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제목 with Caption Creator 4

약사의 혼잣말

 

언제든지 그대는 두려움을 모른 채

좋아하는 것에 푹 빠진 고양이 같아서

 

그대가 눈부시게 느껴지는 건

분명 내가 그대를 보고 있었기에

자극적인 사고회로

점점 끌리고 있어

 

푸르고, 푸른, 그 눈동자에
나는 아직 비치지 않아

그대는 오늘도 평소의 그대인 채로

 

흔들리고, 흔들리는, 그 마음은
어딘가에 담아둔 채

지금은 여기서 그저
그 옆모습을 보고 있어

 

그렇다면

내게 화장을 해주지 않겠느냐?

 

예?

 

필요없을 텐데.

 

역사 속엔
시답잖은 전쟁들이 잔뜩 있지만,

개중에서 몇 개는

경국지색의 미녀에 의해 일어났다.

 

천상인처럼 아름다운 위인께서
화장 따윌 했다간...

 

나라라도 멸망시킬 생각이십니까?

어째서 그렇게 되나!

 

정말이지, 뭘 상상하고 있는 건지.

 

네 화장분은 어떻게 만들고 있지?

 

아름답게 하는 게 아니라
수수하게 만드는 쪽인가.

 

점토를 말려서 가루로 만든 것을

기름으로 녹여서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금방 만들 수 있느냐?

네, 하룻밤만 있으면.

 

임씨 님께는 조금 너무 짙군요.

 

얼굴을 바꿀 수 있는 약이 있다면
편리하겠다만.

옻이라도 얼굴에 칠하면
충분합니다만,

평생 원래대로 안 돌아갑니다.

 

그렇겠지.

 

평민을 가장하고 싶으신 거라면,

못 할 것도 없습니다만.

 

그럼 그걸 부탁하지.

 

날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의
사람으로 만들어줘.

 

대체 뭘 할 생각인지.

 

다만...

 

할 거면 철저하게.

 

거리 산책

추워.
거리 산책

 

안녕히 주무셨...

 

왜 그러느냐?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아보이는군.

아뇨,

임씨 님께선 오늘도
하루종일 아름다우시겠지요.

새로운 비아냥 수법이냐?

 

임씨 님께선

정말로 딴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어젯밤부터 그리 말했잖느냐.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어머머...

 

뭐냐, 갑자기?

 

이런 고급스렁 향을 풍기는
서민은 없습니다.

 

지금의 임씨 님의 옷은
잘 봐줘야 하급 관리의 평상복,

바다 건너편에서 들여온
최고급 향목과는 연이 없을 겁니다.

용케 아는구나.

약초와 독초를 구분해내기 위해

냄새를 잘 맡게 된 것뿐입니다.

 

기루에서 귀한 손님을
구분하는 법을 아십니까?

모른다.

체형이나 옷 같은 거냐?

그것도 있습니다만, 한 가지 더,

냄새입니다.

악취미스런 향을
몇 가지나 풍기고 있는 손님은

돈은 있지만 성병의 가능성이 높지요.

 

가축 냄새를 풍기고 다니면

목욕도 안 해서 비위생적.

녹청관에 오는 처음 오는 손님들은

거의 다 돌려보냅니다.

 

그런 것은

그쪽 세계를 아는 자에게
묻는 편이 빠르지요.

 

고순 님, 갈아입을 의복의 준비를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가능하면 냄새가 남아있는
세탁 전의 것이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봐.

 

그럼 그 사이에...

 

그것은?

기름과 소금입니다.

 

이걸로 머리의 광택을 없애서

질감을 나쁘게 하겠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슬슬 됐으려나.

 

어머, 아무리 그래도
그런 자투리 천으로 묶을 건...

평민은 정리만 되면
뭐든 상관없습니다.

 

이걸로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좀 더 냄새나도 좋을 정도네요.

 

임씨 님,

옷을 벗어주십시오.

그, 그래.

 

천녀처럼 생기신 분이긴 한데,

균형 잡힌 근육질 몸매로군.

