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은 바람이 세네.

 

고양이 할머니, 있어?

응?

 

자, 밥이란다.

 

쿠로랑 하나코는 참치고,

타마는 닭가슴살,

토라한텐 연어,

꼬리 할아버지에겐 시니어용.

어느 애든 개성적이라 귀엽네.

 

평소보다 눈부신거 같아.

 

그러고 보니,
고양이 할머니가 말했지.

 

바람이 강하고 고양이가 술렁이는

눈부신 만월의 밤에는

뭔가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고.

 

오, 예쁘게 찍혔네.

 

다음에 고양이 할머니한테
보여줘야지.

 

어라?

 

내장 공사 같은 거 했던가?

 

여어.

 

잘 오셨습니다, 현자님.

엘리베이터의 행선지는
제가 안내해드리지요.

 

저는 서쪽의 마법사 무르.

행선지는
커다란 재앙으로 무너질 뻔한 세계.

 

만나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사랑스러운 현자님.

지금부터 현자님을

아주 조금 성가신 일에
말려들게 할지도 모릅니다.

 

자, 성가신 일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연애 문제, 명예에 전쟁,

가족, 지인, 앙갚음, 은혜갚음.

이번엔 그 중에서도
가장 성가신 문제,

세계 구제.

당신이 그걸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뭐지, 이거?

꿈 꾸고 있는 걸까?

이제 곧 도착한답니다.

 

세계도 저도
꽤나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지만요.

 

당신은 분명 제게 실망하시겠지요.

그래도 당신과 벗이 될 수 있다면

저는 무척 기쁠 겁니다.

 

총명한 현자님,

당신을 만나뵙게 되는 날을

오랫동안 기다려마지 않아왔습니다.

본심을 말하자면
세계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남을 돕는 일은 귀찮으니까요.

다만,

 

이 세계의 진실을
당신이 찾아내주셨으면 합니다.

 

잠까...!

 

마법사의 약속

마법사의 약속

 

현자님!

 

바람이 강하고, 고양이가 술렁이다
현자님께서 오셨다!

바람이 강하고, 고양이가 술렁이다
마법사 놈들이 소환에 성공했다!

현자님 만세!

만세!

 

에.. 에 또, 잠시만요!

여러분들, 뭐 하고 계신가요?

이거 무슨 몰래 카메라?

어딘가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거나?

잘 오셨습니다, 현자님.

저는 중앙의 나라의 마법 관리 대신
드루몬드라고 합니다.

저기, 저는 중앙의 나라의 서기관,
콕 로빈입니다.

저희들은 모두,
현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재앙과 싸워서
세상을 구해주시도록.

자, 중앙의 성으로 모셔다드리지요.

싸워서 세상을 구해?

그런 게임이나 뭔가인가요?

신형 VR 체험이라든가?

곤란한데요, 그런 건...

아, 걱정 마시길.

위험할 일은 없습니다.

실제로 싸우는 건
마법사 놈들입니다.

마법사?

네,

고양이처럼
말을 안 듣는 놈들입니다만,

어째선지 반드시 옛날부터

이계에서 온 현자의 말만은 따릅니다.

드루몬드 님!

보고 드릴 것이.

 

뭐라고, 마법사 놈들이?

위험하군.

현자님!

중앙의 나라의 성으로 서두르시지요!

자, 잠시만요.

전 그다지 RPG를 안 해서,

좋은 리액션은 못해요.

데려갈 거면 다른 분을...

 

강제로라도 오시게 해야겠습니다!

 

너희들!

 

드루몬드 님,

지나치신 게...

시끄럽다!

잘못한 건 마법사 놈들이다!

 

하늘을 날고 있어?

 

네 말이 맞았구나, 히스.

 

설마, 마법 관리성 녀석들이
현자를 납치하러 올 줄이야.

말했잖아.

인간들은 우리를 신요와지 않아.

 

눈동자의 색이 달라.

 

네가 새로운 현자님이구나?

 

나는 중앙의 나라의 마법사 카인.

