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제목 with Caption Creator 4

약사의 혼잣말

 

그림자 속에 살며시 숨어있든
상관없잖아

봉오리 같은 꽃도 얼마든
있잖아

비밀로 하고서 지키는 게
좋지 않을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화려하게 피어있어

달콤씁쓸함에 빠지지 않는

그 판단이 부질없어

끙끙 앓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진 말아줘

사랑에 익숙할 턱이 없는
쓸데없이 꾸미지 않은

아름답게 꾸민 꽃병도
비료도 그 무엇도 필요 없는

그 모습이 아름다워

꽃이 되어서
어서 공허하게 냉소해줘

그 표정이 짜릿짜릿해서
눈을 뗄 수가 없어

맛보아줘
너의 독이 내겐 약이라고

감싸줄 테니까
웃어줘

 

비취궁 묘묘

 

어떡할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풍명의 처형 후,

풍명의 친족은 재산을 빼앗기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다들 육형에 처해졌어.

 

범행은 풍명의 독단에
의한 것으로 처리되어,

주인인 아다비에게 탈이 없었던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고 지금,

풍명의 본가 및
그 관계자의 명부가 여기에 있어.

명부에는 장사 거래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양봉 이외에도
폭넓게 하고 있었던 모양이라,

후궁 내에 관계자의 자녀가
80명 정도 있습니다.

 

2천 명 중 80명인가.

상당한 적중률이군.

 

약사가 납치당해 팔려간 곳이
예의 그 관계자였던 모양이다.

 

바라신다면 은폐하겠습니다만.

 

바라신다면...

 

그렇겠지.

올바른지 아닌지는 관계없어.

내가 말하면 그대로 돼.

 

평민와 귀인의 선을 긋고 싶어하는
그 자는

아무리 싫은 명령이라도 받아들이겠지.

 

명령하는 건 간단해.

간단히 정해버리면 돼.

은폐하면
이대로 후궁에 붙잡아둘 수 있어.

 

하지만, 혹시 그것이
그녀의 뜻에 반하는 일이라면,

좋아하지도 않는 장소에
붙들어두었단 걸 눈치챘을 때,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두 사람 사이의 균열이

이 이상 벌어지는 것이 무척 두려워.

 

임씨 님.

 

써먹기 좋은 장기말 아니었습니까?

 

대량해고?

맞아.

제12화 환관과 기녀
그 집안이랑 거래가 있었던 집의 딸은

전부 그만둬야한대.

이게 상당한 인원수가 될 모양이야.

 

갑자기 그만두게 돼서
곤란해진 애도 주변에 있어.

분명 여러 곳이랑 거래했었나 봐.

 

뭔가 나쁜 예감이 들어.

지금 해고 같은 건 상당히 곤란한데,

시기가 안 좋아.

이백 이후로 아직 포주 할멈에게
귀한 손님을 보내지 못했어.

지금 돌아가면...

 

다녀왔어!

 

네 손님이야!

 

분명히 팔아치워 버릴 거야!

 

묘묘?

 

전에 확인했을 때,

내 서류상의 본가는 무역을 하고 있는
상인 집안으로 되어 있었어.

 

풍명의 본가가 양봉 농가라면,

뭔가 접점이

있을지도 몰라.

 

임씨 님!

 

별일이군,

숨이 거친데.

 

저기...!

진정해, 얼굴이 새빨갛구나.

 

말씀 드릴 게 있습니다.

 

알았다.

안에서 얘기하지.

 

이번 대량해고 건 말이지?

네.

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명부다.

 

즉... 해고란 거군요.

 

어떡하고 싶지?

 

써먹기 좋은 장기말 아니었습니까?

 

옥엽 님의 시녀가 된 뒤로

기미역도 할 수 있고
의국에도 다닐 수 있어.

나름대로 지금의 생활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어.

 

하지만, 난 평범한 여관.

해고하지 말아주세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돼.

 

아양 떠는 눈을 하진 않도록 해야 해.

 

저는 하찮은 여관입니다.

시키는 대로 허드렛일이든,
식사 준비든, 기미역이든

명을 받으면 합니다.

 

명을 받으면...