 

저쪽의 수건을 써도 될지?

 

상관없지만, 뭘 할 거니?

 

체형을 바꾸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두 분께서도 도와주시겠습니까?

 

고순 님께선 그쪽을.

네.

 

수련 님께선 이쪽을.

알았어.

 

그 위로 옷을 입으면...!

 

어머, 어머...

 

볼품없는 체형에
임씨 님의 얼굴이 달려있는 건

참으로 기묘하군.

 

다음은 얼굴입니다.

 

색이 짙은 화장분을
몇 가지 개어봤습니다.

 

이걸로 평민 같이
볕에 탄 피부를 만들겠습니다.

 

눈을 감아주십시오.

 

그래.

 

가까이서 만져봐도 쓸데없이 예쁘네.

 

수염은커녕 털구멍 하나 안 보여.

 

여자의 화장을 하면 얼마나...

 

찾았다,

매매 언니가 억지로 떠넘긴 게.

 

이봐, 아직이냐?

입도 다물어주시겠습니까?

힘은 넣지 말고.

 

무슨 일 있느냐?

 

이 세 사람뿐이라 다행이야.

혹시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대참사였을 거야.

이봐, 왜 그러나?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프구나,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아무 일도 아닙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네, 아무 일도 없었답니다.

 

다시 정신 차려서...

 

화장분으로 얼굴에 얼룩을 만들고,

거기다 짙은 색으로 그늘을 만듭니다.

 

점을 덧붙이고,

 

눈썹은

좌우의 크기를 바꿔가며
그려나갑니다.

 

남은 화장분은 몸 여기저기에 발라
얼룩덜룩하게 만들고,

 

손톱 사이에도 채워넣어서

비위생적인 손을 만듭니다.

 

어엿한 남자 손이네.

역시나 섬섬옥수라고는...

 

굳은살이 있네?

평소엔 붓이나 젓가락 정도밖에
안 들 줄 알았는데,

 

검술이나 봉술을 하고 있는 걸까?

 

본래 환관에겐 필요없을 텐데.

 

뭐,

그런 시시한 질문을 할 필요는 없어.

 

더럽게 보이는군.

 

받으시죠.

 

마실 것이냐?

 

뭐냐, 이건!

입술을 적시듯이

천천히 핥아서 삼켜주십시오.

 

입술과 목이 부어서
목소리가 바뀔 테니까요.

뭐가 들어있니?

몇 가지 자극물질입니다.

무척 맵지만,
독은 아니니 안심하시길.

 

전부 마셔주세요.

 

마지막 마무리입니다.

 

솜입니다.

윤곽을 바꾸기 위해
볼쪽에 머금어주세요.

 

완성입니다.

 

어머, 정말로 도련님?

도련님 소린 그만해줘.

 

그래도 반쯤 미남 정도로는 보이니까,

원판이 좋은 건 참 곤란한 일이야.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다 했어!

 

어디, 오랜만의 귀향이네.

 

소묘,

오늘은 본가에 돌아가겠다고 했지요?

네,

내일까지 휴가를 받았는지라.

 

고순 님 치고는 보기 드문 표정이야...

 

그렇다면 임씨 님도
도중까지 같은 길이시지요?

 

딴 사람으로 변장해놨는데,

평소와 같은 종자를 데리고 있으면
이상하게 여기겠지요?

어머, 그것도 그렇네.

 

임씨 님도 그렇게 생각 안 하십니까?

 

그러게.

 

네가 와준다면 고맙겠다만.

안 돼, 임씨 님도 내켜하고 있어!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제가 임씨 님께 붙어있어봤자
딱히 나을 게 없으리라...

확실히 수수한 모습의 주인에겐

수수한 종자가
딱 들어맞을지도 모릅니다만,

저도 방 담당 하녀로서
알려져있으니...

그렇진 않습니다.

그럼 소묘도 변장하면 되지 않겠니?

 

그것 참 좋군요!

 

화장용 솔이나 비녀,

이것저것 갖춰져 있단다.

하지만...

 

평소와 전혀 딴판인
모습이 되면 되겠지?

