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제목 with Caption Creator 4

벚꽃잎의 꽃보라는

뺨을 적시는 비.

하늘하늘 흩날리는 빗속에서

난 홀로 울고 있었다.

 

봄의 따스한 햇볕도,

여름 잎새 사이의 햇살도,

가을 구름 사이에서 내리쬐는 빛이나,

가루눈에 반사되는 아침해도,

날 비춰주진 않았다.

행복 따윈 알지 못했다.

 

한 가닥의 희망도

항상 눈앞에서 사라져버렸으니까.

 

계속 그리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 세상에 난 필요 없는 존재라고.

 

그날,

그분과

만나기 전까진.

 

1

 

뭐야, 이게!

 

이딴 차, 떫어서 못 마시겠어.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새로 내어와.

미요,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셈이니?

얼른 물러나렴.

 

알겠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정말, 차도 만족스럽게 못 끓이다니,

같은 사이모리의 딸로서
부끄럽지 않은 걸까?

카야와는 다르게
정말 요령이 나쁜 애구나.

자기 어미를 쏙 닮았어.

카나코,

날 탓할 셈인가?

그야 신이치 씨가 낳게 한 아이잖아요.

그만 좀 하시게,

이미 오래전 이야기잖나.

 

좋은 아침이옵니다, 타츠이시 님.

오늘은 무슨 일이시옵니까?

신이치와 지금부터
잠시 논의할 게 있네.

이것은 사용인들끼리 먹도록.

어머, 늘 감사드립니다.

뭘 그러나.

그럼 실례하지.

 

조금 전에
타츠이시 님께서 찾아오셨는데,

혹시 혼담이라도 가져오신 걸까?

 

미요 님도 카야 님도

슬슬 나이가 차셨으니까.

미요 님만 해도 벌써 열아홉이셔.

다만 다른 분도 아닌
저 신이치 님이시니,

미요 님이 아니라

분명 카야 님이시겠지.

너희들 뭘 떠들어대는 게야!

세탁 하나 제대로 못하는 녀석은
밥도 못 먹을 줄 알아!

-죄, 죄송합니다.
-죄, 죄송합니다.

 

잠깐, 아무나 거실로 와줘요!

 

얼른, 사모님께서 부르시잖니!

-바로 가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혼... 담?

 

오늘도 정원 청소야?

열심이네.

 

코우지 씨.

아버지께서 네 아버님과
당주 간의 회담이 있으신 모양이라,

오늘은 그 수행원으로 왔어.

참으로 수고 많으시네요.

뭐, 이건 그냥 구실이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미요랑 얘기하고 싶었던 것뿐.

 

미요,

손 내밀어봐 봐.

 

밀, 크...?

밀크 캐러멜이야.

달고 맛있는 과자.

 

처음 먹었을 때는
턱이 빠져라 먹어댔을 정도야.

 

기뻐해 주는 것 같아 다행이야.

유행을 좋아하는 형이 사다 줬어.

무척 맛있어요.

요청만 하면 언제든 가져다줄게.

이걸로 미요가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싼값이지.

항상 감사합니다.

 

이런 시간이

계속되면 좋을 텐데.

 

미요를 구해주고 싶어.

 

코우지 씨는
언제나 큰 힘이 되어주세요.

 

이런 나지만,

언제든지 미요의 도움이 되고 싶어.

 

널 위해,

네가 계속 웃을 수 있도록.

 

주제넘게도.

 

저기, 아버님,

여학교에 입고 갈
새 기모노를 갖고 싶은데,

안 될까요?

 

슬슬 여학교도 새 학기인가.

이 기회에 두세 벌 사가는 게 어떻겠니?

 

정말요?

아버님, 고마워요!

어머, 신이치 씨도 참,

정말 카요에겐 무르다니까.

이제 이 기모노 낡아버렸거든.

 

미요.

 

네.

평소에 낮에는 뭘 하고 있느냐?

 

집 주변 청소를...

그러냐.

모레 낮에 말이다만,

반드시 집에 있거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사용인이나 다름없는 내게
집에 있으라니.

걱정 안 하셔도

내가 이 집의 부지 밖으로 나갈 일이

있을 리가 없는데.

 

어머님?

 

저기, 어머님 못 봤어?

사모님이시라면 별채에 계실 겁니다.

지금 외출하시나요?

응, 기모노를 새로 장만할 거야.

새 학기를 위해서 말이지.

 

그것보다...

 

언니,

세수 좀 하시는 게 어때?

 

얼굴이 엉망인데?

 

미요 님, 얼굴에 검댕이.

 

그런 얼굴로 실수로라도
손님 맞이하러 나가진 마.

안 그래도 사이모리 가의 수치니까.

 

죄송... 합니다...

 

미요...

 

코우지 씨.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은 양장 차림이라니
드문 일이네요.

무척 잘 어울리세요.

 

저기, 오늘 어떤 볼일로?

 

응,

좀 중요한 볼일이야,

네 아버지께.

아버지께?

 

이거...

 

선물로 가져온 과자.

괜찮으면 다 함께 먹어.

감사합니다.

 

그, 그럼 나중에 다시.

 

코우지 씨...?

 

어째서, 이런 일이...

 

미요 님,

 

나리께서 미요 님을 부르십니다.

 

즉시 객실로 오라십니다.

 

알았어요.

