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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배급 (주)티캐스트

 

“세 번째 살인”

 

잠깐 줘봐

 

어?

 

받아

 

두 번째 강도살인이라
재판이 쉽지 않겠어요

 

다 자백했다며?

 

맞아
체포되자마자 바로

 

그럼 사형이 구형될 게
뻔하잖아

 

그래서 자넬 부른 거야

 

그럴 거면
기소 전에 불렀어야지

 

처음엔 나 혼자
어떻게든 해보려 했는데

 

만날 때마다
계속 말이 바뀌잖아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오늘은 세 분이나

 

비가 안 와서 다행이네요

 

기억나?

 

내가 지난번에 말한
시게모리 씨야

 

30년 전 사건을 판결한
재판장의...

 

아드님?

 

시게모리입니다

 

미스미예요

 

아버님께
큰 신세를 졌습니다

 

전에도 물었지만

 

살해한 사실 자체는
틀림없지?

 

틀림없어요

 

당신이 죽인 거지?

 

네, 제가 죽였어요

 

어째서 죽인 거죠?

 

자신을 돌봐준
공장의 사장을...

 

동기 말이야

 

도박 자금이 필요했어요

 

무슨 문제라도?
빚이 있던 거야?

 

 

빌린 돈이 있는데
그걸 갚지 못해서

 

- 회사를 그만둔 게?
- 9월 30일이에요

 

- 잘렸어?
- 네

 

해고 이유는?

 

금고의 돈을 훔쳤어요

 

사건 당일
술을 마셨습니까?

 

네, 소주 세 잔 정도

 

죽일 생각을 한 건
술 마시기 전?

 

아니면 술 마시고
홧김에?

 

술 마시고 홧김에

 

어라?

 

지난번에는

 

예전부터 죽이려 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던가요?

 

뒤에서 스패너로
내리쳤지?

 

 

죽은 건 확인했습니까?

 

네, 숨을 안 쉬었어요

 

손은 왜 그래요?
화상입니까?

 

 

불을 지르다가

 

휘발유는 어디서 났어?

 

공장에 돌아가서
가져왔어요

 

굳이 공장까지?

 

달려가면 10분도
안 걸려요

 

그럼 처음부터 휘발유를
준비한 건 아니군요?

 

 

기록해둬

 

지난번에 부탁했던
편지 썼어?

 

유족한테 보내는...

 

 

이따 받아갈 테니
끝나고 전해줘

 

 

검찰은
사형을 구형하겠죠?

 

그렇겠지

 

강도살인 혐의를
벗기는 어려우니까

 

그걸 어떻게든 바꿔야지

 

사실관계를 다퉈야 해
혐의를 인정하면 끝이야

 

- 어이, 셋츠
- 응?

 

미스미 본인은
감형을 바라는 게 맞지?

 

맞아, 그건 왜?

 

왠지 그렇게 안 보여서

 

내 입장에선

 

무기징역까지만 낮춰도
감지덕지야

 

가족은 있어?

 

딸이 하나 있나 봐요

 

몇 살인데?

 

딸요?
서른여섯이에요

 

만나볼까요?
홋카이도 루모이인데

 

너무 멀어
게다가 춥단 말이야

 

오랫동안 인연을 끊고
살지 않았을까?

 

맞아
감옥에 30년 있었잖아

 

유리한 증언을
해줄 것 같지도 않고

 

거긴 게가
제철일걸요?

 

잘 마실게

 

루모이는 게가 아니라
문어가 유명해

 

에이, 문어였어?

 

문어를 깔보지 마

 

- 과연 홋카이도 출신?
- 그럼

 

당분간 숯불구이는
못 먹겠네요

 

먼저 비행기로 이동해서
전철을 타고...

 

이거 출장비 나오지?

 

사건과 무관한 증인이지?
그럼 안 나와

 

그럼 관두지 뭐

 

그게 좋겠지?

 

어차피 춥고
어차피 문어니까

 

피고인을 이해하려면
그래도 한번 가보는 게

 

- 이해?
- 예

 

이해와 공감 같은 건
변호에 불필요해

 

그런가요?

 

당연하지
친구 될 것도 아니잖아

 

사건 관계자일까요?

 

글쎄, 그럴지도...

 

아직 휘발유 냄새가
나는 것 같네요

 

그러게

 

이건...

 

우연의 일치인가?

 

조후 전철역 가주세요

 

차에 탔을 때부터
좀 수상했어요

 

손에 화상을 입은 듯
보였고

 

스톱

 

- 잠깐 앞으로 가주세요
- 예

 

예, 거기요

 

창문을 왜 열었을까요?

 

- 창문요?
- 예

 

무슨 냄새라도?

 

그러고 보니

 

휘발유 냄새가
난 것 같아요

 

휘발유?

 

방금 주머니에서 꺼낸
지갑에서 난 거 아닐까요

 

예...

 

아마도

 

그렇죠?

 

안녕하세요

 

- 예?
- 이거야

 

 

자백 다 했는데
왜 고생을 사서 하죠?

 

그러게요

 

꺼내면 안 됩니다

 

아, 네

 

이건 휘발유가 묻은
얼룩이죠?

 

- 감식 결과 나왔나요?
- 예

 

휘발유가 맞아요

 

그렇다면

 

휘발유를 뿌린 후에
훔치려 한 게 아닐까요?

 

그 말인즉슨

 

강도살인이 아니라
살인 및 절도야

 

그게 혐의를 뒤집을
증거가 될까요?

 

의심해볼 만한 가치는
있잖아요?

 

자백만 안 했으면
더 세게 밀어붙이는 건데

 

초반부터 관여 못 한 게
아쉽네요

 

일단은 편지 들고
공장에 가서

 

유족의 감정이나
케어해볼까?

 

들고 갈 선물 준비할게요

 

그리고 말이야
살인 동기 관련해

 

원한은 없었는지
주변 조사를 해봐

 

예, 알겠어요

 

그나저나 셋츠 녀석
우리한테 싹 떠넘겼네

 

나갑니다

 

누구세요?

 

아...

 

시게모리 변호사입니다

 

미스미의 변호인이죠

 

그가 유족께 드리는
편지를 가져왔습니다

 

엄마 모셔올게요

 

감사합니다

 

실례할게요

 

시게모리 변호사입니다

 

이번 일로 인해
상심을 드려 죄송합니다

 

이런 편지 한 장으로
용서하라고요?

 

저희는

 

가장이 살해당하고

 

불태워졌다고요

 

장례식에서도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못했죠

 

엄마...