 

그렇지?

아, 네...

나쁜 예감 밖에 안 들어!

 

임씨 님,
자세가 너무 아름다우십니다.

 

너야말로 그 말투는 그만해라.

그리고 이름을 말해서야
변장하는 의미가 없잖느냐.

그럼 뭐라고 불러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러게.

 

저를 부를 때는
임화(壬華) 정도로 불러주십시오,

아가씨.

네?

차림으로 보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확실히...

 

수련 님의 따님의 것으로

천도 맵시도 완성도도 좋아서

오래돼 보이지도 않아.

차림새만이라면 좋은 집안의
아가씨라고 해도 이상할 건 없겠지.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건지.

 

이것이 지도입니다.

 

소묘는...

 

아가씨 일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임화 님.

 

임화.

네, 아가씨!

 

자세가 너무 좋구나.

넵!

 

임화라,

그렇게까지
막 괴상한 가명은 아니다만,

일부러 빛날 화(華) 자를 넣은 게
참 뭐라 하기 어렵네.

 

임씨란 이름도 그렇지만,

남자 이름으로는 그다지 안 써.

 

역시 여장을 시키는 편이 좋았을까.

 

아니,

세상의 평화를 위해
그것만큼은 피하는 편이 좋겠어.

 

목적지는?

 

홍등가 바로 앞에 있는 음식점입니다.

거기서 지인과 만날 약속을.

 

왜 내가 호위 따윌...

 

그것도 숨어서라니, 뭐 하잔...

 

종자가 주인보다 앞에 나서다니,

아직 멀었군.

 

임화.

 

죄송합니다, 아가씨.

오냐.

 

계절상 아직 야채는 적네.

 

용돈도 받았으니,

닭 한 마리 잡아달라 해서
같이 삶을까.

장 보시는 겁니까?

 

그 차림으로?

 

아버지한테 먹여주고 싶었는데.

 

의사로서도 약사로서도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아버지지만,

뭐가 잘못된 건지

손익에 대한 생각이란 게
결여되어 있다.

 

덕분에 본래 굶어죽을 일 없는
직업이면서도

그런 허름한 집에 살고 있다.

 

하도 굶어죽을 것 같으면

아무리 그래도 포주 할멈이
밥을 집어넣어주는 정도야 하겠지만...

 

뭡니까?

왜 아무 말도 없는 거냐?

 

딱히 할 이야기가 없으니까?

 

뭔가 안 좋은 소리라도 했나?

 

이 냄새는...

 

닭꼬치!

 

잠시 기다려주세요.

 

아저씨, 꼬치구이 두 개!

알았어!

 

받으세요.

식기 전에 드시죠.

 

그래.

 

고소한 닭껍질,

쫙 퍼져나가는 기름기,

궁정에선 못 먹는단 말이지!

 

안 드십니까?

보시다시피 독은 없습니다.

 

아니...

 

쓰시죠.

 

어떠십니까?

 

야영할 때 먹은 것보다 맛있군.

소금 간이 잘 됐어.

 

야영?

환관은 보통 무관 같은 일은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나저나 참 맛있게 먹네.

 

어머, 고순, 어서 돌아와.

 

고리짝은 손대지 말고.

감물을 바른 참이니까.

 

도련님의 장난감이란다.

참 그립지?

네.

 

그래서, 어떻던가요?

 

대단히 기분 좋아보이셨습니다.

 

당신 치고는
참 눈치 있는 제안을 했는걸.

 

한 번 마음에 든 장난감이 있으면
도련님은 그것만으로 노셨지.

 

몰래 숨기면
손도 못 댈 정도로 울어버리시고,

 

당신이 새로운 장난감을 가져와서는

어떻게든 하려고 고생했었지.

 

한 가지 물건에 집착한다,

임씨 님은 그것이 허락되는 입장에
계시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지 않느냐?

어느 분인가와
만날 약속이시잖습니까?

얼른 가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나와 얼른 헤어지고 싶은 듯한
말투로군.

 

그런가요...