널 지킬 기사이기도 해.

네 이름은?

아, 아키라예요.

아키라 님!

잘 부탁해!

 

우선은...

이 녀석들을 어떻게든 하자.

 

카, 카인 기사단장!

카인 기사단장이야.

에잇, 전(前) 기사단장이다!

더는 너희들의 지휘관이 아니다!

카인!

대신인 나에게 검을 들이대다니,

반역죄로 처벌하겠다!

나도 노인을 위협하고 싶진 않아.

하지만 우리들의 현자님께
묘한 짓을 한다면 얘기는 달라.

미안하지만,
적당히 봐주진 않을 거야.

 

어이, 어이,

적의 기백에 휩쓸리지 말라고
가르쳤을 텐데?

배에 힘 딱 주고 내게 덤벼.

상대가 나라도 말이다.

자, 덤벼.

아, 네!

카인, 몇 번을 말해야 알겠나?

여기에 있는 병사들은
네 부하가 아니다!

명령은 내가 내린다!

별걸 다 따지네.

네가 대충인 거다!

그런 식이니

기사단장 자리에서
쫓겨나고 그러는 거다!

알았어, 알았어,
뭐든 상관없어.

얼른 해줘.

하시죠, 각하.

 

제군들, 쳐라!

 

대단해...

 

우와, 예쁜 아이.

유리 세공 같아.

 

동쪽 나라의 마법사,
히스클리프입니다.

 

이쪽으로.

 

역시 이상해.

우리 멘션, 이런 계단 없었는데.

 

저, 저기, 물어봐도 될까요?

네.

 

괜찮으세요?

안색이 무척 안 좋아요.

 

죄송합니다.

이제 거의 마력이 남지 않았어요.

마력?

커다란 재액과의 싸움을 끝낸 참이라.

카인도 한계...

놓치지 마라!

붙잡아라!

 

협공하자!

이거라면 도망 못 치겠지.

걱정마세요, 현자님.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안색이...

 

렙세브 아이볼프 스노스.

 

괘,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서두르시죠.

금방 마법은 풀려버릴 겁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파우스트 선생님이...

 

연기로 보이진 않아.

전부, 현실?

 

히스, 무사해?

괜찮아.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오늘밤의 바람은
피부에 들러붙는군요.

마치,

뒤끝있는 애인의 손가락 같아.

 

중앙의 탑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카인과 히스클리프는 무사할까요?

어허, 한눈 팔지 마세요.

두고 갈 겁니다.

지금 갈게.

 

현자님, 이쪽으로.

네.

 

마법이 풀리겠어.

 

현자를 붙잡아!

어라, 없어.

어디로 갔지?

바보, 네 뒤야!

 

뭐지, 이 향기?

와인 같은
어질어질한 달콤한 향기...

 

좋은 밤이에요.

샤일록!

못된 아이,

카인과 둘이서 무리를 하고.

하늘을 나는 것도
고작이었을 텐데요.

하지만,

파우스트 선생님이...

 

알고 있습니다.

뒷일은 우리들에게 맡기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현자님.

저는 서쪽 나라의 마법사, 샤일록.

마, 마법사가 더 늘었어!

거, 겁먹지 마!

커다란 재액과의 싸움으로
힘을 다 써버렸을 거야!

 

어라라?

왠지 즐거워지기 시작했는데...

 

따뜻할거 같은 침대야.

그냥 자야지.

좋은 꿈을.

 

샤일록, 덕분에 살았어!

빚으로 쳐둘게요.

다음에 한 잔 대접해주세요.

한 잔이랄 것도 없이
밤새 어울려주지.

 

현자님, 가시죠.

가시죠, 라니, 어디로요?

 

이 사람들은 뭐지?

여긴 어디지?

 

미안했어.

현자님은 이계에서 찾아오는 거였지.

이계?

아무것도 모르는데
따라오라고 해봤자 무섭겠지.

에 또...

카인,

이 세계나 현자의 역할에 대해

전부 설명하고 있을 틈은 없어요.

