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제목 with Caption Creator 4

약사의 혼잣말

 

그림자 속에 살며시 숨어있든
상관없잖아

봉오리 같은 꽃도 얼마든
있잖아

비밀로 하고서 지키는 게
좋지 않을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화려하게 피어있어

달콤씁쓸함에 빠지지 않는

그 판단이 부질없어

끙끙 앓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진 말아줘

사랑에 익숙할 턱이 없는
쓸데없이 꾸미지 않은

아름답게 꾸민 꽃병도
비료도 그 무엇도 필요 없는

그 모습이 아름다워

꽃이 되어서
어서 공허하게 냉소해줘

그 표정이 짜릿짜릿해서
눈을 뗄 수가 없어

맛보아줘
너의 독이 내겐 약이라고

감싸줄 테니까
웃어줘

 

제10화 벌꿀

익사한 여관, 자살이었대!
제10화 벌꿀

석류궁의 하녀였나 봐.

 

원유회에서

이수 님께 독을 탄 범인이래.

모시고 있던 아다비를
생각해서 한 일일까?

 

아다비라면 숙비인?

응,

네 부인에서 빼고,

젊은 비를 시집 들인다는
소문이 있었고.

 

아다비는 천자보다 한 살 위로

나이 서른 다섯.

동궁 시절의 천자와의 사이에 생긴
남아를

하나 잃었다.

 

아이를 많이 낳기 위한
후궁이란 제도상 어쩔 수 없지만...

 

죽은 남아의 어머니라.

 

이화 님도 이대로 아이를 갖지 못하면
똑같이 되어버리시는 걸까.

옥엽 님도 언제까지고 총애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곤 단언할 수 없어.

 

아름다운 꽃도 언젠가는 시들어.

후궁의 꽃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

 

슬슬 돌아가야지.

괜찮으면 이것도.

어제 다과회에서 남은 음식인데.

고마워!

남을 정도로 과자가 있다니,

다과회는 참 좋구나!

 

글쎄다...

 

다과회라는 것도

비의 엄연한 일이다.

 

묘묘도 준비하렴!

 

또인가.

 

오늘은 제법 기합이 들어가 있네요.

당연하지.

상급비, 덕비인 이수 님께서 오시니까!

그야말로 후궁의 축소도가
여기에 펼쳐져 있다.

 

환영해요, 이수비.

감사합니다.

 

소위 말하는 속내 살피기.

 

동성이면
경계 태세를 갖추게 돼버리는 게

여자라는 생물인 것일까.

솔직히, 천자가 올 때보다 더
신경을 쓰고 있다.

 

나긋나긋한 대화 속에서
정보를 이끌어내는 옥엽 님은

온화한 듯 보이면서도
역시 비는 비다.

얻은 정보는
본가에 보내고 있는 모양이다.

교역의 중계 지점인 모양이라

사람이나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겠지.

 

원유회 때의 기미 역인가.

심한 벌은 받지 않은 모양이라
다행이군.

 

딱히 물어뜯을 것도 아닌데 말이지.

 

다른 시녀들은 명백하게
주인에게 시선을 안 두고 있네.

하지만 현재로선
괴롭히고 있는 걸로 보이진 않는다.

고순 님에게 드린 보고가
착각이었다면 다행이야.

 

단 것을 싫어하진 않나요?

단 것은 좋아합니다!

 

다행이에요.

 

추우니까 이런 건 어떨까 해서.

 

감귤 껍질을 벌꿀에 달인 거예요.

몸이 따뜻해질 거예요.

 

입맛에 맞으면 좋겠는데.

 

어라, 벌꿀도 안 맞는 건가?

또 편식?

대접받은 것도 못 먹다니.

 

쫑긋쫑긋.

 

옥엽 님.

 

어머머,

애람, 미안하구나.

조금 더 담궈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다른 걸 내어줄게요.

생강차는 마실 수 있나요?

 

네, 괜찮습니다.

