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제목 with Caption Creator 4

약사의 혼잣말

 

그림자 속에 살며시 숨어있든
상관없잖아

봉오리 같은 꽃도 얼마든
있잖아

비밀로 하고서 지키는 게
좋지 않을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화려하게 피어있어

달콤씁쓸함에 빠지지 않는

그 판단이 부질없어

끙끙 앓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진 말아줘

사랑에 익숙할 턱이 없는
쓸데없이 꾸미지 않은

아름답게 꾸민 꽃병도
비료도 그 무엇도 필요 없는

그 모습이 아름다워

꽃이 되어서
어서 공허하게 냉소해줘

그 표정이 짜릿짜릿해서
눈을 뗄 수가 없어

맛보아줘
너의 독이 내겐 약이라고

감싸줄 테니까
웃어줘

 

제11화 둘을 하나로

 

옥엽비로부터의 서신?

네, 직접 전해드리라고.

아다 님께선 다과회에 나가셨는데.

 

풍명 님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알았어.

 

짐이 정리되어 있어.

그렇단 건 역시...

먹으렴.

 

그래서, 오늘은 대체 무슨 일이니?

대청소는 이제 충분한데.

언제 옮기시는 겁니까?

 

눈치가 빠르구나.

대청소는 대외적인 이유로군요.

신년 인사와 함께
새 상급비를 맞이하기 위해

아다비께선
이 궁을 떠나셔야만 합니다.

 

아다비께선
더는 아이를 낳으실 수 없는 거군요.

 

출산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너와는 관계가 없는 일 아니겠니?

 

관계 없는 일은 아닙니다.

 

출산하던 자리에 있었던 건

제 아버지인지라.

 

불행한 건
그 당시 동궁비셨던 아다비의 출산이

당시의 황후의 출산과
시기가 겹친 것이었을까요.

 

의관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는 거야?

아직 황후님 쪽에.

아다 님,

아다 님, 걱정 마시옵소서.

이 풍명이 곁에 있사옵니다!

황후와 저울질한 결과

아다비의 출산은 뒷전으로 밀렸다.

 

아다 님.

 

그때였군요,

아다비가 자궁을 잃은 것은.

 

그 후, 아다비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어린 나이에 죽고 말았죠.

 

풍명 님께선

책임을 느끼고 계신 게 아닙니까?

당시 출산 후의 몸 상태가
좋지 않으셨던 아다비 대신

아기를 돌보고 있었던 건

당신이셨을 겁니다.

 

모든 걸 다 알고 있구나,

아다 님을 구하지도 못했던
돌팔이의 딸이면서.

 

그렇네요.

 

아기의 사인은

지난번의 독 분가루 사건과
똑같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만,

그건 아니지요?

 

당신이 말하는 그 돌팔이 의사는

분가루를 쓰는 걸 금했을 겁니다.

총명한 당신이 그것 때문에
아기를 죽게 만들었을 리 없어.

진정한 사인은...

이겁니다.

 

꽃 중에서는 독이 있는 것도 많죠.

투구꽃이나 홍철쭉처럼

그 꿀에도 독성이 있습니다.

 

알고 있단다.

하지만 당신은...

몰랐어,

독을 품지 않은 단순한 벌꿀이,

자양이 좋다며 준 약이...

아기에게 있어서 독이 된다는 사실을.

 

언제나 미안하구나, 풍명.

아닙니다,
아다 님께선 존체를 돌보시고

얼른 기운 차려주십시오.

 

그리고, 아다비의 아이는
숨이 끊어졌어.

 

사인은 수수께끼로 처리되고.

당시 의관이었던 제 아버지, 나문은

출산시의 처치도 포함해서

거듭되는 실수로 인해

후궁에서 추방당했습니다.

 

그 뒤로 당신은 우연히도

아다비의 아이의 사인을 알게 되지요.

 

어느 인물이 벌꿀은 아기에게 있어서
독이 된단 걸 가르쳐준 거죠.

 

아다비에게만은
알려지고 싶지 않았어,

자신이 유일한 아이를 죽인
원인이라고.

 

그래서,

없애려고 생각했어.

 

그 인물이 바로...

 

이수비입니다.

 

선제 시절에

이수비는 연상의 며느리인
아다비를 잘 따랐었어요.

아다비도 이수비를 귀여워했죠.

부모 곁을 떠난 어린 소녀와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성.

일종의 동반의존이
생겨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는 사이 당신은 이수비로부터

아기일 적에 벌꿀을 먹고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듣습니다.

아다비에게 들려주지 않기 위해

이수비를 석류궁에서
쫓아 돌려보내게 되었어.

 

얼마 후,

선제가 붕어하시고,

이수비는 쫓아낸 이유도 모른 채로

출가해버렸어.