알고 있어.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를 데리고 가는 건

기사의 방식이 아니야.

 

아키라,

제일 중요한 설명을 하지.

우리들은 네 힘이 필요해.

네 힘을 빌려줘.

 

왜냐하면,

우리들이 처참하게 졌기 때문이야.

매해 간단히 이겼던 승부에서
크게 졌어.

방심하려던 것도
대충하려던 것도 아니야.

수염쟁이 영감들은

우리들이 대충 일을 했다고 생각해서
화내고 있어.

하지만 그게 아니야.

뭔지 알 수 없는 채
우리들은 지고,

동료들을 절반 잃었어.

더는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아.

그러니,

네 힘을 빌려줬으면 해.

물론 그건 우리들의 억지야.

이 세계는 네 세계가 아니고,

너도 하고 싶은 게 있겠지.

너에겐 거절할 권리가 있고,

그건 누군가가 탓할 일이 아니야.

하지만 우리들은 어떻게 해서든

네가 필요해.

 

네가 함께 와줘서
힘을 빌려준다면

뭐든 하겠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한의
용기와 성의를 보여주겠어.

이 몸으로 갚을 수 있을 만큼의
감사와 답례를 표하겠어.

이 맹세에 실체는 없지만,

부디 부탁해.

우리들을 믿고,
우리들에게 힘을 빌려주지 않겠어?

 

카인이 하는 말은
잘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그의 진지함과 성실함은

말이나 눈빛으로부터

힘차게 전해져 온다.

 

꿈인지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뭐가 뭔지 모를 상황에서

그것만은 진짜처럼 여겨졌다.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누군가가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어.

 

힘을 빌려준다는 게,
뭘 하면 되는 건가요?

선생님을,

파우스트 선생님을
살려주셨으면 해요!

파우스트 선생님?

우리들의 동료야.

죽어가고 있어.

네가 있으면
살릴 수 있을지도 몰라.

죽어가고 있다니,

그, 싸움에서?

동료를 감싸다가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파우스트 선생님은
제가 신세진 선생님이에요.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저도 죽었을 거예요.

 

부탁입니다,

부디 선생님을 살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감사합니다, 현자님!

기다려라, 마법사 놈들!

현자를 넘기진 않겠다!

현자님, 속아넘어가셔선 안 됩니다!

마법사는 무책임하고
거짓말쟁이입니다!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사람을 속이고,

신기한 힘으로
마음을 조종합니다!

마법사를 믿어선 안 됩니다!

 

우리들이 솔직한 자라면

당신은 거짓말을 한 셈이 되죠,

당신이 말하는
무책임한 거짓말쟁이와 똑같이.

나는 나라를 위해
몸바치고 있단 말이다!

불성실한 너희들과는 달라!

입 다무시지, 드루몬드 님.

당신은 우리들에게
말을 건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사실은 우리들과
대화할 생각이 없습니다.

당신의 말에서 전해지는 건

당신이 우리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뿐.

당신은 우리들이 말하는 게

진실이라고 해도
믿지 않을 거고,

우리들이 거짓말을 하면
안심하겠죠.

당신은 당신이 싫어하는 우리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믿고 싶으니까.

그렇다면,
진실과 거짓에 의미가 있나요?

 

에잇, 영문도 모를 소리를!

현자님, 아무튼 그 녀석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선 안 됩니다.

현자님은
저희들의 말만 들으시면 됩니다!

현자님을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나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아저씨는 시키는 대로 하라고만 해.

카인은 날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라고 했어.

그걸 감안하고서
내게 부디 부탁한다고 말해줬어.

 

잘은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을 따라가겠습니다.

정말로?

괜찮으세요?

두 사람 다, 놀라지 말아주세요.

모처럼 현자님이 선택해주셨는데.

기뻐하고 있는 거야!

초면인 인간인데,

마법사를 믿어주다니!

감사합니다, 현자님!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무, 무슨 바보 같은 소릴!

