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제목 with Caption Creator 4

우리 오즈마르고 건국의 시조,

초대 임금님과 왕비님이셔!

 

아주 먼 옛날,

패권 다툼에
세월 가는 줄 모르던 마족을

하나로 통합한
위대한 영웅이신 거야!

초대 왕, 영웅!

검을 쥐고
왕의 뒤를 지키며 싸웠던 왕비.

역사책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왠지 굉장한걸.

하지만 왕궁 안에
이런 조각상이 있는 줄 몰랐어.

갈로아 공작 때도
여긴 못 들어왔으니까.

이곳은 신성한 장소,

개방되는 건 왕족의 생일과 대관식,

그리고 대성제(大聖祭)가
다가왔을 때뿐인 거야.

대성제?

정식으론
오즈마르고 건국 기념 대성제.

속국의 왕후 귀족들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오즈마르고 국민이
왕궁에 모여

성대하게 기념하는 거야.

그래서 최근
왕궁 사람들이 분주했구나.

임금님도 오늘 아침부터 없고.

지금쯤 임금님은
의상 맞추기를 하고 계실 거야.

의상?

역시 임금님들은
다들 대성제 식전에서

초대 왕의 의상을 입으시는 거야.

언젠가는 사리도 초대 왕비님의...

임금님의 의상?

좋았어, 보러 가자!

 

기, 기다리는 거야, 사리!

리!

 

제물공주와 짐승의 왕

이 목숨을 바쳐야 할 숙명이라면

거스를 생각은 어릴 적에 잃어버렸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남긴 그 시선은

마음의 저주가 되었어

증오가 분쟁을 분쟁이 슬픔을

윤회처럼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면

자그마한 이 목숨에

살아있는 의미를 당신이 깃들여줬어

 

모조품끼리, 운명의 주사위는 던져졌어

바란다면 마지막까지

 

이 소원을, 이 마음을

당신에게 바칠 거라면

위로도 연민도

필요 없으니까

 

이 목숨을 이 세상을

당신이 받아들이겠다면

그 목숨 울려 퍼지기를

이 맹세를, 이 숙명을

당신이 바라는 것이라면

괴로움도, 슬픔도

끌어안아줄 테니까

 

축제와 계시의 날

 

사리, 안 돼!

갈아입으시는 중에 엿보거나 했다간
임금님께 혼나는 거야!

그치만 임금님의 의상이
어떤 건지 궁금하잖아!

 

안녕하세요!

임금님 있어요?

 

사리피인가?

무슨 일이지?

 

임금님이 옷 맞추는 걸 보러 왔는데,

그게 대성제 때 입을 옷?

그렇다만?

 

굉장해, 굉장해, 근사하다!

진짜 영웅 같아!

멋지구나, 임금님!

 

사리피 이외의 자는 자리를 비워라.

-네!
-네!

 

임금님, 어째서...?

 

혹시 쑥스러...?

 

정말로 멋져, 임금님!

 

오늘은 바람이 굉장하구나.

이제부터 하늘은 점점 더 날뛰겠지.

머지않아 폭풍이 불고,

온 나라를 뒤덮는 독기도 날려질 거다.

아마도 오늘 밤이 계시의 밤일 거다.

 

계시의 밤,

임금님이 마족의 모습과 힘을 잃는다.

 

이런 약한 진으로는
마음의 위안조차 못 돼.

하지만 인간의 모습으로는
이것이 한계.

이런 모습을 들켰다간...

 

다행이다!

레오 찾았다!

사리피...

 

아미트 씨한테 배워서 만든 과자,

레오랑 같이 먹고 싶어서.

밤은 길잖아?

 

난 두렵다.

마족의 왕의 힘 없이는

난 이 나라에 있을 수 없어.

너무나도 연약하고
불완전한 이 모습을 끌어안고,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는 것밖에 하지 못해.

 

인간인 내가
마족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면

분명 이런 식으로 몸을 숨기지
않아도 되게 될 거야.

그러니까 믿고 기다려.

 

내 손을 만져봐라.

 

어떠냐?

평범한데?

한심한 이야기다만,

지금까지 대성제 전야엔 언제나

손가락 끝이 떨리고 차가워져 있었다.

 

불안해서?

대성제에 나가는 게?

그래,

대성제뿐만이 아니다.

국민들 앞에 설 때는 항상 그랬지.

수많은 시선이 일제히 꽂힌다.

