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2smi by  Michael Archangel

 

대학에서 8번째 맞는 가을
삼색치약을 사면

 

이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것만 같았다

 

다케무라 후미야 씨 맞죠?

 

잠깐 실례

 

어때? 짭짤하냐?
퀴퀴해?

 

남의 돈을 쓰고 안 갚으니
이런 꼴을 당하지

 

남이 신던 양말을
입에 물고 말이야

 

80만 엔 어쩔 거야?

 

몸이라도 팔래?

 

호모 영감들은
너 같은 타입을 좋아하거든

 

한 번에 2만 엔씩
40번만 하면 되겠네

 

부모는?

 

없어요, 도망갔어요

 

거짓말 마

 

정말이에요, 지금 부모님은
친부모가 아녜요

 

그래도 부모는 부모잖아

 

전화도 안 받던데
어떻게 된 거야?

 

아버지는 체포됐어요

 

-자꾸 둘러댈래?
-진짜 정말이에요

 

그렇다고 치자

 

양말만 축축해졌잖아

 

그건 안 돼요

 

아야...

 

하지 말란다고
안 할 것 같냐?

 

말일까지
사흘 기다려주마

 

그때까진 돈 준비해 둬
알겠지?

 

튈 생각은 마

 

헛수고니까

 

내겐 빚이 84만 엔 있었다

 

쟈기, 내 이름을 말해봐라

 

보너스 확정

 

보너스다

 

-그 사람 덕분이야
-설마

 

그런 소문이 있다니까

 

길에서 키시베 잇토쿠를 보면
좋은 일이 생긴대

 

-그런 게 어딨어?
-정말이라니까

 

났다!

 

-키시베 잇토쿠!
-키시베 잇토쿠

 

키시베 잇토쿠 덕분이야

 

-이게? 내가 했는데?
-이걸로 맛있는 거 사 먹자

 

뭐 먹을까?

 

-뭐 먹고 싶어?
-불고기

 

남두성권
 
 
 
 
 
 
 
 

 

남두성권
 
 
 
 
 
 
사랑을 위해 죽는 별을
몸에 지닌 사나이

 

 
 
 
 
 
 
 
사랑을 위해 죽는 별을
몸에 지닌 사나이

 

신!

 

네 놈의 집념은
겨우 그 정도냐?

 

-불고기는 싫어
-왜

 

-담백한 게 좋아
-그럼 뭐?

 

생각 좀 해봐

 

먹고 싶은 사람이 생각해

 

감사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를 위해
모금 부탁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어린이를 위해
모금 부탁합니다!

 

왜?

 

그곳은 학교에 못 다니는
애들이 많거든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됐어요

 

있잖아...

 

-하루 모금액이 얼마나 돼?
-네?

 

하루에 얼마나 모이나
궁금해서 말야

 

구두 끈...

 

구두 끈 풀렸어요

 

어라?

 

감사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를 위해
모금 부탁합니다!

 

그거 내 가방인데...

 

백만 엔쯤 들어있던가?

 

아뇨

 

어디 보자
달마 인형들이랑...

 

이건 뭐지?

 

괴물 텐구의 코예요

 

텐구의 코...

 

어때? 어울려?

 

난 이런 게
안 어울리더라고

 

그런데 말야
남의 걸 슬쩍하면 안 되지

 

미행했어요?

 

응, 미행은 재미있거든

 

벌레잡이통풀

 

           긴잎 끈끈이주걱

 

식충식물... 좋지
좀 짜릿하지 않아?

 

내일까지죠?

 

벌레잡이통풀과 끈끈이주걱
어느 게 좋아?

 

참치잡이 배 타면
돈 좀 버나요?

 

모르겠는데

 

있지...

 

돈 갚을 방법이 있어

 

네가 하겠다면 호모 영감한테
몸 안 팔아도 되는데...

 

-쉬운 일이야
-혹시 그거...

 

범죄 냄새는 나지만
범죄는 아냐

 

백만 엔이다
이 돈을 주지

 

대신 나하고 같이 가

 

같이 가자니 어딜요?

 

도쿄 산책

 

도쿄 거리를 산책하면서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면
넌 따라만 오면 돼

 

날 놀리는 거죠?

 

아니, 일단 목적지는
카스미가세키지만

 

기한은 없어
내가 만족할 때까지 걷는 거야

 

사흘일 수도
한 달일 수도 있어

 

하지만...

 

그냥 걷기만 하고
백만 엔이야

 

뭘 보쇼?

 

너한테 나쁠 거 없잖아?

 

산책하는 대가가
백만 엔이면

 

왠지 몹시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약속시간이 지났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역시 날 놀린 건가?

 

예전엔 훨씬 괜찮은
공원이었는데 말야

 

날 보니까 마음 놓이지?

 

뭐 별로...

 

너무 늦어서
안 오시나 했어요

 

할 일이 많았거든

 

이 운동화 어때?

 

솔직히 촌스러워요

 

‘여행 전날 이발소에
가지 마라’

 

‘여행 가서 선글라스는
사지 마라’ 이런 느낌?

 

아무렴 어때

 

이런 데서 파는 닭꼬치는
맛있어 보인단 말야

 

네 건 없어
물어봤을 때 안 먹는댔으니까

 

필요 없어요

 

근데 막상 먹어보면 별로야

 

-그래도 하나 줄게
-됐어요

 

나만 먹으면 남보기 그렇잖아

 

왜 이래요!

 

그럼 슬슬 가볼까?

 

아, 참!
난 후쿠하라 아이이치로다

 

텐텐

 

오다기리 죠                   

 

미우라 토모카즈                 

 

코이즈미 쿄코                  

 

요시타카 유리코                 

 

형씨, 오렌지 안 사실라우?

 

 
 

 
 
카스미가세키까지
왜 걸어가는데요?

 

              감독, 각본
              미키 사토시

 
 
카스미가세키까지
왜 걸어가는데요?

 

              감독, 각본
              미키 사토시
 
 
 
 

 

              감독, 각본
              미키 사토시

 
 
지금 말고
때가 되면 얘기해주지

 

백만 엔, 정말 있어요?