그래,

명령 받으면 가능한 한 해낸다.

다소 급료가 내려가도 불평은 안 해.

팔아치워지기 전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어떻게든 할 거야.

 

그러니, 자르지 말아줘!

 

알았다.

 

그럼...!

 

돈은 두둑히 주지.

 

교섭 실패.

묘묘, 해고.

 

언제까지 그러고 계실 셈이십니까?

 

역시 붙잡아두시지 그러셨습니까.

 

아무말 마라.

 

해고 통지 그 다음 주,

소묘는 홍등가로 돌아갔다.

 

예의바르게도

신세 졌던 곳들을 한 곳 한 곳
인사하며 다녔다고 한다.

 

후회해도 난 몰라!

 

마음에 든 장난감을 잃어버린
이 사람에게

대신할 만한 희한한 장난감을
가져다 주는 건 한 고생이다.

 

그게 좋아!

 

아니,

그 소녀를 장난감과 똑같이 취급해선
안 될지도 모른다.

도구로서 취급하기 싫어서
붙잡아두는 걸 포기했으니까.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
성가신 주인이다.

 

대신할 게 없다면...

 

그 무관에게 물어볼까.

 

침울침울...

꿍얼꿍얼...

울적울적...

 

역시 주근깨는 없는 편이 낫네.

입술 연지는 내 걸 빌려줄게.

설마 묘묘와 함께
연회에 가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오늘밤의 일은

기루 밖에서 열리는 귀인의 연회,

기녀를 저택으로 부르는 데엔
그만큼 돈이 든다.

거기다가

하룻밤 술을 따르게 하는 데에
일반인의 급료 1년치의 은이 날아가는

녹청관의 세 공주를 한꺼번에 부르다니,

돈이란 있는 데에는 있는 법이다.

 

함께 간다 해도
내 역할은 언니들의 들러리 역인데.

자, 묘묘.

 

후궁을 나갈 때
생각한 것보다 돈을 두둑히 줘서,

일단은 팔려가는 건 면했다.

 

들러리 역도 중요한 일이야.

잘 부탁해, 묘묘.

 

귀엽잖니!

 

시간 됐다, 얼른 준비해!

 

어머, 조금은 볼만해졌구만.

바로 손님을 받아줘도 되는데?

 

포주 할멈은 어떻게 해서든
날 기녀로 삼고 싶은 낌새다.

 

한몫 단단히 벌고 와라!

 

시가도 못 읊고,

이호도 못 켜고,

춤은 애당초 논외.

약 이외엔 흥미도 없는 약사의 딸인데,

아무래도 요 몇 년동안
그 낌새가 노골적이다.

 

역시나 대단한 부자네.

눈이 아찔해지는 세간 도구들뿐.

하나 정도 기념품으로 받아가도
안 들키...

 

안 되지, 안 되지.

 

이쪽 방입니다.

 

이백 님께서 소개한
궁정 고관들이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나이들이 젊네.

 

츄릅.

 

자, 가자.

 

이런 부자가 있었으면
좀 더 빨리 소개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이백 님의 연줄이었으면
빚도 조금은 줄었을 텐데.

 

자자, 일하자, 일.

 

일이라곤 해도
계속 웃고 있는 건 지치네.

 

어라,

시시한 건가?

 

실례하겠습니다.

혼자 있게 해줘.

 

혼자 있고 싶어.

어디 보자,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듯한 목소리...

 

임씨 님?

 

어째서 피하지?

기녀를 만지진 말아주세요.

너,

화장으로 변한다는 소리 안 듣나?

자주 듣죠.

애당초 왜 그런 차림을?

단기 취업 중입니다.

기루에 말이냐?

맞습니다.

 

혹시 너...!

이 분은 꼭 남의 정조를
의심하는 성격인 모양이야.

딱히 개인으로
손님을 받고 있진 않습니다.

아직.

 

아직...?

 

그럼 내가 사줄까?

네?

농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네요.

 

한 번 더 후궁에서 일할 수 있는 건
나쁘지 않네요.

 

거기가 싫어서 그만둔 것 아니었나?

네?

그런 말 언제 했습니까?