 

유감이지만,

괴롭힘은 틀리지 않았나보군.

 

뒷정리는 맡겨놓고!

묘묘는 쉬고 있어.

 

정리 정도는 할 건데.

옥엽비와 이수비의 다과회는 어땠지?

 

갑자기 이수 님을 불러서 다과회라니
이상하다 싶었더니만,

이 녀석이 사주한 건가.

 

즐겁게 보내셨답니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만?

놔주시지 않겠습니까?

 

원유회의 독살 소동,

범인은 자살한 석류궁의 하녀라는
이야기는 알고 있나?

소문 정도로는요.

 

하녀는 정말로 자살했다고 생각하나?

 

그걸 결정하는 건 제가 아닙니다.

 

일개 하녀가

덕비인 이수비의 접시에
독을 탈 이유는?

 

모릅니다.

 

그럼 내일부터
석류궁에 도와주러 가지 않겠느냐?

 

않겠느냐? 라고 질문해봤자
선택지 따윈 없거늘.

 

알겠나이다.

 

저택이란 것은

주인의 색으로 물든다.

 

옥엽비의 비취궁은 가정적이고,

이화비의 수정궁은
고결하고 세련되었었다.

그리고 아다비가 사는 석류궁은

군더더기가 없고 기품이 있으며

실용적이야.

 

갑자기 와달라고 해서 미안하구나.

오늘부터 사흘간 잘 부탁한다.

 

임씨 님께선 뭘 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일단 일 할까.

못 보던 얼굴이군.

 

풍명, 그 소녀들은?

대청소를 도우러.

 

그렇느냐, 잘 부탁한다.

 

숙비 아다비.

 

화려함이나 풍만함은 없지만,

중성적인 늠름함이 있어서 아름다워.

이게 서른 다섯입니까.

관복을 입으면

젊은 문관으로라도 착각할 것 같아.

 

비가 입는 소매 넓은 옷과 치마보다도

호복(胡服)이 더 어울리겠지.

 

오, 동경의 시선!

 

누군가를 닮은 것 같기도...

 

우두머리 시녀인 풍명 님.

 

숙비의 우두머리 시녀 정도 되면
좋은 집안 아가씨일 텐데,

상당히 쉽게 친근감이 든다.

 

먼저 서적들의 바람쐬기를
부탁해도 될까?

 

무거운 건 환관에게 맡겨도 된단다.

 

역시 상급비 제일의 고참.

군더더기가 없는 저택처럼 보이면서

현격하게 짐이 많다.

 

비취궁도 그렇지만
석류궁의 시녀들은 열심히 일하네.

입만 산 녀석들에게 보여주고 싶군.

 

이걸로 끝인가.

 

대단하네!

벌써 이렇게나?

 

그것도 정성스럽게 해서
일이 편해졌네.

응접실 쪽도 도와주겠니?

네.

 

붙임성이 좋고
타인을 잘 관찰하고 칭찬해준다.

우두머리 시녀로서 사람을 다루는
요령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오랜만의 육체 노동은
몸에 무리가 가네...

 

수고 많았구나.

오늘 고마웠어.

아닙니다.

맞아,
오늘밤은 석류궁에서 자고 가지?

잠깐 따라오렴.

 

달콤한 냄새?

 

괜찮으면 이거 쓰렴.

오늘밤은 추울 테니까.

 

감사합니다.

 

푹 쉬렴.

 

임씨 님은 뭘 하라고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정말로 독살 소동의 흑막이 있는 걸까?

 

역시 다들 부지런하네.

 

시녀들도 그렇지만...

풍명 님!

그런 일은 저희가...!

괜찮단다, 이 정도쯤은.

조금 신경 쓰였던 것뿐이니까.

풍명 님은 그 중 필두야.

적령기는 진작에 지났겠지만,

시집 같으면 현모양처 쯤은 됐겠지.

결혼하려는 생각은 없었던 걸까?

