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뎐 Chunhyang.2000.KOREAN.720p.WEBRip.x264.AAC-YTS.MX.k.or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이이이... 내 사랑이로다
아매도 내 사랑아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春香傳
춘향뎐

 

내 사랑이로다
아매도 내 사랑아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둥글둥글 수박 웃봉지 떼뜨리고

 

강릉 백청을 따르르르 부어

 

씰랑 발라 버리고 붉은 점 웁벅 떠
반간진수로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소리 조상현 고수 김명환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성춘향 이효정
이몽룡 조승우
당동지지루지허니

 

외, 가지, 단 참외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앵도를 주랴, 포도를 주랴

 

귤병, 사탕에 혜화당을 주랴

 

아매도 내 사랑아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니가 무엇을 먹을래

 

시금털털 개살구, 작은 이도령
서는데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어
아매도 내 사랑아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방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감독 임권택
아매도 내 사랑아

 

정동극장

 

야, 이거 국악의 이해도 좋지만
5시간을 어떻게 견디냐?

 

그래도 뭔가 있으니까
보라고 하셨겠지

 

있긴 뭐가 있냐
춘향전 뻔한 거지 뭐

 

공연 잘 봤습니다

 

어!
야, 여기야

 

- 왜 이제 와, 인마
- 미안해, 미안해

 

웃지 마, 웃지 마, 인마
이 자식은 꼭 티를 낸다니까

 

야, 너희들 팸플렛 없이 리포트
어떻게 쓰려고 아무도 안 사냐?

 

이게 무슨 내용인지 다들 알아?
장난이 아니라고!

 

나 보다가 졸면 어떻게 하냐?

 

야, 나 잘 때 너 깨어 있어야 돼
너 잘 때 나 깨어 있고

 

야, 아예 우리가 여섯 명이니까

 

50분씩 나눠서
책임 할당제로 하자, 어때?

 

야, 난 허리 아프고 졸려가지고
긴 시간 못 버틴다고

 

야, 있잖아

 

나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리포트 낼 테니까

 

너희들은 재미있게 보고 나와라 응?

 

전통 예술이라는 거, 그거 보고 나면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더라구

 

- 그러니까 좀 참아라, 참아
- 보기나 해, 인마

 

이 춘향전 다 끝나려면
5시간 걸리거든요

 

그러니까 5시간 하려면
저도 지루하고

 

여러분도 앉아 계시기도
지루하니까

 

제가 중간에 두 번 쉴랍니다

 

그때 가셔서 똥 눌 사람 똥 누시고

 

오줌 눌 사람 오줌 누시고...

 

그것을 점잖하게 얘기하면 대소변

 

이거 보시고...
그라고 전 처음부터 끝까지 하여튼

 

정성을 다해서 해 볼라니까

 

여러분들도 제가 가다가
정말로 끝까지 잘할 수 있게끔

 

좀 격려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호남좌도 남원부는

 

옛날 대방국이라 하였것다

 

동으로 지리산 서로 적성강

 

남북강성하고 북통운암허니

 

산수정기 어리어

 

남녀간 일색도 나려니와

 

만고충신 관왕묘를 모셨으니

 

당당한 충렬이
아니 날 수 있겠는가

 

숙종대왕 즉위 초에

 

남원 사또 자제
도련님 한 분이 계시되

 

연광은 십육 세요

 

이목이 청수하고 거지 현량하니

 

진세간 기남자라

 

하루 일기 화창하야
방자 불러 물으시되

 

- 얘, 방자야
- 예!

 

내가 아버님 따라 이 고을에
내려온 지 수삼 삭이 지났으나

 

아직까지 놀 만한 경치를 모르니
어디가 좋으냐?

 

글공부하시는 도련님이
경치는 찾아 뭣하시게라우?

 

네가 모르는 말이다

 

옛부터 문장호걸들이
명승지는 모두 구경하였느니라

 

잔말 말고 일러라

 

분부가 그러하옵시니
대강 아뢰옵지요

 

북문 밖 나가오면
교룡산성 대부암이 좋사옵고

 

서문 밖은 선원사요
동문 밖은 관왕묘가 볼만하고

 

남문 밖 나가오면 광한루
오작교, 영주각이 있사온디

 

사람들이 이르기를 삼남에서
제일가는 명승지라 허구만이라우

 

네 말을 들어 보니 광한루가
제일 좋을 듯 싶구나

 

어서 나갈 차비를 하여라

 

사또 분부 지엄하신 줄
번연히 알면서

 

생사람 잡을라고 이러시오?

 

이놈아, 내가 아버님 전에
허락받으면 될 거 아니냐

 

어서 나귀 안장 지어라

 

등자 딛고 선뜻 올라

 

통인 방자 앞을 세우고

 

남문 밖 나가올 적

 

황학의 날개 같은 쇄금당선

 

좌르르 피어 일광을 희롱허고

 

관도성남 너른 길
호기 있게 나가실 제

 

기풍하 나는 티끌 광풍 좇아

 

펄펄 날려 도화점점

 

붉은 꽃 보보향풍

 

사또 자제분 나들이를
다 나오셨구먼

 

적성의 아침 날은

 

늦은 안개 띠여 있고

 

녹수의 저문 봄은

 

화류동풍 둘렀난듸

 

요헌기구하최외는

 

임고대를 일러 있고

 

자각단루분조요는

 

광한루가 이름이로구나

 

광한루도 좋거니와

 

오작교가 더욱 좋다

 

오작교가 분명허면

 

견우 직녀 없을쏘냐

 

견우성은 내가 되려니와

 

직녀성은 게 뉘가 될끄나

 

- 얘, 방자야
- 예, 도련님

 

오늘 술은 상하동락으로
연치를 찾아 먹을 터이니

 

너희 둘 중
누가 나이가 더 많으냐?

 

도련님, 요 후배사령이 저보다
낫살이나 더 한 듯 싶구만이라우

 

그러면 너 먼저 받아라

 

아따 후배사령, 한잔 받소
단오날 호강허네이

 

정말 좋구나

 

봄빛이 얼마나 깊은지
미처 알지 못하였더니

 

한잔 받아라

 

때마침 도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구나

 

서로 노니는 한 쌍의 나비는
머물 뜻이 없다가

 

그 꽃을 찾아 날아갔다
다시 날아오네

 

백백홍홍난만중, 백백홍홍난만중

 

어떠한 미인이 나온다

 

해도 같고 달도 같은
어여쁜 미인이 나온다

 

저와 같은 계집아이와
함께 그네를 뛸 양으로

 

녹림 숲을 당도하여
장장채승 그넷줄

 

섬섬옥수를 번뜻 들어
양 그넷줄을 갈라 쥐고

 

한 번을 툭 구르니
앞으로 번뜻 높았고

 

또 한 번 툭 구르니
뒤가 점점 멀었다

 

그대로 올라가면
서왕모를 만나 볼 듯

 

그대로 내려오면
요지황후를 만나 볼 듯

 

사람은 사람이나
분명한 선녀라

 

어찌 보면 훨씬 멀고
어찌 보면 곧 가까워

 

들어갔다 나오는 양은

 

연축비화낙무연

 

도련님 심사가 산란허여

 

- 방자야
- 예, 도련님

 

- 저길 보아라
- 어디 말씀이어라우?

 

야 이놈아, 부채발로 보아라

 

저것이사 아까 지나오시면서 본
씨름판 아니어라우

 

야 이놈아, 똑똑히 좀 보아라

 

저기 녹림 속에서 그네 타는
계집아이가 안 보여?

 

양가댁 규수가
그네 타러 나왔나 보구만이라우

 

이제 그만 돌아가십시다요

 

양가 댁 규수가 이런 데 나와
그네 탈 리가 있겠느냐?

 

네 이놈, 너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놀아

 

지나가는 강아지도 알아볼 터인데

 

아, 저 아이는유, 이 고을 퇴기
월매의 딸 춘향이라고 하옵난듸

 

오늘이 단오날이라 향단이 데리고
그네 타러 왔는가 보구만유

 

기생의 딸이라...
그거 잘되었구나

 

이놈아! 너 얼른 건너가서
내 말 하고 불러오너라

 

- 아이고 그리 못하옵니다요
- 방자야!

 

아이고, 또한 불러도 오지 않고라우

 

본래 제 어미는 기생이오나
춘향이는 도도하여

 

기생 구실 마다하고
길쌈하고 바느질하며

 

시 짓고 글공부하는 게 여염집
처자와 다를 게 없구만이라우

 

제가 천기의 딸일진데
어찌 얼굴 구경 한번 못할소냐

 

어서 불러오너라

 

도련님, 이 남원 고을 관속
건달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한다하는 양반 오입쟁이들이
수없이 을러 봤지만

 

하나같이 헛물만 켜고
물러나 앉았구만이라우

 

니 말이 무식하다

 

세상 귀하다는 형산백옥과
여수 강물 속의 황금도

 

각각 임자가 있다 하였느니라

 

잔말 말고 불러오너라

 

방자 분부 듣고
춘향 부르러 건너간다

 

건거러지고 맵시 있고
태도 고운 저 방자

 

새소없고 팔랑거리고
우멍스런 저 방자

 

서왕모 요지연에
편지 전턴 청조처럼

 

말 잘하고 눈치 있고
영리한 저 방자

 

쇠털벙치 궁초 갓끈
맵시 있게 달아 써

 

성천 통의주 겹저고리
삼승고의 육날신에

 

수지 빌어 곱돌 매고

 

청창옷 앞자락을
뒤로 잦혀 잡어 매고

 

한 발은 여기 놓고

 

또 한 발 저기 놓고

 

충 충 충충거리고 건너간다

 

장송가지 뚝 꺾어

 

죽장 삼어서 자르르 끌어

 

이리저러 건너갈 제

 

조약돌 덥벅 집어

 

버들에 앉인 꾀꼬리 탁 쳐

 

후여!' 쳐 날려 보고

 

무수히 장난허다가

 

춘향 추천허는 앞에

 

바드드득 들어서

 

춘향을 부르되 건혼이 뜨게

 

아나, 였다, 춘향아!