잘 들으십시오,

마법사란건 성질 나쁘고
건방지고 제멋대로고...!

그 이상, 한 마디라도 해봐라.

성질 나쁜 마법사가
당신을 저주할 거야.

 

세계를 지키기 위해 싸운 건

그 성질 나쁘고 건방진 마법사야!

너희들 같은 놈들을 지키기 위해

선생님도 동료들도 쓰러져갔잖아!

그, 그건...

마,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대신.

너까지 그런 소리 마라!

이렇게 된 이상,
힘을 써서라도 너희들을 제압해주마!

 

어떻게?

모두 꿈속인데요.

 

멍청한 것.

바깥에도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지칠대로 지친 너희들 따위
상대가 못 돼.

그것도 마법 과학 병기를 장비한
대군을 준비해놨...

에아뉴 람부르!

 

먹어버린다!

당신은?

어디에 있었던 건가요, 무르?

달에게 작별인사 하고 있었어!

달에게?

 

변함없이 정신나갔네.

어떻게 된 거지?

아까는 지적인 신사였는데.

지금은 장난스런 길고양이 같아.

얘기는 나중에 해.

모두 서둘러!

알았어.

 

저기, 대신은?

반나절쯤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올 겁니다.

현자님, 서쪽의 마법사 무르야.

현자님은 날아본 적 있어?

날아...?

 

그럼 나랑 가자!

이리 와.

이 녀석, 무르!

에아뉴 람부르!

 

잠깐...!

 

저기, 저기,

죽어버릴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거 두근두근거려?

막 설레고 그래?

무르, 적당히 좀 해.

현자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어떡하지?

내게 묻지 마!

알았다니까.

 

현자님, 날 잡아.

 

어, 어디...?

뭔가 잃어버렸어?

포켓 안은 찾아봤어?

이, 일본, 도쿄는 어딜까요?

글쎄, 어디선가 새로운 걸 찾지 그래?

간다!

무르, 무모한 짓 하지 마.

현자님을 모시고 있잖아.

 

저기서 뛰어내렸구나.

 

공포와 고양감에

가슴의 고동이 빨라진다.

 

빗자루에 걸터앉아

하늘을 나는 사람들을 알고 있어.

 

마법사야.

 

설마, 진짜 마법사?

 

조심해, 꽃 파편의 파도야.

 

이게 세계를 수복할 때 나타나는
꽃 파편의 파도?

 

이거, 피하는 편이 좋을까?

돌격하자!

그야 만져보고 싶잖아, 현자님?

만질 수 있나요?

잠깐, 잠깐, 잠깐!

이 녀석, 무르.

괜찮아!

자, 손을 뻗어봐.

 

눈앞에 밀려들어오는
무지개처럼 일곱 빛깔로 반짝이는

꽃잎의 파도.

 

아름다워.

 

여러분, 무사한가요?

응, 굉장한 광경이네.

은하에 안겨서 춤추듯이

무수한 빛을 두르고

그들은 웃음소리를 울려퍼트린다.

 

거봐, 만질 수 있어서 참 좋았지?

 

인생은 여행이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근사한 걸로 넘쳐나고 있어.

 

고양이 할머니는 말했다,

바람이 강하고 고양이가 술렁이는

눈부신 만월의 밤에는

뭔가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고.

 

면목 없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현자를
중앙의 성으로 데리고 오라고 전했을 텐데,

실패한 모양이군.

마법사 녀석들에게 방해받아서.

마법사들은 현자는 따른다고 하지.

새로운 마법사들이 모이기 전에
현자를 납치해서,

우리를 따르게 해라.

하, 하지만,

현자를 납치하거나 했다간

더더욱 마법사들을 화나게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현자를 우리 수중에 넣으면,

녀석들도 시키는 대로 따르겠지.

네!

이것도 중앙의 나라의
백성들을 위한 일이다.

국왕인 형님의 아들이라고 해도,

이 이상 아서가
마음대로 하게 놔둘거 같으냐.

 

제2화 잔혹한 달에 저항하는 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