계속하고 싶다고 타진했더니
해고한 건 그쪽이시잖습니까.

 

분명 귀찮은 일은 많았습니다만,

기미역 같은 건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마음에 안 들었던 건
독 실험을 못하는 것 정도였습니다.

 

독 실험은 아무리 그래도 그만둬라.

오늘은 또 한 층 더
어린애 같은 표정을 짓는군.

그랬지.

넌 그런 녀석이었지.

뭡니까?

설명 좀 제대로 하란 소리
듣지 않느냐?

자주 듣습니다.

 

그러니까 왜 도망치느냐?

규칙이니까요.

조금 정도는 괜찮지 않느냐.

안 됩니다.

닳는 것도 아니잖느냐.

기력이 닳습니다.

한 손만, 손가락만이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 꽤나 끈적댔지.

 

손가락만입니다.

 

이 자식...!

연지 다 묻잖아!

 

어머, 어느 틈에?

 

묘묘도 참.

낯뜨거운걸.

잠깐, 언니!

 

고순 님?

 

정말 뭐가 어찌된 건지 곤란해서,

그 뒤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거 누구야?

어떤 관계?

정말, 제법이잖니!

다만, 어쨌든 언니들의 추궁이
끈질겼던 건

잘 기억하고 있다.

 

남은 건...

혹시 모르니 만들어둘까.

주근깨를 빼면 좋은 일이 하나 없어.

 

그게 작년 겨울이었나.

 

잡혀간 것도 놀랄 일이지만,

하필이면 팔려간 곳이 후궁이라니.

 

거기다 출세해서 시녀까지 되고...

 

기한이 끝날 때까지
얌전히 있으려고 했는데.

 

묘묘,

다 됐나?

응, 이거.

 

봐줬으면 하는 애가 있어.

부탁해도 되겠나?

알았어.

 

후궁이라,

평생 엮이고 싶지 않은
장소였단 말이지.

 

잘 지낼까, 다들.

 

지금 나갈게.

느긋하게 있다 가.

가끔 밖에 못 들어오는데.

 

응.

 

어떡할 거냐, 앞으로?

빚이라면 제대로 갚을 거야.

당연하지!

 

돌아갈 거냐, 후궁에?

 

모르겠어.

 

하지만 후궁도 홍등가도
그다지 다를 게 없을지도.

 

잠이 안 오는 거니?

 

잠시 바람 쐬고 올게.

 

조심하거라.

응.

 

후궁도 홍등가도 그다지 다를 게 없어.

화원이자 새장이야.

 

고요한 밤에 웅성이는 기억

하얀 눈처럼 내려쌓여가네

어느 샌가 끌어안고 있던 것

늘어나 있었지

조금은 두려워져서

느껴졌던 따스한 온기는 이 손에

남겨두고 싶어

 

얼어붙은 흙 속에서

꽃은 하늘을 바라지

내일을 기다리는 나는

어디로 갈 수 있는 걸까

 

그저 바랄 뿐이야

그저 자유롭게

그저 굳센 나로 있고파

지금 내딛은 발자국 이 눈에 새기자

언젠가는

꽃이 피어나길

 

어떻게 되는 걸까,

앞으로.

 

추워.

 

며칠 후,

수도의 홍등가에
아름다운 귀인이 나타난다.

 

포주 할멈도 눈이 아찔해지는 금전과,

그리고 어째선지...

 

벌레에서 난 기묘한 풀을
가지고 온 그 남자는...

 

한 명의 소녀를 요청했다.

 

장식 같은 다정함이 아니라

어디 다 쓸 곳도 없을 만큼의 온기를

그런 제멋대로인 이상을 늘어놓으며
오늘도

말로는 못하고 집어삼키기만 했지요

추억은 아직 금목서

황혼빛을 풍기는 거리에서

웃고 있었겠지

가슴이 애달파서 눈물이 흐르고

그날의 당신 곁에서 빛을 찾아내고

어리광부렸었지

바람이 시끄러워서 귀를 막고 있었어

그런 나로부터 졸업해야겠지

사랑의 말에 발이 걸려 넘어지더라도

 

다음 시간,

외정 근무.