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랍스터

정말 미안해

그 자식은 안경을 써
아님 렌즈를 껴?

안경

서둘러, 가야 하잖아

그는 갈색 구두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등이 아팠지만
예전만큼 쑤시지는 않았다

아내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다

아내에게 버림받은 자들은
대부분 울 거라 생각하면서도

그는 눈물을 참았다

여기 카메라를 봐주시겠어요?

네, 고맙습니다

- 전에 오신 적 있으세요?
- 처음이에요

- 음식 알레르기 있나요?
- 아뇨

- 몇 년간 함께 산 거죠?
- 12년 정도

- 정확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 11년 1개월

- 성적 취향은요?
- 여자예요

대학 때 딱 한 번
남자와 잔 적은 있어요

양성애자라고 써도 되나요?

안 돼요
지난 여름부터 금지됐어요

운영상 문제 때문에요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지금 결정하셔야 해요

그럼 이성애자로 하는 게
좋겠어요

- 자녀는요?
- 없어요

저 개는 뭐죠?

제 형인데 짝을 못 찾았죠
기억나실 수도 있어요

금발인데, 정수리는 비었고
보통 체격에, 48세

잘 모르겠습니다

성함을 대문자로
정확히 기재해 주세요

서명도 해주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배구나 테니스는
하실 수 없습니다

커플들만
이용할 수 있어요

스쿼시나 골프 같은
개인운동만 하실 수 있어요

45일간 호텔에 머물 수 있고
1인실을 사용하실 겁니다

완벽한 짝과 맺어지면
2인실로 옮겨드려요

가자, 형

개인 소지품은
허용이 안 됩니다

필요한 건
다 제공해드려요

옷, 신발
다른 부대용품도요

- 이건 갖고 계셔도 됩니다
- 고마워요

- 신발 크기는요?
- 44 반

44 반은 없어요
44나 45?

45

이발은 하루 전에 예약하시고
흡연은 금지입니다

흡연하면 금방 지쳐서
사냥을 오래 할 수가 없어요

키스할 때 냄새도 나고요

- 좋은 시간 보내세요
- 고마워요

저기요

미용실은
전날 예약하란 말이죠?

- 그렇습니다
- 알겠어요

그는 101호에 묵었다

침대 머리맡 위에는
마취총이 걸려 있었고

탁자 위에는 마취용 화살 20개
검은 플라스틱 시계

선글라스와
남성용 향수가 있었다

옷장에는
똑같은 회색 바지 4벌

흰색과 푸른색
셔츠 각각 4벌

허리띠, 양말, 속옷

콤비 상의, 줄무늬 넥타이
흰 목욕 가운이 있었다

그가 창밖을 내다보았을 때

잡혀온 사람들이 의식을 잃고
젖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나마 방수 우비니 다행이군'
그는 생각했다

195호

외톨이 2명, 2일 연장

272호

외톨이 1명, 1일 연장

저는 호텔 매니저이고
이쪽은 제 파트너입니다

오신 걸 환영합니다

운이 좋으시군요
전망 좋은 방을 얻으셨어요

- 안내책자는 읽으셨나요?
- 네

좋아요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돼야 합니다

이곳에 왔다고 해서
우울해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동물이 돼도
짝은 찾을 수 있으니까요

물론 동물이라고
멋대로 해선 안 돼요

공통점이 있는 동물을
선택해야 하죠

늑대와 펭귄은 절대 함께 못 살죠
낙타와 하마도 그렇고요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말도 안 될 일인지

이런 얘기
듣고 싶지 않겠지만

마음의 준비를 돕는 게
제 임무니까요

짝을 못 찾게 되면
어떤 동물이 되고 싶으시죠?

랍스터요

- 왜 하필 랍스터죠?
- 랍스터는 100년 넘게 살아요

귀족들처럼
푸른 피를 지녔고

평생 번식을 합니다

제가 바다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어릴 때부터 수영과
수상스키를 했거든요

잘한 결정이에요
대부분 개를 먼저 떠올리죠

그래서 온 세상에
개가 바글바글 한 거예요

희귀동물을 택한 극소수는
위험에 빠지기도 하고요

랍스터는 훌륭한 선택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겠어요?

혼자보다 둘일 때
삶이 윤택하단 걸 느껴보세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거든요

내일 이 시간에 풀어드리죠

개 때문에 미안해요

즐거운 시간 보내길 바랍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

알려드립니다

101호, 44일 남았습니다

아침식사 시간입니다

그는 첫날을
잊을 수 없었다

아침식사 때 근처에
머리를 뒤로 젖힌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가 코피를 자주 흘린다는 걸
얼마 후에 알았다

그녀 옆에는
그녀의 절친도 있었다

그는 커피를 마시며
잠시 아내를 떠올렸다

비스킷을 좋아하는 여자가

아침부터 칵테일을 마시는
남자에게 비스킷을 권했다

그의 뒤에도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가 피눈물도 없는 여자인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커플석에 앉은 이들은
마주칠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날 그는
유난히 배가 고파서

치킨을 통째로 먹을 정도였지만
결국 손도 대지 않았다

인사나 하죠

네

새로 만난 친구와
산책하려는데 소개할게요

이쪽은 내 옆방의 로버트
혀짤배기예요

반가워요
101호에 묵어요

나도 같은 층인데
186호

- 같이 가실래요?
- 좋아요

난 저기 있는 요트에
들어갈 거야

요트는 뭐에 쓰는 거지?

커플로 여길 떠나기 위한
마지막 관문, 가장 어렵지

커플끼리만 15일간 지내는 곳
안내책자 안 읽었어?

읽었지

존의 다리 봤어?