아니면 아다비를 평생 모실 것을
선택한 것일까?

충성심이 강한 건

독살을 행할 이유로도 이어져.

 

새로운 비가 시집 오려고 하는 지금,

상급비의 자리가 가장 위태로운 건
아다비다.

 

하지만 먼저 다른 자리가 빈다면...

여물은 과실에만 반응하는 천자는

이수 님에게는 다니지 않아.

 

열넷이라는 연령을 생각해보면
바람직한 일이지만,

비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지.

아다비를 위해
독살을 꾀했다고 했을 때,

이수 님을 노리는 건
이상한 얘기는 아니야.

누가 좀 도와주러 와주겠니?

 

벌꿀?

풍명 님의 본가가 양봉장을 하고 계셔.

어쩐지 고급품인 벌꿀이
이렇게나 있더라 싶었네요.

 

어젯밤의 달콤한 냄새는
밀랍이었구나.

 

이수 님?

일행이 기미역 한 명뿐이야?

 

왜 석류궁에...?

그러고 보니 다과회에서...

 

이상이 석류궁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렇군.

 

그래서?

그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만.

뭘 바라고 있는진 모르겠다만,

이쪽은 평범한 약사야.

 

간첩 흉내 따윌 낼 수 있을 리 없지.

 

그보다 요즘 태도가 가볍지 않나?

 

그럼 질문을 바꾸지.

혹시 특별한 방법으로
외부와 연락을 취한다고 한다면

누구일 거라 생각하지?

참 마음에 안 들게 물어보네.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우두머리 시녀이신
풍명 님이 아니실까 하고.

근거는?

왼쪽 손목에 붕대가 감겨있었습니다.

그 색을 입힌 목간은

소맷부리가 탄 여자옷에
싸여있었다고 합니다.

 

일부러 몇 가지 색이나 되는
불꽃을 만들고,

뭔가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암호야.

 

솔직히 이 온화한 우두머리 시녀가
뭔가를 하고 있는 걸론 안 보였다만...

그딴 건 주관에 지나지 않아.

 

뭐, 합격점은 되는군.

여봐란 듯이
벌꿀이나 마시고 앉아놓고선.

이 정도는 다 조사했을 거면서.

 

착한 아이에겐

상을 줘야겠지.

 

사양하겠습니다!

사양할 것 없다.

 

됐습니다!

다른 분께 드리십시오!

이 녀석, 얼굴 잘 생겼다고
뭘 해도 용납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고 보니 그런 변태였었지!

 

고순 님!

 

나중에 설사약을 타주마!

 

단 건 싫어하느냐?

매운 걸 좋아하는지라...

하지만 먹을 순 있지?

젠장,

말이 안 통해...

높으신 분만 아니었어도
고간을 차서...!

아니, 없는 건 차봤자
아무것도 안 되지.

명령이라고 체념할 것인가,

존엄을 위해 도망칠 것인가!

 

하다못해 투구꽃의 꿀이라면
선뜻 먹었을 텐데!

 

단 것을 싫어하진 않나요?

입맛에 맞으면 좋겠는데.

 

벌꿀?

풍명 님의 본가가 양봉장을 하고 계셔.

이수 님?

 

꿀...

 

벌꿀...

 

약사?

우리 시녀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옥엽비, 이건...!

누구 허가를 얻고 이런 짓을?

 

소묘,

그만 장난이 과하셨던 것뿐이니,

임씨 님을
용서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럼 다음엔 고순 님께서
핥아주시면 될 듯하군요.

하... 핥아...?

 

그건 좀...

 

아셨으면 됐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실례하겠사옵니다.

어서 오...!

어라?

 

임씨 님은 안 오셨어?

네, 갑작스레 송구하옵니다.

 

그래서?

비취궁의 시녀가 무슨 볼일일까?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너, 원유회 때 그...

 

묻고 싶은 거라니?

 

벌꿀은 싫어하십니까?