잡종 왕을, 그 허구를

언젠가 누군가가 눈치채는 게 아닐까,

난 모든 것을 잃는 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지금은 네가 있어.

손가락 끝은 이제
차갑지도 떨리지도 않아.

내일 네가 곁에 없더라도

네 마음은 느낄 수 있다.

난 언제나 네가 지켜주고 있어.

 

조금 더 곁으로 와라.

날 데워주도록.

레오,

나도 언제나
그 다정함이 지켜주고 있어.

지금의 난 아직
임금님 곁엔 설 수 없지만,

분명 언젠간...

 

잘 잤어, 레오?

 

인간?

 

인간인 채로?

어째서?

어쩌지?

 

저기, 아빠,

하늘색이 푸른데.

어째서?

이거 드문 일이군.

몇백 년 만인지.

날이 밝아도 계시가 계속되고 있군.

 

그럼

어제 그 강한 폭풍으로
독기가 전부 날아가 버려서,

마족의 모습으로 못 돌아가는 거야?

그렇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겠군.

그럼 이대로 계속 인간의 모습으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독기가 하늘을 뒤덮기 시작할 거다.

그러면 자연스레 마력이 돌아오고,

마족의 모습으로도 돌아갈 수 있겠지.

정말?

그럼 그때까지 숨어있으면 괜찮겠네.

아니.

 

왕께선 아직도 나오시지 않았는가!

역시 방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알현실에도 대연회장에도
그 모습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식전이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사리피 님도 안 계시다니,

대체 어떻게 되신 걸까요?

-사리!
-사리!

대성제 식전의 시작을 고하는 종은

초대 왕이 건국을 선언한
바로 그 시각에

열두 번 울린다.

건국 이후,
단 1분 1초도 어긋난 적이 없어!

절대로 늦출 순 없다!

이미 수많은 신민들이
왕의 출좌하시길 기대하고 있다.

온 왕궁 안을 철저하게 찾아라!

하, 하지만 재상님, 이 이상은...

지하는 찾아보셨으려나요?

 

세트.

지하의 제단의 방 말입니다.

그곳은 통상적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장소.

중요한 식전 전에
정신을 고양시키기엔 최적이니까요.

어쩌면 그대로
시간을 잊고 계신 걸지도 모르겠군요.

 

재상님...

 

알았다.

비상시다.

내가 책임을 지지.

제단의 방에 가자!

 

왕이시여, 여기 계십니까?

임금님!

 

어쩔 수 없군.

강제로 열어라!

네!

 

이곳에도 안 계시는가?

가자!

 

이런 샛길이 있었다니.

여기로 제물이 된 아이들을
도망 보내줬었구나, 임금님.

 

설마 내가 쓰게 될 줄이야.

 

여기까지 찾았는데 안 보이실 줄이야.

대체 왕께선 어디로 가신 거지?

 

깜짝 놀랐네!

놀란 건 저희입니다!

지금까지 어디에?

대, 대장님!

인간 공주여,
왕과 함께 계시지 않았는지?

그, 그게 있지!

나, 나도 아침부터 찾고 있는데,
이쪽엔 없는 것 같아!

응, 없어, 없어!

 

알겠습니다.

가자.

 

이제 괜찮아.

하지만 여기도 위험해.

달리 어딘가 숨을 만한 장소는?

 

여기라면 한 번 찾은 장소니까
분명 괜찮을 거야.

 

레오?

 

왜 그래?

정신 차려, 레오!

 

레오!

마족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어!

 

다행이다!

이걸로 식전에 늦지 않겠구나!

 

아니,

이제 곧 종이 울리기 시작할 거다.

설령 지금 당장
마족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해도

열두 번의 종이 전부 다 울리기 전에

몸치장을 마치고 나가는 건 무리야.

그럴 수가,

분명 어떻게든 될 거야!

모르겠구나.

설령 늦지 않았다 해도,

정말로 그걸로 괜찮은 건가?

 

자신의 모습조차 뜻대로 되지 않고,

지켜야 할 자들을 휘두르고 있는 왕이

백성들의 앞에 설 자격이 있는 건가?

 

레오,

난 레오를 정말로
어엿한 임금님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건
네가 힘세 보이는 모습을 하고,

어엿한 갑주를
입고 있기 때문이 아니야.

이거 봐,

이제 떨리지 않네.

 

왜 그래?

누군가 온다.