아니

존, 다리를 보여줘

알겠어

187호, 2일째

반갑습니다, 여러분

제 어머닌 아버지가 수학 잘하는
여자를 선택하면서 버림받았죠

어머니는 학사였는데
그 여자는 석사였어요

그때 저는 19살이었죠

호텔로 온 어머니는
짝을 찾지 못해 늑대가 됐어요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죠

동물원으로 갔다는 얘길 듣고
자주 보러 갔어요

날고기를 던져주곤 했죠

늑대는 날고기를 먹거든요
어느 늑대가 엄마인지 몰라서

조금씩 떼서
모든 늑대한테 줬어요

그러다 우리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죠

엄마가 너무 그립고
안아보고 싶었거든요

우리를 뛰어 넘었어요

늑대들이 저를 노려보곤
달려들었는데

두 마리만이 가만있더군요

둘 중 하나가
어머니라 직감했죠

경비원이 재빨리 저를 끌어내
병원으로 보냈어요

다행히 다리는 건졌지만
평생 절게 됐어요

절름발이가 된 거죠

제 아내는
6일 전에 죽었는데

아주 예뻤고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아내도 다리를 절었죠

잘 들었어요, 존
자리에 앉아주세요

다음 순서는 104호, 2일째

안녕하세요

어제 이곳에 왔습니다

다들 좋으신 분 같아서
다행입니다

제 특징은 미소가
아름답다는 점입니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그대

내 영혼과 정신은
혼미해지네

내 삶으로
깊이 들어온 그대

춤춰 본 적 있어?

뭐?

춤춰 본 적 있냐고

그럼

어떤 춤을 췄는데?

음악에 따라 다르지

여기에 앉고 싶어?

아니, 춤출 거야

앉아도 되죠?

미안해요

- 앉아도 돼요?
- 그럼요

제 친구랑도 인사하세요

저 여자는 감정이 없어요
무서울 만큼 비정하죠

여기서 사냥을 제일 잘해요
소리도 안 내면서 빠르죠

최고 기록 소유자예요
192명을 잡았어요

잿빛 하늘을
푸르게 밝히는

나의 빨간 장미여

춤추시겠어요?

내 사랑

내 사랑

내 손을 잡은 그대

내 영혼을
저 동산에 데려가

내 삶으로
깊이 들어온 그대

미안해요
셔츠에 피를 묻혔어요

지울 수 있으니까
걱정은 말아요

찬물에 헹군 다음에
바다 소금으로 문질러 빨면 돼요

암모니아에 적신 면으로
문질러도 되고요

옷이 밝은 색이거나 얇으면
밀가루와 물을 반죽해서

치약처럼 만들어
빨아도 되고요

따뜻한 물은
절대 안 돼요

알겠어요

그대, 그대, 그대

그대가 내게 다가왔죠

그대가 내게
오고야 말았죠

흔들리는 내 마음은
그대를 잡으려 했죠

영원히 내 곁에 머물도록

다리가 아파서
좀 쉬어야겠어요

그래요

괜찮아지면 알려줘요
그때 또 추면 돼요

내 영혼과 정신을
산산이 흩뜨려놓고

내 밤을 빼앗아간 그대

내 꿈 속에
그림을 그려놓고

- 잿빛 하늘을
- 푸르게 밝히는

나의 빨간 장미

나의 빨간 장미여

질서정연하게 나가세요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게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사냥에 최선을 다하세요

다리만 안 절어도
좋을 텐데

원래는 달리기 잘했어
지금은 아니지만

제일 뒤처질 거야

나라면 다른 작전을 짜겠어
속임수나 함정 같은 거

속도로 승부하지 말고

네 말이 맞아

그 수밖에 없어

186호

1명 사냥, 1일 연장

38일에 1일 추가, 39일

180호

체류기간 변동 없음

290호

4명 사냥, 4일 연장

154일에 4일 추가, 158일

101호

체류기간 변동 없음

32일 남았습니다

아침식사 시간입니다

남자 혼자 식사하는 경우

- 어제 마취용 화살 몇 개 썼죠?
- 12개요

바지를 벗고
침대에 앉으세요

오늘은 안 하면 안 될까요?
기분이 더러워요

그 기분 알지만
그래도 해야만 돼요

짝을 찾는 데 심리적으로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커플이 함께 식사하는 경우

뒤로 누우세요

다리를 벌리고

더 벌려요

- 186호실 맞습니까?
- 네, 맞아요

자위가 금지라는 걸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네

지속적으로 해왔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발기가 더 빨라졌어요
좋은 신호예요

조금만 더 해줘요

좋은 하루 되세요

끔찍해, 최악이야

사진을 보면서
자위를 했습니까?

네

어떤 사진이었죠?

시골 들판에서
여자가 알몸으로 말을 타는

여자 알몸이 아니라
말을 봤어야죠

그 말도 당신처럼 겁 많고
나약한 남자였을 테니까

여자가 혼자 걷는 경우

도와주세요

도와줘요

사람 살려

이건 너무 해요, 제발

어쩌다 한 번 한 거예요
죄송해요, 이러지 말아요

- 토스트기에 손을 넣습니다
- 다시는 안 그럴게요

다른 건 다 잘 지켰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제발, 제발
이것만은

커플이 함께 걷는 경우

그 방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깨끗이 씻긴대

그건 어디서 들었어?

삼촌이 여기서 일했던
종업원을 알아

종업원이 어떻게 알겠어?
거긴 들어갈 수가 없는데

그다음엔 피부를 잘 불려서

싹 벗겨낸대

그러곤 눈, 심장, 장기들을
레이저나 수술용 칼로

전부 다 도려낸대

그다음부턴 선택한
동물에 따라 달라져

그럴 듯하군

포유동물은
더 복잡할 거 같은데

- 새랑 비교가 안 되잖아
- 그렇겠지

남은 부위는 호텔 레스토랑
밖에 있는 통에 던져놓고

피는 도시에 있는
병원으로 보낸대

왜?