 

풍명 님께선 안도하셨겠죠.

하지만 두 번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이수비는

다시 후궁에 나타났습니다,

같은 상급비로서,

아다비를 몰아내는 입장으로서.

 

뻔뻔하게도 그 어린 소녀는

어머니를 바라듯이

몇 번이고 아다비를
만나러 오려고 하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다비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벌꿀 건을 숨기기 위해

당신은 이수비의 국에 독을 넣었어.

 

원하는 건 뭐니?

그런 건 없습니다.

 

뭐든 괜찮단다.

 

그딴 건 의미가 없단 걸
스스로도 아실 텐데요.

 

얘,

너는 가장 소중한 사람의
가장 소중한 것이 뭔지 아니?

 

아다 님을 처음 만나뵈었을 때부터

이 분 이외에 모실 사람은
없다고 느꼈단다.

 

여자이면서

견고한 의지를 가지시고

동궁과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할 수 있는

아다 님을 진심으로 존경했었어.

부모 말을 듣고

시키는 대로 시녀가 된 나와 비교해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었는지.

 

그런데 난...

아다 님의 가장 소중한 것을

이 손으로...

빼앗아버린 거야!

아다 님께서
옥처럼 소중히 여기신 아기를!

 

이 손으로...!

 

그때,

아다 님께선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

너희가 마음 쓸 필요 없다.

아이는 일곱 살이 되기 전까진
알 수 없는 법이다.

약간의 병에도 덜컥 죽어버리지.

아이는 하늘의 명을 따른 것이다.

 

아다 님께서
매일밤 울며 지새우신 것도

난... 알고 있었으면서...!

 

이 16년간

어떤 마음으로 모셨을까,

 

반려를 가지지도 못하고

한결같이 아다비를 위해.

 

모르겠어, 나로선.

그렇게까지 타인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이 없어.

 

내 이야기를 들으면

임씨 님께선 풍명을
반드시 붙잡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극형은 면할 수 없어.

똑똑한 그녀는 모든 걸 알고 있을 거다.

 

제게 제안이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두 개 있었던 동기를
하나로 만드는 것뿐입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괜찮다면

받아들여주십시오.

 

지쳤어...

목욕... 은 못하고,

하다못해 갈아입기라도 할까.

 

만약을 대비에 기름종이를 겹쳐서
고정시켜놨는데

필요없어서 다행이었네.

 

베이면 아프니까.

 

그렇게 돼서 풍명이 자수해왔다만.

뭔가 아는 거 없느냐?

무슨 말씀이시지요?

고순에게 문서를 모으게 시킨
모양이다만?

네, 뭔가 알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만,

소용없어져 버렸습니다.

 

풍명의 동기는

네가 말한대로 아다비를 위해,

네 부인의 자리에 머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던 모양이다.

 

그런가요.

하지만

아다비는 상급비에서 내려가는 게
이미 결정되어 있어.

후궁을 나간 뒤에

남쪽의 별궁에서 살게 되었다.

 

이번 건이 원인일까요?

아니, 원래부터 정해져 있었어.

 

황제의 판단이신 모양이다.

그런가요.

 

이 꽃...

 

아까 홍낭이 장식해두더구나.

 

네, 때도 아닌데 피었군요.

 

달군.

독이지만요.

 

죽을 일은 없으니 문제없어요.

 

그때의 풍명에게 한 제안.

 

이수비의 독살,

아기의 죽음의 원인,

두 개의 동기를 하나로 만들면

아기의 죽음의 원인을
아다비에게 알리지 않게는 할 수 있어,

자신의 죽음은 면하지 못해도.

 

그것이 아무런 권력도 없는
계집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이었어.

 

잠이 안 와.

 

산책이라도 할까.

 

풍명의 처형은 끝났어.

내일이면 아다비가
후궁을 떠난다고 한다.

 

어라, 먼저 온 손님인가.

 

지난번에 도와주러 왔던 시녀로군?

금방 돌아가겠사오니.

아니.

한 잔 어울려주지 않겠느냐?

 

술!

 

감사합니다!

 

남자 같지?

그렇게 보이게
거동하시는 걸로 보입니다.

 

솔직한 자구나.

 

아들이 이 손을 떠난 뒤로 계속

난 비가 아니라, 황제의 친구였어.

 

아니, 친구로 돌아갔다, 이려나.

 

설마 비가 될 줄은 생각 못했어.

 

동정으로 허울 뿐인 비 행세를
하고 있었던 것뿐.

얼른 누군가에게 넘겨주고 싶었어.

어째서 매달렸던 것일까.

 

분명 이 자리에 있었던 게
누가 되었든

똑같은 이야기를 하셨겠지.

 

물속은 추웠을 테지,

괴로웠을 테지.

 

그렇네요.

