요

 

하나 둘 셋, 좋아요

 

요리를 종일 해?
저리 가!

 

알았어요

 

보영, 밥 먹어

 

밥 먹자, 일어나

 

닭고기도 줘

 

나 너무 말랐지?

 

의사가 목욕하지 말래

 

어디서 물린 거야?

 

침대에 벌레가 있어

 

비 오는 날엔 그래

 

햇빛에 이불 좀 말려야겠어

 

이러다 물려 죽겠다

 

팔 들어

 

아파, 좀 살살해

 

씻겨달라며

 

너무 높이 들잖아

 

저기도 뿌려

 

소파에도 뿌려

 

- 왜
- 담배있어?

 

저기 있잖아

 

- 사다 줄까?
- 됐어, 잠이나 자

 

크리스!

 

- 담배 두 갑요
- 알았어

 

- 고마워요
- 잘 가

 

뭐야!

 

왜 좁은데 끼어들어?

 

여기가 좋아

 

좁아서 어떻게 자냐?

 

난 좋은데?

 

아야! 왜 물어?

 

배고파서

 

여기서 잘 거야?

 

왜?

 

내가 침대로 가게

 

시끄럽고 잠이나 자

 

아니면 네가 가든가

 

잔소리도 많네

 

야!

 

내가 침대로 간다

 

삭막하게 왜 그래?

 

침대 좁다고

 

뭐가 좁아?

 

내가 네 위에서 잘게

 

이러면 됐지?

 

여기서 잘 거야?

 

정말 이럴 거야?

 

왜 그래?

 

그냥 자자

 

- 그럼 네가...
- 가만 있어, 그냥 자

 

건들지 마

 

누가 건드려?
너나 그러지 마

 

뽀뽀만 할게, 자자

 

손 건드리지 마, 아파

 

사장님
모짜렐라 피자 하나요

 

- 나폴레타나?
- 모짜렐라요

 

나폴레타나?

 

아니요, 모짜렐라요

 

- 모짜렐라?
- 네

 

빨리해, 뚱땡이

 

- 중국여자 소개시켜줘
- 빨리 줘요

 

몸매 죽이는 여자로

 

맘에 들어?

 

경고하는데
꿈도 꾸지 마

 

더는 못 참아
너무 춥다고!

 

뭘 못 참아?
집에만 있으면 안 돼

 

너무 춥잖아
내일 하자

 

뭐가 추워?
빨리 와

 

춥다고!

 

춥긴한데 갈까?

 

어쩌라고?

 

알았어, 가자

 

젠장!

 

아휘

 

좀 어때?

 

너무 아파

 

열이 많이 나네

 

아파

 

당연하지

 

다 너 때문이야
꼭두새벽부터 무슨 운동이야?

 

완전 저질 체력이네
나가자마자 감기야?

 

일어나겠어?

 

뭐하게?

 

밥 해줘야지

 

이틀이나 굶었어
배고파 죽겠어

 

그러고도 네가 인간이야?

 

환자한테 밥 달라고?

 

빨리 달려!

 

오늘 죽여주네!

 

표는?

 

돈 받아올게

 

항상 여기서 까먹냐

 

혼자 연습해

 

항상 거기서 틀려

 

저쪽이라고
뭐하는 거야?

 

알겠어

 

확실해?

 

자, 이쪽부터 해 봐

 

하나

 

둘

 

셋

 

가자

 

아냐, 집에 갈래

 

같이 가서 놀자

 

여보세요

 

반갑지?

 

어디 가?

 

너 기다렸지

 

왜 말 안 했어?

 

뭘 안 해?

 

회사 전화해봤어
그만뒀다며?

 

뭐 좋은 일이라고

 

아작을 내놨더라?

 

말하기 싫어

 

궁금해서 잠 못 자

 

그럼 길에서 자

 

내가 못 자면
너도 못 자잖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 어서 말해봐
- 싫어

 

- 말해봐
- 싫어, 귀찮아

 

- 아휘
- 네?

 

- 커피잔이 없어
- 네

 

- 누들스
- 네, 컵 두 개요

 

그냥 들어보면
일반 주방이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누가 요리를 하고
누가 싸우는지 안다

 

누구는 전화를 하고
누구는 설거지 중이다

 

뭐 하고 있어?

 

밥은 먹었어?