수술할 때 필요하잖아
헌혈로는 부족해

- 어제 사람들이 새로 왔어
- 나도 봤어

- 다리 저는 여자도 있어
- 발목이 삐었겠지

- 며칠이면 제대로 걸을 거야
- 유감이네

좀 기다려봐

어느 날, 그의 옆에
비스킷을 좋아하는 여자가 앉았다

그는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볼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녀와 말을
섞지 않기 위해서였다

- 형은 어때요?
- 잘 지내요

언제 같이 산책해요
형도 같이요

개는 외출 금지래요

'이러면 할 말이 없겠지'
그는 생각했다

이보다 더 좋은 핑계도
없어 보였다

일말의 여지도 없는
최고의 핑계였다

형한테 이 비스킷 주세요

잘했다고 칭찬해줄 때
하나씩 줘요

- 제가 줬단 말도 해요
- 그럴게요

방으로 찾아가도 되죠?

입으로 해줄게요
아니면 그냥 해도 되고요

난 입으로 한 후엔 삼켜요
뒤로 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전남편은 내 허벅지가
세계 최고랬어요

내 방은 180호예요
전화도 180번으로 해요

오늘 밤엔 외톨이를
많이 잡았으면 좋겠어요

- 당신도 많이 잡아요
- 고맙군요

짝을 찾지 못하면

방 밖으로 몸을 던져
죽어버릴 거예요

창밖으로요

당신만 알고 있어요

내 방은 1층이에요

'오늘 외톨이를 잡으면 좋겠어요'
'당신도 많이 잡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적당한 짝을
찾지 못하면

창문으로 뛰어내려 죽겠다고
말했다

320호에서

아니면 더 높은
480호에서

그녀가 수다를 멈췄을 때
그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창밖을 보며 자신의
핑계가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좋아요, 좀 더 높게

짝을 찾지 못하면
어떤 동물이 되고 싶어?

랍스터

난 짝이 없으면
앵무새가 되고 싶어

너희도 앵무새로 해
그리고 같이 사는 거야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발음도 똑바로 못 하면서
앵무새가 되고 싶다니

동물이 돼도
혀 짧은 건 똑같아

너도 그래, 잡히면
끓는 물로 직행해서 죽겠지

그다음엔 집게를 부숴서
마지막까지 쪽쪽 빨아 먹힐걸

불쌍한 녀석들

난 동물이 되지 않을 거야
그러니 가끔씩 너흴 보러 갈게

내 짝이랑 같이
공원을 산책하다 보거나

바다에서 수영을 할 때나
여행을 가서 만날 수도 있겠지

이봐, 친구들

187호, 앞으로

과녁이 커플이 아니라
한 명인덴 다 이유가 있어요

안녕하세요

- 네
- 수영복이 예쁘네요

- 고마워요
- 별말씀을

평영, 자유영, 접영, 배영
어떤 걸 좋아해요?

다 좋아해요

저는 평영을 즐겨 해요

제 친구들은 가슴으로
수영하지 말라며 놀리고는

자기들끼리 웃어요

평영도 좋긴 해요
척추에 참 좋은 운동이죠

남자들은 평영 할 때
반바지 수영복은 피해야 해요

엉덩이가 자유롭게 움직이질
못하거든요

그 느낌 잘 알죠?

- 코에서 피가 나요
- 정말요?

아, 또 이런다

늘 이래요

정말 짜증 나요

그 기분 잘 알아요
저도 코피가 잘 나거든요

무슨 짓 했는지 다 봤어
꽤나 아플 텐데

코피 흘려?

아니

이제 나온다

- 휴지 써도 되지?
- 그럼

내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줘

어떤 게 최악일까?
숲에서 추위에 굶어 죽거나

동물이 돼서
다른 동물에 먹히거나

매번 코피를 흘리는 것 중
어떤 거지?

동물로 변했는데
다른 동물에게 먹히는 거지

그렇지

- 거짓말인 거 모를까?
- 모를 거야

새 커플이 탄생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군요

두 사람은 이틀 전에 만났지만
서로 사랑하는 천생연분입니다

코피를 자주 흘리는 것까지
완벽하게 닮았거든요

두 분은 내일 2인실로 옮깁니다
옷장도 크고 욕실도 클 거예요

앞으로 2주간
2인실에 지낸 후

요트로 옮겨 2주를
더 보내게 됩니다

꼭 통과해 당당한 커플로
도시에 돌아가길 바랍니다

- 너무 행복하네요
- 저도요

축하해요

두 사람이 잘 지내는지
저와 스태프들이 지켜볼 겁니다

문제가 생기거나
다툼이 벌어져서

사이가 위태롭다 싶으면
아이를 배정할 겁니다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거예요

알려드립니다

101호, 7일 남았습니다

아침식사 시간입니다

머릿결이 참 좋네요

알고 있어요

봐요

나는 어때 보여요?

푸석푸석 하군요

머리 색은 괜찮은데

대머리만 아니면 되죠

대머리가 될 운명은
피할 수가 없어요

- 당신 아버지는 어땠나요?
- 대머리는 아니었어요

머리카락은 빠져도
해결방법이 있으니까요

모발 이식도
괜찮을 거 같은데

남의 머리 심는 걸
쉽게 말하네요

풍성한 머리숱은 타고나야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아버지가 대머리가 아닌데도
안심 못 하는군요

마지막 날에 뭘 할지
결정했어요?

아직 생각 중이에요

잘 잤어요?