 

바보 같지 않느냐?

 

그럴지도 모릅니다.

 

다들 바보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어렴풋이 알았다.

 

역시 그 하녀는 자살이었던 거다.

 

아다비는 그걸 눈치채고 있었다.

 

풍명은 자살에
가담했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다비에게
혐의가 걸리지 않게 하겠다며

차가운 물속에 가라앉은 시녀.

 

알려지고 싶지 않은 비밀을 품고

스스로 교수대에 오른 풍명.

 

아다비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녀를 위해 목숨을 거는 자들이 있다.

 

나도 슬슬 내려가자.

 

뭘 하고 있느냐!

 

누구야, 갑자기?

미안하군.

 

임씨 님, 어째서 여기에?

그건 내가 더 묻고 싶군.

 

죄송합니다, 지금 비키겠...

 

놔주시지 않겠습니까?

놔주십시오.

 

추우니까 싫어.

윗옷도 없이 감기 걸리시겠어요.

방에 돌아가주세요.

술 드셨습니까?

 

어울려주느라 어쩔 수 없었어.

어울려줬다라...

 

집주인은 날 술자리로 불러내서는

먹일 만큼 먹이고 나서는
어딘가로 나가버렸어.

 

돌아왔나 싶었더니만,

후련해졌으니 돌아가라고 쫓겨났어.

 

이 분을 그런 식으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이 후궁에도 있구나.

하지만 그거랑 이건 상관없어!

 

치덕치덕 들러붙는 주정뱅이에게
어울려줄 순 없지!

 

아니,

잘 생각해보면

원래는 내가 떨어져서 받아준 거니까,

감사 인사도 없이
얼른 놓으라고 하는 건

실례일지도 몰라.

 

임씨 니...

 

조금만 더 부탁하자.

 

조금만 더, 몸을 녹히게 해다오.

 

두 분 다 숙취 걱정은 없는 듯하군.

 

아다비는 후궁을 나가기에

숙비의 증표인 왕관을 반납한다.

저 왕관은 조만간

입궁할 소녀에게 건네질 것으로
결정나 있어.

 

아, 그렇구나.

누군가를 닮았다 싶었더니만...

임씨 님이었던 모양이야.

 

저 두 분, 복장을 바꿔치기 하는 편이
훨씬...

 

바꿔치기?

 

아들이 이 손을 떠난 뒤로 계속...

떠난 뒤로...?

죽은 뒤로가 아니라?

 

마치 아직 살아있는 걸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말투야.

동시에 태어난 아다비의 아이와

당시의 황후의 아이.

둘이 혹시 뒤바뀌었다면?

 

출산 시에
아다비는 뼈저리게 깨달았겠지.

무슨 짓이냐?

아직 아다 님께서...!

황후 님이 우선이다!

그, 그럴 수가...!

 

결국은 유모의 딸 신세,

같은 젖을 먹고 자란 사이의 비에
지나지 않은 자기 슬하보다

당시의 황후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비호를 받을 거란 사실을.

 

무엇이 옳은지

판단 따윈 불가능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결과
자신의 아들이 살았다면,

그건 아다비로선
더 바랄 나위 없었겠지.

 

후일 아기가 뒤바뀌었단 게
들켰다고 하자.

혹시 그것이 아기가 죽은 뒤라면,

눈치채지 못했던 아버지가

육형까지 받은 것도
(중국에서 육체에 과하던 형벌)

납득이 가.

 

혹시 그렇다면

황제의 동생이
지금 미묘한 입장에 있는 것도,

시원시원한 성격이었을 터인 아다비가
후궁을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렀던 이유도 알겠는데...

 

실로 시답잖은
바보 같을 정도의 망상이야.

기다려주십시오!

이수 님!

 

변함들 없으십니다.

 

고독한 비에게

신뢰할 수 있는 시녀가 있단 것,

그것은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이수 님!

 

그때,

청년 같은 늠름한 비의 얼굴이

어머니의 얼굴로 보였다.

 

풍명의 일족과 관계자 명부입니다.

 

붙잡혀서 팔려왔다고 들었다만.

비취궁 묘묘

 

장식 같은 다정함이 아니라

어디 다 쓸 곳도 없을 만큼의 온기를

그런 제멋대로인 이상을 늘어놓으며
오늘도

말로는 못하고 집어삼키기만 했지요

추억은 아직 금목서

황혼빛을 풍기는 거리에서

웃고 있었겠지

가슴이 애달파서 눈물이 흐르고

그날의 당신 곁에서 빛을 찾아내고

어리광부렸었지

바람이 시끄러워서 귀를 막고 있었어

그런 나로부터 졸업해야겠지

사랑의 말에 발이 걸려 넘어지더라도

 

다음 시간,

환관과 기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