 

아이고, 이 염병할 놈
하마터면 우리 아씨 낙상할 뻔했네

 

뭣이여? 낙태를 해?

 

어허, 시집도 안 간 가시네가
낙태했다네!

 

내가 언제 낙태라 했냐?
낙상이라 했제

 

그나저나 춘향아, 큰일 나부렀다

 

무슨 큰일이 났단 말이냐?

 

사또 자제 도련님이
광한루에 구경 나오셨다가

 

너 그네 타는 모양을 보고

 

바삐 불러오라 하셨응께
어서 건너가자

 

아니, 엊그제 내려오신 도련님이
나를 어찌 알고 부르신단 말이냐?

 

방자 네가 춘향이니
난향이니 기생이니

 

새앙쥐 씻나락 까듯
똑똑 까바쳤구나

 

춘향아, 여자의 행실로
그네를 탈 양이면은

 

네 집 뒷동산도 좋고
대청 들보도 좋고

 

정 은근히 뛰려면은
네 집 횟대목이나 매고 뛸 것이제

 

이렇게 똑 배아진 언덕에서
그냥 발 맵시를 해뜩 드러내고

 

속곳은 펄렁, 선웃음 빵긋
입속은 해뜩

 

이래 놓으니 우리 도련님
애간장인들 안 녹겄냐?

 

어서 건너가자

 

내 비록 미천한 몸이나
관기로 이름 올린 적 없고

 

여염집 아이로서
초면 남자 전갈 듣고

 

따라갈 리 만무하니
너나 건너가거라

 

춘향아, 네가 그렇게 가면
성할 듯 싶으냐?

 

사또 자제 도련님께
무례하게 굴었으니

 

불경죄 물어 너 주리 틀림 당해도
괜찮단 말이여?

 

글쎄, 방자야, 어찌 꽃이
나비를 찾는단 말이더냐

 

돌아가 도련님 전에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고

 

여쭈어라

 

아니, 이놈아!

 

춘향일 데리고 오랬지
쫓고 오라더냐?

 

쫓기는 누가 쫓아라우

 

뭔 소린지 모를 욕만
잔뜩 퍼부어 대면서

 

도련님껜 그대로
전하라고 헙디다요

 

욕이라니, 무슨 욕을?

 

안주해 접숫고 해소혈이라던가
해소병걸이라고 그러던가...

 

그래? 그게 욕이 아니라
뜻이 있는 말이로다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

 

기러기는 바다를 따르고
나비는 꽃을 따르고

 

게는 굴을 따르니
날더러 찾아오라는 뜻이다

 

가자!

 

지금 당장 찾아가실라고요?

 

아버님께 반나절만 구경하겠다
허락받았으니

 

우선은 돌아가야 할 것 아니냐?

 

승지를 찾아 시문을 익히는 것도
선비의 도리다마는

 

그리하다가는 문약에
빠지기 쉬운 법이다

 

모름지기 선비의 수신이란
육례를 익히는 것이라 하였거늘

 

그중 활 쏘고 말 타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으니 그 점 유념하여라

 

경서를 읽다가 정 졸음이 오거든
이 책을 읽으면서 잠을 쫓아 보거라

 

이 도령 책상 앞에 앉았는디
뵈는 것이 다 춘향이라

 

육방아전 춘향 같고
방자통인 춘향 같고

 

대부인도 춘향 같고
이 사또 또한 춘향 같고

 

건은 원코, 형코, 리코, 정코

 

춘향코, 내코 한데대면 좋고

 

그리고 저리고 하면
또 새코나면 좋고

 

도련님, 그게 뭔 책이데요?

 

- 주역이다
- 어디가 주역이요, 코 책이제

 

그 흔한 코 밑에다가
요 소인 놈 코도 좀 넣어 주시오

 

이놈아, 네 코는 상놈의 코라
여기 넣지 못하느니라

 

천자문 가져오너라

 

내일 모레 과거 보실 도련님이
천자문 다시 꺼내서 뭣 하시게라우?

 

천자란 것이 사서삼경의
기본이 되는 것이니

 

한 자 한 자마다 깊은 뜻이
담겨져 있느니라

 

자시에 생천하니

 

불언행사시

 

유유피창에 하늘 천

 

축시에 생지허여

 

금 목 수 화를 맡었으니

 

양생만물 따 지

 

유현미묘흑정색

 

북방 현무 검을 현

 

궁상각치우 동서남북

 

중앙 토색의 누루 황

 

천지사방이 몇 만리

 

하루광활 집 우

 

연대국조 흥망성쇠

 

왕고래금 집 주

 

우치홍수의 기자추연
홍범이 구주 넓을 홍

 

왕대 밭에 왕대 난다더니

 

도련님께선 틀림없이
소년등과하실 겁니다

 

용생용이요
봉생봉이라 하지 않던가

 

해 어디만큼 갔나 보아라

 

아 인제 신시 되앗어라

 

아직도 신시냐?
왜 이리 더디냐

 

글쎄올시다, 어제 해는
그냥 줄달음질로 가더니만은

 

오늘 해는 그냥 발바닥에
종기가 났는지

 

굼뱅이 걸음이구만이라우

 

- 퇴령 소리 길게 나니...
- 하인 물리랍신다

 

도련님이 좋아라 허고

 

춘향집을 어서 가자

 

방자를 앞세우고

 

춘향집을 건너갈 적

 

협로진간 너룬 길은

 

운간월색을 희롱허고

 

화간에 푸른 버들

 

경치도 장히 좋다

 

춘향 집을 당도허니

 

좌편은 청송이요

 

우편은 녹죽이라

 

정하에 섰난 반송은...

 

도련님, 여기가
춘향 집이올시다, 어쩔꺼라우?

 

어서 불러내어라

 

여기까지 소인이 모시고 왔응께

 

부르기는 도련님이
직접 부르시지라우

 

불러내라면 불러낼 것이지
어서 불러내라, 이놈아

 

춘향아
시방 자냐, 깨었냐?

 

사또 자제 도련님 모시고
나왔응께 빨리 나오더라고

 

- 아, 빨리 나오란께
- 야밤에 어떤 놈이 장난질이여

 

나요, 방자

 

아니, 네가 웬일이냐?

 

사또 자제 도련님 모시고 나왔구만

 

사또 자제 도련...
아이고 저런 썩을 놈이 있는가?

 

야, 이놈아!
도련님을 모시고 올려거든

 

미리 연통부터 허고 와야지

 

옴마, 환장하겠네

 

연통이고 내통이고
그 아래통이나 살펴보고 말하시오

 

뭐시여 시방 고쟁이 바람으로

 

아이고, 이것이 뭔 일이여?

 

이년아, 어서 문부터
열어 줘라, 이년아

 

아이고, 어서!

 

누지에 왕림하시니
천만 뜻밖이옵니다

 

안으로 듭시지요

 

부용당이라

 

연꽃을 이름인데
질박하고 단아한 글씨로구나

 

누가 썼느냐?

 

소녀의 서툰 솜씨옵니다

 

연꽃은 비록 진흙 속에서
꽃을 피우지만

 

맑고 곱기가 비할 데가 없으며
그 향기가 십리를 간다고 합니다

 

향원익청이라

 

연꽃의 향기는 멀수록
맑고 청아하다 하였거늘

 

남원부중에 가득 찬 네 향기는

 

동헌 내아까지 실려 와
나를 취해 비틀거리게 하였으니

 

춘향 너는 연꽃보다도 더한
꽃중의 꽃이로다

 

강태공의 '위수조어도'로구나

 

이 그림도 네가 그렸느냐?

 

부끄럽습니다

 

빈 낚시대를 드리운 채
때를 기다리다

 

문왕을 만나 뜻을 펼친
태공망을 그린 그림이로구나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은둔하며
때를 기다릴 줄 알던

 

야심찬 사람이지

 

훌륭한 지아비를 만나려는
네 소망까지도 함께 담겨 있구나

 

도련님은 소녀를
노류장화 천기로 아시옵니까?

 

너는 여자 중 문장재녀요
나는 남자 중 문장재사로

 

재사재녀가 눈이 맞아
이리 되었으니

 

이것도 연분이 아니냐?

 

향단아, 우리 도련님이 춘향이한테
홀딱 반했응께

 

너 수발 잘해야 한다이

 

일만 잘되면은 남원부중이
다 춘향이 것이 될 판인데

 

이제 네 팔자도 늘어지게 생겼다

 

여보, 월매, 여기까지
도련님을 모시고 온 것도

 

따지고 보면 내 공이 절반잉께
도련님께 말 좀 잘 전해 주소

 

월매, 이번 참에 나도
관아 창고지기나 한 자리 얻어

 

거들먹거리며 살아 볼라네

 

지랄하고 자빠졌네, 길 닦아 논게
문둥이부터 지나간다더니

 

월매...

 

월매? 닭 털이나 뽑고 있어
이 썩을 놈아!

 

제 어미입니다

 

- 문안드립니다
- 편안하신가?

 

오실 줄 몰라
영접이 빠르지 못했습니다

 

야심하온데
귀중하신 도련님이 어인 일로...