자...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관례대로 마지막 날은
원하는 대로 보낼 수 있어요

동물이 되면 할 수 없는 걸
하라고 충고하고 싶군요

고전을 읽는다든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세요

산책 따위로 낭비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에요

섹스도 마찬가지죠
동물이 돼서도 하잖아요

당신 친구가 써온
감동적인 편지부터 들어보죠

꼭 읽어주고 싶다니까

우린 학교에서도
단짝이었어

고민이 있을 때마다
늘 조언을 해줬지

졸업파티에 같이 갈
남자애가 없을 때도

너와 함께여서
견딜 수 있었어

상황이 이렇게 돼서
마음이 너무 아파

며칠만 더 있으면
너도 좋은 짝을 찾을 텐데

넌 착하고 머리숱도 많고
무엇보다 가슴이 크니까

네 머리카락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늘 그랬듯이 앞으로도
넌 내 최고의 친구야

네가 생일선물로 준
귀걸이는 꼭 하고 다닐게

평생 보고 싶을 거야

도시로 돌아가 새 친구를
사귀게 되더라도

너만큼 진실한 친구는
만나지 못할 거야

'스탠 바이 미'를 볼래요
리버 피닉스가 나왔던 영화

저 혼자 볼게요

딱 맞는 영화를 골랐네요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여보세요

욕실에 있나 봐요
그래서 못 받는 거군요

아침에 찬물 샤워가
성욕을 눌러줄 거예요

샤워 끝날 때쯤
다시 전화할게요

그때 얘기해요

곧 봐요

그가 골프를 치던 날이었다

그는 감정이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감추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는 비정한 여자의 말투와
짧은 머리가 마음에 들어서

바로 '이 여자'라고
결론내렸다

사냥하는 동안 그녀 뒤를 쫓았고
그녀가 외톨이를 잡자

재빨리 말을 걸었다

'실제 총이 있으면 좋은데
마취총은 애들 장난 같아요'

'맨손으로 죽여보지 그래요?'

그녀가 외톨이 목에
손을 대자

'즉사할 것 같아요'
라고 비위를 맞췄다

무슨 일이죠?

180호가 창밖으로
뛰어내렸어요

- 피와 비스킷이 뒤엉켜 있어요
- 고통 없이 빨리 가길 바라야죠

아니, 그녀가 죽기 전에
고통을 좀 느꼈으면 좋겠어요

저 애처로운 비명 소리를
내 방에서는 듣고 싶지 않군요

누워서 조용히 평화로움을
즐기고 싶거든요

골프를 쳐서
아주 피곤한데

천천히 시끄럽게 죽어가는
여자를 봐야 하다니

비명 소리 때문에 안 들려요
조용해지면 다시 얘기해요

이따 봐요

그래요

첫 번째 메시지

여보세요

욕실에 있나 봐요
그래서 못 받는 거군요

아침에 찬물 샤워가
성욕을 눌러줄 거예요

샤워 끝날 때쯤
다시 전화할게요

그때 얘기해요

곧 봐요

그쪽으로 가도 되죠?

마티니도 있군요

- 우리 잘 어울릴 것 같죠?
-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2인실 열쇠를 받으세요

두 분이 성공하시길
우리 모두가 기원합니다

잘 때 왼쪽이 편해요
오른쪽이 편해요?

- 난 오른쪽, 당신은?
- 왼쪽, 완벽하군

다리를 벌려요

불 꺼도 될까요?
책 읽을 거예요?

- 책 읽고 싶은데, 방해되나요?
- 아니

환하거나 시끄러워도
잘 자요

깨우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요

- 잘 지내지?
- 응

- 축하해
- 고마워

우리 딸 엘리자베스

아빠 친구한테
인사드려야지

멍청한 어린애
인사 따위 필요 없어

엘리자베스, 이리 와

아빠랑 똑 닮은 절름발이 됐으니
나한테 감사해야지

무슨 소리가 났는데?
당신이 냈어요?

아니

얼굴 마주 보며 하고 싶은데
어때요?

좋아

얼굴이 잘 안 보여요
우리 불 켜고 해요

그만 일어나요

벌써 아침이군

내가 당신 형을 죽였어요

천천히 죽어가도록 놔뒀어요

아직 숨이
붙어있을지 몰라요

죽을 때까지 발로 찼어요

괜찮아

우는 건지 짖는 건지
이상한 소리를 냈어요

이렇게

어디가 아팠던 거 같은데
아무 소리 못 들었어요?

아니, 전혀

세상 모르고 자는군요

- 커피 마실래요?
- 당연하지

세수하고 나올게

어젯밤에 당신이 해준단 얘기
궁금하니까 빨리 나와요

대학 때 당신 학생이 낸
말도 안 되는 과제 얘기요

그거 정말 웃긴 얘기예요

학생 이름이 리스
R-Y-E-S-S 리스였는데

눈물이 아니라 물이에요
방금 세수해서 그래요

거짓말이란 거 다 알아
대체 왜 우는 거지?

거짓으로 꾸민 관계는
용납 안 되는 거 잘 알 거야

매니저한테 말하겠어
당신은 처벌 대상이야

- 무슨 처벌이지?
- 아무도 원치 않는 동물이 돼

저쪽으로 갔어요
제정신이 아닌 것 같던데

아무 일 없는 거죠?

그는 그녀가
형에게 했던 대로

똑같이 되갚아주고 싶었다

그녀의 배를
죽도록 걷어찬 후

같은 자리를
칼로 찌를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곧 의미가 없는 짓임을
깨달았는데

의식 없는 그녀는 어떤 고통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나를 쏴요, 내가 도운 게
알려지면 안 되잖아요

호텔 메이드가 그를 도왔는데
왜 그랬는진 알지 못했다

그는 그녀를 동물로
바꾸겠다고 결심하고

동물로 바꾸는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녀를 어떤 동물로 바꿨냐고
내가 거듭 물었지만

그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당신은 몰라도 돼'

그날 밤 그는
영원히 호텔을 떠났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향한 곳은
우리가 있는 곳이었다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그때까지 그는 외톨이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알지 못했다

등이 손에 닿지 않아
연고를 바를 수 없어서

통증에 시달리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숲에서 발견했어요
호텔에서 도망쳤대요

혹시 의사인가?