 

밥 먹었냐고

 

뭐 좀 사갈게

 

뭐 사갈까?

 

장난치지 말고
뭐 먹고 싶어?

 

아무거나 다 좋아

 

그럼 끊는다

 

그는 전화를 자주 한다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 보인다

 

분명 애인이겠지?

 

아직 안 갔어?
다 갔는데 내일 해

 

다 퇴근했다고
내일 하라고

 

갈 데도 없는데
하고 갈래요

 

놀러 온 거 아냐?

 

돈을 다 써버렸어요

 

먹을래?

 

아뇨

 

공짜야

 

그럴게요

 

어때?

 

맛있어요

 

천천히 먹어

 

난 간다

 

아휘, 마작할래?

 

아뇨

 

노세요

 

안 맞아?

 

얼마나 벌어야 하나 해서요

 

여긴 너무 비싸요

 

지도 봐요?
어디 가게요?

 

폭포에 가려고

 

거기 재밌는데

 

- 가봤어?
- 아니요

 

안 가봤는데
어떻게 알아?

 

어디든 다 재미있어요

 

- 혼자 가요?
- 친구랑

 

부럽네요
얼마나 있었어요?

 

어디 가고 싶어?

 

글쎄요
먼 곳으로 가고 싶어요

 

가족 생각은 안 해?

 

저 혼자 왔어요
관심도 없을걸요?

 

집에 가고 싶어?

 

재미없으니까 나왔죠

 

재미 좀 보고 가려고요

 

이만 갈게요
재밌게 노세요

 

오늘은 바빠
내일 가자

 

영화는 수요일이 반값이야

 

지금 어떻게 가?

 

아휘! 달걀 좀 줘

잠깐만

 

여보세요?

 

전화요

 

여보세요, 일하는 애지

 

집에 가서 얘기해

 

일해야 돼, 끊는다

 

바빠죽겠는데
누구는 전화하고

 

왜 자는 사람을 깨워?

 

- 서랍은 왜 뒤졌어?
- 내가 뭘 뒤져?

 

미쳤나?

 

서랍이 엉망이잖아!

 

이 꼴로 어떻게 뒤져?
입으로 뒤져?

 

또 물건 뒤지면
다리도 부러뜨린다

 

좋아, 어디 해 봐!

 

손도 없는데 다리쯤이야!

 

미친놈
누가 물건을 뒤져?

 

또 그럴 거면 꺼져!

 

네가 꺼지라고 했다

 

바지 입히고 신발 신겨
그럼 꺼질게

 

- 꺼져?
- 어디로 꺼질 건데?

 

뭔 상관이야?

 

후회하지 마!

 

미친놈

 

누가 먼저 대시했어?

 

그것도 했어?

 

뭘?

 

뭔지 알면서

 

뭐가?

 

그거 말이야

 

그게 뭔데?

 

무슨 상관인데?
너도 했잖아

 

좋아, 서로 묻지 말자

 

저리 가!
혼난다!

 

- 알았어
- 저기서 자

 

성질 더럽네

 

숨기는 게 있으니까
저렇게 화를 내지

 

뭘 그렇게 화를 내?

 

- 일어나
- 왜?

 

- 잘 건데 왜?
- 그렇게 알고 싶어?

 

그러는 넌 누구랑 잤어?

 

내가 물어본 걸
왜 다시 묻고 그래?

 

귀찮게 했잖아

 

다른 사람하고 잤냐고!

 

- 진짜 말해줘?
- 말해

 

3시 반이야

 

남자가 너무 많아서
밤새 말해도 부족해

 

별로 잠도 안 와
천천히 말해봐

 

싫은데?

 

- 개자식
- 야!

 

알았어, 알았다고!

 

꺼져!

 

진심이야?

 

- 농담이겠어?
- 건드리지 마!

 

- 내가 갈게
- 빨리 가

 

환자를 이렇게
괴롭히다니...

 

꺼져

 

잘 데도 없으면서

 

몇 번 했어?

 

- 말해봐
- 뭐가 몇 번인데?

 

얼마나 잤냐고
했으면 그냥 인정해

 

셀 수가 없어, 됐어?

 

또 있어?

 

밑에 양놈은?

 

난 네가 아냐

 

야!

 

많이 남았어?

 

아휘예요

 

보영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어둡게 불은 왜 안 켜?