 

- 들어와 편히 앉게
- 예

 

수일 전에 광한루에서
춘향을 잠깐 보고

 

연모의 정이 생겨
꽃을 탐하는 나비가 되어 왔네

 

자네의 딸 춘향과 나와
백년가약을 맺음은 어떠한가?

 

아이구, 도련님은
사대부 댁 귀공자시고

 

춘향이 이것은 천기의 딸이라
도련님 호협하여

 

나비가 꽃 본 듯이
잠깐 놀다 버리시면

 

우리 모녀 사생이 가련하니

 

잠깐 술이나 한잔 허시고
노시다 가시지요

 

비록 용례는 갖추지 못하나
이 또한 연분이라

 

내 착실한 지아비가 될 것이니
잔말 말고 허락하소

 

회동 성참판 영감께서 남원 부사로
계실 적에 일등 명기 다 버리고

 

저를 수청케 하여 이것을 낳았소

 

어릴 때 잔병이 그리 많기로
데려가신다더니

 

그 사또 돌아가신 후에
내 홀로 이것을 기르면서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고이고이 길러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도련님께서 이리 조르시니
내 선뜻 허락을 험직도 헙니다만은

 

어미가 열 번 우긴들
뭔 소용이 있것소?

 

춘향아 네 뜻은 어떠냐?

 

도련님 뜻이 그렇게 간절하시니

 

어찌 받들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세상일을 예측하기 어려우니
후일 증거로써

 

한 장 불망기를 쓰소서

 

여일월 동심이니

 

해와 달과 같이
한마음으로 변하지 않으리라

 

도련님 이름이 꿈 몽 자
용 용 자 몽룡이니

 

내가 맞춰도 신통하게 맞혔구나

 

수일 전 꿈에 난데없는 청룡 하나
벽도화 가득한 연못에 잠겨 들어

 

깜짝 놀라 깨었더니
마침 다음 날이 단오날이라

 

외갓집에 문안 편지 쓰며
집에 있겠다는 것을

 

등 떼밀어서 그네터에 보냈드니
이런 큰 경사를 만났구나

 

아가, 춘향아, 여자라면
누구나 다 겪는 일인게

 

거스르지 말고 겁내지 말고
하라는 대로 허기만 하면 된다이

 

그라고

 

밑에다가 이걸 깔았다가

 

첫 일을 치른 후에 꽃이 비칠 텐데
네가 처녀였단 표신게

 

꼭 보여서 알려야 한다이?

 

얘, 춘향아, 이리 오너라
밤이 깊었다, 어서 자자

 

몰라요

 

잔말 말고 이리 오너라

 

백년해로 맺는 첫길 들어서는데

 

첫마수를 잘 붙여야
평생 행락이 좋다더라

 

첫날 밤 신부 손을 잡으면
공방살이 낀대요

 

달도 밝고 달도 밝다

 

휘양천지 밝은 달

 

원수녀르 달도 밝고
내당연에 달도 밝다

 

나도 젊어 소싯적에
남원읍에서 이르기를

 

월매월매 이르더니

 

세월이 여류허여
춘안호걸이 다 늙었다

 

하루 가고 이틀 가고
오륙일이 지나가니

 

나 어린 사람들이
부끄럼은 훨씬 멀리 가고

 

정만 답쑥 들어
하루는 안고 누워 둥글면서

 

사랑가로 즐겨보는듸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이히 내사랑이로다
아매도 내 사랑아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둥글둥글 수박 웃봉지 떼뜨리고

 

강릉의 백청을 다르르르 부어

 

씰랑 발라 버리고 붉은점 웁뿍 떠

 

반간진수로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당 동지 지루지허니
외, 가지, 단 참외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앵도를 주랴, 포도를 주랴

 

귤병, 사탕에 혜화당을 주랴

 

아매도 내 사랑아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니가 무엇을 먹을래?

 

시금털털 개살구, 작은 이도령
서는데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어

 

아매도 내 사랑아

 

어떻게 아셨느냐?
어느 놈이 꼬여 바쳤느냐?

 

막 첫 닭이 울었는데

 

사또께서 갑자기 책방에 들어오셔서
추궁하셨습니다

 

어찌 할 수가 있어얍죠?

 

사또께서 알고 계시니
발뺌할 생각은 말아라

 

앞으로는 일체
외방 출입을 안 하며

 

학업에만 전념하습니다 하고
아뢰어라, 응?

 

내 사랑 내 알뜰 내 간간이지야

 

오호 둥둥 니가 내 사랑이지야

 

너는 죽어 꽃이 되되

 

벽도홍 삼춘화가 되고

 

나도 죽어 범나비 되되

 

춘삼월 호시절에 그 꽃송이를

 

내가 덤쑥 안고
너울너울 춤추거드면

 

니가 날인 줄 알으려무나

 

화로허면 접불래라

 

나비 새 꽃 찾어간즉

 

꽃 되기는 내사 싫소

 

그러면 죽어서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종로 인경이 되고

 

나도 죽어 인경 마치가 되어

 

밤이면 이십팔수

 

낮이 되면 삼십삼천

 

그저 댕 치거드며는

 

니가 날인 줄 알려무나

 

인경 되기도 내사 싫소

 

그러면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글자가 되되

 

따 지, 따 곤, 그늘 음, 아내 처

 

계집 녀 자 글자가 되고

 

나도 죽어 글자가 되되

 

하늘 천, 하늘 건, 날 일, 볕 양

 

지아비 부, 사나이 남, 기특 기

 

아들 자 자 글자가 되어

 

계집 녀 변에 가 똑같이 붙어 서서

 

좋을 호 자로만 놀아를 보자

 

- 향단아
- 에그머니나, 오살할 놈

 

도련님

 

도련님!

 

웬일이냐?

 

사또께서 찾으시니
어서 가십시다요

 

무슨 일 있느냐?

 

모두들 경사 났다고
수군수군헙디다

 

너 요즘 어딜 다니기에
책방에서 글 읽는 소리는 아니 나고

 

집안에 경사가
있는 줄도 모르느냐?

 

무슨 경사가 있사온지요?

 

내가 동부승지 당상하여
내직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나는 관아 일을 마무리하고
뒤에 올라갈 테니

 

너는 내행 모시고
먼저 올라가거라

 

도련님 오시네

 

아이고, 우리 사위 오시는가?

 

아니,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대낮부터 오시는고?

 

잘 왔네, 잘 왔어!

 

내 가을에 자네 입을
중치막 막 끝낸 참인디

 

올라와서 좀 입어보세 이

 

방자는 어쩌고
혼자 걸어오시었소?

 

왜 이리 수심이 가득허시오?

 

사또께서 꾸중허시더이까
말 좀 허세요

 

술 냄새도 안 나는데...

 

머리도 안 더운걸?

 

아니, 왜 그러시오?

 

사또께서 동부승지로 승진하여
내직으로 올라가신단다

 

그럼 댁에는 경사 났소

 

정삼품 당상관으로 승진하였으면
그런 경사가 없으신데

 

어찌 이러시오?

 

경사는 났다마는
내일 올라가기에 이런다

 

도련님 한양 가시면
내 아니 갈까 염려시오

 

여필종부라 하였으니
천리만리라도 도련님을 따라가지

 

도련님 없는 남원 땅
뭐가 아쉬워 여기 남겠어요

 

어머님께 네 사정을 아뢰니

 

양반의 자식이
작첩하였다는 말이 나오면

 

족보에서 이름 빼고
사당 참배도 못하고

 

과거도 못 본다 하시면서

 

사또께서 아시면
당장 불벼락 내리실 것이니

 

입도 뻥끗하지 말라는구나

 

이별하자는 말씀인가요?

 

이별이야 되겠느냐마는

 

당분간 갈려 있다
훗기약을 둘 수밖에 없겠다

 

아이고 여보 도련님

 

이제 하신 그 말씀이

 

재담이요 농담이요

 

실담이요 패담이요

 

사람 죽는 구경을

 

도련님이 허시랴오

 

우리 당초 만날 적에

 

무엇이라 말하였소

 

산해로 맹세허고

 

일월로 증인을 삼어

 

상전이 벽해가 되고

 

벽해가 상전이 되도록

 

떠나 사지 마잤더니

 

준일년이 다 못 되어

 

이별 말이 웬 말이요

 

맹세 구름이 저기 떴소

 

말을 허오 말을 허오

 

공연한 사람을

 

살자 살자 조르더니

 

평생 신세를 망치네그려

 

별거 아니여, 사랑 싸움잉께
가서 헐 일이나 혀

 

도련님 한양 가신다는구만유

 

뭐여?

 

허허, 별일 났네, 별일 나
우리 집에 사람 셋 죽네

 

한 초상도 아니고
세 초상 세게 생겼네

 

요년아, 썩 죽어, 죽어!

 

너 죽은 시체라도
저 양반이 지고 가게

 

내가 늘상 이르기를
무엇이라고 이르더냐?

 

지체도 너와 같고
인물도 너와 같은

 

봉황 같은 짝을 만나
내 눈 앞에 노는 양

 

내 생전에 두고 보면
너도 좋고 나도 좋지

 

마음이 너무 도도하여
남과 다르더니 잘 되고 잘 되었다

 

여보시오, 도련님
나하고 말 좀 해 봅시다

 

내 딸 어린 춘향이가
얼굴이 밉던가 언어가 불손턴가

 

잡스럽고 휑하든가

 

어느 무엇이 그르길래
이 봉변을 주시오

 

못허지, 못허여

 

양반의 자세허고
몇 사람을 죽일려는가

 

이왕에 가실려면

 

춘향이도 죽이고 나도 죽이고
향단이까지 마저 죽여

 

우리 세 식구 아주 죽여
땅속에 묻고 가면 갔지

 

살려 두진 못하리라!