 

봐! 백만 엔

 

정말이네
어! 한 장 떨어질 것 같아요

 

괜찮아

 

신경 쓰인단 말이에요

 

좀스럽기는

 

내 얘기를 듣고 말고는
네가 결정할 일이지만

 

일단 결정했으면
끝까지 따라와

 

카스미가세키까지 걷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일단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유흥비 마련을 위한
범행 알지?

 

뉴스에도 나오잖아

 

유흥비 마련을 위한
범행 어쩌고...

 

어릴 땐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잘 알지

 

어른이 되니 알겠더라구

 

죽은 왕비를 위한 파반느

 

라벨의 곡이지

 

후쿠하라 씨

 

시끄럽잖소!

 

이거...

 

눈을 어디 두고 다녀!

 

보쇼!

 

보쇼! 벙어리요?

 

괜찮아요, 안 다쳤어요

 

웃기는 할망구 같으니

 

형편없는 연주로 들어도
좋은 곡은 역시 좋아

 

네

 

아, 그래요?

 

말씀은 알겠는데
어제부로 폐업했습니다

 

그 얘기는 끝났을 텐데요

 

지금 여행 중이라
이만 끊습니다

 

폐업이라뇨?
빚쟁이 노릇 관뒀어요?

 

더 중요한 일을 그만뒀지

 

-대학에서 전공이 뭐야?
-법학요

 

-장차 뭐가 되고 싶은데?
-뭐 특별한 건...

 

어릴 때 어른들이
장래 희망을 묻잖아?

 

네

 

-뭐라고 대답했어?
-내각 총리대신

 

앗, 차가워!

 

뭐야, 이거?

 

이건 말도 안 돼

 

바보야, 현실을 인정해

 

아무리 그래도...

 

난 정말 되는 일이 없어요

 

뭘 모르는군

 

부모에게 버림받고
빚쟁이한테 쫓기고...

 

최악의 인생이었잖아?

 

이걸로 액땜하고
인생이 확 필 수도 있어

 

과연 그럴까요?

 

매사에 계기란 게 있거든

 

그래도 너무하잖아요

 

이제 얘기해줄 거죠?

 

사람을 죽였다

 

살인을 저질렀다고

 

또 그러신다...

 

산책하는 이유를
알고 싶다며?

 

-누구를 죽였는데요?
-마누라

 

사람이 그리 쉽게 죽다니

 

어떻게 생각해?

 

어디서 죽였어요?

 

우리 집에서

 

홧김에 주먹질 했더니
숨이 끊어지더군

 

그럼 살인이 아니라
상해치사예요

 

뭐?

 

그게 그거 아냐?

 

중요한 건 내가
아내를 죽였다는 거야

 

이제 알겠지?
카스미가세키에 가는 이유를

 

아뇨

 

거, 참 둔하네

 

정확한 목적지는
사쿠라다몬의 경찰청

 

자수하려는 거야

 

그럼 가까운
경찰서도 있잖아요?

 

이왕이면
제일 큰 데가 좋잖아

 

그래도...

 

이제 넌 내 비밀을 안 거다

 

근데 왜 걸어서 가요?

 

우리 부부는 도쿄 거리를
정처없이 걷는 걸 좋아했어

 

그래서요?

 

늙어서도 그렇게
여생을 보내기로 했는데

 

이젠 못 하게 돼버렸어

 

추억의 장소를
걷는 거군요?

 

그렇기도 하지

 

왜 나랑 같이 가려는 거죠?

 

-혼자선 외로울 것 같아서일까?
-굳이 내가 아니라도...

 

저거

 

-저 사람 누구더라?
-네?

 

저 사람 말야

 

아, 저 사람...

 

그 뭐더라...

 

-손가락질 하지 마요
-생각해봐

 

본 적은 있는데
이름은 몰라요

 

그러니까

 

TV에서 이렇게 흔들던데

 

이렇게...

 

아, 키시베 잇토쿠야

 

-그럼 저 사람이?
-아는 사람이야?

 

아뇨, 길에서 저 사람 보면
좋은 일이 생긴대요

 

정말?

 

들은 얘기예요

 

-따라가 보자
-빨리 자수하는 게 좋아요

 

사건화 되고 나면
정상참작이 안 돼요

 

무슨 소리야?

 

시신이 발견되기 전에
출두해야 자수가 되거든요

 

경찰이 알고난 후엔
감형이 안 돼요

 

-법학부라 역시 다르군
-그러니 어서 가요

 

상관없어
발견되라지 뭐

 

형량을 줄이려고
자수하는 게 아니니까

 

           후쿠하라
 
 
 
 
 
 
 

 

후쿠하라, 결근

 

후쿠하라 씨가 어쩐 일이지?

 

오늘도 결근이잖아요

 

그러게, 무슨 일이지?

 

어디 아픈가?

 

글쎄... 전화해볼까?

 

이거야 원...

 

왜 그러세요?

 

매장 여직원들이
내 가마에서 냄새가 난대

 

뭔 말이래?

 

정말이야

 

맡아봐도 돼요?

 

얼마든지

 

-진짜 냄새나네
-정말?

 

이게 무슨 냄새죠?

 

-헤어크림 냄새 아냐?
-완전 달라요

 

-맡아 본 냄샌데...
-센다이 씨가 맡아봐요

 

부탁해요
무슨 냄새인지는 알아야지

 

알았어요

 

정말! 고약하네

 

뭐지? 아는 냄새인데

 

-그렇죠?
-무슨 냄새더라?

 

그 냄샌데...

 

뭐더라...

 

알았다, 저요!

 

센다이 씨, 뭔데요?

 

이건 벼랑 냄새예요

 

맞다, 벼랑
그래, 벼랑 냄새야

 

벼랑 냄새가 어떤데?

 

탄내 같기도 하고
축축한 흙냄새나...

 

벼랑 냄새가 확실해요

 

-역시 맞아
-그렇지?

 

정말?
나도 맡아보고 싶네

 

그건 무리죠

 

아냐, 잠깐만 있어봐

 

-호스가 있으면 되겠군
-어떻게요?

 

호스를 통해 냄새를
맡을 수 있잖아

 

호스가 필요해

 

-센다이 씨, 같이 찾아봐요
-참 나...