아뇨

아쉽군
우린 의사가 필요해

있던 의사 한 명이
몇 달 전 잡혀갔어

난 건축가예요

상관없어
아무튼 환영이야

원하면
우리와 함께 있어도 돼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아도 돼
유예기간 같은 건 없어

고마워요

우리끼린 서로 사귀어서도
섹스를 해서도 안 돼

어길 시에는 처벌이 따를 거야
알아들었지?

대화도 안 되나요?

대화는 상관없어
수작부리면 안 된다는 거야

춤출 때도 마찬가지야

춤도 혼자 춰야 해
그래서 우린 일렉트로닉만 들어

입은 왜 그래요?

저자는 말해선 안 돼요
레드 키스 처벌을 받았거든

레드 키스가 뭐죠?

저자와 상대 여자의 입술을
면도날로 벤 후

강제로 키스를 시킨 거요
며칠 전 일이에요

상처가 깊어 아직도 저래요
서로 놀아나다가 저 꼴 났지

처벌에도 등급이 있었다

엄지손가락 절단은
빡빡머리보다 수위가 높고

겨드랑이에 뜨거운 계란 넣기가
다리를 차는 것보다는 높았다

레드 키스보다 더 무서운 건
핏빛 관계였다

본 적은 없었지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몸서리쳐질 정도로

전진!

은폐!

전진!

은폐!

그때 그를 처음 보았다

그는 나와 가까운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남달라 보였다

다음 날 도시에 갔을 때
그도 내가 근시인 걸 알게 됐다

그날 밤 꿈에 그와 나는
도시의 큰 집에 살고 있었다

부엌도 크고
잘 꾸민 집이었다

난 짙은 파란색 바지와
몸에 붙는 녹색 블라우스를 입었다

그는 내 옷을 벗긴 후
엉덩이를 들어올리고 삽입했다

한창 하고 있는데
부엌으로 괴한이 들어와

서랍에서 스테이크 칼을 꺼내
우리를 공격했다

우리 둘의 배를 차례차례
찔러대는 바람에

공포에 휩싸여
눈을 떴다

더 애를 써

포기하지 마
조심했어야지

벗어나지 못하면 잡혀서
동물로 살아가야 해

우린 이곳을 떠난다
더 이상 머물면 위험해

덫에서 나오면 무조건 달려서
우리를 찾아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죽을 것 같으면

네 무덤으로 가

무덤은 파놨지?

- 네
- 잘했어

금일 훈련은 종료한다

송로버섯 따갖고 올게요
이때 아니면 얻기 힘들어요

1kg만 따도
큰돈이 돼요

돼지가 있으면
금방 찾을 텐데

나도 알아요

50분 안에 다 돌아올 테니까
시간 맞춰서 와

네

- 이봐, 데이비드
- 오랜만이야, 로버트

- 짝에게 끔찍한 짓을 했더군
- 내 형을 죽인 여자야

그녀는 자네를 죽였어도
난 똑같이 해줬을 거야

자넨 내 형제와 다름없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잖아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넌 존이랑 더 친했잖아

존이 누군데?

- 절름발이 존
- 아, 그랬구나

난 존의 이름도 기억 못 해
얼굴도 기억이 안 나

필요할 때 내 곁에
있어준 건 자네야

존은 그 여자와 어때?

이번 주에 요트로
옮겨갈 거야

잘될 거라고 모두들 그래
둘이 싸워도 애가 있어서 풀려

- 잘됐네
- 돌아올 생각은 없어?

매니저에게 형 얘길 하면
선처받을 수 있을 거야

아니, 혼자 지내는 게 좋아
여기선 나를 구속하는 게 없어

음악도 실컷 들을 수 있고
자위도 원 없이 하고

산책도 내 마음대로 하고
수다도 떨 수 있어

혼자선 뭐든 해도 돼

자네가 그리웠어
유일하게 믿었던 존재니까

- 날 쏠 거야?
- 이틀 남아서 어쩔 수 없어

그게 말이 돼?
무슨 논리가 그 모양이야?

널 쏠 거야, 이틀은 부족해
연장할 시간이 필요해

시간이 생긴다고 뭐가 바뀌지?
네 못난 얼굴은 생각 안 해?

넌 기회도 얻지 못해
내가 여자라도...

내가 도왔단 얘기
하지 마요

고맙다면 토끼나
한 마리 갖다 줘요

- 알겠죠?
- 알겠어요

- 또 봐요
- 그래요

- 안녕하세요
- 안녕

내가 말한 거 가져왔지?

그럼요

다 이 안에 있어요
총, 2인실 방 번호, 열쇠까지

열쇠는 잃어버리면 안 돼요
그들이 찾기 전에 갖다놔야 해요

토요일이 적당해요
춤추고 와서는 다 쉬거든요

주말엔
쉬는 직원들도 많고요

샴푸는?

깜빡 잊었어요

다음엔 두 병 가져올게요

뭘 시켜도
야무지게 해서 좋아

샴푸 잊지 않게 써놔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뭐지?