 

장모, 춘향 데려감세
좋은 수가 있네

 

내일 내행 앞에
신주 요여가 오를 것이니

 

신주는 모셔 내어
내 소매 속에 감추고

 

춘향이는 요여 속에 앉혀 가면

 

신주 모신 줄 알지
설마 춘향이 든 줄 알겠나?

 

워따매, 지랄하고 자빠지셨네

 

요만만한 신주 모시고 갈 자그마한
가마에 춘향이가 어떻게 들어가?

 

어머니, 오죽 답답허면
저런 말씀을 허시겄소?

 

울지 말고 건넌방으로 건너가시오

 

도련님 내일은 부득불 가신다니
밤새도록 말이나 허고

 

울음이나 실컷 울고 보낼라오

 

워따매, 그 년 뱃속 한번
무섭게 유허네

 

도련님, 이 술잔 받으시고

 

한양성 가는 길 강수청청 푸르거든

 

내 마음을 품었다 생각하셔요

 

원수가 원수가 아니라
양반 행실이 원수로구나

 

춘향아, 이 거울 받아라

 

장부의 맑은 마음
거울빛과 같을지니

 

그걸 깊이 두었다가
날 본 듯이 내어 보아라

 

도련님, 이거 받으시요

 

여자의 곧은 마음
옥빛과 같다 하였습니다

 

고이 간직하여
절 본 듯이 내어 보셔요

 

남원 나서 오수, 임실 거치면

 

합죽선, 한지 유명한 전주라

 

여우 가죽 족제비 털이 좋다는
여산을 지나면

 

꿀과 인삼이 상품인 공주에 이르고

 

공주 지나 천안으로 올라갈라 치면

 

나라님 진상품인 잉어가 유명하고

 

수원 지나 곧 과천인데
한양까지 80리라

 

서울 건달 놈들
텃새가 어찌나 센지

 

시골 사람들 지레 겁먹고
과천서부터 벌벌 긴다는구나

 

춘향아, 내 죽을 힘 다해 공부해
장원급제하면

 

쌍교 태워 널 불러 올릴 것이니
그때까지 기다려라

 

쌍교라는 것이
종이품 벼슬길에 올라서야

 

비로소 탈 수 있는 귀한 것인데

 

도련님 그리 될 때 까지 기다리다
호호백발이 되라구요

 

올라가시거든
도련님 사는 소식 알 수 있게

 

수시로 편지 보내주셔요

 

염려 말아라
아무리 한양이 천리인들

 

소식조차 못 전하겠느냐?

 

전설 속 요지연의 서왕모도
푸른 새를 보내어

 

수천리 먼 길 소식을 전했는데

 

내게 푸른 새는 없을망정
남원 가는 인편이 없겠느냐?

 

이때의 동헌에는 내행차 떠나려고

 

쌍교를 어루거니
독교를 어루거니

 

병마 나졸이 분주헐 제

 

방자 겁을 내여 나귀 몰고 나온다

 

따랑 따랑 따랑 따랑
따랑 따랑 따랑 따랑

 

춘향 문전 당도

 

어허, 도련님 큰일 났소

 

도련님, 도련님, 큰일 났소

 

내행차 떠날 차비하시며
도련님을 찾삽기로

 

놀던 친구들과 작별하느라
나가셨다 아뢰옵고 왔사오니

 

어서 가십시다요

 

도련님이 하릴없어

 

나구 등에 올라앉으며

 

춘향아 잘 있거라

 

장모도 평안히

 

향단이도 잘 있거라

 

춘향이 기가 막혀

 

버선발로 우루루루루루루

 

한 손으로는 나귀 경마 부여잡고

 

또 한 손으로는

 

등자 디딘 도련님 다리 잡고

 

아이고, 도련님!

 

나도 데려가요

 

여보 도련님 날 다려가오

 

방자 나귀 경마 취어들고

 

채찍 툭 쳐 돌려서니

 

비호같이 가는 말이

 

청산녹수 얼른 얼른

 

한 모롱 두 모롱 돌아가니

 

청산에 노든 원앙이

 

짝을 잃은 거동이라

 

춘향이 기가 막혀

 

가는 임을 우두머니 바라보니

 

이만큼 보이다

 

저만큼 보이다가

 

달만큼 보이다

 

별만큼 보이다

 

나비만큼 보이다가...

 

갈까부다 갈까부다

 

임 따라서 갈까부다

 

천리라도 따라가고

 

만리라도 갈까 부다

 

바람도 쉬어 넘고

 

구름도 쉬어 넘는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

 

다 쉬어 넘는

 

동설령 고개라도

 

임 따라 갈까부다

 

하늘의 직녀성은

 

은하수가 막혔어도

 

일년일도 보련마는

 

우리 님 계신 곳은

 

무슨 물이 막혔길래

 

이다지도 못 보는고

 

이제라도 어서 죽어

 

삼월의 동풍 연자되여

 

임 계신 처마 끝에

 

집을 짓고 노니다가

 

밤중이면 임을 만나

 

만단정회를 허고지고

 

이렇게 울음으로 세월을 보낼 적에

 

변호 부사 김문수 3년 임기 끝나
나주 목사 전직하고

 

서울 자학골 변학도
신관 되어 내려오는듸

 

신연 맞어 내려온다

 

- 신연 맞어 내려올 적
- 물렀거라

 

- 별련 맵시 장히 좋다
- 사또님 행차시다

 

모란 새김 완자창
네 활개 쩍 벌려

 

일등 마부 유량달마
덩덩그렇게 실였다

 

키 큰 사령 청창옷
뒤채잽이 힘을 쓰며

 

별련 뒤 따렀난디

 

남대문 밖 썩 나서
좌우산천을 바라봐

 

화란춘성 만화방창
버들잎 푸릇푸릇

 

백사 동작 얼풋 건너
승방 뜰을 지나야

 

남태령 고개 넘어
과천읍에 가 중화허고

 

충청 양도를 지나여
전라 감영을 들어가

 

순상 전 연명하고
이튿날 발행헐 제

 

노구바위 임실 숙소 호기 있게 도임헐 제

 

오리정 당도허니
육방관속이 다 나왔다

 

질청 두목 이방이며
인물 차지 호장이라

 

호적 차지 장적빗과
수 잘 놓는 도서원

 

병서 일서 도집사
급창 형방 옹위하야

 

권마성이 진동허며
거덜거리고 들어간다

 

천파총 초관 집사
좌우로 늘어서고

 

오십명 통인들 별련 앞에 배행허고

 

육십명 군로사령 두 줄로 늘어서

 

떼기러기 소리허고

 

삼십 명 기생들은 갖은 안장

 

착전립 쌍쌍이 늘어서

 

사또, 탄원이 있소이다!
사또, 억울하외다

 

죽은 자식 놈 머릿수까지 채워
군포를 걷어들이니

 

이 어인 횡포란 말이오?

 

미쳤구만!

 

네 이놈, 니 죄를 니가 알렸다

 

도임행차 경호 책임자로
잡인의 접근을 엄히 단속치 못하여

 

사또의 심기를 어지럽혔사오니
황공무지로소이다

 

- 여봐라, 형방
- 예, 사또

 

저놈을 태형 십도에 처한다

 

어떤 수령도 부임 초에는
벌할 일도 말로 하고

 

큰소리 낼 때도
조용히 덮어두는 것이 관례인디

 

초장부터 지랄 발광을 떠는구만

 

시방 우리 보라고
먼저 선수를 치는디이

 

두고 봐야제, 안 그래요?

 

뛰어 봐야 벼룩이라는 걸
지도 떠날 때쯤이면 알아차리겠제

 

이보게들, 육방관속 점고를
뒤로 미루고

 

기생 점고부터
먼저 하겠다네, 그려

 

별꼴이 콩 튀듯 하네 그려

 

홍연이 등대나오

 

중추 8월 십오야에
광명 좋다, 추월이

 

예, 등대요

 

사또, 저 아이는 춤태가 제일
고운 아이로 고고무에 능하옵니다

 

오동복판에 거문고
사리둥 덩당 탄금이

 

예, 등대나오

 

거문고 솜씨가 남원 제일입죠

 

동방 사창 비친 달을
억조창생 사랑하니 애월이!

 

시조 짓고 장고 치는
솜씨가 일품이옵지요

 

은하수면 오작교에
칠월칠석 광설이!

 

예, 등대하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빠지는 것이 없는 아이옵니다

 

예, 여봐라 그렇게 느려서야
어느 세월에 끝내겠느냐?

 

자주 자주 불러라

 

- 앵앵이!
- 예, 등대나오

 

- 송절이, 운심이!
- 예

 

- 선월이, 금란이!
- 예

 

- 연열이, 창심이!
- 예

 

빨리빨리 나와

 

- 원향이!
- 예, 등대하오

 

춘단이!

 

기생 점고 다 헌 줄로 아뢰오

 

- 여봐라, 호방
- 예

 

이 고을에 춘향이라는
기생이 아름답기로

 

한양에까지 소문이 자자하던데
춘향이는 어찌 안 보이는고?

 

실이온즉, 다름이 아니오라

 

기생 점고 다 끝나도록
이곳에 대령치 않으니

 

이런 발칙함이 어딨는고?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춘향이로 말할 것 같으면

 

본래 양반의 귀출로서
올라가신 구관 자제 도련님이

 

머리를 얹혔나이다

 

머리를 얹혔으면 한양으로
데려갔다 그 말이냐?

