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마도메 04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말았어요…

상관없다

네피가 이렇게나
말해준 건 처음이니까

주인님, 짖궃으세요

 

그 손, 아직도 아프세요?

그러고 보니 어느샌가 통증이 사라졌군

 

상처가…

네피가 해준 건가?

아마도…

 

네피를 만져서 그런 건가?

 

이것도 마법의 힘

치유 마술을 능가하는군

 

굉장한데
고마워, 네피

[머엉]

왜 그러지?

 

주인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신 건 처음이에요

지금까지 고맙다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건가!

 

그건… 미안하구나

아뇨

저는 주인님의 것이니까요

 

네피인가?
무슨 일이지?

 

저기, 주인님

응?

 

같이… 자 주실 수 있을까요?

 

왕인 가 노
신부로 삼았는데 어떻게 사랑하면 되지?
sub by 별명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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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마왕의 권유는 제대로 된 것이 없으니
거절하는 편이 좋다』

 

같이… 잔다?

 

나는 남자이고, 네피는 여자이고!

그건 즉!

즉 그건―!?

 

네피여, 네가 하는 말뜻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냐?

네, 이 성에는
침대가 한 개밖에 없으니까요

 

어라?

주인님은 항상 여기에서
앉아서 주무시고 계세요

옆으로 누워 주무시는 편이
더 편하게 주무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같이…

아, 몸을 허락하겠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순전히 곁에서 자겠다 그런 건가

 

너무 순수하구나

네피여, 마음은 고맙다만
이곳은 결계의 중심이다

무슨 일이 생길 때를 위해
이 공간에 머무를 필요가 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제 무릎을 사용해 주세요

 

무릎베개―!

무릎베개라고!?

 

큭, 이런 권유를!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느냐!

 

어떠신가요?

나, 나쁘지 않구나

간지러운 것 같으면서도
편한 것 같고…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엄청 곤란해

그건 그렇고 갑자기 무슨 일이지?

 

주인님께선 제 마법에 대해
알게 되셨어도

여기에 있어도 된다고 해 주셨어요

그래서 무언가 답례를 해 드리고 싶어서

 

너는 항상 잘 해주고 있다

지금 와서 자세를
고쳐 잡을 필요는 없다

 

저기 말이다, 네피

마술을 배워 볼 생각은 없나?

제가 마술을?

오늘의 모습으로 보건대
마법은 잘 제어하지 못하고 있지?

 

마력 봉인의 목줄을 달고 있어도
그만한 힘이었다

마술을 배웠다고 해서
제어할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다만

몸을 지킬 힘 정도는 될 거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다

네피라면 분명 나보다도
훨씬 강한 마술사가 될 수 있다

저도 주인님의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이미 충분할 만큼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본다만

저도 주인님을 지킬 수 있게
될 수 있을까요?

성기사들에게서도 지켜주지 않았나?

 

할게요!

저, 주인님을 위해
마술을 배워볼게요

그건 자신을 위해
배운다고 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럼 네피, 너는 지금부터
내 제자다

제자라

입 밖으로 꺼내기 전까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네

내 지식과 능력을 누군가에게
주려고 한다는 건

저기, 주인님

음?

아까 말씀해 주셨던 것―

혼자서 뭐든지 할 수 있으신
주인님에게는 약한 자의 심정을 모르시겠다는…

 

약한 인간은 살아 있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는 건가요?

힘을 과시하는 게
그렇게나 대단한 일인가요!?

 

그런 얘기도 했었지

주인님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사실은 괴로우셨죠?

 

왜 그렇게 생각하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때의 주인님은 무척이나
슬퍼 보이셨어요

 

주인님은 나쁘지 않으세요

 

말수가 적으시더라도

저는 주인님께서 상냥하게
대해주신 걸 잊지 않아요

- 그렇구나
- 네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은 것이로군

 

앞으로도 이런 시간이
계속된다면 좋겠군

 

어이…

어이, 어이…

어이, 어이, 어이

어이, 어이, 어이, 어이

어이, 어이, 어이, 어이, 어이!

 

성기사에게 습격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왜 너는 무사한 거야?

내가 알겠냐
녀석들이 약한 게 문제지

 

성검 소지자까지 보냈다고 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있었지

 

성검의 소녀도 상대가 안 된다는 거냐?

아니, 그럭저럭 강했다

성의 결계를 몇 가지 부숴버렸으니까

그보다 너도 결계를 부수고
들어오는 건 그만해라

드세요

 

우유하고 설탕은
원하는 만큼 사용해 주세요

 

그래, 고맙…

 

어, 어이!
지난번에 봤었던 엘프지?

아닌 거냐!?

아니, 그때 봤던
소녀가 맞다

아직도 제물로
사용하지 않았던 거냐!

그거냐?