 

그도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미스미 씨가 사장에게
원한을 품지 않았나요?

 

일하게 해줬으니
오히려 고마워했겠지

 

 

다투거나 그런 건
본 적 없으세요?

 

급여 문제로 불평하는 건
종종 있었어

 

사쿠라이 씨
또 사고 쳤어요?

 

아냐, 멍청아
형사가 아니라 변호사야

 

미스미 씨가
전과자인 건?

 

알고 있었어

 

여긴 널렸거든

 

뭐, 나도 그렇지만

 

예...

 

무슨 죄인지 궁금해?

 

아니요

 

좋은 사장님이셨네요

 

값싸게 부릴 수 있잖아

 

약점 있으니
대들 사람도 없고

 

아, 그런 이유가...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어떠셨어요?

 

이런
장난 아니네요

 

꼭 이럴 것까지야...

 

요즘 피해자는 뭘 해도
용서받는다고 여기니까

 

왜 그를 감싸냐 묻길래

 

그게 우리 일이라고 했지

 

그럼, 향후 전략은 뭐야?

 

우선 강도죄 성립은
부정하고

 

강도살인을 단순 살인 및
절도로 낮춘다

 

훔치려고 죽인 게 아니라

 

죽여서 불붙인 후에
훔치려 했다고

 

좋아, 휘발유 같은 경우도

 

죽인 후에 공장 가서
가져온 거니까

 

- 굳이 태우겠다고?
- 굳이 태우겠다고

 

그냥 빨리 도망치지...

 

그럼, 살인 동기는?

 

원한 관계로 가려고

 

급여 문제로 다퉜나 봐요

 

사실이야 어찌 됐든
그게 우리 변호 전략이야

 

해고된 데 앙심을 품었다

 

원한 관계라고?
그건 좀 약한데

 

원한이 금전 목적보다
죄가 가벼워요?

 

금전 목적이
더 무거워

 

그게 더 괘씸하다고
보는 거야

 

- 죽인 건 마찬가진데?
- 좋은 질문이야

 

원한은 살해를 유발할
동기가 된다고 보는 거야

 

그런 걸로 죄를
저울질하다니

 

법률은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여보세요?

 

예, 제가 아빠입니다

 

네?

 

왔어?

 

- 전화 받고 왔습니다
- 아, 부친 되세요?

 

‘왔어’가 뭐냐?

 

원래 물건을 훔치면
바로 경찰에 신고하는데

 

제 딸이 피해를 드려
정말로 죄송합니다

 

변호사님 되세요?

 

마침 큰 살인 사건을
맡고 있어서

 

집에 신경을
못 쓰다 보니

 

필시 이런 일이...

 

유카, 미안하구나

 

널 혼자 내버려 둬서

 

왜 엄마한테
연락 안 했어?

 

이럴 땐
변호사가 더 먹히거든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 뭐더라
니모 어떻게 했어?

 

언제적 얘기야?

 

어항 보내줄까?

 

거치적거려?

 

그런 건 아냐

 

죽었어

 

죽었다고?
전부 다?

 

 

왜 그리 실망해?
그냥 물고기잖아

 

설마 변기에 버린 건
아니지?

 

키우던 생물이 죽으면
무덤을 만들어

 

- 제대로 묻어줘야 해
- 뭐야?

 

갑자기 아빠처럼
왜 그래?

 

‘처럼’이라니?
네 아빠 맞거든

 

아직은 그렇지

 

그런데, 유카

 

조금 전에
왜 울었어?

 

내가 연기 좀 하거든

 

이거 봐

 

대단하지?
대부분 속아 넘어가

 

전화 받아도 돼

 

아니야

 

받으래도

 

혹시 애인이야?

 

아냐, 바보야

 

셋츠야

 

여보세요

 

지금?
응, 갈 수 있어

 

아니, 못 봤어

 

미스미도 이거 봤어?

 

응, 일단 영치는 시켰어

 

정말 못해 먹겠네
이런 걸 멋대로 떠들다니

 

제가 또 늦었죠

 

오늘은 춥네요

 

오늘 찾아온 이유는

 

이 주간지 때문이야

 

아...

 

이 ‘단독 인터뷰’가
사실이야?

 

부인에게 부탁받아
보험금을 노리고 죽였다

 

예, 맞아요

 

정말 그런 소릴 한 거야?

 

예, 아마도

 

‘아마도’라니
그게 무슨...

 

미스미 씨
당신 통장을 보니까

 

10월 초에
50만 엔이 입금됐던데요

 

월급과 별도로요
이게 부인이 보낸?

 

네, 부인이 보낸 거예요

 

그렇다면 이게

 

받기로 한 돈의
착수금인가요?

 

 

어째서 저희한테
미리 말 안 하셨죠?

 

왜냐고 물으셔도 잘...

 

그거 아냐?

 

기자가 먼저 이런 얘기를
꺼낸 거 맞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또 시작했네

 

살인 청탁은
어떻게 받은 거죠?

 

휴대폰 문자로요

 

- 문자?
- 예

 

언제쯤?

 

살해 2주일 전쯤에

 

폰에 남아있을까요?

 

예, 아마도

 

이거 공모공동정범으로
끌고 갈 수 있겠는데?

 

- 그래?
- 응

 

범행 후에 부인과
연락했습니까?

 

예, 공중전화로
한 번 했어요

 

뭐라고 하던가요?

 

자기 얘기는 하지 말래요
피해는 안 주겠다며

 

그렇다면 혹시
그 부인과

 

내연관계라던가
그런 건 아니었나?

 

한 주간지에 따르면

 

살인 사건에 충격적인
사실이 숨어있었습니다

 

‘부탁한 일
50만 엔에 가능할까요?’

 

‘언제까지?’

 

‘빚도 갚아야 하니
10월 말까지’

 

‘알겠습니다
맡겨주세요’

 

어때?
거짓말 같아?

 

아니

 

돈을 건넨 걸 입증하면
공모공동정범이잖아?

 

오히려 부인을
주범으로 몰 수도 있어

 

하지만, 미스미 말대로
내연관계라고 하면

 

공모 확률이 높아

 

그가 인정했던가요?

 

쑥스러워했잖아
얼굴만 봐도 알아

 

확실히 대답을 한 건
아니라서...

 

내연관계가 틀림없어요

 

그 여자 얼굴을 보는 순간
딱 느낌이 왔어요

 

부인에게 살인 청탁을
받았다곤 말 안 했어요

 

- 그거 좀 줘봐
- 예

 

이 문자 갖곤
검찰에 씨도 안 먹힐까?