 

그것이 아니옵고
제 집에서 수절하고 있사옵니다

 

수절이라

 

기생의 딸년이 수절을 한다면
사대부댁에서는

 

아주 요절을 하시겠구나

 

- 여봐라, 형방
- 예

 

잔말 말고 썩 불러 들여라!

 

군로사령이 나간다
사령 군로가 나간다

 

산수털 벙거지
남일광단 안을 올려

 

날램 "용" 자를 떡 붙이고
거덜거리고 나간다

 

걸렸다 걸리여!
게 뉘기가 걸리어?

 

춘향이가 걸렸다

 

옳다거니 그 제기 붙고 발기 갈 년이

 

양반 서방을 허였다고

 

우리를 보면 초리로 보고

 

당혜만 잘잘 끌고

 

교만이 너무 많더니

 

잘되고 잘되었다

 

두 사령이 분부 듣고

 

안 올린 벙치를 젖혀 쓰고

 

소소리광풍 걸음제를 걸어

 

어칠비칠 툭툭거려
녹림 숲속을 들어가

 

얘, 춘향아! 나오너라

 

마님, 사령들이 아가씨를 찾는데
뭔 일인지 모르것소

 

내가 깜빡했다, 오늘이 점고라더니
뭔 야단이 났는가 보다

 

아이고, 번수네들 어서들 오소

 

그동안 적조했네, 잘 있었는가?

 

춘향이 잡아들이란 사또 분부시네

 

나가 장방청 사령들한티 술 한잔
대접한다 한다하면서 여태까지 미뤄 갖고

 

속으로 영 서운했제?

 

뭐 죄끔 안 서운혔다면
거짓부렁이제

 

내가 하는 일 없이
영판 바빠 갖고

 

- 이렇게 서운하게 됐네
- 춘향아, 오라 받아라

 

우리가 한두 해 아는 사인가
푸소, 풀어, 이?

 

저 이거 용채나 쓰소

 

어허이 참, 죽간네...

 

- 어허 참
- 어허 참

 

어이, 김 번수
실렸네

 

춘향아, 이번 오신 사또는
평양 서윤으로 있을 적에

 

2년 동안 수청 들인 그곳 기생한테
행하로 3천 냥이나 내렸고

 

그리고 운산 현감으로 있을 때는

 

단 석 달 동안 수청 들인 수급비한테도
수백 냥이나 내렸단다

 

곱게 보여서 나쁠 거
하나도 없다 이?

 

여보게, 춘향이
우리가 말 잘해 줄 텐게

 

걱정하지 말고 따라오소 이

 

저... 잘 부탁허네 이

 

춘향 현신이오

 

춘향 대령이오

 

어여쁘다, 어여뻐
네 소문이 한양에까지 유명키로

 

내 밀양성 마다하고
남원 부사 하였더니

 

너 같은 일색을 만났구나

 

그래, 전전 구관 사또 자제가
니 머리를 얹었다지?

 

 

젊은 것이
독수공방할 수 있겠느냐?

 

응당 정 주는 사내가 있을 테니
관속이냐 건달이냐?

 

어려워 말고 자세히 아뢰어라

 

구관 댁 도련님과 백년가약 받들기로
단단 맹세하였으니

 

관속, 건달 사내 말씀
소녀에겐 당치 않습니다

 

니 마음 기특하나 이도령 어린아이
귀한 집에 장가 들고

 

대가 급제하게 되면

 

천 리 타향이 잠시 장난이지
니 생각할 리가 있겠느냐

 

오늘부터 너를 수청으로
작정한 것이니

 

몸단장 곱게 하고
수청 들도록 하라

 

제 비록 기생의 자식이오나
기적에 이름 올리지 않고

 

여염집 여자로 자라났나이다

 

기안에 착명치 않았다고 니 맘대로
기생 구실을 안 할 순 없느니라

 

구관을 보내고
새로운 사또를 모시는 것은

 

법전으로도 당연하고
관례로도 당연하거늘

 

요망한 말 다시 말고 수청 올려라

 

올라가신 도련님이
무심하여 찾지 않으시면

 

소녀 목숨 다하는 날까지
수절하게 함이오니

 

분부를 거두어 주소서

 

기생의 자식이 수절이라니
니 아니 요절할고

 

대부인께서 들으시면
아주 기절을 하시겠구나

 

사또님 대부인 수절이나
소녀 춘향 수절이나

 

수절은 일반인데
수절에도 상하가 있소?

 

뭐라?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는 불경이부절이라

 

사또도 국운이 불행하여
외적이 집정하면

 

무릎 꿇고 두 임금을 섬기리까?

 

뭐라고? 저런 죽일 년!

 

저년을 당장 끌어내라!

 

춘향 잡아 내렸소

 

어미가 기생이면
딸년 또한 기생이라

 

나라 법이 그러하거늘 너는 천기의
몸으로 관장의 명을 쫓지 않고

 

업신여겨 발악 거역하였으니
그 죄는 백번 죽어 마땅하다

 

내가 나라 곡식을 도적질하였소?

 

부모 불효를 하였소?
형제 있어 불화를 하였소?

 

살인 강도도 아니여든
이 형벌이 웬일이요?

 

어허, 니년이 나라 법을
모르는 년이로구나

 

그 나라 법이라는 것이
어떠한지 자세히 일러 주오

 

- 여봐라, 형방
- 네

 

법전을 내어 놓고
저년의 죄상을 낱낱이 일러 줘라

 

 

춘향이 듣거라

 

모반대역하는 자는
능지처참이라 하였고

 

거역관장하는 자는 엄하게 다스려
귀향을 보내라 하였으니

 

너 죽노라 한을 마라

 

나라의 높은 법이 그러할진대

 

수절하는 유부녀 강간하는 죄는
어찌 하라 하더이까?

 

저년이 아주 흉악한
악물의 딸년이로구나

 

여봐라, 저년에게 죽어도
좋다는 다짐장 받아 올려라

 

춘향아! 내가 부르는 대로 써서
사또께 올려라

 

천한 기생의 몸으로 관장의
엄명을 쫓지 않고 거역하였으니

 

그 죄 만번 죽어 마땅하옵니다

 

일심

 

- 집장사령
- 예이!

 

그년, 장처가 터지도록
각별히 매우 쳐야지

 

만일 헛장 하였다가는
니가 죽고 남지 못하리라!

 

예이!

 

집장사령 거동을 보아라

 

별현장 한아름을 덥숙 안어다가

 

동틀 밑에다 좌르르르르르

 

형장을 고르는구나

 

이놈도 잡고 느끈능청

 

저놈도 잡고 느끈능청

 

그중에 손잡이 좋은 놈 골라잡고

 

꼼짝 마라, 뼈 부러지리라

 

매우 쳐라!

 

춘향이 기가 막혀
온몸에 소름이 치고

 

정신이 막막하나
아프단 말은 죽어도 아니하고

 

고개만 빙빙 두루면서

 

사또 앞에 '일' 자로 포악을 허는디

 

'일' 자로 아뢰리다!

 

일편단심 이내 마음

 

일부종사허랴는데

 

일개 형장이 웬일이오

 

어서 바삐 죽여주오

 

매우 쳐라!

 

예이!

 

'이' 자로 아뢰리다

 

이부불경 이내 마음

 

이군불사 다르리까

 

이비사적 알었거든
두 낭군을 섬기리까

 

가망 없고 무가내오

 

'삼' 자 낱을 딱 붙여노니

 

삼생가약 맺은 마음

 

삼종지법을 알았거든

 

아무나 꺾을 수 있는
삼월화로 아지 마오

 

어서 바삐 죽여 주오!

 

'사' 자 낱을 딱 붙여노니

 

사대부 사또님이 사기사를 모르시오

 

사지를 쫙쫙 찢어

 

사대문에 걸쳐서도
가망 없고 무가내오

 

'오' 자 낱을 딱 붙여노니

 

오마로 오신 사또

 

오륜을 밝히시오

 

'육' 자 낱을 딱 붙여노니

 

오장육부가 일반인디

 

육부에 맺힌 마음

 

육시허여도 무가내오

 

'칠' 자 낱을 딱 붙여노니

 

칠척검 높이 들어

 

칠 때마다 동갈라도

 

가망 없고 안 되지요

 

'팔' 자 낱을 딱 붙여노니

 

팔방부당 안 될 일을

 

팔짝팔짝 뛰지 마오

 

'구' 자 낱을 붙여노니

 

구중분우 관장이 되어

 

궂은 짓을 그만허오

 

구곡간장 맺힌 마음

 

가망 없고 무가내오

 

'십' 자 낱을 딱 붙여노니

 

십장가로 아뢰리다

 

비켜! 비켜!

 

뭐여, 시방?

 

내 딸 춘향이가 맞아 죽었다는데
내가 왜 못 들어가냐, 이놈들아

 

아씨!

 

아가, 춘향아, 아이고
니가 이게 웬일이냐?

 

니가 이게 웬일이여?

 

신관 사또 데려와서
치민선정 아니하고

 

생사람 잡는 게냐, 이놈들아

 

제 낭군 수절한 게 그게 무슨
큰 죄가 돼서 이 형벌이 웬일이냐?

 

나마저 죽여라, 이놈들아!

 

내 딸 춘향이 살려 주오
내 딸 춘향이 살려 줘

 

비켜, 이년들아!

 

이리 좀 앉으시오

 

청심환 좀 먹입시다

 

오라버니, 좀 내려

 

방자야! 싸게 이리 앉혀

 

아이고 춘향아
아이고...

 

아씨!