 

어떻게 알았어?

얼굴에 다 드러나셨으니까요.

 

옛날에 벌꿀 때문에 배탈 나신 적이?

식중독에 걸려서 몸이 안 받게 되는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그건 아니야.

기억은 안 나,

아기 때의 일이라서.

 

한때는 목숨도 위험했다고 들었어.

 

이후, 유모들도 먹지 말라고 해서.

 

너, 실례 아니야?

이수 님께 함부로!

 

다과회 때 감싸지도 않은 시녀가
잘도 말하네.

뭐야, 그 눈?

저런 시녀의 얘기따위 들으실 것 없어요!

네, 덕비이신 이수 님께 대고 무례해요!

얼른 쫓아내셔야 해요!

이렇게 외부 사람을 악역으로 만들어서,

자기들만 아군이라고 믿게 만드는 건가.

이수 님을 항상 위해드리는 저희가 있잖아요!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라면
이수 님을 항상 위해드리는 저희가 있잖아요!

쉬이 속아넘어가겠지.
대체 뭐람, 저 애는?

 

고립된 비는
시녀들에게 의지하지 않을 수 없어.

괴롭힘 당하고 있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악순환이야.

 

저는 명을 받고 여기에 왔습니다.

말씀하시고 싶은 게 있으시면

임씨 님께 직접 말씀하시죠.

 

이, 임씨 님께?

직접?

 

이 정도 짓궂은 짓은 용서해주겠지.

 

무슨 이유로 이 시녀들이
변태 환관에게 접근할지 기대되는군.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석류궁의 우두머리 시녀,

풍명 님과 면식은 있으십니까?

 

소묘?

 

고순 님,

후궁의 옛날 사건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까?

 

궁정의 서고를 찾아보지요.

 

감사합니다.

 

이번엔 대체 무엇을 알아낸 것인가.

 

똑똑한 소녀야.

나이 열일곱이란 게 믿기지 않아.

지식의 풍부함과 냉정함,

이성적으로 모든 일을 생각하고
처리하는 능력...

 

일부 별난 면도 있지만
눈이 휘둥그레해질 때가 있어.

 

17년 전,
지금의 천자가 아직 동궁이었을 적,

아다비와의 사이에

남아를 한 명 얻었어.

이미 사망했지만.

 

태어난 시기는 선제와 황태후의 아이,

즉, 현 황제의 동생 전하와같은 시기.

동궁 시절의 아이는 그 한 명뿐.

비도 아다비뿐이었다.

 

지금의 천자와 아다비는
같은 젖을 먹고 자란 사이라,

아다비에게 애착이 있는 건 알겠는데,

 

그 호색한 양반이
아다비 한 명뿐이었다니 의외네.

 

16년 전, 젖먹이 사망.

해산 때 아기를 받은 건...

...의관 나문(羅門) 추방...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은 들었었다.

 

후궁에 나있는 수많은 약초,

내가 옛날부터 곧잘 쓰던 것들뿐이야.

 

누군가가 옮겨심은 거겠지.

 

노파처럼 다리를 질질 끄는 남자.

 

홍등가의 약사로 두기엔
아까울 정도의 의술을 가진...

 

한쪽 다리의 무릎의 뼈를 뽑힌

전직 환관.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아버지.

 

장식 같은 다정함이 아니라

어디 다 쓸 곳도 없을 만큼의 온기를

그런 제멋대로인 이상을 늘어놓으며
오늘도

말로는 못하고 집어삼키기만 했지요

추억은 아직 금목서

황혼빛을 풍기는 거리에서

웃고 있었겠지

가슴이 애달파서 눈물이 흐르고

그날의 당신 곁에서 빛을 찾아내고

어리광부렸었지

바람이 시끄러워서 귀를 막고 있었어

그런 나로부터 졸업해야겠지

사랑의 말에 발이 걸려 넘어지더라도

 

다음 시간,

둘을 하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