 

모레 낮에 말이다만,

반드시 집에 있거라.

알겠느냐?

 

혹시 어쩌면 하고 생각하면 안 돼.

분명 나쁜 이야기일 게 분명해.

 

코우지 씨와의 혼담...

기대해선 안 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부르셨습니까,

미요입니다.

들어와라.

 

실례하겠습니다.

 

뭘 멍하니 계시죠?

 

얼른 들어오시겠어요?

 

할 얘기라는 건 다름이 아니다.

타츠이시 가와의 혼담과

이 집안의 향후에 대한 것이다.

이 사이모리 가는

코우지 군을 데릴사위로 들여
이어가기로 했다.

그의 아내로서
이 집을 지탱해나가는 건...

카야다.

 

각오하고 있었어,

사용인이나 다름없는 내가

결혼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이 집에서 존재를 용납 받고
평온하게 살 수 있는 나날이

그렇게 간단히
내게 찾아올 리가 없다고.

 

미요, 너는 시집을 보내마.

 

시집갈 곳은 쿠도 가.

쿠도 키요카 님 댁이다.

 

쿠, 쿠도?

잘 됐네요!

그 유명한 쿠도 키요카 님께
시집 가게 되다니!

 

아무런 장점도 없는 네겐

너무 아까울 정도의 이야기구나.

 

언니는 쿠도 가에서 대체
며칠 버티실까요?

기대되는걸요.

 

즉시 짐을 정리해서

내일 아침 쿠도 님 저택에 가라.

저기, 아버...

할 얘기는 끝났다.

알았으면 얼른 준비해라.

아무쪼록 무례가 되지 않게 하거라.

 

실례, 하겠습니다...

 

그럼 코우지 군,

바로 납폐 택일부터...

 

한동안 그칠 것 같지 않네.

기껏 빨래 널어놨는데.

 

미요...

 

잠시만요!

어째서 제가!

 

몇 번이고 말하게 만들지 마라.

넌 사이모리 카야의
신랑이 되라고 했다.

그런 걸 갑자기 말씀하셔도...!

넌 미요를 구하고 싶은 게지?

걱정하지 마라.

미요는 카즈시의 신부로 삼도록
사이모리에게 부탁해뒀다.

그러면 그 아이는
그 집을 나갈 수 있다.

그거야말로 그 아이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길이라 생각하지 않느냐?

미요의 마음은...

하필이면 저와 카야라니요!

이건 이미 정해진 일이다.

넌 이 집안의 번영을 위해

잠자코 따라라.

알겠느냐?

 

어머님의 벚나무,

답답할 때 여기에 오면

항상 마음이 누그러졌었는데,

이젠 여기에도 못 오게 되는구나.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잘 있어요, 어머님...

 

미요...

 

코우지... 씨.

 

미안...

 

난 정말로 한심하구나.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코우지 씨가 사과할 일이 아니에요.

그저 운이 나빴던 것뿐이니까요.

아니야,

운 따위가...!

괜찮아요.

시집가서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전 신경 쓰지 않아요.

넌... 날 원망하지 않는 거야?

원망하다니요,

그런 기분은 진작에 잊었어요.

 

난 널 구하고 싶었어.

다시 옛날처럼
평범하게 너와 함께 웃고 싶었어!

난 너를...!

코우지 씨?

 

카야?

무슨 얘길 하고 계세요?

 

아, 아무것도 아냐...

어머, 그러세요?

 

코우지 씨,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미요 님,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신이치 님으로부터의 전언인데,

내일 출발하실 때는

이 기모노를 입으시라고.

 

아버님께서?

잘 들으십시오, 미요 님.

 

쿠도 키요카 님께선

냉혹하고 무자비하단
소문이 있으신 분입니다.

지금까지의 약혼자들은
전부 도망친 모양이라.

부디 조심하시길.

 

마음 써줘서 고마워요.

 

짐이

고작 그것뿐이라니.

 

어머니의 유품도 거의 다 버리라고 해서,

이 정도밖에 없어요.

 

필시 괴로우셨을 텐데.

 

이거,

괜찮으시면 도중에 드십시오.

 

고마워요.

미요 님,

그럼 부디 건강하시길.

 

이런 화려한 기모노,

내게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아.

 

기어이 돌아갈 집도 추억조차도
잃어버리고 말았구나.

 

이런 데에 정말로
쿠도 가의 당주가 살고 있는 걸까?

 

여긴가?

 

생각한 것보다도 검소한 집.

 

실례합니다.

 

네, 네.

 

누구신지요?

 

처음 뵙겠습니다,
사이모리 미요라 합니다.

이번에 쿠도 키요카 님과의 혼담을 받고
찾아뵈었습니다.

어머, 사이모리 님,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저는 쿠도 가 사용인인
유리에라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말씀은 들었답니다.

자, 어서 들어오셔요.

시, 실례하겠습니다.

 

도련님께선 지금 서재에 계시니까요.

얼른 그쪽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처음 뵙겠사옵니다.

사이모리 미요라 하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셈이지?

 

죄송합니다.

사과하란 말은 한 적 없다.

 

자, 부디 고개를 들어주셔요.

아, 네...

 

이날,

이 분과 만남으로써

마치 눈 속에서 움튼 꽃처럼

나의 닫혀있었던 인생은

다시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쿠도 가 당주,

쿠도 키요카다.

 

아름다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