이게 마지막이에요

더 이상은 못 해요

돼지 같은 치과의사와
더는 못 살아요

치실을 했는지
꼭 확인하고

먹을 때마다
당장 이를 닦게 해요

계획한 거사만 잘 치르고 나면
우리와 함께해

다른 사람을 찾을게

너만큼 도움을 줄 거란
기대는 안 하지만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며칠만 더 참아
피임약 먹는 거 잊지 말고

감사해요

내가 더 고맙지

그동안 잘해줬어

잘 드는 칼로
토끼 가죽을 벗기고

머리는 잘라버린 후

배를 가르고

깨끗이 씻은
청고추와 홍고추를 넣는다

너무 맵지 않을 정도로만
마늘과 민트도 조금 넣고

그다음엔 레몬 주스에
고기를 재워뒀다가

꼬치에 끼워
한 시간 정도 구우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리가 된다

토끼 요리 완성

여성, 흑갈색, 50세

결혼증명서 유효기간
2개월 전 만료

- 남편은 출장 갔어요
- 그렇군요,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손

손톱 밑 깨끗하고
신발에도 진흙 없음

벨사이즈 9번가

- 남편은 출장 가셨다고요?
- 네

- 어디죠?
- 바스로 갔어요

실례합니다

혼자이신가요?

수고하십니다
제 짝과 함께 왔어요

매장 안에 있어요
쇼핑 중이에요

증명서 보여주시겠어요?

제가 잘 잃어버려서
제 짝이 갖고 있어요

어느 매장에서
쇼핑 중이죠?

아, 저기 오네요

늦어서 미안해, 여보
호랑이 연고를 찾다가 그만

이걸 골랐는데
자기가 찾던 걸 거야

이거면 됐어
내 증명서 갖고 있지?

응, 내가 갖고 있지
제 것도 보여드려야 하나요?

아뇨,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 감사합니다, 경관님도요
- 부인도요

네

내 걸음이 늦다 싶으면 말해요
속도를 높일게요

이대로가 좋아요

손을 너무 꽉 잡지는 말아요
손바닥에 땀이 차서요

- 이 정도면?
- 한결 좋아요

당신 것으로 사려고
생각해둔 건 없어요?

콘텍트 렌즈 용액, 파커 볼펜

근시인 줄은 몰랐는데

나도 근시예요

며칠이나 묵을 생각이니?

자고 가진 못 해요, 아빠

오늘 돌아가야 해요
내일 출장을 가거든요

제 일에 대해 아시면서
올 때마다 그러심 어떡해요

모두 한 직장에서 일하시나?

- 네
- 그렇습니다

아주 좋은 직장이라고
내 딸이 그러던데

맞아요?

- 그 이상입니다
- 정말 그래요

최고라고 할 수 있죠

아내하고 애들한테
시간을 낼 수 없는 게

유일한 흠이죠

저희는 애가 넷이에요

다복하군요

-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애들이 없었대도

아내를 떠난단 건
생각도 안 해봤죠

둘만이었다면
여행을 떠났을 겁니다

이탈리아의 뽀르또피노나
그리스 섬으로 휴가를 가서

처음처럼 뜨거운 사이임을
확인했을 겁니다

제 아내를
정말 사랑합니다

아내를 위해
죽을 수도 있어요

그 정도로 사랑하지요

도시에 처음 나온 날인데도
아주 잘했어

지중해로 휴가 간다는
설정도 좋았어

고맙습니다

언제 근시가 됐어요?

16살 때

- 당신은요?
- 12살 때

처음 썼던 안경은
어떤 거였어요?

기억이 안 나요

- 난시도 있어요?
- 있어요

등에 연고 발라줄까요?

손이 안 닿는 곳에요

그러면 좋죠

- 여기?
- 조금 아래

- 그럼 여기?
- 맞아요

모두 무사히 완수하길 바란다
방 호수는 다음과 같다

306호, 호텔 매니저와
그녀 파트너의 방

둘 다 목소리가 좋다

240호
스키를 좋아하는 커플

282호
사회과학 전공자 커플

요트 '블리스'에는
코피를 자주 쏟는 커플

너와 너는 306호
너희 둘은 240호를 맡아

너는 282호
그쪽 둘은 요트를 맡아

제가 요트로 가도 될까요?

그래, 그럼 네가 요트를

그쪽 둘은 282호로

우리 셋은
매니저의 방으로 간다

40분 안에 끝내도록

매니저와 얘기하는 게
좋을 거야

눈 떠

일어나

저기 의자에 가서 앉아

손은 등 뒤로 돌려

농구공 무게는
550에서 650g 사이야

- 당신도 알고 있었어?
- 아니, 몰랐어요

좋아

남녀용이 따로 있지만
대략 그 정도 무게야

- 배구공 무게는 알아?
- 아뇨, 알 수는 있어요

- 잘 지냈나?
- 오랜만이야

중요한 사실을 알려드리지

이 사람의 코피는 가짜야
일부러 내는 거라고

벽이나 딱딱한 나무에
찧거나

당신이 안 보는 사이에
연필 칼로 긋는 거지

닥쳐

아빠, 저 아저씨 나가라고 해
난 이제 잠잘 시간이에요

저 셔츠에 묻은 것도
피가 아닐걸

체리 주스, 토마토 케첩
빨간 물감으로 꾸민 거겠지

비트 주스일 수도 있고

저 여자를 사랑하나?

진심으로요

15점 만점으로 치면
얼마나 사랑하는 거지?

14점

14점, 아주 감동적인 점수군

저 여자를 정말 사랑하나 봐

누가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혼자서도 살아갈 자가 누구지?

여기 칼, 엄마
저 사람 죽여요

당장 꺼지는 게
좋을 거야

나갈 거야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어

당신은

이 여자가 죽으면

혼자 살 수 있나?
아님 다른 짝을 찾을 건가?

난 혼자 살 수 있어도
저 여자는 그러지 못해요

저 여자가 호텔 일로 바쁠 때
난 혼자 시간을 보냈어요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지거든요

고독을 좋아해요

정말 난 혼자 살 수 있어요

- 안 돼!
- 조용히 해

총을 잡아

저 여자를 쏴

안 돼!