 

참, 토모베 씨

 

-아까 무슨 얘기 했더라?
-모르겠는데?

 

어서 가자고

 

후쿠하라, 결근

 

아차, 후쿠하라 씨

 

너희 집에선
산책을 뭐라고 불렀어?

 

네? 산책이 산책이죠

 

재미없는 집이었군

 

친아버지가 아니었으니까요

 

친아버지 아니라고
다 재미없냐?

 

그건 그렇지만요

 

우리 집에선 산책을
‘성질’이라고 불렀어

 

성질?

 

아버지가 산책을 워낙 좋아해서
내가 초등학교 작문시간에

 

아빠는 휴일이면 산책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질’이라 썼거든

 

성질?

 

성질은
한자로는 이렇게도 쓰지

 

그랬더니 엄마가 엄청 웃더군

 

애가 ‘성질’이라는 말을
쓴 게 재미있었나봐

 

-알아들은 거야?
-당연하죠

 

그래?

 

아무튼 그 후로 우리집에선
산책을 ‘성질’이라고 말했지

 

잠깐 ‘성질’ 내러 간다든가...

 

너희는 식구끼리만
통하는 말 없었어?

 

-없었어요
-왜 없어?

 

부모한테 버림받았다고
말했잖아요

 

여기요

 

이리 차 주세요

 

저 신사도 추억의 장소예요?

 

아내와 첫 키스를 한 곳이지

 

-우습냐?
-아니요...

 

근데 왜 웃어?

 

넌 첫 키스, 언제 했어?

 

-초등학생 때요
-초등학생?

 

이웃집 여자애가
날 좋아해서

 

자랑이야?

 

자랑하는 거냐고?

 

자랑은요
그냥 흉내만 낸 걸요

 

진짜 키스는
고등학교 때 했어요

 

-어디서 했는데?
-노래방에서요

 

왜 때려요?

 

그런 것들 왠지 짜증나

 

-그렇기도 하죠
-그렇지?

 

이 동네는 별로 안 변했네

 

전에 자주 왔었어요?

 

아내와 싸운 다음엔
‘오교치’를 먹으러 왔었지

 

그게 뭔데요?

 

오교치

 

뭘 드릴까요?

 

-오교치 둘이요
-네, 알겠습니다

 

부인하고 자주 왔어요?

 

그랬지, 부부싸움 한 다음엔
먹으러 왔으니까

 

싸우면 2, 3일씩
말도 안 하고 그러잖아?

 

사과하기도 멋쩍고
적당한 계기도 없고...

 

그때 한쪽이 이걸 먹자고 하면
싸움이 끝나는 거야

 

그렇군요

 

-왜 실실거려?
-아니, 그게...

 

-엄마!
-왜 그래

 

-좀 와봐요!
-지금 손님 있어

 

빨리 해요

 

주문하신 거 나왔습니다

 

이거야, 이거

 

옛날 그대로군요

 

할망구, 빨리 안 와?

 

천천히 드세요

 

가정 내 폭력인가?

 

-소리 좀 치지 마
-시끄러

 

부인은...

 

볼일이 있으니까 부르지!
왜 그렇게 굼떠요?

 

그건 안 돼

 

이거 놔, 할망구야

 

어딜 가는 게냐?

 

천천히 드세요

 

오교치가 레몬 맛이 나는군요

 

그래

 

출소할 때쯤엔 저 집도
없을지 모르겠군

 

너도 어머니한테 저랬어?

 

아뇨, 친엄마는 제가 3살 때
집을 나갔고

 

양어머니한테
저러진 못하죠

 

남한텐 이유없이
화 못내잖아요

 

이상한 논리군

 

그런가요?

 

이번엔 네 추억의
장소에 가보자

 

전 추억 같은 거 없어요

 

앞면? 뒷면?
어느 쪽?

 

-앞면이요
-좋아

 

뒷면이다, 네가 졌어

 

생각나는 데 어디 없어?

 

아사가야에
산 적이 있어요

 

봐, 있잖아
네가 살던 집에 가보자

 

없어졌을 걸요
다 쓰러져가던 아파트라

 

-없으면 없는 거고
-이쪽인데요

 

-뭐?
-이쪽이요

 

직장 여성들은 왜 지갑을
저런 식으로 들까?

 

대부분 위로 향하게
들고 있잖아?

 

누가 제일 맘에 드냐?

 

대답 안 하면
백만 엔 없다

 

말도 안 돼요

 

오른쪽에서 두 번째...?

 

나랑 같군
너랑은 통하는 게 있나보다

 

이쪽이요

 

골목으로 들어오니까
꽤 조용하네

 

도쿄의 풍경은 워낙 자주 변해서
산책에 딱이야

 

‘성질’을 좋아하는
아버님의 말씀인가요?

 

그렇지

 

어릴 땐
아버지와 산책했고

 

늙어선 아내와 산책하며
살고 싶었는데

 

아내는 자기 혼자서
도쿄 탐험에 나섰더군

 

그게 어찌나 화가 나던지

 

혼자 뭘 하셨는데요?

 

딴 사람이 되어서
또 다른 자기를 찾았다나?

 

어리석은 여자지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뭔데?

 

부인의 바람 때문이었나요?

 

그런 셈이지

 

내가 없을 때면 몰래
젊은 놈들이랑 놀아났나 봐

 

-어떻게 그런...
-그러게 말야

 

보세요
없어졌잖아요

 

-여기야?
-네

 

없어진 편이
차라리 시원해요

 

있잖아

 

불 쬐는 저 남자들
왜 거시기를 만지작거릴까?

 

듣고 보니 그렇네요

 

여긴 뭐가 들어설까요?

 

무인주차장 아닐까?

 

도쿄에서 추억이 담긴 곳 절반은
무인주차장으로 변했거든

 

무인주차장 회사에
취직이나 할까

 

넌 정말 추억이
싫은가 보구나

 

네, 싫어요

 

대학입학 땐 갖고 있던 사진
전부를 태워버렸어요

 

-졸업 앨범도?
-졸업 앨범도요

 

기왕 온 김에
만나고 싶은 사람 없어?

 

없어요

 

초등학교 때 널 좋아했다던 애
여기 안 살아?