 

내가 발을 묶어볼게.

맡겨줘!

사리...!

 

이거, 이거, 사리피 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건
처음이로군요.

 

누구야?

자기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법관을 맡고 있는
세트라고 합니다.

기억해 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법관?

그 법관님이 왜 이런 데에?

온 왕궁 사람들은
임금님을 찾고 있는데?

네.

아무래도 이 장소가 신경 쓰여서
다시 한번 발길을 되돌려봤더니,

아무래도 제 직감도
못 써먹을 건 아닌가 봅니다.

아주 약간이지만,

이 안에서 누군가의
마력의 기척이 느껴지기에.

저, 저기,

임금님은 식전 전에
혼자서 정신집중하고 싶다고 해서.

저런,

그러다 식전에 늦어버리셔서야
아무 의미 없습니다만?

저는 직무상 막다른 곳에 몰린 자의
갖가지 목소리를 들어왔습니다만,

사리피 님께선 그다지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시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오해하진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재상 나리께선
그저 식전에 구멍이 뚫리는 걸

우려하시는 모양입니다만,

저는 어디까지나
왕의 옥체가 염려되는 것뿐입니다.

혹시 왕께서 뭔가 곤란하시다면

어떻게 해서든
왕께 힘이 되어드리고 싶군요.

그것은 당신도 마찬가지겠지요.

 

자, 사리피 님,

부디 그 문을 열어주십시오.

 

안 돼!

 

어쩔 수가 없군요.

명색이 왕비 후보란 분께
거친 짓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안심하시길,

제 부하입니다.

자, 너희들, 문을 열어라.

 

그만둬, 안 돼!

 

이, 임금님!

 

시, 실례하였사옵니다!

역시 이곳에 계셨군요.

지금까지 이런 데서 대체 무엇을?

 

종이?

다소 늦으신 모양입니다.

지금부터 준비하셔서야

식전엔 도무지 맞출 수 없습니다.

아니, 이대로 나가겠다.

 

그, 그럴 수가!

시, 실례하오나 그러한 모습으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나는 왕이다.

그렇지, 사리피?

응!

 

종이다!

드디어야!

그 장엄한 모습을 또 볼 수 있겠구나!

 

하지만 이상한데.

평소라면 왕께선
종이 울림과 함께 나타나실 텐데,

아직 모습이 안 보이는데.

 

이제 틀린 거야!

재상님!

늦었어!

이렇게 된 이상...!

지금 당장 종을 멈추고,
식전을 중지하라!

재상님!

 

임금님이다!

임금님의 성수다!

 

어쩜 저리 성스러운지!

임금님!

 

뭐, 뭐지?

정장 차림이 아니신데?

전통 있는 오즈마르고 대성제인데.

어째서 저러한 모습으로?

 

왕이시여, 이건 대체...?

 

난 오늘

초대 왕의 갑주를 벗어던졌다.

하지만 그것은

전통을 가벼이 여겼기 때문이 아니다.

초대 왕으로부터 대대로 이어받아온
이 나라를 지키고,

한층 더 강하게 발전시키는 것이
나의 사명.

하지만 그것은

그저 단순히 선진들께서 걸어온 길을
모방하는 것만으론

이룰 수 없다.

무익한 답습은
머지않아 형식만 남게 되어,

결국은 완고하고 배타적인
마음의 갑주로 화할 것이다.

지키기 위해 변하고,

변함으로써 지킨다,

그것이야말로 전통을 존중하는 것.

다시 변하지 않으면, 나아가지 않으면

열릴 길은 있지도 않을 것이다!

 

나를 따라라!

이 내가 가시밭길을 헤쳐열고,

그대들이 걸을 길이 되리라!

그 너머에야말로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미래가 있는 것이다!

 

임금님!

임금님 만세!
임금님!

 

오즈마르고 만세!

 

임금님은 대단해...

 

훌륭하신 말씀이었네요, 사리피 님.

 

사리피 님?

가고 싶어.

나...

나도,

저곳에...

저 사람 곁에...

 

훌륭한 연설이셨사옵니다.

하지만

그러한 대담한 일을 하실 거면

사전에 한 마디 해주셨으면 하는군요.

 

말하면 넌 반드시 반대했겠지.

그리고...

임금님!

 

이것은 사리피의 말에서
착상을 얻은 것이다.

백성들 앞에서 몸치장하고 보여주는 게
왕의 전부가 아니다,

...라고 말이지.