 

단독범으로 기소했고
자존심도 있을 테니

 

전직 검사인
내 생각은 그래

 

하지만, 여길 봐

 

‘얘기 안 하면 피해주진
않겠다고 부인이 말했다’

 

여기야

 

하지만 이건

 

살인이 아니라
내연관계 얘기 같아요

 

진실은 무엇일까?
원한과 보험금 중에...

 

그야 당연히 의뢰인에게
유리한 걸 선택해야지

 

물론 재판 전략으론
그게 맞지만

 

그거 말고
우리가 고민할 게 있어?

 

없나요?

 

없어, 뭐가 진실인지는
어차피 알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더 도움이 되는
쪽을 선택한다

 

그럼 어쩔 거야?

 

본격적으로 덤벼볼까?

 

국민참여재판이니
노려볼 만해

 

내가 배심원이면
사형을 망설일 것 같아

 

변호인 측이 문자 기록을
증거로 요청했어요

 

거부합니다

 

예?
어째서 거부하시죠?

 

그 내용을 믿지 못하겠단
의미입니까?

 

아니요
관련성이 없습니다

 

뭐라고요?

 

그렇다면
일단 객관증거니까

 

동의한 후에
관련성 없음으로 가죠?

 

그건...

 

그렇게 할게요

 

그럼, 채택하고

 

살해 사실에 대한
쟁점은 없죠?

 

네, 살해 사실은
인정합니다

 

강도죄 성립 여부가
쟁점이 되겠네요

 

네, 강도살인죄 성립에
이의제기할 겁니다

 

그리고 검찰 측은
증인으로

 

부인 미즈에 씨와
딸 사키에 씨를 요청

 

 

변호인 측 의견은?

 

네, 좋을 대로 하시죠

 

변호인 측의
증인 신청은?

 

 

저희도 부인 미즈에 씨를
쌍방증인으로 신청합니다

 

강도 혐의를 벗기 위해?

 

 

피고인의 딸 메구미 씨를
정상참작 증인으로?

 

네, 그럴 계획입니다

 

검찰 측 의견은?

 

좋을 대로 하시죠

 

그럼 그렇게 정리하고
다음 일정은...

 

그깟 문자가 살인 청탁
증거가 될까요?

 

강도 혐의를 벗기엔
충분하지 않을까요?

 

겁이 나서 남이 시켰다고
말한 거 아닙니까?

 

검찰도 무턱대고 혐의를
단정한 거 아닙니까?

 

‘감형’ 생각밖에 없죠?

 

저흰 변호사니까요

 

당신 같은 변호사가

 

범인이 죄와 마주하는 걸
방해하는 겁니다

 

뭐요?

 

죄와 마주하다니
무슨 소리죠?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실?

 

자, 이 정도만 하시죠

 

서로 목적이 다르니
입장도 다를 수밖에요

 

안녕하세요

 

- 오래 기다리셨죠?
- 감사합니다

 

저 집은
건폐율 위반이에요

 

건물 간격이 거의 없네요

 

이 집은 24살 연하와
재혼했어요

 

와, 그거 부럽네요

 

죽겠어요
밤에 얼마나 시끄러운지

 

- 이거 신어요
- 감사합니다

 

미스미 씨는
어떤 분이셨죠?

 

좋은 사람이에요
쓰레기 분리수거도 잘 하고

 

스웨터가 필요하대서
보냈는데

 

잘 받았나 몰라요
녹색으로 된 거

 

입고 있더군요

 

그 안은 더 춥다죠?

 

여기도 마찬가지겠지만

 

문 닫으면 겨울에도
곰팡내 나네요

 

혹시

 

이 사람이
여기 온 적 있나요?

 

아, TV에서 봤는데

 

여기 온 적은 없어요

 

변장했을 수도 있어요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가끔 여자애가
오긴 했어요

 

- 여자애요?
- 네

 

몇 살가량의?

 

여고 교복을 입었어요
다리를 다쳤는지

 

이렇게 절뚝거렸죠

 

어때 보였어요?

 

아주 잘 웃었어요
목소리도 밝고

 

그 사람 딸 아녜요?

 

글쎄요

 

이런, 거미가 있네

 

낮 거미는 손님이니
놔두지 뭐

 

그러고 보니
기르던 새가 죽었다고

 

창밖에 묻어도 되는지
묻더라고요

 

영치품 고맙습니다

 

땅콩버터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요

 

당신 방에 있길래

 

아주 좋아해요

 

일주일에 두 번
빵이 배식돼요

 

새를 기르셨어요?

 

 

카나리아를 길렀죠

 

근데, 병에 걸려서
죽었어요

 

무덤...

 

- 무덤?
- 예

 

창밖에 있던

 

 

새장이 크길래
혹시나 해서

 

파봤거든요

 

다섯 마리가 동시에
병 걸리진 않잖아요?

 

왜냐면

 

새삼스레 밖으로
날려 보낸들

 

어차피 살지를 못해요

 

딱 한 마리가

 

도망쳐 날아갔어요

 

당분간 추위가
이어지겠죠?

 

잘 살고 있을까?
먹이는 찾으려나...

 

집 월세에 관해서
묻고 싶은데요

 

3만 8천 엔이에요
작긴 해도 욕실이 있어서

 

주인에게 들었는데

 

다음 달 월세를

 

평소보다 열흘 빨리
내셨다고요?

 

당신

 

처음부터 체포될 계획을
갖고?

 

시게모리 씨는
이해 못 하는군요

 

예?

 

월세를 낸다는 건
즐거움입니다

 

- 즐거움요?
- 예

 

교도소에선
월세가 필요 없잖아요

 

다른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시게모리 씨
손 좀 보여주세요

 

- 손?
- 예

 

이렇게요

 

손이 참 크네요

 

아, 떼지 마세요

 

이러고 있으면
체온이 전해져요

 

저는

 

대화하는 것보단

 

이 방법이 상대방을
이해하기 쉬워요

 

한번 맞춰볼까요?

 

지금 무슨 생각이신지

 

해보세요

 

지금 몇 살이죠?
따님께서...

 

열네 살입니다

 

그렇군요

 

다음은 미스미의 딸에
대한 증인신문입니다

 

찾았을 경우의 얘기지

 

다음은
피고인 신문입니다

 

이게 가장 문제라니까

 

끝까지 부인을 주범으로
몰고 가야 해

 

맞아, 그래야겠지

 

자네답지 않게
대답이 모호한걸

 

집이 생각보다
비싸게 안 팔리잖아

 

그거였어요?