 

어디 갔었어?

 

담배 사러

 

그렇게 입고?

 

좀 빼입고 가면 덧나?

 

왜 이렇게 많아?

 

오다가 샀어
밤에 나가지 말라고

 

어디 갔다 와?

 

좀 걷다 왔어

 

야식 먹을래?

 

그렇게 심심하냐?

 

왜 시비야?

 

나갔다 오면 안 돼?

 

되지

 

넌 네 멋대로잖아

 

거기서 잘 거야?
내가 소파로 가?

 

아니

 

안 올 줄 알았지

 

먹어

 

조심해

 

빼앗아!

 

패스!

 

젠장

 

- 싸우지 마
- 그만들 해

 

다음에 하자

 

보영에겐 말 안 했지만

 

그가 빨리 낫는 게 싫었다

 

그가 아플 때가
가장 행복했으니까

 

이달 방세 안 냈잖아

 

지금 밥하는 거
안 보여요?

 

방세는 내야지!

 

지금 어떻게 줘요?

 

지금은 안 돼요

 

내 여권 어디 있어?

 

글쎄

 

글쎄? 없어졌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여권 내놔

 

- 뭐하게?
- 뭔 상관이야?

 

안 줄 거야

 

뭘 찾아?

 

뭔지 알잖아

 

당장 내놔

 

몇 번을 말해?

 

안 줄 거야

 

때려! 때려 봐!

 

때려!

 

때려 봐!
때리라고!

 

오늘은 마작 안 해요?

 

생각 없어

 

한잔 할래요?

 

토했어요?

 

부축해줄게요
어디 살아요?

 

잡으면 어떻게 차?

 

싸우지 마!

 

손은 안 돼!

 

여기야!

 

영화 보러 갈래?

 

아니, 영화 보면
두통이 생겨

 

미친놈

 

그래, 나 미쳤다

 

몸매 죽이죠?

 

그럼 같이 가지?

 

목소리가 싫어요

 

여자 목소리는...

 

저음이 좋아요
다를 때도 있지만

 

가슴 뛰게 하는
목소리가 좋아요

 

어떤 목소리가 좋아요?

 

좋으면 됐지

 

졸리면 집에 가

 

저 사람들 대화
듣고 있었어요

 

저렇게 먼데 들려?

 

뭐라는지는 모르지만
조만간 싸울걸요?

 

청각이 뛰어나네

 

습관이에요

 

어렸을 때 눈이 아파
잘 안 보였어요

 

나중에 돈 벌어서
눈은 고쳤지만

 

귀는 습관이 돼 버렸죠

 

어떨 때는 눈보다
귀가 나아요

 

듣는 게 보는 것보다 정확하죠

 

아무리 행복한 척해도

 

목소리는 못 속여요

 

잘 들으면 알 수 있죠

 

그래?

 

당신은 슬퍼 보여요

 

저 사람은 뭐래?

 

들어볼게요

 

골!

 

3달러야

 

장

 

다 받았어?

 

5달러니까...

 

2달러 해요

 

왜 난 2달러야?

 

알았어요
3달러 해요

 

우리 중에 장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오후에 하는 축구는
많이 덥다

 

왠지 그해 여름은
빨리 지나갔다

 

건배, 그동안 고마웠어요

 

돈은 다 모았어?

 

그럼요

 

축하해

 

어디로 갈 거야?

 

남쪽으로요
우슈이아로요

 

추운데 왜 가?

 

땅끝이라니까
한번 가보고 싶어요

 

가 봤어요?

 

등대가 하나 있다는데...

 

실연당한 사람들이...

 

슬픈 기억을 두고 온다더군

 

지금도 그럴까요?

 

글쎄, 아마도

 

여기다 말해봐요

 

뭘?

 

유일한 친구였는데

 

기념 삼아서요
사진은 싫으니까

 

뭐라고 해?

 

아무거나요

 

속에 있는 말 해요

 

슬픈 얘기도 해봐요
내가 거기 두고 올게요

 

슬픈 일 없는데?

 

그럼 좋은 거라도

 

혼자 해요
놀다 올게요

 

괜찮아요?

 

데려다 줄게요

 

괜찮아

 

정말요?

 

먼저 가

 

그럼 갈게요

 

건강하고

 

다음에 또 봐요

 

눈 감아 봐

 

왜요?