 

키스 흉내를 냈던 애 말야

 

글쎄요
오래 전 일이라서요

 

다다미 가게

 

당장 꺼져!

 

내 저놈을 그냥!

 

저 녀석 아비놈이!

 

말로 합시다, 말로!

 

저놈 아비 때문에
우리 집안이 엉망이 됐어

 

대체 무슨 일이에요?

 

얘 아비가 집사람을
건드렸단 말이요

 

그래도 그렇지...

 

미안해서 어쩌나
괜찮아요?

 

괜찮은 것 같아요

 

다다미로 맞는 게
꽤 아프네요

 

꽤 아프다고들 합디다

 

찾았다
이거야

 

우리 나오미 만나거든
이상한 꼴로 올 생각 말라고 해

 

코스프레 나이트

 

그 차림은 무슨 코스프레지?

 

츠게 요시하루의 작품

 

‘이케부쿠로 백점회’의
이모리와 츠베

 

아, 그래? 그렇군

 

연세가 좀 되시는 것 같은데

 

66세지만 코스프레에
연령제한은 없어

 

사물함에 땀 닦을 수건
가지러 가는 길이라네

 

누가 물어봤어요?

 

오랜만이야

 

날 찾았어요?

 

나오미 씨?

 

그런데요

 

혹시 저 녀석 기억해?

 

혹시 후미야?

 

세상에! 기억하고말고
그 후미야 맞지?

 

라코스테 폴로셔츠 후미야!

 

초등학교 5학년 때
생일파티가 유행했다

 

친구들이 모여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다

 

하지만 늘
초대받지 못하던 나를

 

나오미가 처음으로
초대해 주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나오미, 생일 축하해!

 

그 무렵 악어 마크의 라코스테
폴로셔츠가 유행이었는데

 

난 꼭 흰색 폴로셔츠를
나오미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라코스테 폴로셔츠는
워낙 비싸서

 

아이 용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난 머리를 굴려서

 

양말에 붙어 있던
악어 마크를 오려서

 

싸구려 폴로셔츠
가슴에 붙이기로 했다

 

나오미, 선물이야

 

고마워

 

나오미가 매우 기뻐하며
셔츠를 펼친 순간

 

악어가 툭 떨어졌다

 

그땐 정말이지 악어한테
잡아먹히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상에 그런 일이!
-그러게 말입니다

 

너도 옛날엔
순진한 녀석이었구나

 

전혀 안 그래요

 

넌 악어 코스프레를
하고 올 걸 그랬다

 

-놀리지 마세요
-재미있었을 텐데

 

재미는 무슨

 

그리고 악어는
코스프레가 아니죠

 

-그런가?
-그렇죠

 

코스프레는 보는 사람을
흥분시켜야 하지 않나요?

 

어쨌든 기본은 변신 욕구잖아

 

내 아내도 그랬지만

 

아내는 남자라곤
나밖에 모른채 결혼했고

 

슈퍼에서 알바나 하며
평범하게 살다 보니

 

좀 변신하고 싶었던 거지

 

-코스프레를 했대요?
-그건 아니고

 

그동안 살아온 것과는
다르게 변신한 거지

 

그래서 밤거리로?

 

응, 넌 유부녀랑
잔 적 없어?

 

그런 건 왜 물어요?

 

네 아버지가 그랬다기에
혹시 너도 그럴까 해서

 

얼마 전 바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다카코였고

 

그리고 유부녀임을 고백했다

 

남편은 어떤 일을 하세요?

 

금융 관계 일이야

 

부인의 불륜상대는 알아요?

 

아니, 여러 명인 것 같아

 

누군지 안 알아봐요?

 

한 명만 빼곤 관심 없어

 

그게 누군데요?

 

딱 한 명...

 

호텔까지 갔으면서
안 잔 놈이 있는데

 

아내는 그놈을
잊을 수가 없다더군

 

자지도 않았는데요?

 

응, 그놈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거야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에 놈을
반쯤 죽여 버리고 싶은데 말야

 

문득 어떤 일이 생각났다

 

미안, 안 하면 안 될까?

 

난 이런 때 완전히
딴 사람이 되거든

 

전 괜찮아요

 

난 당신 같은
타입을 좋아하나봐

 

남편 젊었을 때랑
느낌이 비슷해

 

미안해, 이걸로
갖고 싶은 거나 사

 

아녜요, 됐어요

 

만약 다카코가
후쿠하라 씨의 아내고

 

후쿠하라 씨가 그걸 알고
날 길동무 삼은 거면

 

한 마디로 끝장인 셈이다

 

그 남자는 어떤 사람였대요?

 

왜 그렇게 관심이 많아?

 

왜지?

 

아뇨, 그냥...

 

영감님, 여긴 웬일이에요?

 

아... 그냥 좀...

 

그 사람 잡아요!
사물함 도둑이에요

 

그랬구만

 

이봐요, 어딜 가요?

 

나오미가 경찰서에 가야 해서
재회는 그걸로 끝났다

 

그러나 나는 최악의 우연과
마주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보니까
신호등이 꽤 크네요

 

뭐, 다 그런 거지

 

후쿠하라 씨

 

왜?

 

혹시 부인 사진 있어요?

 

그건 왜?

 

그냥 보고 싶어서요

 

부인 얘기를 듣다 보니까
궁금해졌어요

 

살았다!

 

뭐라고?

 

미인이시네요
제 이상형이에요

 

뭔 소리야

 

불안에서 벗어난 나는 지금껏
낸 적이 없는 소리를 냈다

 

어디 아파?

 

왜 그러세요?

 

엄청 귀찮은 여자야

 

다나카 씨

 

다나카 씨 맞네

 

뒷모습만 보고 알았어요

 

안녕하세요

 

카부라기 씨야

 

분명히 후쿠하라를
다나카라고 불렀다

 

다나카는 또 뭐예요?
후쿠하라 씨 아녜요?

 

후쿠하라 맞아

 

혹시 부인 얘기도
거짓말이에요?

 

그게 말이야
전에 누구 부탁으로

 

결혼식에서 가짜로
친척 노릇을 했거든

 

가짜 친척이요?

 

그런 게 있어

 

너같은 혈혈단신이
결혼할 때

 

상대방 체면을 생각해서
가짜 친척을 쓰곤 해

 

정말요?