 

시게모리, 부탁 좀 하자

 

그를 죽이냐 살리냐는
자네의 ‘이것’에 달렸어

 

대체 ‘이것’이 뭔데?

 

이것은 이것이에요
그쵸?

 

됐어, 그만해

 

- 이봐, 셋츠
- 왜?

 

미스미한테
내 얘기 얼마나 했어?

 

별말 안 했어
사법연수원 동기라고만...

 

내 딸 얘기는?

 

아니, 말 안 했어

 

그건 왜 물어?

 

무슨 말 들었어?

 

아냐, 그럼 됐어

 

홋카이도대학 수의학과

 

다리는 선천적인가 봐요

 

하지만

 

뭔데?

 

공장 지붕에서 뛰어내리다가
다쳤다고 말하나 봐요

 

왜 그런 거짓말을?

 

글쎄요

 

사건 당일
행적은?

 

하교 후에는
집에 계속 있었나 봐요

 

다리도 불편하니까요

 

그러니까
검찰과 변호인 측의

 

정신감정이 정반대인 건
아주 흔한 일이야

 

정신의학은 과학이 아냐
문학에 가까워

 

또 정신감정 비판을
하고 계세요?

 

수고 많으셨어요

 

받아, 약속했던
루모이 강도살인 사건이야

 

갑자기 연락해서
깜짝 놀랐잖아

 

이분은 시게모리
전직 판사님

 

아, 아버님?

 

감사합니다
큰 도움 되겠어요

 

우편으로 보내면 될 걸
왜 굳이 오셨을까?

 

- 자네 몇 기인가?
- 69기입니다

 

변호사가 늘어서
요즘 힘들지?

 

아드님 신세를 많이 져요

 

- 얹혀사는 변호사로군
- 네, 맞아요

 

변호사님도 어릴 적엔
판사가 되는 게 꿈이었대

 

정말로요?

 

의외네요

 

아버지, 옛날얘기는
삼가 주실래요?

 

- 저 여인은 어때?
- 예?

 

돌싱녀는
참을성이 많거든

 

저는 아직 이혼 도장
안 찍었거든요

 

그럼 내가 먼저
대쉬해볼까?

 

됐으니까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이왕 온 김에
2, 3일 있다 가려고

 

예?

 

‘라 비스보챠’라는
이태리 식당 알아?

 

알 게 뭐예요

 

오늘 어디서
묵을 거예요?

 

호텔 예약해 드릴까요?

 

그럼, 스위트로 2명

 

아버님, 정말 재밌으셔

 

녀석은 그냥
죽이고 싶었던 거야

 

그게 살인 동기?

 

맞아, 즐기듯이 죽인 후에
불태웠어

 

세상엔 그런 짐승 같은
놈들이 있어

 

하지만, 이때 판결은
불행한 성장 과정과

 

가난을 이유로
정상참작 많이 했잖아요

 

그건 30년 전이야

 

사회가 범죄를 만든다고
믿던 시절이지

 

시대 탓으로
돌리는 겁니까?

 

난 애초부터
사형 폐지론자가 아녔어

 

아무튼

 

그때의 온정적인 판결의
결과로

 

또 한 사람이 죽게 됐지

 

후회하고 있어

 

내 말 들어봐

 

살인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엔
깊은 도랑이 있어

 

그걸 건너느냐 마느냐는
태어날 때 결정돼

 

아주 오만한 말투네요

 

갱생 자체를
안 믿는군요

 

이런 엽서까지 받고선

 

쉽게 사람이 변한다고
믿는 게 훨씬 더 오만해

 

이번에도
돈 때문에 죽였잖아?

 

아니요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런 녀석을 이해하려고
시간 낭비하지 마

 

시간 낭비라뇨?

 

가족도 서로 이해를
못 하는데, 하물며 남이야

 

시게모리 재판장님께

 

잘 지내셨습니까?

 

미스미 다카시입니다

 

작년에 가석방되어

 

지금은 식품 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큰 눈이 내린 걸 보니

 

고향 홋카이도가
생각났습니다

 

딸의 열네 살 생일에

 

눈으로 큰 케이크를
만들었습니다

 

딸은 장갑이 없어서
제 장갑 한 짝을 줬습니다

 

딸은 빨개진 손으로

 

자기 키보다 큰 케이크를
만들었습니다

 

차갑고도
따뜻한 추억입니다

 

다음은 종착역
루모이입니다

 

모두 하차해 주십시오

 

예전 사건 때
변호사님의 나이가?

 

몇 년이었지?

 

1986년요

 

그럼 고2 때였네

 

기억나세요?

 

아니

 

홋카이도는 넓어서

 

이런 작은 동네 사건은
아무도 몰라

 

채권자 두 명을 죽여서
돈을 빼앗고, 주택 방화

 

근데 운 좋게
사형을 면했네요

 

그때 사형을 선고했으면
이번 사건도 없었을 텐데

 

아버님께서 화내시겠어요

 

당시 재판장님이
하신 말씀이야

 

체포한 건 1986년
1월 22일

 

큰 눈이 내려
열차도 멈추고

 

몹시 추운 밤이었어

 

와타나베 씨께서
직접 체포하셨나요?

 

 

사건 다음 날에

 

역 벤치에 앉아있는 걸

 

내가 발견했지

 

살인 동기가
뭐였습니까?

 

원한이라고
결론은 맺었지만

 

그런데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

 

취조할 때도
계속 말이 바뀌었거든

 

이 마을은
탄광이 문을 닫고

 

실업자로 넘쳐났어

 

그들이 야쿠자한테
고리대금을 빌려

 

험한 꼴을 많이 당했지

 

우린 신경 쓰지 마

 

원한이라고 주장해야
사형을 면하겠다고

 

변호사가 생각한 게
아닐까?

 

개인적인 원한이 있던 건
아닙니까?

 

미스미 개인적인
원한이나 증오는 없었어

 

그래서 오히려
섬뜩했달까?

 

뭐랄까

 

텅 빈 그릇 같았어

 

차 조심하세요

 

 

월드 원...

 

크라운, 히토미, 무스카...

 

여기 아냐?

 

네, 여기예요

 

부친이 연락한 적은
없답니까?

 

돈을 보냈다거나?

 

메구미한테 부친 이야기
들은 적 있어?