 

확실히,

헤어지면 다시 거기로 돌아가서
무랑 닭을 사려고는 생각한다만.

 

딱히..

 

궁정 생활도 나쁘진 않잖느냐.

 

홍등가의 생활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만.

 

확실히 나쁘지 않지요.

 

자기 의사로 출사한 거고,

주어진 방도 참 깨끗합니다.

 

다만,

혼자 남겨진 양아버지가
제대로 생활하고 계신지 걱정인지라.

 

왜 그러시죠?

아니,

네가 약이나 독 이외의 일에
신경을 쓸 줄이야.

 

양아버지는 약학의 스승이시니까,

아직도 더 오래 살아주지 않으면
곤란하단 말입니다.

 

어지간히 유능한 약사인 모양이군!

네 양아버지는.

 

한방 뿐만이 아니라
서방의 의술까지 소양이 있으니까요.

젊으실 적엔
서방에 유학가신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건 상당히 우수했던 것 아니냐?

유학은 나라에 선발되지 않으면
안 될 텐데?

네, 굉장한 사람입니다.

 

하늘은 한 명에게
두 재주를 주진 않는다고 합니다만,

부여받은 인간도 있지요.

 

그것 참 대단한 위인이군.

그런 위인이
어째서 홍등가에서 약사를?

운만큼은 없는 사람이어서겠지요.

 

아무리 두 재주를 가졌다다 해도

물건 하나를 빼앗기고 마셨으니까요.

 

그 말은...

네 양아버지가 환관이었단 거냐?

 

그렇습니다만.

 

홍등가식 농담이 잘 안 먹혔나?

 

아버지는 서방으로의 유학을 이유로

선제의 어머니, 즉, 전 황태후가

환관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환관, 약사, 의관...

말 안 했던가?

 

저건가?

위는 여관이고 아래는 식당인가.

잠깐 들렀다 가!

아니, 이봐, 이봐...

 

아아, 그렇군.

 

일부러 변장까지 한 이유를 알겠네.

 

그럼 홍등가까지 와주면 될 것을.

 

무슨 뜻이지?

아닙니다.

 

약사, 너,
녹청관의 단골들은 잘 아나?

 

뭐, 요란하게 행동하고 다니는
손님이라면.

어떤 녀석이 있지?

비밀입니다.

묵비 의무가 있는지라.

 

그럼...

 

기녀의 가치를 떨어트리려면
어떡하면 되나?

 

불쾌한 걸 물으시는군요.

 

얼마든지 있지요,

특히 상위의 기녀라면.

 

녹청관에선

견습 시걸에
대강 모든 교육을 끝냅니다.

그중에서 용모가 좋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뉘어,

후자는 첫 선을 보이고 나면
바로 손님을 받고

몸을 팔게 됩니다.

 

한편,

유망해보이는 자들은
차 마시는 일부터 시작해서

교양으로 손님을 받습니다.

 

가격은 점점 올라가고,

올라갈수록 노출을 줄이면,

차 마시는 것만으로
1년치 은을 털어야하는

잘 팔리는 기녀가 완성됩니다.

 

기적에서 빠질 때까지

손님에게 한 번도
손이 대어진 적이 없었던 경우도 있습니다.

 

손대지 않은 꽃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는 겁니다.

 

꺾어버리면
그것만으로도 가치는 반감됩니다.

거기다...

 

애를 배게 하면

가치 따윈 없는 거나
다름없어집니다.

 

써내려진 문자에서 떠오르는 표정

편지지에 스며들어가는 동그란 눈물

나날 속에서 뒷전으로 미뤄뒀던
쓸쓸함이 서서히 드러나

당신 앞에서는 언제나 아이 같아서

 

봐봐

사랑은 약
울고 또 흐느껴 울던 그 뺨에

새겨지는 미소 주름
비는 그치고

사랑은 약
젖어서 홀쭉해진 꿈에

쏟아지는 응원소리 전해지는 온기

언젠가 혼잣말로가 아니라
고마워를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전해지지 않게 되기 전에
그 눈을 보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다음 시간,

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