 

감아 봐

 

넌 누굴 닮았어

 

- 누구요?
- 눈먼 검객

 

웃기네요

 

재밌게 보내

 

가까워서 그런지...

 

안았을 땐 심장박동
소리만 들렸다

 

그도 들었을까?

 

화장실에선 상대를 찾지 않지만

 

요즘은 편해서 종종 간다

 

거기서 보영을 만났고
그 후로는 안 갔다

 

난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외로워지면 다 똑같다

 

홍콩을 떠나기 전에
회사에서 돈을 훔쳤다

 

사장이 아버지 친구라

 

여기 와서는 쭉 일을 했다

 

언젠가 돈도 갚고
아버지께 사죄도 하고 싶다

 

여보세요, 아버지

 

아휘에요

 

12월인데도 여기는 덥다

 

그날은 휴가

 

아버지께 크리스마스카드를 쓰다

 

장문의 편지를 썼다

 

죄송하단 말 외에
질문에 대한 답을 드렸는데

 

마지막 말은 이랬다

 

친구가 되고 싶으니

 

내게 기회를 주면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일이 너무 힘들어

 

힘들어 죽을 거 같아

 

돈을 벌기 위해
도살장에 취직했다

 

월급도 짭짤했고
시간도 괜찮았다

 

밤엔 일하고
낮엔 자면서

 

홍콩시간에
맞춰 갔다

 

여보세요, 나야

 

어떤 일은 돌고 돈다

 

얼마 후 보영이 전화와
여권을 달라고 했다

 

안 주고 싶은 게 아니라
다신 보기 싫었다

 

시작하자는 말이 무서웠다

 

또 불면증에 걸렸다

 

홍콩과 아르헨티나는
서로 반대편에 있단 걸

 

홍콩을 거꾸로 보면 어떨까?

 

집에 있는 게 싫어
휴일에도 일을 했다

 

보영의 말은
내겐 치명적이다

 

하지만 이젠 끝내고 싶다

 

여보세요

 

네

 

아휘는 떠났어요
정말 이사 갔어요

 

열심히 일한 덕에
돈을 다 모았다

 

떠나기 전에
폭포를 보러 갔다

 

여러 번 길을 헤매다

 

드디어 이구아수에 도착했다

 

많이 슬펐다

 

그와 함께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1997년 1월
드디어 세상 끝에 왔다

 

여긴 남미 대륙의
마지막 등대이다

 

조금 더 가면 남극이다

 

갑자기 집이 그리워졌다

 

아휘의 슬픔을
여기 두기로 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

 

녹음기가 고장 났는지
아무것도 안 들렸다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

 

누가 우는 것 같다

 

대만으로 가기 전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왔다

 

아휘에게 인사하고 싶었는데

 

그는 떠나고 없었다

 

날이 밝아왔다

 

아마 대만은 밤이겠지

 

야시장은 열었나 모르겠다

 

중국의 리더 덩샤오핑이
어젯밤 9시 08분에

 

베이징 한 병원에서
향년 93세로 별세하였습니다

 

계속해서 보도드리겠습니다

 

대만에서 눈을 뜨니 오후였다

 

1997년 2월 20일
지구 반대편에 있다

 

오래 잔 것 같다

 

뭐 드실래요?

 

뭐가 맛있어요?

 

고기완자도 있고
국수도 있어요

 

두부도 맛있죠

 

뭘 드릴까요?

 

주문했어요

 

국수 주세요

 

먹었으면 돈을 내야지

 

네가 뭔 상관이야?

 

넌 상관 말고 저리 가!

 

먹을 거야 말 거야?

 

돈 냈잖아!
서비스가 왜 이래?

 

뭐야?

 

저리 꺼져!
죄송합니다

 

미친놈

 

국 드릴게요

 

안으로 들어가세요

 

혹시 전화 있나요?

 

네, 저쪽에요

 

홍콩에 가기 전
대만에 들렀는데

 

랴오닝 야시장에 갔다

 

시장은 붐볐다

 

장은 못 봤지만
가족은 만났다

 

그가 자유로운 이유를 알았다

 

우리 아버지는 어떠실까

 

그때 가서 생각하자

 

많이 파세요

 

그의 사진을 챙겨왔다

 

언제 만날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디 가면 만나는지는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