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가 쓰러졌다
이미 늦은 거 같다
엄마, 와이퍼
고마워
문득 생각났다
2년 전 이맘때
학교에 못 가게 된 내가
할머니랑 둘이 보낸
한 달 남짓한 시간이
서쪽의 마녀가 죽었다
korsubtitle
나 이제 학교 안 가
학교는 나한테
고통을 주는 곳일 뿐이야
알았어
그럼 일단 당분간 쉬자
중학교 입학한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잖아
그렇게 빨리
결론 내릴 거 없어
엄마 나가야 해
오늘은 6시까지
올게
그래
너무 세게 혼내도
오히려 역효과 나잖아
이유?
글쎄, 뭐랄까
애가 감수성이 너무 예민해
어쨌든 뭔가
상처받은 게 분명한데
옛날부터
다루기 힘든 애였어
살아가기 힘든 타입이지
일단 시골 엄마네서
푹 쉬게 하려고
등교 거부란 말은 들어봤지만
설마 우리 애가
그렇게 될 줄이야
그래, 당신은 어때?
다루기 힘든 애...
엄마는 혼혈인 탓인지
학교라는 곳에
끝내 녹아들지 못했다
그래도 대학까지 졸업했다
그에 비해 난 중학교에서...
할머니는 그런 나에게
분명 실망하겠지
건강해 보이네
마이
할머니, 오랜만이야
왔구나
하나도 안 변했네
이쪽으로 들어가도 돼?
역시 이 계절은
초록빛이 예쁘네
그렇지
맞다
오는 길이 넓어져서 놀랐어
그런가
몰랐어?
고마워
바람 좋다
애 아빠가 안부 전해달래
새로운 공장이
곧 가동돼서 못 온다고
어, 허브가 또 늘어났네
몇 종류나 있어?
글쎄
저거 잉글리시 라벤더지?
그래서 마이 말인데
그리 심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마이가 어려서부터
여러모로 섬세했잖아
그래서 그런 거 같아
여기서 기분전환을 하면
금방 회복할 거야
힘들겠지만
다루기 힘든 애...
마이랑 같이
지내게 된 건 기뻐
난 마이 같은 아이가
태어나줘서 정말 감사해
난 옛날부터
할머니가 너무 좋았다
툭하면
"할머니 너무 좋아" 라고 했다
그럴 때 할머니는
항상 미소 지으며
이렇게 화답했다
아이 노우
(I know)
마이
왜?
샌드위치 만들자
뒷밭에서
양상추랑 금련화 좀 따 와
응
이거면 돼?
- 그래
- 그래
그거 씻어서
소쿠리에 담아줘
양상추는 몇 장?
글쎄, 서너 장쯤?
고마워
마이, 선반에서
접시 좀 꺼내줄래?
이거면 돼?
그래, 그게 주로
식사 때 쓰는 접시야
마이, 차에서 컵 가져와
컵은 있어
마이는
자기 컵 가지고 왔어
그렇구나
간 김에 짐도 가져오고
혼자?
차에 카트 있으니까
안녕하세요
넌 어느 집 애야!
여기가 할머니 집이에요
놀러 왔냐?
당분간 여기서 지내요
병 때문에요
팔자 좋네
뭐야
이상한 남자가
차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어
아마 겐지 씨일 거야
겐지 씨?
어머, 그 사람 돌아왔어?
그 사람이 누군데
어디 사는데?
마이, 앉는 게 어떨까
좋은 컵이네
겐지 씨는
오솔길 입구 쪽 집에 살아
가끔 정원 일을 부탁하지
개가 막 짖던 곳?
그래
역시 이혼한 거야?
글쎄, 지금은
혼자 사는 거 같긴 해
그 사람 자주 와?
자주는 안 와
그것보다
마이는 어느 방을 쓸래?
할아버지 방이나
엄마 방이나
난 엄마 방을 쓸래
아직 그대로야?
그대로지
그럼 좀 갔다 와볼게
청소를 해야겠다
지금 당장?
빨리 해야 마이한테 좋지
엄마는
마이한테 보여주기 싫은 걸
치우러 간 거야
마이도 남한테
보여주기 싫은 게 있지?
사람은
어른이 되려고 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