제발 그건 안 돼!

어디 있었던 거지?
한참 찾았잖아

저 나무 뒤에서
자위했어요

춤은 왜 안 추지?

다리를 좀 다쳤어요

무덤은 파뒀어?

아직요

재촉하는 건 아냐
지금은 승전 파티 중이니까

그래도 언젠간 해둬야 해

자기 무덤은 스스로 준비해야 해
누군가 묻어줄 거란 기대는 마

기껏해야 흙이나 뿌려주지

내일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서
파도록 해, 돌은 피하고

- 일단 오늘 저녁은 즐기라고
- 고마워요

그가 진료를 끝내자마자
내가 가서 말했어요

'여보, 저녁 다 됐어
근데 난 못 먹어'

'앞니 하나가 아파서 그래
자기가 좀 봐줄 수 있어?'

그가 '당연하지' 하면서
고개를 돌린 순간

드릴을 집어서
그이의 가슴을 뚫어버렸어요

정말 재미있네요
근데 가야 할 것 같아요

저기 나무 밑에
배터리를 놓고 왔거든요

누가 집어가기 전에
가져와야겠어요

- 토끼를 직접 잡은 거요?
- 다른 사람이 줬어요

- 누가?
- 친구가 줬죠

- 한 마리 줄까요?
- 아뇨

다른 사람이 주는 토끼는
받지 말아요

필요하면 내게 말해요
언제든지 잡아줄 테니까

토끼 사냥이 어렵긴 하지만
더 잘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한테
빚지지 말라고요

정말 고마워요

토끼를 준 놈도 근시요?

글쎄요, 아닌 것 같아요

알겠소

저 나무에 앉은 게
참새인가?

멀어서 안 보이지만
아닌 것 같은데

- 근시야?
- 아니

- 거짓말하지 마
- 왜 내가 거짓말을 해?

여기 뭐라고 쓰여 있지?

YKK

지퍼 종류는 하나니까
이미 알고 있는 거잖아

난 근시가 아냐

왜 내 말을 안 믿지?

난 눈 좋아
조종사였다고

렌즈를 끼고 있잖아

렌즈는 안 껴
근시가 아니라고 맹세해

내가 그깟 분간도 못 할
바보는 아냐

어디 봐

확인해 봐야겠어

위로

위로 움직여!

더 위로

아래

왼쪽

오른쪽

다시 위로

미안해

나를 속이는 줄 알았어

미안하게 됐어

동시에 누르려면
집중해야 해

똑같은 시간에
정확하게 눌러야 해

헤드폰을 같이 쓰면
되지 않을까?

따로 쓰는 게 핵심이야
연습을 해보자고

우리 둘이
한몸처럼 맞아야 해

알겠어

- 준비됐어
- 좋아

5...

4...

3...

2...

둘째 날 그녀에게
꽃 한 송이를 주니

이보다 아름다운 여인
세상에 없어라

내가 물었지
'붉은 들장미가 고고하게'

'짙은 향기를 내며
홀로 있는 곳을 아오?'

둘째 날 그가 붉은 들장미
한 송이를 들고 와서는

'그대의 절망과 슬픔을
내게 주오'라 말했지

난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에 누웠어

'들장미 있는 곳으로
데려가리다, 따르겠소?'

그들이 나를
들장미라 불렀지

내 이름은
엘리사 데이인데

우리는 암호를 만들어서
대화를 했다

남들 앞에서도 들키지 않고
우리끼리 얘기할 수 있도록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면
'세상 무엇보다 당신만을 사랑해'

머리를 오른쪽으로 향하면
'조심해, 위험한 거 같아'

처음에는 두 암호가
헷갈리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세상 무엇보다 당신만을 사랑해'

'조심해, 위험한 거 같아'

왼팔을 들면
'꼭 안고서 춤추고 싶어'

주먹을 쥐고 등 뒤에 대면
'하고 싶어'

시간이 갈수록
암호가 늘었고

몇 주 만에

입을 떼지 않고도
거의 모든 대화가 가능해졌다

그만해!

연주하시는데 지나치잖아!
우리 부모님께 예의를 갖춰

괜찮다

어머니, 이건 아니에요

계속 들려주세요

같은 곡으로
아니면 다른 곡으로?

다른 걸로 해주세요

연주가 정말 훌륭했죠?

네, 대단하셨어요

우리는 서로 잘 맞았고
깊이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

결국 숲을 떠나 도시에서
영원히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내일 사냥하는 틈을 타
사라질 예정이다

우리가 잡혀갔으리라
생각하겠지

아니면 개나 카나리아 같은
동물로 변했구나 여기겠지

도시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목욕용 가운을 사서

높은 다이빙대가 있는
수영장에 갈 생각이다

또 여기선 허락되지 않는
의미 있는 일을 함께 할 것이다

함께 공원을 산책하거나
같이 기타를 치는 것도 좋다

이게 끝이에요

뒤에도 있긴 한데
중요한 것 같진 않아요

그것도 읽어

뽀르토피노, 이탈리아의 어촌

아름다운 항구로 유명
상류층을 위한 휴양지

인구는 439명

인근 바닷가

빠라기 비치, 까모글리
치아바리, 라바냐

세리포스: 그리스의 섬
키클라데스 제도 서쪽에 위치

어디서 난 거야?

강가에 있었어요

사냥 중
누군가 떨어뜨렸겠죠

이리 줘

내가 처리할게

왜 인적이 드문 곳에
데려왔는지 알아?