 

‘아빠’라고 부른 사람은
알아

 

멍청아, 손님 말고
진짜 아빠 말야

 

안녕하세요

 

- 몇 시까지 마셨어?
- 새벽 5시요

 

- 얼굴 겁나게 부었다
- 노래방 갔었어

 

어제 켄이랑 좋았어요

 

사장님, 메구미 씨
어디 갔는지 모르세요?

 

전혀 모르겠어

 

안다고 해도
말 못 하지

 

그러지 말고
말씀 좀 해주세요

 

딸의 증언이 사형을
무기로 바꿀지도 몰라요

 

죽었으면 좋겠대

 

그런 사람 얼른 뒈졌으면
좋겠대

 

사건 직후
도쿄에서 경찰이 찾아와

 

이 동네에서
도저히 못 살게 됐어

 

자식이 언제까지 부모의
죄를 짊어져야만 해?

 

간다면 간다고
말을 하셨어야죠

 

재판에 도움이 될까 해서
일단 찾아간 겁니다

 

절대 안 옵니다
걔나 저따위를 위해?

 

어서 죽기만을
바랄걸요?

 

떠올리기 싫은 것도 있죠
아시겠어요?

 

하지만

 

자기 행동과 마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 마주한다고요?
- 예

 

다들 그럽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안 합니다
바깥세상은...

 

보고도 못 본 척 않으면
도저히 살 수가 없어요

 

이번에

 

사장을 죽인 건
후회하고 계시죠?

 

- 후회?
- 예

 

사죄 편지에도
그렇게 쓰셨잖아요?

 

그건 다른 변호사가
하도 볶아대서

 

미스미 씨

 

진심이야 어찌 됐든
법정에선 그러지 마세요

 

저도 압니다

 

이번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이라...

 

말씀은 알겠지만

 

그런 녀석은
죽어 마땅해요

 

- 마땅하다고요?
- 예

 

어째서 그렇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간도 있어요

 

그렇다고 꼭 죽여서만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당신들도
그렇게 해결하잖아요?

 

사형 제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오늘은 이만...

 

없어요

 

그런 사람은 없어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은...

 

끝났습니다

 

그나저나

 

완전히 딴사람 같았어요

 

- 누가?
- 미스미 말이에요

 

- 너 말야
- 예?

 

아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은 없다고 했잖아

 

 

그거 진심이냐?

 

 

그렇지 않나요?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어째서요?

 

인간 의지와 상관없이
생사가 결정된다고 봐

 

무슨 말씀이시죠?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은 태어나고

 

부당하게 목숨을
빼앗기기도 하지

 

마루쥬 베이커리
하야카와

 

어서 오세요

 

그거 맛있지?

 

학교 급식에 나왔었는데

 

남는 게 있으면
서로 먹으려 싸웠어

 

작은 봉지에 들어 있었어

 

저한테 용건이라도?

 

그 사람 집에
가끔 갔지?

 

미스미 씨 말야

 

그걸 물으러 오셨어요?

 

흔한 일은 아니니까

 

흔한 일이 뭔데요?

 

미안

 

내가 말을 잘못했어

 

아녜요
죄송해요

 

미스미 씨 가족 얘긴
들었어?

 

아니요

 

그에겐

 

30년 넘게 만나지 못한
딸이 하나 있는데

 

그 딸도

 

너랑 비슷하게
다리가 불편했대

 

그래서 사이가
가까워졌나 싶었어

 

그렇구나

 

얘기 못 들었구나

 

역 앞 노래방에서 두 분을
봤다는 증언도 있었어요

 

그건, 공장 송년회였어요

 

- 둘만 있던 게 아니라?
- 당연하죠

 

하나만 더 여쭐게요

 

보험금 말인데요
미즈에 씨!

 

부인이 수령인입니까?

 

괜찮아요?

 

불을 다 꺼
밖에서 보이니까

 

어째서 내가 애인이라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위험해요

 

아빠도 그렇게 죽고

 

엄마가 의지할 건
너밖에 없구나

 

이 냄비 아주 낡았네

 

찌글찌글

 

네가 홋카이도에 있는
대학을 가면

 

엄마는 외로워
죽을지도 몰라

 

외롭다고 죽지는 않아

 

엄마가 토끼야?

 

보험금은 왜 안 나오지?

 

이유가 뭘까?

 

지금 그런 걱정 할 때야?

 

역시 내가 죽였다고
생각하는 걸까?

 

보험회사도...

 

그렇게 걱정되면
사실을 말하면 되잖아

 

그 돈은 살인 의뢰가 아닌
위장 식품을...

 

제정신이니?

 

그런 말 했다간

 

공장 망한단 말야

 

그런 더러운 짓으로
돈을 버느니

 

차라리 망하는 게 나아

 

철없는 소리 하지 마

 

그 더러운 돈으로

 

네가 이만큼
자랄 수 있던 거야

 

나도 알아

 

재판 시작되면
너도 증언할 거야

 

알지?

 

쓸데없는 말 하지 마

 

알겠어?

 

쓸데없는 말이라니?

 

그 쓸데없는 말이
뭔데?

 

그러니까

 

공장 일이나

 

아빠에 관해서

 

뭔데?

 

아빠에 관한 게?

 

딱히 아빠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잖아

 

여보세요?

 

여보세요

 

유카, 너냐?

 

아빠가 말야
지금 바쁘거든

 

또 무슨 사고 쳤니?

 

안 쳤어

 

그렇구나

 

그럼 다행이고

 

무슨 일 있으면
또 도우러 와줄 거야?

 

와줄 거야?

 

그래, 갈 거야

 

모른 척 안 하고?

 

안 해
도우러 갈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사고 치면 안 돼

 

걱정 마

 

걱정 안 해도 돼

 

미안해

 

뭐가?

 

미안

 

좀 더 너랑 같이...

 

계속...

 

검찰 측은 강경하게
강도살인을 주장하겠지만

 

그건 흘려 넘기세요

 

그럼 아까 연습한 대로
변호인 측 신문에 대해

 

처음부터 지갑을 훔칠
생각은 없었다고 하시고

 

알겠어요

 

그리고 주범은
무조건 부인입니다

 

그 부인이 살인을
청부한 겁니다

 

- 예
- 좋아요

 

저기...

 

변호사님은
방금 그 얘길 믿습니까?

 

예?

 

강도 의도가 없었다거나
보험금 얘기 같은...

 

믿지는 않지만
그래야 이길 것 같아서?

 

그런 측면도 있겠지요

 

재판 전략상으론

 

그럼 진짜로 죽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진짜 이유요?