목숨을 연명시켜 주는 대신
집에서 일을 하라거나…

그런 거냐?
취향 한번 대단하시구만!

너하고 같은 취급하지 마라

 

네피는 그거다
그…

제자다

 

제, 제자!?
네가!?

그럼 안 되냐?

혼자서는 다루지 못하는
마술도 있다

네피는 반드시 도움이 될 거다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렇구나

엘프의 힘까지 동원한다면
행사하지 못하는 마술은 없겠지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건
생각도 못 해봤어

네피를 도구마냥

나도 비슷한 소리를 하는 처지다만
남의 입으로 들으니 화가 나는군!

설마 성기사들을
처단한 것도 그 힘인가?

뭐, 분명 네피의 힘도
도움이 되긴 했지

 

그럼 바깥에 펼쳐진
참상도 그런 건가?

 

너, 마왕의 자리를
노리고 있지?

 

나는 그것만 얻는다면 상관없다만

마왕의 지위가 있다면
네피에게 손을 대는 자는 사라지겠지

 

노리지 않을 이유가 있을 거라 보는 건가?

 

솔직히 지금 내가
선발될 일은 없겠지

내가 마술사로서 길을
걷기 시작한 건

고작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마술사들 중에서는 몇백 살을
초월하는 자들이 있다

지식과 경험의 축적으로 보자면
어떻게 발악해도 승산이 없어

그래도 살아 있는다면 언젠가
다음 마왕을 노릴 수 있어

 

음, 홍차에 잘 맞는군
괜찮은 맛이다

감사한 말씀이십니다
주인님

자간, 설마 그 녀석한테
정이 옮은 건 아니겠지?

제자를 소중히 하는 게
그렇게나 이상한 건가?

 

제자라는 말은 편리해서 좋군!

칵칵, 그렇구만~

너도 인간다운 구석이
남아 있었구나

냅두시지

 

뭐지?
벌써 돌아가는 건가?

그래

 

저 녀석은 뭘 하러 온 거지?

친구분이 아닌 건가요?

친구?

 

농담하지 마라

친구라는 건 상대를 고르지 않으면
불이익밖에 되지 않는 존재다

하지만 주인님은
즐거워 보이셨어요

 

- 그런가?
- 네

 

저런 녀석과 얘기를 하는 게
즐겁다고?

 

하찮은 소리를!
네피의 착각이다

 

그럼, 성기사들이 부순
결계 복구를 하도록 할까?

 

네피도 오거라

마법진의 기초부터
시작하게 될 거다

네, 주인님!

 

그 후로 매일 네피는
마술의 기초를 성실하게 배웠다

동시에 성 안의 일도 소화해가면서

 

혼자가 아닌 거라는 건
의외로 감미롭게 다가오는군

의외로

 

그리고 네피는 조금씩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게 되었다

 

마법은

역시 아직 제어하기에는
어려운 것 같아 보인다만

 

음, 그럭저럭 마술을
사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군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점심을
준비하러 가 보겠습니다

그래

 

나머지는 목줄만
벗길 수 있다면…

 

깨닫고 보니 네피가
이곳에 온 지 보름이 되었다

 

흥, 놀랍군

12명의 마왕이 나를
부른 모양이군

 

물류의 거점
큐아노에이데스

이 도시 지하에

죽은 마왕, 마르코시어스가 거성으로
삼았던 유적이 있다

 

그곳에 현존하는 12명의 마왕
모두가 집결하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다만

 

그럼, 대체 무슨 볼일로
나를 부른 것일지

 

그대가 자간인가?

 

젊었다곤 들었다만
아직 어리군

 

재미있군
최연소 기록이라는 건가

어이, 어이

위압감과 어마어마한 마력으로
토가 나올 것 같아

뱀에게 노려지는 개구리의
심정 같은 게 아니야

뱀의 뱃속에
삼켜진 기분이다

이 녀석들이 마술사의 극치…
마왕!

 

소환한 이유는
진귀한 짐승 관찰인가?

마음껏 봤다면
바로 돌아가고 싶다만

 

이 자리에서 우리를 상대로
크게 나오다니 대담하군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마술사 자간

그대를 우리 13번째의 맹우
마왕으로서 맞이하려 한다

뭐?

 

마르코시어스에게 새겨졌던
마왕의 각인이다

마왕을 이어받는다는 것은
이 문장을 이어받는 작업을 말한다

 

저 문장은 뭐야?

범상치 않은 밀도와 양의 마력

이것을 계승한다고?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서도
같은 힘이 느껴진다

그렇군

마왕은 평범한 칭호가
아닌 모양이야

이런 힘을 얻게 된다면
평범한 마술사가 이기지 못할 만도 해

 

왜 그러지?
납득 못 하겠나?