 

어쩐지.

이 아누비스 감복하였사옵니다.

 

재상님한테 평범하게 칭찬받았어!

 

슬슬 다음 시련으로
심술부릴 때쯤 됐다 생각했는데.

그 건에 대해서는 내일...

 

시련은 이로써 일단 종료합니다.

 

하지만 아직 시련은

벤누 쨩 소환과
갈로아 공작의 대접 밖에...

앞으로 사리피 님께선

왕비 대리로서
왕비석에 앉아주셔야겠습니다.

왕비... 대리?

그렇습니다.

다만 대리라곤 해도

실제 왕비와 같은 공무를
해내주셔야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대성제까지
공무를 무사히 해내셨을 경우엔,

사리피 님을

정식으로 왕비로 인정하도록 하지요.

 

하지만 왕비 대리로서
공무에 임하시게 된다면 당연히...

사리피 님의 존재를
널리 주지시키게 됩니다.

각처로부터의
거센 반발은 피할 수 없겠지요.

혹시 왕비의 소임을
충분히 해내지 못하고

왕의 명예에 명백한 상처를
내는 일이 생길 경우,

당신을 요아나에 돌려보내겠습니다.

 

인간의... 나라에...?

 

다만, 이대로 이 나라에 남는 길도
없는 건 아닙니다.

그건 당신께서
왕비 대리를 사퇴하시는 것.

그 경우엔 정식으로 왕비를 맞아들이고,

당신께선...

왕의 애완동물 정도쯤의 입장이라도
되게 해드리지요.

 

이것은 사리피의 문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받아들이는 것뿐,

 

사리피의, 진심에서 나온 대답을.

 

이것은 내게 있어서도 커다란 도박.

자, 어떡할 테냐, 계집?

 

왕비 대리를 수락해서 제대로 못하면,

이 나라에 있는 것조차 못하게 돼.

왕비를 포기하면
여기에 남아있을 수는 있어.

하지만...

 

여어.

 

어라?

벤누 쨩.

뭘 우물쭈물 고민하고 자빠졌냐?

대답은 하나밖에 없잖아.

 

돼버리면 되지, 왕비님.

이 나라는 고여있는
커다란 물웅덩이 같은 거야.

한 번쯤 꽝하고
바람구멍을 내주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어.

 

하지만...

아씨,

잠깐 이 꽉 깨물라고.

 

어떠냐!

아프냐!

전혀 안 아픔

응...
전혀 안 아픔

때린 내 날개 끝이 더 아프다고,
띨빵문어 자식아!

아씨는 이제
제물이 되다만 것 따위가 아니라고.

자신감 갖고 말해주라고,

임금님을 어엿한 임금님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이 나뿐이야, 라고!

 

나뿐?

 

기억해둬라,

내가 바라는 여자는 사리피,

오직 너 하나뿐이다.

 

맞아!

 

레오가 나만을 바라주고 있어.

 

계지...!

사리피 님, 대체 어디서?

 

임금님!

나, 할래!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왕비 대리, 열심히 할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믿고 기다려줘!

같이 있게 해줘!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시련은

너 하나에게만 주어진 것.

난 그저 이를 갈며
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지.

하지만 대리이든 뭐든 간에

왕비의 책임은
그 자를 선택한 왕의 책임,

이것은 나에 대한 시련이기도 하다.

사리피,

언제든 어디까지든

너와 함께 있을 거다.

앞으로는 둘이서...

같은 걸 짊어지고 가는 거야.

 

사랑을 하는 데에

정답이니 잘못이니 하는 게 있는 거라면

어쩌면 혹시

우리는 잘못된 쪽인 걸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이 마음이 계속

당신이 좋다며 종을 울리고 있어

처음 마주 닿았던 그날부터

닫혀져있던 어둠에 빛이 내리쬐였어

당신을 만나지 못했었더라면

사랑의 의미도 모른 채 있었으려나

다른 누구였다면 분명 틀렸을 거야

나와 당신의 형태를 찾아내자

 

왕비 대리를 수락하다니,

이 계집이 우쭐대기나 하고.

어디 한 번 그 첫 일에서 큰 창피를...

뭐냐, 이 수상한 기척은?

재상님!

제 아뮬렛, 어떠신가요?

가호와 왕비 대리
제 아뮬렛, 어떠신가요?

가호와 왕비 대리
아니, 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