 

난 신부측이었는데
저 여잔 신랑 누나였지

 

화가인 모양인데 날
디자이너라고 소개한 바람에

 

귀찮게 돼버렸지

 

그림을 봐달라고
어찌나 귀찮게 구는지

 

장황한 반면
알맹이 없는 얘기군요

 

그림 보러 같이 갈 테야?

 

여기서 기다릴래요

 

매정한 녀석 같으니라고...

 

-도망갈 생각 마
-갈려면 진작 갔죠

 

됐어요

 

전화할게

 

탄산음료에 소다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

 

뭔 말이에요?

 

그러니까 말야

 

또 쓸데없는 짓 하신다

 

-어서 닦아요
-하여간...

 

-그런 짓을 왜 해요?
-나도 잘 몰라

 

그거 후쿠하라 씨 옷이에요

 

그래? 어떡하지?

 

왜 나한테 물어요

 

근데 후쿠하라 씨는
오늘도 결근이네요

 

그만둔 건가?

 

그럼 쿠니마츠 씨한테
말했겠죠

 

그런가?

 

좀 더 자신감을 가지세요

 

그래야겠지?

 

후쿠하라 씨 소문
들었어요?

 

시부야며 신주쿠에서
젊은 남자들이랑 놀았대요

 

-거짓말!
-역시 덥석 무는군

 

-덥석 물 줄 알았어
-그런 얘기 엄청 재밌잖아요

 

계산대의 유미한테
들었는데

 

유미라면
존 말코비치를 닮은?

 

닮긴 뭐가 닮아요?

 

옷 젖었다고 얘기해

 

여보세요?
후쿠하라 씨...

 

자동응답기예요

 

여보세요?
혹시 집에 있어요?

 

있으면 전화 좀 받아요

 

여보세요?
후쿠하라 씨?

 

-죽었어요?
-그럴 리가 있겠어요?

 

이리 줘 봐요

 

너무 누워 있으면
몸이 썩어요

 

그런 심한 농담을!
썩긴 왜 썩어

 

공 좀 던져줘요

 

화가는 자기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다나카 씨의 말에
고민 많이 했어요

 

이 그림 어때요?

 

다른 그림도 보실래요?

 

총알 간호사
모모토 마키루

 

피아노 분말

 

-미카와, 이거 어떤가?
-과장님, 이게 뭔데요?

 

-피아노 분말이라네
-피아노 분말이요?

 

피아노를 가루로 만든 거지
95만이야

 

-앗! 무너졌다
-변상해

 

안녕하세요

 

약속 장소에
후쿠하라 씨는 없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전파가
닿지 않는 곳에 있거나...

 

휴대전화도
연결이 안 됐다

 

이렇게 열심히
누굴 찾는 게 얼마만인지

 

어릴적 아버지가 사라진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뭐든지 봐드림
원조 신주쿠 엄마

 

사람 찾기
귀신도 쫓아드림

 

기다리는 사람이 있나요?

 

-빙고!
-대체 어딜 갔었어요?

 

-자기가 사라져 놓곤!
-전화라도 해야죠

 

-배터리가 나갔어
-충전하면 되지

 

그럼 재미없잖아

 

난감해진 네가 어디로
갔을까 추리했더니

 

‘신주쿠 엄마’란
답이 나오더군

 

지금 농담이 나와요?

 

뭐 하자는 거냐?

 

아직도 화 안 풀렸냐?

 

네

 

화 한번 오래도 간다

 

몇 년만에 화를 냈더니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서요

 

가끔 아내랑 일요일에
버스 막차를 탔지

 

왜요?

 

-쓸쓸한 기분을 느끼려고
-무슨 말인지...

 

일요일 밤 막차는
딱 적당히 쓸쓸하거든

 

쓸쓸하면 서로
애틋하게 느껴지잖아

 

우린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부부가 됐는데

 

그 마음이 점점
무뎌지는 것 같아서...

 

너 같은 아들이라도 있으면
그렇진 않았을 텐데

 

부인은 왜 갑자기
버스에서 내렸는데요?

 

글쎄, 충동적으로 그랬겠지

 

그런가?

 

넌 최근에 언제 울었어?

 

글쎄요

 

7, 8년쯤 안 운 것 같아요

 

그건 왜 물으세요?

 

오랫동안 안 운 것 같아서

 

전 옛날부터 잘 안 울었어요

 

-제트코스터 타 보지 그래?
-왜요?

 

그걸 타면 뇌하수체에서
엔도르핀이란 게 나온대

 

그 엔도르핀이
인간을 흥분시킨다는 거야

 

전 제트코스터 못 타봤어요

 

왜?

 

아버지가 태워줬어야 하는데

 

그 전에 사라져버려서?

 

뭐 그렇죠

 

옳지, 지금 타러 가자

 

-이런 밤에 하겠어요?
-왜 안 해?

 

시끄럽잖아요

 

그런가?

 

만약 아버지와
제트코스터를 탔다면

 

지금하곤 좀 달랐을까?

 

어때? 맛있었어?

 

-줄설 정도는 아니네요
-그러게 말야

 

요전에 시마네로
여행을 갔었거든요

 

시골의 작은 어촌이었는데
너무 추워서 라면이 먹고 싶더라고

 

마을사람에게 물어보니
한 집 있다는 거예요

 

기대 안 하고 갔다가
깜짝 놀랐잖아요

 

줄을 서 있는 거예요

 

그런 데가 있지

 

초라한 시골 라면집이
숨은 맛집이라거나...

 

-그렇게 맛있어요?
-그게 아냐

 

할머니 혼자서 하는데
만드는 게 어찌나 느린지

 

한 그릇에 만드는 데 엄청
느려서 줄이 생긴 거였어

 

줄이 꽤 기네

 

별 맛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네

 

듣겠어

 

그래야겠죠?

 

후쿠하라 씨 집에
정말 갈 거야?

 

가요, 걱정되잖아요

 

-죽어있으면 어쩌지?
-살해당한 거예요?

 

농담이야
그럴 리가 있어?