 

네, 진짜 살인 동기요

 

변호사님은 진실이 뭔지
관심 없나 봐요?

 

그렇진 않습니다

 

그럼 말씀해보세요

 

그럼 먼저

 

하나만 여쭤볼게요

 

힌트 말입니까?
그러세요

 

그 십자 모양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거죠?

 

심판하고자 한 거죠?

 

심판?

 

 

그의 죄를

 

어떤?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심판하는 건
제가 아녜요

 

제가 늘 심판을 받죠

 

카나리아 한 마리가
도망쳤다고 했었죠?

 

 

그거 제가 일부러
놓아주었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 목숨을 갖고
장난치는 사람이

 

어딘가 또 있을까요?

 

있다면 만나고 싶네요

 

만나서 얘기하고 싶어요

 

부당하다고

 

하지만

 

당신이 부당한 처사를
당한 건 아니죠

 

아버지, 어머니도

 

아내도

 

아무 잘못도 없는데
불행하게 죽었어요

 

그런데 전
이렇게 살아있죠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사가 결정돼요

 

부당하게!

 

그 이야기를 대체...

 

아닙니다

 

당신은

 

왜 재판장에게
엽서를 보냈죠?

 

항상 동경해왔어요

 

사람 목숨을
좌지우지하잖아요

 

404호 법정입니다
피고인 입장시키세요

 

수갑 해제하세요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재판을 개정합니다

 

피고인은 증언대 앞에
서세요

 

이름은 무엇입니까?

 

미스미 다카시입니다

 

생년월일은 언제입니까?

 

1959년
12월 1일입니다

 

지금부터 강도살인 및

 

사체손괴 사건의
재판을 시작합니다

 

검사 측은
공소장 낭독하세요

 

 

공소사실

 

피고인은 야마나카 미츠오
당시 50세를 살해하고

 

금품을 강탈하기 위해

 

2017년 10월 11일
오전 0시 30분경

 

타마가와 천변에서
당사자의

 

후두부를 스패너로
수차례 내려쳐...

 

피고인에게 묻습니다

 

방금 검찰 측 공소 내용에
틀린 점이 있습니까?

 

 

지갑을 훔치려고
죽인 것이 아니고

 

부인 미즈에 씨에게
부탁받아 죽인 것입니다

 

재판장님

 

증인의 기억 환기를
돕고자

 

변호인 증거 1호로
9월 27일에

 

증인이 피고인에게 보낸
문자를 보여줘도 될까요?

 

그러세요

 

이 문자에 관해
묻겠습니다

 

‘부탁한 일’이란
무엇입니까?

 

공장 일을 말한 거예요

 

어떤 일이죠?

 

그건 제가 잘...

 

공장 일은 전부 남편이
도맡아 했기 때문에

 

원료 구매 같은 거
아닐까요?

 

월급과 별도로
50만 엔을 주겠다는 건데

 

굳이 원료 구매를
이렇게 표현할까요?

 

저는 몰라요

 

남편이 제 휴대폰으로
보낸 거예요

 

피고인이 멋대로
살인 의뢰라 착각했다?

 

그렇지 않을까요?

 

본인에게 물어보세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살해에 성공하면
보험금 8천만 엔 중

 

1천만 엔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죠?

 

안 했어요

 

50만 엔은
착수금 아닙니까?

 

아닙니다

 

작년 10월 13일
오후 10시경

 

즉, 범행 이틀 후에

 

여기가 어디지?

 

그 천변이에요

 

두 사람이 왜 여기서?

 

미스미 씨가
모닥불을 피웠고

 

제가 하굣길에 지나가다

 

생일이라고 하니까
눈 케이크를 만들자며

 

그런 후에 말했어요

 

여기에서?

 

 

언제부터였지?

 

아버지한테
그런...

 

열네 살 때요

 

그 말인즉슨

 

성폭행당했다는 거지?

 

 

딸을 강간했다는...

 

맞아요

 

미스미 씨는

 

저를 위해서

 

그러니

 

미스미 씨와 엄마는
아무 관계도 없어요

 

그걸 법정에서 말하고
싶다는 얘기지?

 

- 예
- 그를 돕기 위해?

 

 

죽여달라고 그에게
부탁한 건 아니지?

 

하지만

 

마음 한편에선
죽여주길 바랐어요

 

그게 그에게
전해진 거예요

 

어떻게 전해졌지?

 

분명 전해졌어요

 

저는 알아요

 

어디에서
그런 관계를 가졌지?

 

그건...

 

호텔이나 집?
아니면 그 천변에서?

 

그만해
지금 그런 걸...

 

중요한 얘기야

 

검찰에서
무조건 물어볼 거야

 

장소와 횟수 등을

 

각오하고 있어요

 

검찰은 네 말에 신빙성이
없다는 걸 증명하려고

 

평소 교우관계나

 

나쁜 행실 등을

 

전부 샅샅이 조사해
법정에서 까발릴 거야

 

알아요

 

그 다리에 대해서도

 

다리요?

 

그래

 

어릴 적 지붕에서 뛰어내리다가
다쳤다고 거짓말했잖아

 

거짓말 아녜요

 

정말 뛰어내렸어요

 

어쨌든, 그런 걸 꼬치꼬치
물을 건데, 견딜 수 있어?

 

무척 힘든 일이야
괜찮겠니?

 

지난 세월이

 

아무에게도
말 못 했던 시간이

 

더 괴로웠으니까요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사탕 줄게

 

계단 가파르니 조심해

 

저기...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하지만

 

이유가 뭐지?

 

저는

 

엄마처럼

 

못 본 척하기 싫으니까요

 

안 자?

 

그런 너는?

 

추워서 잠이 깼어

 

감기 조심해
나이를 생각해야지

 

시끄러워

 

그거 알아?

 

중국인가 어딘가의
옛이야기 중에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이
다함께

 

코끼리를 만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알아

 

코를 만진 사람과
귀를 만진 사람이

 

서로 자기가 옳다며
싸우는 이야기 아냐?

 

맞아, 그거야

 

너 지금 왠지
그런 기분 아니냐?

 

그럴지도...

 

근데

 

난 지금

 

뭘 만지고 있는 걸까?

 

심판한 걸까?

 

구원한 걸까?

 

어서 와요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아니, 잘됐어요
어차피 잠도 안 오는데

 

오늘은 사키에 양 일로
찾아뵀어요

 

이거 기억나세요?