그렇진 않지만 이해가 안 되는군

나보다도 더 강한 힘을
가진 마술사가 없는 건 아닐 텐데

 

당연한 의문이군

그대의 힘은 왜소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대를
죽일 수 있는 마술사는 없다

 

그대가 처음으로 해치운 마술사

원차(怨嗟)』 안드라스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녀석을 역으로 죽이고

그 예지를 모두 빼앗았다

어떻게 8살의 꼬맹이가 이명까지 지닌
마술사를 죽일 수 있었는가?

 

그대는 단 한 번 본 것만으로
마술을 습득한 것이다

 

아니, 그 한 번으로 마술의
구조까지도 이해했다

 

그래서 유일무이한 마술을
창조할 수가 있었던 거지

 

내 실력을 전부
꿰뚫어 보고 있다는 건가

 

경외해야 할 마술

그리고 금기되어야 할 재능

그것은 그대가 빼앗겠다고 정하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것은 그대가 죽이겠다고 정하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

 

그대가 힘을 원한다면

모든 마술사는 모든 것을
바칠 수밖에 없게 된다

마왕의 이름에 걸맞은 폭군의 힘

그대는 언젠가 역사상 최강의
마술사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구태여 지금은
왜소한 그대를 마왕으로 옹립한다

 

모든 것은 예지를 위해서

모든 것은 마술의 극의에 다다르기 위해서

 

그 말대로라면 나는 당신들에게서도
빼앗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만?

 

그렇다
하지만 명심하라

우리에게서 빼앗을 수 있는 것보다

그대가 잃는 것이 클지도 모른다

 

마왕의 보복은 단순한
파멸이 아닐지니

지금까지 관계되어 왔던 사람, 물건, 기억

모든 것을 지우고

대상의 존재 자체를 말소시킨다

 

그대가 대치하고 있는 것은
그런 존재다

그리고 이것이 앞으로
그대가 되어야 할 모습

 

안녕도, 평온도 없는
마술사의 어둠의 더 깊은 심연

빛 따윈 한 줄기도 비치지 않는
어둠의 밑바닥

그대가 발을 내딛으려 하는 곳은
그런 세계다

 

지금 와서 진부한 소리를

마술사가 된 시점에서

아니, 될 수밖에 없었던 시점에서

멀쩡한 삶을 살 수 있을 리 만무하지

 

마술사가 다다르는 끝은
둘 중 하나

마왕(이 녀석들)에게 다다르거나,

다다르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지거나

애당초부터 돌아갈 길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세계에 네피까지
휘말리게 만들 셈인가?

 

그대의 대답을 듣고 싶군

 

한 가지 원하는 게 있다

 

그걸 얻을 수 있는지에 달렸다

호오?
뭘 바라지?

 

좋지

그건 모두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하거라

그렇다면 마왕의 지위
삼가 받아들이도록 하지

 

새로운 맹우를 환영하지
마왕 자간

 

그리고 이명을 주겠다

그대의 이름은―

 

어서 오세요
주인님

오늘 밤은 어린 양 스튜를…

 

주인님?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나는 원래부터 되돌아갈 수 없는
길 위에 있었다

하지만 네피는 이제야 빛이 스며드는
세계에 발을 내딛기 시작했어

 

네피

나는 마왕이 되었다

 

마술사의 왕

다른 마술사들을 거느리는
마술사의 정점이다

 

축하드립니다!

마왕의 이름을 받게 되어
마르코시어스의 유산도 얻게 되었다

 

즉,

 

목줄을 벗길 수도 있다

 

주, 주인님
이건?

그래

 

마왕인 내게는 네피는
더 이상 필요 없다

나가줘

 

어라?

 

어째서 저는 이런 곳에 있는 거였죠?

 

분명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을 텐데

어린 양 스튜를…

전에 주인님께서 매우
기뻐해 주셔서

 

그 얼굴을 또 보고 싶어서

 

어서 돌아가야 해

 

아, 그렇지

 

주인님에게 버려졌었죠

 

그러니까 먼저 나를 위해 살아라

 

네피가 바라는 대로
하면 된다

 

그러니까 네피
그런 표정을 짓지 마라

네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

 

이런 때에는 눈물은
나오지 않는 법이네요

 

곁에 있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마음을 죽이고 산다거나

욕심을 버린다는

그런 게 쭉 버릇이 되어 있었어

 

아무도 모르니까

그거면 됐을 텐데

어째서 그걸 알아버리는 거야?

 

너무나도 소중한 것처럼 살짝

상냥한 손으로 어루만져 주니까

언젠가 잠가두었던 녹슨 마음을

천천히, 지금 열어가

 

당신의 등도

숨결도, 말도

나를 나답게 해주는 마법

둘이서 손을 뻗는다면

달에도 닿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그렇게 믿고 싶어

 

다음 화
『실연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꽤 아픈 것이다』

sub by 별명따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