 

말이 씨가 되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럼 욕은 안 먹겠지
이미 죽었으니까 말야

 

그러네요

 

감탄할 일이야?
근데 뭘 사 가지?

 

-매운 조미료 어때?
-왜 하필 그거야?

 

매운 조미료를 넣으면
정신이 확 들잖아요?

 

돈가쓰 오차즈케 맛있지?

 

네..

 

이걸 무슨 맛으로 먹나 싶어도
괜찮지?

 

이런 정크류를
좋아하는군요

 

이봐, 인공색소랑 감미료가
몸에 나쁘다지만

 

그런 걸 먹은 후로
오히려 평균수명은 늘었어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해?

 

왜 나한테 그래요?

 

그건 그렇고

 

쭉 생각해봤는데

 

자수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뭘 먹을까?

 

정말 자수할 거예요?

 

당연하지
뭘 먹을지 맞혀봐

 

초밥?

 

틀렸어
그건 출소하고 먹는 거지

 

라면이요

 

안 돼
미련이 남을 것 같아

 

카레요

 

정답!

 

교도소 가기 전엔
카레가 최고지

 

-그런가요?
-당연하지, 카레야, 카레

 

어이

 

네?

 

어떻게 생각해?

 

뭘요?

 

이런 동네 시계방은 어떻게
먹고 사는지 걱정되지 않아?

 

시계 팔아서 먹고 살겠죠

 

멍청하긴

 

동네에서 시계를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여러 방법이 있겠죠
-여러 방법?

 

그냥 여러가지로...

 

대충 대답하지 마

 

어떻게 먹고 사나
궁금하네

 

실례합니다
여기 주인이세요?

 

-좀 그냥 가세요
-괜찮다니까

 

말씀 좀 묻겠는데요

 

어떻게 먹고 사세요?

 

아니, 전부터 궁금했는데

 

이런 동네 시계방은
어떻게 먹고 사는지

 

장사도 안 될 것 같아서요

 

뭐가 어째?

 

남이야 어떻게 먹고 살든

 

-죄송합니다
-죄송 좋아하네

 

사람 놀리는 거야?

 

보기 딱하니까 그러잖소

 

얼마든지 상대해 주지

 

이러다 잡히면
자수도 못해요

 

뭐?
아, 그렇군

 

잠깐만

 

같이 가요

 

거기 서라, 이놈아!

 

-별난 영감이네
-쓸데없는 소릴 하니 그렇죠

 

어느새!

 

이 영감이...

 

어떻게 먹고 살든
네 놈이 뭔 상관이야?

 

잘 들어, 8시 23분 정각이다
기억해둬!

 

쓸데없는 짓을 했나봐

 

알면 됐어요

 

무지 아프네

 

살인을 해서
벌 받은 건가?

 

-안 웃어?
-웃음이 나오겠어요?

 

진짜 아프다

 

병원에 갈까요?

 

아냐, 됐어

 

찜질이라도 해야지
안 그럼 부을 거예요

 

그렇겠지?

 

좋아, 아내한테 가자

 

-싫어요
-아니, 왜?

 

죽었잖아요

 

아니, 거기 말고
가짜 아내

 

그녀는 다름 아닌

 

가짜 친척 역할을 했을 때
아내 역을 했던 여자였다

 

어서오...

 

어쩌다 그랬어요?

 

불쑥 찾아와서 미안해

 

괜찮아
마릴린, 가게 좀 부탁해

 

네, 걱정 마세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잘 잤어?

 

-잘 잔 모양이네
-네

 

아침밥 먹어

 

그 옷은 뭐예요?

 

-어울려?
-전혀요

 

남자 옷이
저런 것밖에 없거든

 

-이 장아찌 맛있네
-너무 익은 것 같지 않아?

 

아냐, 이 정도가 딱 좋아

 

너도 와서 먹어

 

막 반말이네?

 

그렇다고
존댓말 쓰기도 그렇잖아?

 

-잘 먹겠습니다
-먹고 더 먹어

 

도쿄타워를 부순다고?

 

-정말요?
-왜?

 

농담이야

 

그런 실없는 농담을 왜 해?

 

이 분 좀 이상해요

 

그래, 맞아

 

똥꼬 힘줄이
하나 모자랄 거야

 

내 말이 이상해?

 

그렇다기 보다도...

 

똥꼬 힘줄이 하나
모자라단 말 쓰잖아?

 

아와야 맨션

 

                  후쿠하라
 
 
 
 
 
 

 

요즘 후쿠하라 씨가
안 보이네

 

무슨 일 있나?

 

아직도 아파요?

 

아파

 

그럼 누워서 푹 쉬세요

 

그래야지

 

정말 느리네

 

이봐, 뭐하는 거야?

 

잠깐만 기다려

 

-여자는 준비하는 게 느려
-어쩔 수 없잖아요

 

미안, 1분만 더

 

또? 아까도 그랬잖아?

 

이번엔 정말 1분

 

이게 뭐죠?

 

미스터 티 아냐?

 

아, 미스터 티구나

 

미안, 오래 기다렸지?

 

뭐가 그렇게 분주한지...

 

아, 참
하나만 더

 

또 뭐야? 정말 짜증나네

 

아, 목이야

 

참, 후쿠하라 씨

 

철사 옷걸이를 머리에 끼우면
목이 절로 돌아가는 거 알아요?

 

뭐라고?

 

세탁소에서 주는 철사 옷걸이를
머리에 이렇게 끼우면

 

저절로 목이 돌아간대요

 

아까 TV에서 봤어요

 

-정말 미안해
-꾸물대긴

 

전기밥솥 예약을 깜빡했거든

 

나간다고 하고
이게 벌써 몇 분이야?

 

자꾸 일이 생기니까...

 

난 여자가 꾸물대는 거
딱 질색이야

 

계속 기다렸잖아

 

응? 당신은 안 나가잖아

 

그래, 안 나가

 

근데 왜 당신이 화를 내?

 

아니, 그야 그렇지만

 

그지?

 

고탄다 역 앞에서
뜀틀을 넘자!

 

제가 후쿠하라 씨랑
닮았다고요?

 

응

 

얼굴이 닮은 게 아니라
분위기가 닮았어

 

그런가?