 

아이구, 내 딸 춘향아

 

여기도 좀 물 좀 갖고 오니라

 

- 얼씨구나
- 춘향아, 정신 차려라

 

- 절씨구나
- 제발 정신 차려라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다

 

아이구, 저년 미쳤네

 

우리 춘향이하고
무슨 원한이 있어서 저 지랄이여?

 

쟤는 왜 저래?

 

진짜 왜 저래?

 

진주에는 의암 부인으로
칭송받는 논개 나고

 

평양에는 왜장 죽이고
자결한 월선 부인 계월향 있고

 

제 살점 떼어 내어
서방 살린 안동 기생

 

일지홍 열녀문 세워지고

 

임금님 목숨 살려
삼층각에 모셔 있는

 

청주 기생 화월이가 있더니만

 

이제 우리 남원에는
춘향 같은 열녀 나서

 

이름을 남기는구나

 

얼씨구 절씨구 칠씨구 팔씨구
얼씨구나 절씨고

 

옥방이 험탄 말을
말로만 들었더니

 

험궂고 무서워라

 

비단 보료 어데 두고
헌 공석이 웬일이며

 

원앙금침 어데 두고
짚토매가 웬일인고

 

천지야 삼겨 사람 나고
사람 삼겨 글자 낼제

 

뜻 정 자, 이별 별 자
어찌하여 내셨던고

 

이 두 글자 내던 사람
날과 백년 원수로구나

 

이 때의 도련님은

 

글공부 힘을 쓸 제
춘추 사략 통사기

 

사서삼경 백가어를
주야로 읽고 쓰니

 

동중서 문견이요
백낙천 계수로다

 

국가의 태평허사 경과 보실제

 

대제학 택출하야 어제를 내리시니

 

도승지 모셔내어
포장 위에다 번뜻 거니

 

그 글에 하얐으되
'춘당춘색고금동'이라

 

동두렷이 걸었거늘

 

이도령 바라보고
시제를 펼쳐 놓고 해제를 생각하야

 

용지연에 먹을 갈고
감음에 붓을 풀어

 

왕희지의 필법으로
조맹부 체격이라

 

일필휘지 지어내어
일천에 선장허니

 

상시관이 글을 보고
칭찬허여 이른 말이

 

문안도 용커니와
귀작이 거룩허니

 

자자에 비점이요
귀귀마다 관주라

 

장원급제 방 내거니

 

이몽룡 신래이

 

이몽룡 신래이

 

이렇듯 부른 소리
장중이 뒤집히고

 

춘당대 떠나가듯
선풍도골 이몽룡

 

세수를 헌 연후에
도포도 다시 입고

 

정언사령께 부액하야
신래진퇴 한 연후

 

어주 삼배 내리시니

 

이 몸이 황홀하야
황송히 받아 먹고

 

천은을 배사허고
계하로 나오실 제

 

머리 우에 어사화요

 

몸에는 청포흑대

 

좌수에 옥홀이요
우수에 홍패로다

 

초입사 한림 주서
대교로 계실 적에

 

그때 나라 경연들

 

전라 어사를 보내실 제

 

이몽룡 입시시켜
봉서 한부를 내어 주시니

 

비봉에 호남이라

 

사척 육척 마패
수의를 몸에 입고

 

직속에 하직숙배
전라도로 내려온다

 

남대문 밖 썩 내달아
철패 팔패 청패 배다리

 

애오개 얼른 넘어
동작강 월강하야

 

과천에 중화허고 사그내
미륵당이 골사그내를 지나야

 

상류천 하류천 대황교 떡전거리
오목장터를 지나여

 

칠원 소사 광전 활원
모로원 공주 금강을 월강허여

 

높은 한질 널태 무내미
뇌성 풋개 사다리 황화정

 

지아미고래를 얼른 넘어

 

여산읍을 당도헐 제

 

- 서리
- 예!

 

너는 예서 내려 우도로 염문하되

 

여산 다녀 익산 보고
김제 다녀 태인 보고

 

정읍, 고창을 두루 거쳐

 

내월 십오일날
남원 광한루로 대령하라

 

예!

 

- 중방
- 예!

 

너는 예서 내려 좌도로 염문하되
고산, 금산, 무주, 용담, 진안

 

장수, 운봉을 두루 거쳐

 

- 같은 곳으로 오도록 하라
- 예!

 

여 여어허 여허 여어루 상사뒤여

 

- 여보시오, 농부님네
- 예

 

이내 말을 들어 보소
어하둥둥 내 말을 듣소

 

이마 위에 흐르는 땀은
방울방울 열매 되고

 

이 낫 끝에 드는 벼는
덩얼덩얼이 황금이로세

 

여 여어허 여허 여어루 상사뒤여

 

거 이리 오시오
참이나 같이 먹읍시다

 

아니, 괜찮소

 

내가 떠도는 몸이라

 

남원 고을 친구에게 신세나
좀 질까 해서 찾아가는 길인데

 

이 고을 형편은 어떻소?

 

우리 고을은 사망이 물밀듯 하오

 

아니, 사망이라뇨?

 

원님은 허구헌 날 술로 주망이요

 

책실은 젊은 나이로 노망이요

 

아전은 투전하다 도망이요
백성은 원망이니

 

그 아니 사망이 물밀듯 하오

 

이 고을 말이 아니오, 그려

 

어디 그뿐인 줄 아시오?

 

이번 사또 생일 잔치에
가가호호에 백미 삼 석

 

돈 칠 푼에 계란을
세 개씩 거두니

 

아주 백성들을
쥐어 짜 죽이는구려

 

그런데 오다가 들으니
사또가 호색하여

 

춘향이라는 기생을 첩으로 두고

 

주야로 호강한다니
그 말이 사실이오?

 

- 뭣이여, 이놈이!
- 저런 싸가지 없는 놈 좀 보소

 

본관의 모진 매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정절을 지킨

 

우리 춘향 아씨를 모함을 해?

 

여보시오 농부님
내 떠도는 말을 그냥 옮겼기로

 

무슨 화를 그리 내시오?

 

이런 싸가지 없는 놈!

 

그런 말 퍼뜨리고
댕기는 게 누구여?

 

보았으면 눈구녕을
확 뽑아 버릴 것이고

 

들었으면 귀구녕을
짝 찢어 버릴 것이여

 

- 저놈 잡아라
- 저놈 잡아!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
한양 천리를 어이 가리

 

오날은 가다가 어디 가 자며

 

내일은 가다가 어디 가 잘거나

 

내 팔자 기박하여
길품을 팔거니와

 

옥중 춘향 신세가
더 불쌍허네

 

어이 가리너 어이 갈거나

 

여봐라, 이리 오너라

 

너 이놈, 이리 오너라!

 

나 부르셨소?

 

아니, 바쁘게 가는 사람
왜 부르시오?

 

- 내가 한양 살기로 묻는다만
- 한양이어라?

 

너는 한양 천리 그 먼 길을
누구 댁을 찾아가느냐?

 

남원 옥중 성춘향 편지
맡아 가지고

 

한양 삼청동 구관 댁 도령
이몽룡 씨를 찾아가는 길이오만

 

- 그 편지 나 좀 보자
- 뭐이라고라?

 

남자 편지도 못 보는디
하물며 남의 여자 내서를

 

이런 대로변에서 보자고라우?

 

이놈아, 날 몰라보느냐?

 

똑바로 보아라

 

아이고, 이게 웬일이다요
아이고, 도련님

 

소인 문안이요

 

대감 마님 행차 후에
안녕하옵시며

 

서방님도 먼먼 길에
노독이나 안 나셨소

 

그런데 이 남원에 웬일이다요?

 

이놈아!
어서 그 편지 내어라

 

도련님과 이별하고
세월이 유수라

 

3년 세월이 훌쩍 지났사오나

 

어찌하여 척소한 소식
한 장 없소이까?

 

혹여 한양 가신 도련님은
행화춘풍 거리마다 취하셨을까

 

청루미색 집집마다 보시는 미색에
마음을 뺏기셨을까

 

양가 댁 귀한 규수 소중한 혼처 있어
먼 곳에 천첩을 잊으셨을까?

 

찢기는 시름으로
화조월석을 보냈나이다

 

신관 사또 도행 후
수청 들라 하옵기로

 

죽음으로 물리치다
참혹한 악형을 당하여

 

모진 목숨 아직 끊기진 않았으나

 

사또 생일 잔치에
나를 내어 쳐 죽인다 하니

 

미구에 장하지혼이 되게
생겼사외다

 

이 가증스러운 놈!
네 이놈을 당장!

 

아니, 어디서 이렇게
찬바람이 쌩하니 분다요?

 

우리 춘향 아씨 살릴
찬바람 아닌가 모르겠네요?

 

우리 서방님이 거지꼴로
내려올 리 만무한데 혹시...

 

- 어... 어사또
- 이놈아! 넘겨짚어도 유분수지

 

너 이놈, 마침 잘되었다

 

길 나선 김에 한양 본가에
내 편지 좀 전하고 오너라

 

박석치 올라서서

 

좌우 산천을 둘러보니

 

산도 옛 보던 산이요

 

물도 옛 보던 녹수로구나

 

광한루야, 잘 있으며
오작교도 무사터냐

 

광한루 높은 난간
풍월 짓든 곳이로구나

 

나삼을 부여잡고
누수 작별이 몇 해나 되며

 

황혼을 승시허여

 

춘향 문전을 당도허니

 

후원에 울음소리

 

은은히 들리거늘

 

그곳을 가만히 살펴보니

 

그때여 춘향 모친은

 

후원에다가 단을 뭇고

 

북두칠성호야반에

 

촛불을 돋워 키고

 

정화수를 받쳐 놓고

 

지성축수로 비는구나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나님 전에 비나이오

 

천지지신 일월성신

 

화위동심허옵소서

 

올라가신 구관 자제 이몽룡 씨

 

전라 감사나 암행어사나

 

양단간에 수의허여

 

내 딸 춘향을 살려 주오

 

내가 공부 잘해
어사 한 줄 알았더니

 

장모와 향단의 덕이
절반도 더 되었구나

 

안에 아무도 없느냐?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누굴 찾으시오?