 

작년 2월 15일
큰 눈이 내린 날

 

그 천변에서 당신과
사키에 양이 찍은 거죠

 

사키에 양은 이날

 

자기가 아버지한테
성폭행당하는 것을

 

당신한테 고백했댔어요

 

기억이 안 나요

 

그렇습니까?

 

하지만

 

이건 기억하시겠죠?

 

당신이 우리 아버지한테
보낸 엽서예요

 

날짜는 2월 20일

 

이 사진의 5일 후죠

 

당신한테

 

사키에 양은
딸 대신이었죠?

 

당신은 사키에 양을
구하기 위해

 

그 아이의 아버지를 죽였다

 

사키에 양의 살의를
당신이 헤아린 거죠

 

걔가 그런 말을 해요?
그거 다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이라고요?

 

시게모리 씨

 

걔는 말이죠
거짓말을 아주 잘해요

 

어째서 당신을 위해
거짓말을 하죠?

 

그건 걔한테 물어보세요

 

그럼 하나만 더 여쭐게요

 

 

- 범행 당일 말인데요
- 예

 

그 천변까지 어떻게
사장을 데려갔죠?

 

- 어떻게?
- 예

 

자기가 해고한

 

이런 말은 그렇지만

 

당신 같은 인간을
순순히 따라갈까요?

 

중요한 얘기가 있다고
말했어요

 

중요한 얘기라뇨?

 

위장 식품요

 

위장 식품?

 

원산지 위반이죠

 

한 달에 한 번
출처도 모르는 밀가루가

 

비밀리에 반입돼요

 

그걸 거의 공짜로 매입해
원산지를 속여요

 

더러운 사업이죠

 

그럼 그 50만 엔은?

 

그 일을 도와주고
받은 돈이죠

 

어째서

 

그런 거짓말을...

 

심판하려 한 겁니까?

 

그 어머니를?

 

남편과 딸 사이를
알면서도 모른 척해서?

 

시게모리 씨

 

뭐죠?

 

아닙니다

 

- 어차피 안 믿을 테니
- 아니, 말씀하세요

 

대체 뭡니까?

 

거짓을 말했어요

 

- 거짓?
- 예

 

저는 천변에 안 갔어요

 

뭐요?

 

사실은 제가...
안 죽였어요

 

안 죽였다고요?

 

저는 사실
죽이지 않았어요

 

아니

 

그걸 왜
이제서야?

 

왜 처음부터
혐의를 부인 안 했죠?

 

했어요

 

제가 안 했다고
말했어요

 

형사에게도
검사에게도

 

변호사에게도

 

- 변호사한테도?
- 예

 

구치소에 처음 오셨을 때

 

셋츠에게?

 

 

그랬더니
거짓말 말래요

 

인정하면
사형은 면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사형을 면하려고
그걸 그냥 인정해버리면

 

그 공장에서

 

남의 약점을
이용하며 사느니

 

교도소에 있는 게
더 나으니까요

 

제 말 믿으세요?

 

시게모리 씨

 

그렇지만

 

여태껏 계속

 

말 바꾸다가

 

이번 만큼은
믿어달라고 한들

 

맞아요

 

잠시만요

 

역시

 

역시 믿지 않는군요

 

미스미 씨
여기 또 누가 왔었나요?

 

당신을 만나러

 

누군가?

 

아니요
당신뿐입니다

 

부탁 좀 할게요

 

제발요!

 

이번엔 꼭 진실을
말해주세요!

 

괜찮아요
안 들리니까요

 

지갑은?

 

지갑은 뭐야?

 

훔쳤지?
훔친 게 맞지?

 

예, 훔쳤어요
사건 당일에

 

밀가루 얘기로
사장을 협박해서

 

돈은?

 

딸한테 보냈어요

 

손에 입은 화상은?

 

전날 밤에
모닥불을 피우다가

 

그 천변에는?

 

안 갔다고 했잖아요!

 

그래

 

안 갔구나
아까 들었었지

 

절 믿으세요?

 

당신은

 

제 의뢰인이니

 

당신 의사는 존중합니다

 

하지만

 

지금 혐의를 부인하면
전략적으로 불리해요!

 

그런 건 아무 상관없어!

 

믿는지, 안 믿는지
묻고 있잖아!

 

알겠어요

 

정말 아시겠어요?

 

감당할 수 있죠?

 

진심으로?

 

 

시게모리 법률 사무소

 

어이가 없네
녀석이 그런 말을 해?

 

 

자백하면 사형 면한다고
변호사가 그랬대

 

무시해버려
어차피 또 말 바꿀걸

 

저도 사키에 양의 증언에
무게를 두는 게...

 

그러면 그가 범인이라고
우리가 인정하는 거잖아

 

이제 와 안 죽였다 한들
누가 믿겠어?

 

솔직히 목격자도 없잖아

 

결국 검찰의 증거는
자백뿐이야

 

녀석은 두려운 거야

 

재판이 시작되고

 

사형이 현실로 다가오니...
종종 있는 일이야

 

아냐, 녀석은 그렇지 않아

 

- 네가 어떻게 알아?
- 그쯤은 알아

 

이거 위험한걸...

 

위험?

 

녀석은

 

이런 일을 저지른 놈이야
넌 안 보이냐!

 

이게 인간이 할 짓이야?

 

이런 추악한 인간은
죽어도 마땅해!

 

마땅하다뇨...

 

검사가 말한 대로야

 

너 같은 변호사가

 

범인이 죄와 마주하는 걸
방해하지

 

우린 질 거야

 

무엇보다 판사의 심증은
최악으로 형성될 거야

 

그렇지만

 

본인이 부인하는 이상

 

변호사로서 그 주장을
따르는 게 맞잖아?

 

두 줄로 서 주세요

 

유족의 증인신문이 있는
오늘 공판에

 

방청권을 구하려는
긴 행렬이...

 

혐의 부인요?

 

 

안 죽였대

 

예?

 

그러니까

 

너를 구하려 했다는 증언

 

법정에서 하지 말아줘

 

미안하구나

 

할 거예요

 

미안해

 

증언하게 해주세요

 

진실에 대해

 

증언을 하려는 건

 

단지 자신의 정의감에
불타서?

 

아니에요

 

미스미 씨를
구하고 싶은 거지?

 

 

그렇다면

 

그걸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옳지 않을까?

 

피고인에 대한
감정은 어떻습니까?

 

소중한 부친을 잔혹하게

 

돈 때문에 죽였잖아요

 

미스미 씨는

 

돈 때문에 죽인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질문을 바꾸죠

 

피고인에 대해
어떤 처벌을 원하세요?