 

처음엔 아들인 줄 알았어

 

설마요

 

그 사람...
아이가 있었다고 했거든

 

후쿠하라 씨가요?

 

응, 아들이었는데
태어나자마자 죽었대

 

그래요?

 

워낙 그런 사람이라
그 말도 거짓말이겠지만

 

그럴 거예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저 애기하마 말이야

 

글쎄요

 

혹시 다시 태어나도
난 애기하마는 싫은데

 

그러게요

 

동물원엔 정말
다양한 동물이 있군요

 

동물원이니까
당연하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아요

 

동물원, 처음이야?

 

네

 

어릴 때 부모님이랑 안 왔어?

 

예, 어릴 때 부모님이
도망갔거든요

 

동물원도 못 가봤고
제트코스터도 못 타봤어요

 

정말이네

 

왜 돌아가지?

 

안녕하세요!
이모, 집에 계세요?

 

누구세요?

 

마키코 이모
이모부 맞죠?

 

응? 그래...

 

안녕하세요
후후미예요

 

정말 맞구나...

 

좀 들어갈게요!

 

이 사진 이모부 맞죠?

 

그래

 

이스탄불은 어떤 곳이에요?

 

이스탄불에 있었다면서요?

 

400그램이 조금 넘는데...

 

괜찮아요

 

후쿠하라 씨 전화네

 

여보세요?
응?

 

아, 후후미?

 

미안해, 언니 딸인데
언니가 호주에 갔거든

 

그런데 당신이 내 남편이고
선장이라고 했거든

 

그냥 그런 척 해줘

 

후미야는
아들이라고 하고

 

응, 아무튼 지금 갈게

 

카라코 침대의 코라케

 

송사리예요

 

강물 속이에요

 

좀 별로예요

 

무슨 노래예요?

 

몰라
늘 부르긴 하는데...

 

독특하네요

 

그보다, 왜 거짓말을 해?
내가 무슨 선장이야?

 

전 영국유학 안 했어요
영어도 못하고요

 

응, 설마 이렇게
맞닥뜨릴 줄은 몰랐지

 

아무튼 후미야는
아버지, 엄마라고 불러

 

금방 들통날 거예요

 

얼떨결에 난 가짜 가족에
끼어들게 됐다

 

후미야, 달걀 줄까?

 

아뇨, 됐습니다

 

-이모, 마요네즈는?
-냉장고에 있어

 

방금 ‘됐습니다’라고 했지?

 

그랬나요?

 

부자연스러워

 

죄송해요

 

카라코의 코라케

 

마요네즈예요

 

송사리가 나왔어요

 

꼭 있다니까
뭐든 마요네즈 쳐서 먹는 인간이

 

얼마나 맛있는데요

 

-후미야도 먹을래요?
-난 됐어

 

난 먹어볼까?

 

-생각보다 맛있네
-그렇죠?

 

응, 맛있어
후미야도 먹어 봐

 

싫어요

 

후미야가 겁이 좀 많지
한 번 도전해보는 게 어때?

 

-맞아요
-왜 이래

 

-한번 먹어 봐
-이걸?

 

맛없어
이게 뭐야

 

그렇게 이상해?

 

오버하긴

 

-이모부도 드셔보세요
-난 됐어

 

-후미야한테는 먹으라더니
-그러게

 

됐어
난 그런 거 필요 없어

 

사실 그렇게 맛없진 않았지만
괜히 오버하고 싶었다

 

너, 다리에 있는 개미 알아?

 

몰라요, 아버지!

 

너 말이야

 

그 ‘아버지’ 소리
무지 어색하거든

 

한번도 불러본 적이
없거든요

 

그렇구나
신경 쓰지 마

 

괜찮아요

 

아까 후후미한테 배웠는데

 

어때? 개미 같지?

 

바보 꼰대!

 

방금은 자연스러웠어
그래, 꼰대라고 불러

 

-정말 아버지가 된 느낌이었어
-그래요?

 

내일부터 그렇게 불러

 

그럴게요

 

꼰대! 꼰대! 꼰대!

 

-자연스러워
-꼰대!

 

꼰대!

 

웃으면서 마음 한편으론
자수를 말리자는 생각을 했다

 

꼰대!

 

조용히 좀 해요!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이쪽 아냐?
-이쪽이에요

 

이쪽이래요

 

이쪽이 맞는 거 아냐?

 

-그런 것 같네요
-정말 믿을 구석이 없어

 

-아무튼 말야
-뭐가요?

 

니시오기 상가에
갔었다고 했잖아

 

-별일이네?
-늘 슈퍼만 가니까

 

근데 가게에 싱싱해 보이는
바지락이...

 

내가 바지락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사려고 들어갔는데
주인이 어찌나 말이 많은지

 

저긴 전에 뭐였다...
저긴 아파트가 들어선다...

 

그게 서민들의
의사소통 방식이잖아

 

인정 넘치는 대화와
자신 있게 내놓는 상품

 

석양 무렵의 동네 생선가게...

 

흐뭇한 마음으로
바지락 된장국을 끓여 먹는데

 

모래가 씹히는 거예요!

 

수다 떨 시간에
모래나 뺄 것이지!

 

조개는 모래를 잘 빼야 하는데

 

그렇지

 

저 막다른 데서 왼쪽이야

 

다녀왔어요

 

어서와

 

우유에 소금을 좀 넣으면
커피 우유가 되죠?

 

뭐? 처음 듣는데

 

-그것 봐
-정말이라니까, 마셔 봐

 

-아니, 무슨 맛이 이래?
-그렇지?

 

살짝 단맛이 나지 않아요?

 

전혀 아냐

 

혀가 이상한 거 아녜요?

 

후미야
거기 당근 좀 집어줘

 

뭘 만드는데요?

 

카레! 지금부터 끓여야
맛이 있거든

 

네? 카레요?

 

이모부가 카레가
꼭 먹고 싶으시대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해?

 

글쎄... 두 시간쯤?

 

카레 먹으려고요?

 

그래, 슬슬 카레가
먹고 싶어졌어

 

아니, 그...

 

-어? 카레 싫어해요?
-아니, 그냥...

 

카레 싫어하는 사람
처음 봐요

 

그렇구나...

 

좀 이상하네?