 

너의 마나님 좀
잠시 나오시라고 여쭈어라

 

누구냐?

 

어떤 사람이 마나님 좀
잠시 나와 보라고 여쭈라는디

 

차린 꼴을 보니까
동냥하러 온 사람인가 봐요

 

뭣이여?

 

어허, 물색 모르는 처걸이나
소문도 못 들었는가?

 

내 딸 어린 춘향이가 옥 중에 갇혀
목숨이 끊어지게 되었는데

 

동냥은 무슨 동냥이여?
동냥 없네, 썩 가소!

 

내가 왔네

 

한양 삼청동 사는
이몽룡이 왔네!

 

아니, 이게 누구 말이여?
아니, 이게 참말이여, 농담이여?

 

- 향단아, 불 좀 가져오니라
- 네

 

우리 사위 왔는가?

 

어디 갔다 이제 왔는가?

 

어디 보세, 어디 보세
우리 사위!

 

누구야?

 

저, 구관 사또 자제 모양 좀 보소

 

워따매
열녀 춘향 서방 꼴 좀 보소

 

춘향이 죽었네

 

우리 춘향이 영 죽었네

 

전라 어사나 전라 감사 되어 오라고
밤낮으로 빌었더니

 

팔도 거지 중에
상거지가 돼서 왔네, 그려?

 

집안에 변고가 생겨
아버님 벼슬도 끊어지고

 

과거도 못 보고

 

가산은 다 탕진하여
유리걸식 다니다가

 

옛정이 생각나서 이리 찾아왔네

 

내가 지금 시장하니
밥이나 한술 주소

 

밥 없네!

 

마님, 그리 마시오

 

서방님 괄시허였단 말
아기씨가 들으면

 

옥중자결을 할 것잉께

 

너무 괄시하지 마시오

 

잘 먹었다!

 

먹는 꼴을 본께
많이 빌어 처먹은 솜씨구만!

 

거 입맛도 살림살이
형편 따라가는 것일세

 

아까는 시장하여
내 어쩐 줄 모르겠더니

 

이제 오장단속을 떡 하고 나니
춘향 생각이 나네

 

- 춘향이한테 데려다 주소
- 춘향이 죽고 없네

 

가세!

 

나로 인해 죽을 목숨인데
안 보고 갈 수 있나?

 

- 어서 가세
- 지금 못 가십니다

 

신관 사또 강짜가 어찌나 센지

 

밥이나 미음을 넣어 주는데도
사내 손으로 못 넣게 하고

 

옥문 거리에 수캐 하나
얼씬 못하게 하는데

 

서방님 온 줄 알면
생죽음이 날 것이구만요

 

파루 쳐서 새벽 되거든
그때 가시어 잠깐 보시오

 

아이고, 불쌍한 것!

 

초경 이경

 

삼사 오경이 되어 가니

 

파루 시간이 되는구나

 

향단이는 앞을 세우고

 

걸인 사위는 뒤를 따러

 

옥으로 내려갈 적

 

밤 적적 깊었난디

 

인적은 고고허고

 

밤 새 소리는 푸푸

 

물소리는 주루루루루

 

도채비는 휫휫

 

바람은 우루루루루루루

 

지둥치듯 불고

 

궂은비는 퍼붓난디

 

귀신들은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이히 이히 이히

 

사정이! 사정이!

 

아이고, 염병할 놈들
또 투전하느라고 정신이 없구만

 

- 옥사정!
- 누구여?

 

왔는가?

 

내일 사또 생신 잔치를 앞두고
명령이 지엄하여

 

아무도 들일 수 없네
돌아가소

 

아이고, 왜 또 그래쌌는가?
이것 받소, 잉?

 

야, 덕배야! 야, 덕배야!

 

빗장 열어, 이 새끼야!

 

우리 애기 먹을 거네
좀 넣어 주소!

 

- 뭐 딴 거 안 들었지?
- 아이고, 이 사람아

 

가 보소!

 

아가, 춘향아!

 

정신 차려라, 에미 왔다!

 

어머니, 이 새벽에 어찌 나오셨소?

 

- 왔다, 왔어!
- 오다니 누가 와요?

 

주야장창 기다리고 바라던
네 서방인지 남방인지

 

잘되고 잘되서 여기 왔다

 

너 좀 봐라

 

아이고, 이거 웬 말씀이요?

 

얘, 향단아, 등불 밝혀라!

 

예!

 

춘향아 나다!
네가 이게 웬일이냐?

 

아이고, 서방님
어찌하여 이제 오셨소?

 

그 좋던 얼굴이
이 모양이 웬일이요?

 

아이고, 죽으나마 서방이라고
환장을 하네 그려

 

내일이면 죽을 년이

 

춘향아!

 

서방님!

 

내일 본관 사또 생일 잔치 끝에
나를 죽여 내치거든

 

아무도 손 못 대게 하고
서방님이 묻어 주되

 

서울로 올라가서
서방님 선산 밑에 나를 묻고

 

정조, 한식, 단오, 추석

 

선대감 제사 올린 후에
주과포 따로 차려 놓고

 

'춘향아, 내가 주는 술이니
많이 먹어라'

 

이 말씀만 하여 주면
난 아무 여한이 없겠나이다

 

어사또 기가 막혀

 

우지 마라 우지 마라

 

내 사랑 춘향아, 우지 말아라

 

내일 날이 밝거드면

 

상여를 탈지 가마를 탈지

 

그 속이야 뉘가 알랴마는

 

천붕우출이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궁기가 있는 법이니라

 

우지를 말라면 우지 마라

 

장모, 어서 갑시다

 

자네 이제 어디로 갈랑가?

 

- 자네 집으로 가지
- 나 집 없네

 

- 아까 그것은 뉘 집인가?
- 오과수 댁 집이네

 

과수 댁 집이면 더욱 좋지

 

더욱 좋아? 오살허겄다

 

가자, 이 년아!

 

이튿날 청명 후에

 

본관의 생신 잔치
광한루 차리난듸

 

매우 대단하구나

 

주란화각은 벽공에 솟았난듸

 

구름 같은 차일 장막
사면에 둘러치고

 

물색 좋은 청사 휘장
사면에 둘러치고

 

홍사등롱 청사초롱

 

밀초 꽂아 연도마다
드문드문 걸었으며

 

기생 가객 광대 고인
좌우에 벌였난디

 

각읍 수령이 들어온다

 

겸영장 운봉 영감
승지 당상 순천 부사

 

연치 높은 곡성 원님
인물 좋은 순창 군수

 

기생 치례 담양 부사
자리 호사 옥과 현감

 

부채 치레 남평 현령
무사한 광주 목사

 

사면에 들어올 제
별연 앞에 권마성

 

포꼭 뛰어 포촉 소리

 

일산이 팟종지리 백이듯 허고

 

행차 하인들은 어깨를 서로 가리고

 

통인 수배가 벌써
저의 원님 찾느라고

 

야단이 났구나

 

받으시오, 받으시오

 

이 술 한 잔 받으시고

 

천년만년 수를 누리소서

 

바쁘신 가운데도 이렇게 찾아주시니
대단히 감사하오

 

춘심이 저년은
엊그저께 쌍둥이를 뺐다는데

 

잘도 돌리네 잉!

 

금산, 아전 놈들이 상납미를 빼돌려
큰 말썽이 났다더니 어찌 되었소?

 

네, 잘 수습됐지요!

 

자, 쓸데없는 얘기 그만두고
술이나 한 잔 받으시오

 

이것 보시오, 순천

 

보아하니
밤새워 치를 잔치인 것 같은데

 

그때까지 자리를 하시게요?

 

암, 당연하지요

 

잔치가 끝날 무렵
춘향을 장사를 한다는데

 

그런 좋은 구경거릴
놓칠 수야 있겠소?

 

우리 집장사령 중에는

 

단 한 대로 장사를 시키는
솜씨 좋은 놈이 있소마는

 

여기도 그런 기술자가 있겠죠?

 

이 많은 구경꾼들이
왜 모여들었겠소?

 

아따, 무작스럽게 몰려드는구마

 

임실, 오수, 운봉, 남원 인근
거지들도 다 몰려들었대

 

소가 두 마리, 돼지가 열댓 마리에
남원 닭은 싸그리 걷어 올렸다는데

 

우리한테도
뭐 돌아오는 거 있겄지?

 

아, 그럼

 

여보시오, 임실
혼자 늦으셨으니

 

그 벌로 춤 솜씨나
한번 보여 주십시오

 

거 임실은 정사만
잘 돌보는 줄 알았더니

 

춤도 잘 추는구먼, 응?

 

춤뿐인 줄 아시오?
오입 또한 빠지지 않으시지요

 

여보시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함부로 들어오시오?

 

비켜라!

 

아니,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지
왜 이러시오?

 

비켜라, 이놈들!
나도 여기 들어갈 양반이다

 

아니 되오, 내려 가시오

 

비켜라, 이놈아

 

- 너희는 양반도 몰라보느냐?
- 아니, 이 사람이

 

- 내려와요
- 놔라, 이놈아!