아뇨

네 무덤으로
최적인 곳이기 때문이야

흙을 몸 위에 덮어

손을 써

개들한테 얼굴 뜯어 먹히지
않으려면 얼굴도 덮어

나보다 먼저 죽으면
가끔 보러 올게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해요

셋이라서 위험해요

둘이나 넷으로
왔어야 했는데

왜 미처 생각 못 했을까요

의사가 의심할 게 뻔해요

지금이라도
나가는 게 좋겠어요

어서요, 빨리요

겁낼 거 없어

아무도 우릴 의심하지 않아

눈 수술은
꿈도 못 꿨잖아

-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 그렇긴 하죠

그래도 며칠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음 번 도시에 왔을 때
수술을 해도 되잖아요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해?

근시로 사는 것보다
잘 보이는 게 좋잖아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만해

이 분야의 유명한 의사여서
약속 잡기도 힘들어

몇 달 전에 예약해서
오늘 간신히 잡은 거야

- 이제 완벽한 장님입니다
- 고마워요

칼을 내려놓고 일어서

왜 내 눈을 멀게 한 거야?
그를 멀게 할 수도 있었잖아

무슨 말이야

약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거니?

나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더 씩씩해지겠어

어서 일어나
그리고 칼은 이리 내

넌 나한테
한주먹거리도 안 돼

이쪽이야

널 죽이고 말겠어

머리 좀 놔줘
너무 아파

침착하게 생각해봐
눈, 눈이 멀면...

다른 감각이 더... 살아난대

개를 잡아 길들이면
안내견이 될 수도 있어

개들은 그런 걸 잘해

개를 잡도록 도와줄게

그만 진정해
널 버리고 갈 수도 있어

너 혼자선
찾아올 수도 없을걸

경치가 잘 보이니까 좋아?

그럼

손은 왜 그래?

칼로 나뭇가지 자르다가
실수로 다쳤어

오늘따라 잘생겨 보이는데
머리 잘랐어?

고마워
근데 이발 안 했는데

오늘 하려고 생각 중이야
내가 뭘 구했나 봐봐

고마워, 너무 배고팠는데
빨리 요리해 먹어야겠다

- 큰 손전등이야
- 아, 이런

하도 커서
토끼인 줄 알았어

이렇게 큰 전등은
처음 봐

오늘 밤 준비 다 됐지?

물론 다 했지

근데 할 말이 있어
화내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알았어
무슨 일인데 그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

장님이 됐어

그게 무슨 말이야?

어차피 알게 될 거니까
숨길 이유도 없어

대장이 도시에 데려가서
내 눈을 멀게 했어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

도시로 도망가려는 것도

미안해

전혀 안 보여?

아무것도

내가 이발했냐고 물은 건?

그냥 넘겨짚은 거야

내가 안 보이는 걸
눈치 못 챘구나

미안해

울지 마
울면 눈에 덧나

해결책이 있겠지

혈액형이 뭐지?

B형

그녀를 본 순간
내 짝임을 알았네

나를 보는 그녀의 미소가
그것을 알려줬다네

그녀의 입술은
붉은 장미 같고

그 입술은
강을 붉게 물들였네

베리 좋아해?
블루베리? 블랙베리?

아니, 싫어

피아노 칠 줄 알아?

아니

플라스틱 컵

맞아, 잘했어

독일어 할 줄 알아?

아니

내가 가르쳐줄 수 있어

근데 간단한 대화도
거의 1년은 걸려서

좋은 생각 같지는 않다

독일어는 배우기가
제일 어려운 언어야

문법이 너무 복잡하거든

내가 좋은 거 구해왔어

생선이야

둘째 날 그녀에게
꽃 한송이를 주니

이보다 아름다운 여인
세상에 없어라

내가 물었지
'붉은 들장미가 고고하게'

'짙은 향기를 내며
홀로 있는 곳을 아오?'

키위

맞아
이번에도 10개 다 맞췄어

키스해도 돼?

날 동료로
챙겨주는 건 고마운데

그 이상은
곤란할 것 같아

다른 걸로
한 번 더 해볼까?

오늘은 그만하자

오늘은 많이 했어
더 할 물건도 없고

내일쯤 다시 하자

아니면 조만간 다시

내일 아침?

그래, 내일 봐

- 안녕
- 조심하고

나 왔어

잘 잤어?

응

나 배고파

요즘엔 토끼를
안 갖다 주네

물건 맞추기만 가져오고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어
마음에 들 거야

지금 시간 되지?

뭔지 빨리 말해줘

왼발을 든다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두 번 두드린다

발을 무릎에 대고
세 번 톡톡톡 친다

엎드린다, 꿇어 앉는다

왼쪽 뺨을 만진다

그러곤 드러눕는다

정말 그럴 마음이
있는 거야?

그럼, 이미 결정했어

그 길 외엔 방법이 없어

언제?

내일

내일?

좀 더 빨리 걸어야 해

더 빨리 갈 수가 없어

바지가 너무
꽉 끼어서 그래

너무 어두워서
분간이 안 됐거든

입어 볼 시간도 없었어

미안해

괜찮아

저기 버스가 온다

호텔 버스였어

우릴 보진 못했어

옆모습

손가락

팔꿈치

- 배꼽도 보여줄까?
- 아니

당신 배꼽은
안 보고도 그려

미소

칼이랑 포크 주시겠어요?
버터용 말고, 스테이크 칼로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스테이크 칼로 하려고 해

- 내가 같이 가줄까?
- 당신은 여기 있는 게 낫겠어

너무 걱정 마

처음엔 불편해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

다른 감각은 더 예민해져
촉각, 청각 모두

알아

금방 끝내고 올게

고마워요

더 랍스터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콜린 파렐

레이첼 와이즈

아리안 라베드

아게리리 파루리아

존 C. 라일리

레아 세이두

벤 위쇼

각본: 요르고스 란티모스
에프티미스 필리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