 

아냐

 

이런, 처트니가 없네

 

그런 게 필요해?

 

그게 들어가야 맛있거든

 

후미야, 좀 사다줄래?

 

행복은 와 있는지도 모를 만큼
은근히 찾아온다

 

반면 불행은 무지막지하게
선명히 찾아온다

 

난 이대로 처트니와 함께
사라져버릴까 생각했다

 

아, 여기다

 

아와야 맨션, 맞네요

 

이름 한 번 웃기는군

 

거의 맨션이
될 뻔 했다는 건가?

 

-‘하마터면 맨션’
-그럼 맨션이 아니에요?

 

이미 맨션이지

 

‘제법 맨션’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몇 호예요?

 

-417호
-호수 좋은데요?

 

뭘 근거로?

 

나오는 대로 말 좀 하지 마

 

-키시베 잇토쿠예요
-그게 뭔데?

 

저기 앉아있는 사람요

 

알아, 본 적 있어
배우던가?

 

키시베라니까요
왜 여기 있지?

 

-촬영이 있나?
-당연하지

 

-근데 이런 데서 웬 촬영?
-어떤 영화지? 멜로물?

 

아뇨, 그런 캐릭터 아녜요

 

그래? 그럼 뭘까?

 

저주물 아닐까요?

 

-저주물은 또 뭐야?
-누군가를 저주하는 거요

 

그런 캐릭터로군

 

본다!
키시베가 우릴 봤어요

 

-사인 받을까?
-저 사람 사인은 됐어요

 

-여기 빈 데다가...
-저기요!

 

뭐, 우리요?

 

영화 촬영 중인데
엑스트라가 모자라서요

 

시간 되면
부탁 좀 드릴게요

 

우리 나갈 거야

 

-우리 가요
-가요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카레, 불에 올려놓고
나가면 안 되겠지?

 

당연하죠!

 

불 나면 어떡해요?

 

아주 약한 불로 해도?

 

어서 가서 끄고 와

 

어묵이에요, 어묵

 

남자끼리 제트코스터라니!
이상하잖아요?

 

-좀 그렇지
-같이 탄 적이 없어도 그렇지

 

저런 건 어릴 때 탔어야죠

 

그러게 말이야

 

카레, 맛있네

 

그치? 원래는 만든 다음날이
더 맛있지만

 

맞아요

 

내가 카레를 한 달간
끓인 적이 있거든

 

정말요?

 

한 달씩이나 끓였으니
엄청 맛있을 것 같지?

 

그럴 것 같아요

 

그런데 어땠어?

 

한 달 후에 먹었더니
아무 맛도 안 나는 거야

 

어머, 왜요?

 

향신료도 고기 맛도
다 날아가버린 거지

 

아, 그런 거구나

 

역시 카레는 만든
다음날이 제일 맛있어

 

내일은 카레 스파게티
어때요?

 

그건 또 뭐야?

 

스파게티에 카레를 얹는데요

 

끝내줘요

 

왜 그래요?

 

아냐, 좀 매워서

 

그렇게 매워?

 

네, 매워요

 

좀 맵기는 하네

 

그렇긴 하지만
눈물이 날만큼 매워?

 

달걀을... 넣어봐요

 

됐어

 

일요일 저녁을 먹고 나면
최악의 시간이 된다

 

재미있는 프로도 끝난 후의
월요일까지의 최악의 시간...

 

하지만 불안한 그 마음도
자꾸 나오는 눈물도

 

왠지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상으로 키시베 잇토쿠 씨
촬영이 모두 끝났습니다

 

어떡할까요?

 

나도 몰라

 

아직 말도 안 했잖아요

 

그런가? 미안하네
그래, 뭔데?

 

-후쿠하라 씨 문병이요
-다음에 가지, 뭐

 

괜찮아, 다음주에도
안 나오면 가자고

 

너무 성의 없으시다

 

이것이 후쿠하라 씨와 하는
마지막 산책이란 건 알고 있다

 

그치만, 목적지가 있을 땐
산책이라고 안 하지 않나?

 

후쿠하라 씨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기회를 찾지 못한 채
그냥 걷기만 했다

 

당분간 마키코 집에
있는 게 어때?

 

그냥 됐어요

 

저는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은
꼭 사라지는 ‘성질’이거든요

 

무슨 소리야?

 

그런 건 ‘성질’이라고 안 해

 

-왜요?
-글쎄 안 해

 

됐나 보세요

 

잘했어
자, 그럼...

 

-후추를 좀 넣고!
-후추를 좀 넣고...

 

어때?

 

맛있어?

 

아무래도 교도소는
휴대전화가 안 터지겠지?

 

글쎄요

 

교도소에 있는
사람에게 전화하면

 

전파가 닿지 않아
통화할 수 없다고 나올까?

 

그럼 진짜 걸작이겠다

 

그렇겠네요

 

그렇다면...

 

뭐 하는 거야?

 

옛날에 만화에서 봤는데

 

이렇게 뒤로 걸으니까
점점 젊어지던데요

 

왜?

 

뒤로 걸으면
시간이 되감긴대요

 

바보 같은 소리

 

-한번 해 봐요
-난 됐어

 

-무서워요?
-무서울 게 뭐 있어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정말 죄송해요

 

그렇게 뒤로 걸으면
뭐 좋은 거라도 있어요?

 

젊어진대요

 

그거 재미있는 얘기네

 

나는...
젊어지고 싶지는 않다우

 

아, 참

 

이걸 줘야지

 

근데 말이야

 

-뭐 좋은 일 있었어?
-뜬금없이 무슨?

 

키시베 잇토쿠를 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며?

 

난 있었던 것 같아요

 

그냥 도망치는 게...

 

뭐야...

 

후미야 / 오다기리 죠

 

마키코 / 코이즈미 쿄코

 

후후미 / 요시다카 유리코

 

후쿠하라 / 미우라 토모카즈

 

감독, 각본 / 미키 사토시

 

벼랑 냄새가 아니라
고무 냄새 같은데?

 

호스가 긴 거 아녜요?

 

자네 가마 냄새 좀 맡아보자

 

어때요?

 

한번 맡아 봐

 

고무 냄샌데요

 

Origin by  Michael Archang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