 

가난한 양반 옷 찢어진다

 

여기는 통지 받으신 분들만
모시는 자리요

 

놔라, 이놈아

 

왜 이리 소란스러우냐?

 

걸인 차림의 과객이 부득불
들어오겠다고 떼를 씁니다요

 

- 본관장!
- 네!

 

저 걸인이 비록 의관은 남루하나
필시 양반의 후예인 듯하니

 

말석에 앉히시고 술잔이나
먹여 보내심이 어떠신지요?

 

운봉장 뜻이 그러시면
그렇게 하시지요

 

뫼셔라

 

오르시지요!

 

벗고 오르시지요!

 

- 한 잔 드시지요
- 예

 

여보시오

 

거 내 상을 보고 이 상을 보니
속에서 불이 나오구려!

 

손님이 늦게 오셔 불시에 차리느라
조금 부족한 게 있나 보구려

 

잡숫고 싶은 것이 있거들랑
내 상에서 같이 잡숩시다

 

자, 술이나 한 잔 받으시오

 

- 운봉
- 받으시오

 

아, 예

 

올겨울에 중림당 모임이 있는데
그 곡성이 한번 들려주시구려

 

그러지요

 

여보시오! 운봉 현감이신가 본데

 

그렇다오!

 

나도 기생 하나 불러
내 앞에 권주가나 쳐 주시오

 

얘야, 권주가 한자리 불러 드려라

 

말 타면 경마 잡고
싶어진다더니 권주가라네

 

진실로 이 잔을 잡으시면

 

천만 년이나 빌어먹으리다

 

이 술 먹고 천만 년이나
빌어먹으라 하였으나

 

나 혼자 빌어먹으면 수십 대를
빌어먹어도 다 못 빌어먹겠으니

 

우리 좌중에 나눠 먹고
당대씩만 빌어먹읍시다

 

어허! 저런 방자한 것이 있나

 

이렇게 대접도 받았으니

 

본관장 장수를 비는
글이나 한 수 지어 올리지요

 

사또, 젊은 놈이
저리 버릇이 없으니

 

필경 제 집안이
남봉으로 글이 짧을 것이니

 

운자나 내어 쫓아 버리시지요

 

이보게, 나그네!
내가 운자를 낼 터인데

 

운자대로 글을 못 지으면
곤장 5대로 내치리라

 

좋소이다!
어디 내 보시지요

 

기름 고! 높을 고!

 

둘째 구와 마지막 구에 운자가
들어간다는 것쯤은 아시겄지!

 

과객의 글이 오죽하리오마는
잘못된 데가 있으면 보고 고치시오

 

자! 좌중에 폐가 많았소이다

 

원 싱거운 놈 같으니...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가효는 만성고라

 

촉루락시민루락이요

 

가성고처원성고라

 

운봉, 이 글에 독이 들었소!

 

미친 놈이구만

 

본관장, 나는 급한 일이 생겨
먼저 가 봐야 되겠소

 

- 나도 그만 떠나야겠소
- 곡성, 왜 이러시오?

 

본관장, 나는 내자의 병이
위중하여 먼저 가야 되겠소

 

나도 부득이 왔더니
그만 가 보겠소이다

 

왜들 이리 파흥을 놓소?

 

새파랗게 어린아이

 

아니 그것도 지나가는 웬 미친 아이
써댄 글을 보고 이 소란들이오?

 

앉으십시다! 앉아요들!

 

어사또 거동 봐라

 

어 이리 하다가는

 

이 사람들 굿도 못 보이고
다 놓치겄다

 

마루 앞에 썩 나서서
부채 피고 손을 치니

 

그때의 조종들이
구경꾼에 섞여 섰다

 

어사또 거동 보고
벌떼같이 달라든다

 

육모 방망이 들어매고

 

해 같은 마패를
달 같이 들어매고

 

달 같은 마패를
해 같이 들어매고

 

사면에서 우루루루루루

 

삼문을 와닥딱

 

암행어사 출두여!

 

출두여!

 

암행어사 출두하옵신다

 

두세 번 부르난 소리
하날이 덤쑥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수백 명 구경꾼이

 

독담이 무너지듯이
물결같이 흩어지니

 

항우의 음아질타
이렇게 무섭든가

 

장비의 호통소리
이렇게 놀랍든가

 

유월의 서리 바람
뉘 아니 떨겄느냐

 

각읍 수령은 정신 잃고
이리저리 피신할 제

 

하인 거동 장관이라

 

밟히나니 음식이요
깨지나니 화기로다

 

장구통은 요절하고
북통은 차 구르며

 

뇌고 소리 절로 난다

 

제금 줄 끊어지고
젓대 밟혀 깨야지면

 

기생은 비녀 잃고
화젓가락 찔렀으며

 

취수는 나발 잃고
주먹 불고 홍앵홍앵

 

대포수 총을 잃고 입방포로 쿵

 

이마가 서로 다쳐 코 터지고
박 터지고 피 죽죽 흘리난 놈

 

발등 밟혀 자빠져서
아이고 아이고 우는 놈

 

아무일 없는 놈도
우루루루루루 달음박질

 

허허 우리 고을 큰일났다

 

이곳 남원은 남쪽 지방에서도
옥답이라 국세의 근간이 되거늘

 

너희 아전 놈들 농간으로
피폐함이 극에 달하였도다

 

수령을 보좌하되
혹여 사사로운 이익으로

 

목민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잘 살펴야 하거늘

 

오히려 본관을 속여 가며
네놈들 살찌우는 데만 급급하였구나

 

곤궁하고 병들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원망이
들리지도 않더란 말이냐?

 

지금까지 억울하게 빼앗긴
백성들의 재물을 모두 돌려주고

 

옥에 갇힌 죄 없는
백성들을 방면하되

 

천기로서 관정발악하고
능욕관장한

 

춘향이란 죄인을
즉시에 잡아들여라

 

춘향아, 우리 왔다!

 

남원 사는 과부들
죄다 몰려올 것잉께 걱정 말아라

 

- 포승을 풀어라
- 예!

 

춘향이 듣거라!

 

너는 일개 천기의 자식으로
관정발악하고 능욕관장하였다니

 

그리하고 어찌 살기를 바랄까?

 

두 지아비를 섬기는 것은
두 임금을 섬기는 것과 같다고

 

실증으로 아뢰었을 뿐이지
무슨 능욕을 했다 하시오니까?

 

네가 본관 수청은 거절하였지만

 

잠시 지나는 수의사또
수청도 거역할까?

 

나라에서 수의어사를 보내셨다기에

 

백성들의 질고를
살피실 줄 알았더니

 

초록은 동색이요
양반은 모두 일반이구려

 

그만 놀리시고
어서 바삐 죽여 주오!

 

이것 갖다 춘향 주고
얼굴을 들어 대상을 살피라 일러라

 

이걸 보고 얼굴을 들어
대상을 살피라 하시네

 

아이고메

 

여봐라, 뭣들 하느냐?
어서 상방으로 안아 올려라

 

비켜라

 

춘향아!

 

춘향아, 정신 차려라!
춘향아, 춘향아!

 

춘향아

 

그리 마셔요! 그리 마셔요!

 

어젯밤 오셨을 때 한 말씀이라도
하셨으면 잠이라도 편히 자지

 

밤새도록 애태웠소
혼자서 12번을 살다 죽었소

 

춘향아!

 

울지 말아라

 

국명이 지엄키로 천기누설될까
너에게도 말 못한 것이니

 

- 네 요놈들
- 울지 말아라

 

요즘도 삼문간이 그리 드세냐

 

열녀 춘향 난 배로다

 

어사 장모 행차시다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절씨구

 

남원부중 사람들아

 

이 내 한 말씀 들어 보소

 

아들 낳기를 원치 말고

 

춘향 같은 딸을 낳아

 

곱게 곱게 잘 길러

 

서울 사람이 오거들랑

 

묻도 말고 사위를 삼소

 

얼씨구 절씨구 절씨구

 

얼씨구나 내 딸이야

 

얼씨구나 내 사위

 

어제 저녁 오셨을제

 

어사 한 줄은 알았으나

 

남이 알까 염려가 되어

 

천기누설을 막느라고

 

너무 괄세하였더니

 

속 모르고 노여웠지?

 

본관 사또 괄세 마오

 

본관이 아니었다면

 

열녀 춘향 어디서 날까

 

곧 전라 감영으로 옮겨질 것이니

 

봉고파직이 억울하거든
그곳에서 원정 올리시오

 

미색을 탐하는 것은
영웅열사 일반이오만

 

수청 거절한 괘씸죄를
그리 과하게 다스리셨소?

 

사농공상, 엄연한 질서가 있거늘

 

애미 신분을 쫓아 기생이 되고
종놈이 되는 종모법을 아니라 하니

 

이는 나를 향한 발악이 아니라

 

이 나라의 근본을 부정하는
국사범에 다름 아닐 것이오

 

그것이 당신의 지나친 폭압에 대한

 

사람이고자 하는 의지였다고
생각지 않으시오?

 

그때의 어사또는

 

이 고을 저 고을 다니시며

 

출두 노문 돈 연후의

 

서울로 올라가겨

 

어전에 입시허여
서계 별단 헌 후에

 

우에서 칭찬허고

 

나라의 깊은 걱정 경이 막고 오니

 

국가에 충신이라

 

한림이 복지주왈

 

남원으 춘향 내력을
종두지미를 품고하니

 

춘향을 올려다가
열녀로 표창하고

 

남원골 백성들은
세역을 없앴으니

 

천천만만세를 누리더라

 

그 뒤야 뉘 알소냐, 더질더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