 

사형은 원치 않습니다

 

돌아가신 부친에 대해
하실 말씀 없으세요?

 

있을 텐데요?

 

절 낳아주고 길러준 걸
고맙게 생각합니다

 

피고인은 10월 11일 밤

 

택시로 귀가하던 사장을
공장에서 몰래 기다렸죠?

 

 

이유가 뭐죠?

 

협박해서
돈을 훔치려 했어요

 

공장에서 잘려
화가 치밀어

 

지갑은 어떻게 했죠?

 

지갑은 훔쳤어요

 

하지만
그것뿐입니다

 

저는 천변에 안 갔어요

 

안 죽였습니다

 

본건은 살해 사실 인정을
전제로 하여...

 

안 죽였다고 말했어

 

그랬더니 검사가
화장실까지 쫓아와서

 

죽였다고 하면
사형은 면하게 해준댔어

 

정숙하세요

 

변호인의 질문 의도가
뭡니까?

 

- 전부 한통속이야
- 범죄를 부인하므로

 

변호사도

 

- 재검토를 요청합니다
- 그냥 인정하라고

 

그래야 산다고

 

피고인은 정숙하세요
퇴정 명령할 겁니다

 

제 말을 아무도 안 믿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진실을 들어주십시오

 

재판장님
저는 안 죽였습니다!

 

- 실례합니다
- 앉으세요

 

변호인
대체 어쩔 셈이오?

 

쟁점은 강도죄 성립과
양형 아녔습니까?

 

피고인이 돌연
말을 바꿨습니다

 

그럼 어쩔 겁니까?
범죄 사실을 다툴 겁니까?

 

저희로선
굳이 그렇게까지는...

 

아니, 다툴 겁니다

 

대체 어느 쪽이죠?

 

더는 무리야
시게모리...

 

범죄 사실을 다툽니다

 

검찰 측 의견은?

 

원래 범죄 사실은
쟁점이 아녔으므로

 

그렇다면 공판을
처음부터 다시...

 

변호인, 그럼 말이죠

 

쟁점에 범죄 사실 여부를
추가해서...

 

그 말씀은
그대로 속행하는 걸로...

 

검찰 입장도 이해하지만
워낙 갑작스러운 주장이라

 

변호인도 속행을
희망하고

 

배심원 사정도 있으니까

 

아니, 제대로 범죄 사실을
입증한 후에...

 

하지만

 

그렇게 하시죠

 

뭐...

 

근거 없는 반박도 아니니

 

그래요, 그러는 게
소송경제에도 부합하죠

 

소송경제?

 

검찰 측에 범행 사실의
객관적 증거를 요청하며

 

공판은 속행하는 걸로
합시다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할 줄 알았어요

 

그게 그리 쉬운 게 아냐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호흡이 척척 맞던데요

 

이제 와 새로 해봤자
결론은 같다는 신호를

 

재판장이 보냈으니까

 

미스미가 안 죽였다고
누구도 믿지 않네요

 

그건 도리가 없어

 

판사도 일정대로 못 끝내면
평가에 영향받거든

 

입장만 다를 뿐, 우린 모두
‘법조계’라는 배를 탔어

 

먹어

 

밥이야

 

어서

 

어서

 

이리 와

 

먹어

 

어서, 이리 온

 

먹어

 

이리 와

 

- 미스미
- 예

 

- 먼저 가세요
- 안녕하세요

 

안녕

 

그럼, 피고인에 대한

 

강도살인 및 사체손괴
사건의 판결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고인을 사형에 처한다

 

피고인이 공판에서

 

범죄를 부인한 이유에
합리성을 인정할 수 없고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지갑을 갈취했단 변명은

 

객관증거에 어긋나므로
신용하기 어렵다

 

문자에 대해서 검토한바

 

평소 피고인과
증인 미즈에 사이에

 

살해를 암시하는 발언은
일절 없었다고 인정되며

 

문자 내용 자체도 명확한
살해 의뢰 표현이 없어

 

살해 의뢰로 간주하기엔
다소 억측에 가깝다

 

이에 덧붙여 피고인은
수사단계에선 자백했지만

 

공판에서 돌연 번복하며
시종일관 궁색한 변명과

 

책임 회피에 급급하여...

 

감사합니다

 

미안하구나

 

그 사람의

 

말이 맞아요

 

여기선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죠

 

아무도?

 

누굴 심판하느냐는

 

누가 정하는 거죠?

 

벚나무가

 

집 앞에 있는데

 

꽃봉오리가
이만큼 커져서

 

곧 꽃필 것 같아요

 

도쿄의 벚꽃은 빠르네요

 

홋카이도는 4월 말에
피던가요?

 

맞아요

 

어린이날 즈음이죠

 

당신이 범행을 부인한
이유를

 

계속 생각해봤어요

 

살인을 부인하면

 

그 아이가

 

사키에 양이 힘든 증언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사키에 양이 힘든 증언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렇게 생각했죠?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 생각으로
일부러 번복을...
그런 생각으로
일부러 번복을...

 

시게모리 씨
시게모리 씨

 

그거 저한테 하신
질문입니까?
그거 저한테 하신
질문입니까?

 

질문이 아니었나?
질문이 아니었나?

 

저도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저도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당신은 그런 생각으로
당신은 그런 생각으로

 

제 번복에
동의한 겁니까?
제 번복에
동의한 겁니까?

 


 

아닙니까?
아닙니까?

 

하지만
하지만

 

좋은 얘기네요
좋은 얘기네요

 

그거 좋은 얘기예요
그거 좋은 얘기예요

 

저는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다고 늘 생각했죠
저는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다고 늘 생각했죠

 

어째서 그렇죠?
어째서 그렇죠?

 

저는 상처를 줘요
저는 상처를 줘요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변 사람들을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변 사람들을

 

만약 방금 당신이 말한 게
사실이라면
만약 방금 당신이 말한 게
사실이라면

 

저 같은 사람도

 

누군가의 도움이
될 순 있겠네요

 

그게 설령

 

살인일지라도?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말이죠

 

그 말은

 

결국...

 

저 혼자 사실이라고
믿으려 했단 겁니까?

 

정신 차려요
시게모리 씨

 

저 같은 살인자한테
그런 걸 기대하면 못써요

 

그럼 당신은

 

단순한...

 

그릇이라고?

 

그릇이라니...
무슨 뜻이죠?

 

후쿠야마 마사하루

 

히로세 스즈

 

야쿠쇼 코지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번역
안영수

 

자막제공
부산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